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간 교사로 일했던 작가가 이제 자신처럼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제자에게 교직에 있으며 경험했던 다양한 일들을 풀어내는, 그리고 자신과 같이 이런 저런 문제와 벽들에 부딪히며 의기소침해 있을 제자를 격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후기를 보니, 실제 제자 모델이 있기도 했지만, 좀 더 확장해서 후배 젊은 교사들 일반에게 보낸다는 느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10여 년이라면 그렇게 교사 생활이 길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교사 정년이 60대 초중반이니까 20대 말, 30대 초반에 교사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면 최소한 수십 년은 하게 될 테니까. 책 가운데는 20대 초반 임용고시를 보기 싫어서 기간제 교사일을 시작했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대학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면, 30대 중반쯤 교사직을 그만두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작가는 이 생활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 모든 것이 미숙하고, 실수가 많은 시기만을 경험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10여 년을 몇 군데 학교를 거쳤다고도 하니, 어쩌면 신입 교사들의 아픈 부분을 가장 자주, 많이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 듯. 이 책은 딱 그런 이들을 위해 쓰였으니까. 책은 처음 교사를 하는 젊은이들이 겪었던, 그리고 겪을 수도 있는 다양한 아픔들을 따뜻한 문체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이른바 사회에 나오면, 어느 조직에 들어가든 처음에는 실수투성이이고, 혼도 나고 하는 법이다. 그게 교사 같은 공무원 조직이라면 조금 더 경직되어 있을 수 있으니, 젊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모든 것이 어려울 수밖에. 작가 자신도 당시에는 꽤나 반발하고, 화를 삭이고 했던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 당시 상대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는 느낌이다. 모두가 그런 시절을 겪어 왔던 것처럼.
결국은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어른을 만나는 게 참 중요한 시절이었다는 느낌이다. 불합리한 것들을 요구받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따라야 하는 햇병아리들을 누군가 그늘이 되어 잠시 덮어줄 수 있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도 그런 이들을 몇몇 만나기는 했던 것 같은데, 교직을 일찍 떠난 것을 보면 조금은 힘에 버거웠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나도 어느새 기성세대의 일부(변두리 이긴 하지만)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 조금은 품을 넓혀서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조금은 더 쉽게 첫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1989년 중국이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시위의 참가자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이후
베냐민 네타냐후는 바르일란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다.
그의 관점은 이러했다.
“이스라엘은 점령지 아랍 사람들을 대량으로 축출하기 위해
중국에서 시위대를 진압했던 방법을 써야 했다.”
- 개리 버지,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아마도 나니아 연대기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이 세계에서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동경을 독자의 마음속에 심어,
그러한 동경이 마침내 충족될 수 있는
위대한 이야기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일 것이다.
- 피터 J. 섀클, 『나니아 가는 길』 중에서
최근 피곤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 때문도 있을 것이고, 일주일에 영상을 10개씩 만들어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있으니 그 또한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번아웃이 아닌가 진지하게 의심할 정도. (물론 거의 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데다가, 제대로 된 운동도 안 하고, 식습관은... 의심되는 원인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문제는 피로가 아니라 주의 산만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잠을 줄여가며 바쁘게 일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종일 유튜브와 함께 살고, 온갖 SNS에 블로그를 관리하고, 책은 책대로 읽고, 리뷰를 쓰고, 종일 온갖 뉴스에 틈틈이 눈과 귀를 기울인다. 요샌 여기저기 나가서 사람들까지 만나고 하다 보니 뭐 하나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것저것을 신경 쓰게 된다. 끊임없이 주의를 여기저기 돌리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줄줄 새고 있었던 것 같다. (당장 이 리뷰만 해도 며칠 째 손에 들고 있으면서 중간에 온갖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젊은 나이에 대형교회 목사가 되어 몇 년 간 교인수가 크게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 모두가 성공의 지표로 여기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시내에 있는 좀 더 작은 규모의 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하루에 여섯 번씩 진행되는 예배와 계속 이어지는 회의들,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일들에 지쳤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저자는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연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현대 사회가 우리를 얼마나 분주함으로 내모는지를 분석하면서, 그것이 가지고 오는 악영향을 정리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조금은 다른 시간 사용법에 관한 설명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3부에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요령들, 원칙들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이 또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작은 교회라고 해서 지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가용 자원이 적기에 더 많이 뛰어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고, 그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를 지향하면서 온갖 대형교회의 프로그램들을 도입하려고 발버둥 치게 될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중요한 것은 마음, 생각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읽고 듣기는 좋아하지만, 그분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분과 우리 사이에는 큰 시대적, 공간적, 문화적 간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분이 살아가셨던 방식을 따를 생각이 없다면 우리는 왜 그분의 이야기를 읽는 걸까? 설마 어떤 지식을 아는 것만으로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영지주의적 신념이 아니라면 말이다.
사실 교회 전임사역을 그만두고 나오면서, 책을 읽으며 조금은 느리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현실에 하나둘 덧붙이다보니 거의 매달 책에 쫓겨 사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책부터 좀 줄여야 하는 걸까. 하지만 아직 그닥 엄청나게 읽는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