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 과학과 신앙에 얽힌 해묵은 편견 걷어 내기
우종학 지음 / IVP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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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인터뷰라는 형식을 사용해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 운동을 비판하고, 소위 유신론적 진화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를 담은 책이다. 책의 전반은 유신론적 진화론의 가능성, 나아가 타당성을 주장하는 데 할애되어 있으며, 후반은 주로 창조과학과 지적설계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힘을 주고 있다. 책의 말미에는 창세기의 창조기사에 관한 문학적 해석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유신론적 진화론이 성경의 기록과 모순되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힌다.

 

 

     저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주의 모습이 바뀌어 왔고 보다 복잡한 종이 출현했다는 것(진화)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41)이라면서 진화는 자연 현상 그 자체(38)라고 본다. 그러나 진화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무신론을 입증하는 것은 아닌데, 신이 진화라는 도구를 사용해 우주를 창조했다고 보면 된다는 것.

 

     여기에서 저자는 진화 자체와 진화이론, 그리고 진화주의 사이의 구분을 시도한다. 이 세 가지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진화 자체)과 그것에 대한 과학적 설명(진화이론),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세계 이해(진화주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 진화와 진화이론을 받아들이더라도 무신론적 세계관인 진화주의를 받아들이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따르면 신앙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진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창조과학이나 그 연장선상에 있는 지적설계 운동은 과학 이론으로서의 진화론, 즉 진화이론을 부정하는데(179), 바로 이 점이 저자의 강력한 비판을 받는 주된 이유다. (쉽게 말해 과학으로 진화는 이미 증명되었는데, 그걸 부정하면 어쩌자는 것이냐는 식.)

 

 

2. 감상평 。。。。。。。

 

     아마도 진화, 진화이론, 진화주의의 구분은 이 책의 논리의 핵심에 있는 도식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저자는 진화이론과 진화주의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함으로써, 진화라는 논리체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반드시 무신론적 입장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성경의 창조기사에 대해 문자주의적 해석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책은 저자의 입장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반대 이론들의 약점은 너무나 분명하고, 저자의 주장은 그것들을 완전히 능가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는 이 책 안에서 오직 저자의 입을 통해서만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었던 반대 입장에 서서 저자의 주장을 한 번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저자는 과학을 유신론이나 무신론을 지지하지 않는 중립적 입장(68)에 서 있는 도구로 본다. 과학을 현실을 분석하는 도구로 이해한다면 원칙적으로 이 주장은 옳다. 망치(도구)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못을 잘 박을 수 있느냐(제대로 기능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실제로 과학은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 것 같다. 특히 현대의 복잡한 과학은 과학자들 상호간의 교차검증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자기 연구 분야가 아니면 어지간해서 다른 사람의 결과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만큼의 식견을 갖추기 어려울 정도로 연구는 전문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과학계 전반에 걸쳐 있는 권위주의의 문제와 결합할 때 제법 흥미로운 결과가 발생한다. 소위 그들의 휴리스틱을 받아들이지 않는 연구자들이나 그들의 주장은 더 이상 공인될 수 없는지경에 이른 것이다.(저자도 정확하게 이런 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오늘날 어떤 이론이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을 갖춘 학술지에 실리거나 인용되거나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에 실리기 위해서는 이미 그 편집자들, 혹은 그 학술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과학자들의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진화에 반대되는 연구를 담은 논문이 작성되더라도 소위 자연주의적 세계관 위에 서 있는 주류 학술지에서는 절대로 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반대 입장을 담은 주장이 그들만의 리그 밖에서 자주 인용되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또, 저자의 논리를 따르다 보면, 진화라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 분명하고, 진화이론은 그저 현실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출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건 실제 일어났던 일들과는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다. 실제로는 특정한 세계관을 먼저 갖고 난 뒤 그에 따라서 연구가 진행된다. 과학 발전에 관한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설명과는 달리, 다윈은 갈라파고스의 특이한 동물들을 보고 유물론적 진화론으로 회심한 것이 아니라, 유물론적 전제를 가지고서 그에 맞는 증거들을 수집해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세계관의 이런 () 이론적인 성격이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주류 과학계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인 상태고, 그들은 모든 증거를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게 해석하고 발견해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선 이론적 전제들이 개입되지만, 그것들은 대개 비판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논리적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전제를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말하는 소위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자연주의가 아니라는 말은 이런 어려움을 반영하는 불가항력적인 변명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을 잠정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여전히 대통일이론은 발견되지 않았고, 인류는 우주의 10%도 다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그게 10%일지 1%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저자의 성경해석, 특히 창세기의 창조기사 해석 부분도 비판할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그 기사를 문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문자적으로 현대의 과학적 발견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태도가 자칫 과학주의적 태도, 혹은 짐짓 엄격한 증거주의로 변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과학적 서술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과학주의적 해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분의 십자가 사역이 온 인류를 위한 대속적 희생이라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명제는 과학적인 연구결과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그분이 보여주셨다는 많은 기적들은 다시 한 번 문학적 장치들로 보아야 할까?

