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극우라는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과격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표 주자는 역시 미국의 이른바 MAGA족들이다. 진실의 틈바구니에서 발견되는 작은 모호함을 음모론으로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마치 광신도처럼 교주의 지시에 따라 우루루 몰려다니며 파괴적인 행동으로 주변을 위협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선거에서 패배하자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폭도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음모론 추종자들이 내란 우두머리의 구속을 계기로 법원을 습격하는 난동을 벌이기도 했으니 남의 일만은 아니다.
이 책은 어떻게 이 극우적 사고에 물든 집단이 미국의 새로운 주류(트럼프가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된 걸 보면, 이들 MAGA족은 어엿한 주류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가 되었는지 그 연유를 파악해 나가는 책이다. 저자는 KY-5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켄터키주 제5 연방하원선거구를 중심으로, 쇠락한 공업지대에 남아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면서 하나의 큰 모자이크를 만들어 간다.
저자가 분석한 핵심적인 요인은 자부심과 수치심이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요소들이었다. 지금은 산업구조의 변화로 퇴락한 광산 지역인 KY-5에는, 한때 석탄산업이 호황이었을 시기에는 좋은 보수를 받으며 가족을 부양하며 자랑스럽게 생활하던 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 경제가 쇠퇴하면서 어느새 그들은 ‘가난한 시골에 사는 백인 무지렁이’ 같은 외부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그들이 갖고 있는 수치심이다.
트럼프를 내세운 MAGA족은 바로 이런 수치심을 자극한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이민자 때문이고, 흑인들과 성소수자들 문제에만 관심이 있는 민주당의 엘리트 정치인 때문이라는 선동은 생각보다 쉽게 먹혀 들어갔다(민주당의 주류 정치인들이 실제로 정체성 정치에 함몰되어서 시야가 좁아진 것도 사실이긴 했다). 여기에 특유의 “남성다움”을 자랑하는 허세 비슷한 것까지 더해지며, 심지어 나치를 자처하는 머저리들도 나타났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식의 극단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들 역시 트럼프와 같은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강력한 지도자’(물론 실제로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외부의 나쁜 놈을 패주기 위해서라면, 덜 윤리적이고, 때로 나쁜 짓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나쁜 놈(트럼프?)이 나서주기를 응원한다는 심리다. 물론 그 배경에도 수치심이 작용하는 것은 같았고.
물론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정에 좌우된 결정을 할 때도 의외로 많다. 하지만 이런 면이 민주주의의 최대 약점이기도 한 ‘선거’와 결합되면 종종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트럼프 같은 인사가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되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자멸, 혹은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후쿠야마 이후로 민주주의가 마치 역사의 최종적인 결론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단지 민주주의의 유통기한이 아직 남아있을 뿐이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수치심이라는 단어로 범주화를 했지만, 결국 문제의 핵심에는 경제가 있었다.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 하면서 현재의 경제적 몰락에 절망하는 이들이 MAGA족의 핵심이었으니까. 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이즈음 곳곳에서 극우적 움직임이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위기다.
한 편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수치심을 감춰줄 독재자를 선택했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수치심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온갖 음모론을 만들어 확산시키고, 최소한의 상식조차 없는 막무가내 주장을 (종종 폭력을 동원해 가며)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도덕과 윤리라는 건(심지어 합리적 판단도) 모든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책은 미국의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분명 있다. 미국은 실패한 이 문제를, 우리는 해결할 수 있을까?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하지 않으면,
진리를 전달하는 매개를 진리 자체와 혼동해 버리기 쉽고
그때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은커녕
세상의 재앙과 화근으로 전락하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전혀 낯설지 않다.
- 김근주,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중에서
이른바 극우 유튜브 채널들이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시대다. (어딘가 극좌 유튜브 같은 것도 분명 있긴 할 텐데, 이쪽은 워낙에 영향력이 미미한 것 같다.) 극단적인 민족주의, 모든 문제를 외부의 적에게 돌리고, 이 과정에서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게(근데 또 대개 선동하는 놈들은 늘 뒤로 빠지고 얼빠진 추종자들만 앞으로 나서다가 처벌을 받는다) 극우의 특징이다.
최근에는 유튜브라는 도구까지 이들의 손에 쥐어지면서, 더욱 그 극단적인 사상을 퍼뜨리기 쉬워졌다. 그 실제 방법이나 주제도 다양한데, 대놓고 정치적인 이슈를 허위와 음모론을 섞어 퍼뜨리는 계열이 있는가 하면, 사회적인 문제를 설명하면서 교묘하게 논점을 비틀어 왜곡된 선동을 하는 쪽도 있다.
문제는 이런 영상물들이 점점 낮은 연령대까지, 그것도 깊숙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일베나 펨코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드글댄다. 그들은 범람하는 혐오 논리를 배우고, 다시 온라인상에서, 또는 끼리끼리 조롱을 복습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은 어느 날 중학생인 아들이 어디선가 듣고 온 극우 사상을 내뱉는 것을 보고 놀란 엄마가, 아들을 그 사상으로부터 끄집어내기 위해 했던 노력을 담았다. 다만 그 엄마는 보통의 평범한 직장인은 아니었고, 교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사실 무슨 특별한 기술이나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극우적 언사를 내뱉는 아들에게 화를 내기 보다는, 차분히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질문과 응답으로 이어지는 토론을 하면서 점차 스스로 그것이 잘못된 사상인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는 내용은 오히려 지극히 정론적이다. 다만 교대 교수가 아닌 보통의 부모들이 어느 정도로 할 수 있을까는 좀 더 고민해 봐야할 부분이고.
책 초반 저자는 이 세상의 문제들이 흑과 백으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으며, 오히려 그라데이션처럼 너른 회색지대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어느 정도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동시에 이때에도 흑과 백의 영역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극우”와 나머지 사이의 선을 어디다 그어야 할까? 책은 처음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정의하지 않고 들어간다. 그냥 다들 알지 않느냐는 느낌이다. 물론 책에서는 저자가 그 선을 긋는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그 선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나는 성소수자에 관한 저자의 관점에 일부만 동의한다. 그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발기한 상태로 여성 탈의실을 활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 호르몬제를 맞고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남성과 유사한 체형을 가진 선수가 여성 스포츠 대회의 근력이 중요한 부문에 출전해 경기에서 우승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다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도대체 성을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정체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권위를 누가 독단적으로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차별의 반대말이 내키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일까.
그리고 저자가 어느 정도 순화시켰을지는 모르겠으나, 책에서 저자의 아들이 제기했던 주장들은 유럽에서도 전향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여성 징병제라든지. 이 구분과 관련해서 저자가 오히려 조금은 나이브한 이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사람의 성별을 그가 요구하는 대로 불러주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식의, 정체성 정치 이론에 기반한 교육이 과연 극우적 사고와 얼마나 다른 건지는 추가적인 논의도 필요할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집필 목적이 이 부분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어린 자녀들이 당장의 나쁜 물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것도 맞고. 결국 이 부분도 우리에겐 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
너머서 출판사의 신현정 대표님과의 식사 인터뷰.
어떻게 그녀는 잘 다니던 출판사를 "박차고(?)" 나왔는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