올더스 헉슬리의 말처럼 

“경험이란 당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다. 

경험의 주관적이고 개별적이며 상대적인 성격은, 

실은 경험 자체가 말해주는 어떤 절대적인 것도 없음을 시사한다. 

더구나 경험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인간은 

많은 부분 이미 결정된 것에 의해 제약받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경험에 따른 인식에 대해서 절대적 확신이 아니라 

그 인식이 틀릴 수 있다는 겸허한 태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 박민영, 『이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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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폭력에 연루되시는가? - 성서 내러티브에 나타난 하나님의 폭력
L. 대니얼 호크 지음, 홍수연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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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보면 종종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선한 인물들’로 분류되는 캐릭터들이 종종 놀랄만한 폭력적 성향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진멸할 것을 호소했고, 다윗은 에돔 족과의 전투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시편의 시인들은 종종 적들에 대한 잔혹한 보복을 꿈꾸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좀 더 큰 ‘문제’는 하나님 또한 이런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호수아의 명령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된 것이고, 자신의 백성들을 구해내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재앙을 내리기도 하신다.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그분의 계획은 원수들에 대한 가혹한 징벌로 표현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분의 아버지의 뜻과는 좀처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왔다. 초기 기독교 시기 대표적인 이단 중 한 명인 마르키온은, 보복을 즐겨하는 폭력적인 신을 담고 있는 구약과 사랑을 명령하는 신약의 하나님을 아예 분리시키고자 했다. 그가 가진 성경에는 오직 사랑의 하나님에 관한 내용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된 것이었다.


이건 좀 지나치게 과격한 행동이었지만, 확실히 이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만 했다. 좀 더 온건한 사람들 중에 오리게네스 같은 인물은 구약의 이야기를 일종의 알레고리화 함으로써 그 역사성을 희미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한다. 겉으로 보기엔 폭력적으로 보이나, 실은 아니었다는 식이다.


방법은 좀 다르지만, 오늘날에도 정통적인 기독교 안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오리게네스와 비슷한 결론을 취한다. 물론 아예 성경을 신화적 이야기로만 보는 사람들이야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쨌든 이를 ‘거룩한 문서’로 읽어내려는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론이 같다고 해서 다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구약 전체를 알레고리로 보려는 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좀 지나치니까.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은 알렉산드리아 학파대신 안티오크 학파가 개척한 길을 따르는 게 기본이다. 본문의 문법적, 역사적 해석을 기초로 하는 것.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의 폭력성‘이 기본적으로 그 시대의 산물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하나님 또한 어쩔 수 없이 그런 방식으로 자기계시를 하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았다면, 사람들과의 소통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는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의 폭력성”에 관한 본문들 중 상당수는 그 본래의 의미가 오해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예컨대 가나안 주민들을 진멸하라는 명령은, 곧바로 그 땅의 백성들과 관계를 맺을 때 주의해야 할 점에 관한 경고가 따라 나오는 것으로 보아, 문자적으로 전멸시키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식이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저자는 성경 전체를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고, 그 과정에서 당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힘, 폭력)을 보여주셨는지를 따라간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은 결국 백성들의 배신과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과 거기를 두신 채, 새로운 방식으로 그분의 계획을 실현해 나가기로 하신다.


이 내용을 신학적으로 보면 일종의 과정신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뭐 성경 전체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주제의 흐름이기도 하니까, 너무 성급하게 배척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우리(보수적 학자들이나 진보적 학자나 마찬가지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른다. 그분을 둘러싼 신비의 영역은 우리의 능력으로 파헤치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저자도 이 책에서 어떤 결론을 내려 하는 대신, 하나의 논의를 제안할 뿐이고.


그리고 이 문제(“하나님의 폭력성”)가 초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실천적인, 그리고 더 크게 와 닿는 문제는, “우리의 폭력성”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들의 잔혹한 행동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가져다 대는 꼴들이 진짜 더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며, 결코 하나님의 허락을 받을 수 없는 행태다. 그리스도인은 이 폭력이 가득한 세계에서, 어떻게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 근본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다.



생각보다 두툼한 책이었다(400페이지 정도가 된다). 어떻게 보면 똑부러지는 결론을 내지 않고, 마지막에 와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함께 실으려고 하는 태도가 불만족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논쟁이 아닌 대화를 추구한다는 건데, 우리 일상 가운데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확실히 이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결론을 내놓고 어떻게든 성경을 그 결론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손쉬운(하지만 썩 매끄럽지 않은)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결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진실한 자세로 성경을 읽어나가면서 서로 다른 견해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해 나가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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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점점 더 종교적인 설명을 

공허하고 진부하고 부적절한 것으로 여긴다. 

대부분은 교회에 가는 것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하나님에 대해 어떤 통찰을 얻길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우주에 관하여 설득력 있거나 감동적이거나 

유용한 설명을 다듣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계속되고 끈질기게 우리 머릿속을 떠다닌다.


데이브 톰린슨, 『불량 크리스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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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실수에 대해 말할 때 

예의를 갖춰 조심스러운 말로 그 행동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살다 보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고, 

스스로 못마땅할 때도 있습니다. 

다만 자신을 너무 모질게 대하지 않고 평균적으로만 대해도 

불안이 완화되면서 사건을 사건으로, 

문제를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 한기연, “이 도시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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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소호 지음 / 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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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흥미로워서 집어 든 책이다. 그리고 제목처럼 내용 역시 흥미로웠다. 책 표지에는 ‘에세이’라는 문구가 써있지만, 내용은 마치 잘 짜인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물론 모든 에세이가 100% 있었던 일만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리 두껍지 않기도 했지만, 온갖 표정을 마스크 속으로 지으면서, 지하철 안에서 금세 다 읽어버렸다.


책은 작가 자신이 겪었던 연애담이다. 다른 사람 이야기, 그 중에서도 연애 이야기만큼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도 없으니까. 문제는 보통 그런 이야기를 지면으로 옮길 때, 꽤 많은 각색과 과장이 섞이기도 한다는 점인데(그리고 그게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경우 좀 더 윤색이 더해지기도 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리얼’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연애에 있어서 호구라고 부를 정도로, 일방적인 포지션에 자주 선다.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분명 좋지 않은 표지가 보이는데도 관계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물론 사랑의 감정에 빠졌을 때 그걸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때로는 좀 안쓰럽기도 하고, 또 다른 데서는 어이가 없어 나오는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응원을 하기도 했다가, 거리를 두게도 만든다. 한 사람의 연애 이야기에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것도 재능이다.


나보다 겨우 몇 살 어린 작가인데도, 연애관이나 방식에 있어서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하는 느낌도 준다. 분명 같은 세대니 세대차이까지는 아닐텐데, 정말 이렇게도 한다고? 하진 내가 보통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약간 고립되어 있긴 하지만서도.



무슨 대단한 ‘주의’를 내세우는 대신 담담하게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오히려 씩씩해 보인다. 실제 작가가 어떤 모습일지 살짝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시인이자 작가인 저자와 도무지 시에 대한 감수성이라고는 메마른 논바닥 같은 나 사이에는 그리 많은 공통점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한 번 대화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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