 

     저자에게서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이라는 식의 사고를 읽어내는 건 좀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개인적으로 창조과학계가 가진 가장 큰 문제도 바로 이 지점이라고 본다. (아마도 이런 태도 덕분에 성경의 기사를 과학적 도구로 입증해 내야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게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저자에게서도 거의 동일한 태도가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저자는 창조과학에 관해, 한편으로는 과학을 부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에 의존하려고 하는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다(153)고 비판하지만,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자는 한편으로 성경의 문자적인 서술을 부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에 의존하려는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다는 식으로 비판을 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모든 내용은 저자가 틀렸음을 증명해내려는 시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나는 저자의 주장이 완전히 틀렸는지 아닌지 판단할 위치에 서 있지 않으니까. 또 저자의 신앙이나 인격을 두고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건 저 위에 계신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쪽도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나름 지적하려는 것이다.(그냥 궤변을 길게 늘어놓은 것일지도..)

 

     어쩌면 그 나라에 이를 때에, 유신론적 진화론을 따르던 사람들과 문자주의적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은 서로 같은 자리에서 만나 멋쩍게 웃으며 악수를 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양쪽 다 믿음을 포기하라는 세상의 도전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싸우고 있는 것은 분명할 테니까.

 

     저자와 출판사의 도전이 향후 좋은 토론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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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음 2015-10-3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열심히 쓰다니요ㅋ
 

 

지금 비정규직 문제와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의 양상을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자.

이 논란은 노예 없이는 국민경제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으며,

유럽 국가들에 많은 것을 빼앗길 것이라는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등장했던

흑인 노예제 옹호론과 상당히 닮아 있다.

노예가 없으면 결국 많은 농장이 무너지고, 지역경제에 치명타가 된다는 이야기,

여기에서 노예제최저임금으로 바꾸면 21세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세상에 느끼는 절망감이

그 당시 흑인 노예들에 비해서 더할까, 덜할까?

 

- 우석훈, 솔로계급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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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신의학이 수술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상처를 내는 일이지만,

믿을 만한 사람의 손에 맡겨지면 더 큰 해악을 피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정신의학은 수술보다 까다롭습니다.

그 일을 맡는 사람의 개인적 철학과 성격이 더 많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부러진 발목을 맞출 때 모든 외과의사는 뼈가 붙어야 할 위치를 똑같이 말할 것입니다.

해부학은 정밀과학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정신과 의사들은 영혼의 올바른 상태가 무엇인지 합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올바른 상태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이교 혹은 유물론 철학에 근거할 경우,

우리는 오히려 그들의 목표에 강하게 반대해야 할 것입니다.

 

- C. S. 루이스, 당신의 벗,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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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식탁까지 100마일 다이어트 - 도시 남녀의 365일 자급자족 로컬푸드 도전기
앨리사 스미스.제임스 매키넌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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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캐나다 서부에 살고 있는 앨리사와 제임스 커플. 어느 날 제임스가 앨리스에게 선언한다. 앞으로 1년 동안 반경 100마일(160km) 안에서 생산되는 것만 먹으며 살아보자고.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된 100마일 다이어트(식이요법).

 

     처음에는 당장 무엇을 먹어야할 지부터 막막했고, 좀처럼 밀을 생산하지 않는 그 지역의 특성상 물리도록 감자만 먹으며 점점 신경도 날카로워지기 시작하는 두 사람. 하지만 조금씩 음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들의 도전은 모험으로 변해간다.

 

     프리랜서 기자이기에 할 수 있었던 1년 동안의 로컬푸드 먹고 살기 실험.

 

 

2. 감상평 。。。。。。。

 

     처음엔 제목만 보고 살 빼는 내용이 담겨 있는(다이어트?)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은 다이어트(식이요법)이긴 했지만,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좀 더 건강한 음식, 나아가 건전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완전 대 착각.

 

 

     무슨 대단한 의식에 입각해 거창하게 세운 계획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인 두 사람은 100마일 다이어트를 실천하면서 점차 음식에 담긴 좀 더 깊은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얻는다. 단순히 오늘날 음식재료들이 수천 km를 날아다니며 내뿜는 환경오염물질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먹는 행위가 우리의 몸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미치는 아주 원초적인 효과에 눈을 떴고,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 자체의 기쁨을 새롭게 알게 된다. 몸이 건강해진 것은 덤이고.

 

     사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식사를 그저 위장에 무엇인가를 채워 넣는 과정 정도로만 여기며 살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도 우리는 그 먹는 일을 부수적인 일로 여긴다. 하지만 대충대충 하는 일치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드문 법이다. 그렇게 때우는 식사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건강은 물론, 관계와 환경까지도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다.

 

 

     흔히 도시화를 문명의 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 정도로 생각한다. 확실히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이전보다 좀 더 편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게 좋아진 걸까 싶다. 조상 대대로 집 앞 바닷가에 작은 배를 띄워 잡은 고기로 먹고 살았던 동네가, 높은 빌딩과 휴양지로 변하면 그게 발전일까?

 

     책은 깊은 고민들을 직접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들에게 나타나는 변화는 꽤나 인상적이다. 조금은 불편하게, 조금 더 느리게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감각은 훨씬 민감하게 살아나고, 삶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지도 늘어나는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쯤 도전해 보고 싶은 삶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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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화성탐사 도중 갑자기 불어온 폭풍으로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던 대원들. 그 와중에 사고로 실종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모두가 떠난 후 의식을 찾는다. 화성에 혼자 남게 된 것. 보통 사람이라면 당장에 이성을 상실할 상황이었지만, 역시 우주인은 다른 건지, 마크는 화성에 남아 있는 기지시설 안에서 생존을 시작한다. 식물학자답게 전공을 살려 기지 안에 간이 온실을 만들어 감자를 키우는가 하면, 오래되어 버려진 위성통신기를 이용해 마침내 지구와 통신을 하는데 성공하기까지..

 

     하지만 기지는 처음부터 영구적인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모든 것이 제한된 상황에서 마크의 생존이 무한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를 구출하기 위한 또 다른 우주선이 필요한데, 알다시피 우주선발사라는 게 그냥 몇 달 만에 새로 뚝딱 만들어 보낼 수 있는 게 아닌데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도착하는 데만도 1년이 훨씬 넘는 상황.. 과연 그는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2. 감상평 。。。。。。。  

 

     현대의 과학기술주의(“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에 바치는 찬가로 가득한 영화. 지구보다 큰 행성에 홀로 남게 된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통해 생존의 방법을 고안해 낸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을 돕기 위해 애쓰는 주변 사람들이 가진 무기도 역시 수치와 계산이다.

 

     반면 주인공을 위기의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악한 한 사람이나 집단이 아니라 그저 자연현상, 즉 폭풍이다. 폭풍은 극복의 대상이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건 아무 책임도 질 수 없으니까. 결과적으로 이 영화 속에는 도덕적, 혹은 윤리적 고민이 들어갈 자리가 전혀 없다. 그냥 험하고 무질서한 자연을 극복하고 정복해 내는 위대한 인간의 능력만을 찬양할 뿐.

 

     영화는 그렇게 고민 없이 보고, 즐기고, 응원하게 만들 뿐이다. 마치 프로 스포츠의 기능을 영화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물론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마크의 무사생환을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냥 서울 한 복판에서 혼자 사는 연예인들 이야기도 인기 있는 예능프로가 되는 마당에, 화성에서 혼자 사는 맷 데이먼의 이야기가 재미없을 리 없다. 소재의 이채로움은 크게 화려한 그래픽이나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화면을 어느 정도 커버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비슷한 느낌의 다른 영화들, 예컨대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가 주었던 인상까지는 확실히 미치지 못한다. 이 안에는 역사도, 스토리도, 인간성도 보이지 않고, 인간 고유의 그런 고민거리들이 사라지고 나면,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깊이는 사라져버리기 마련..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추천할 만한 수준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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