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2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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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술라가 죽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철저하게 숙청하고 독재관이 되어 권력을 손에 넣은 그는, 원로원 중심의 국정운영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각종 입법 작업을 모두 마치고는 전격적으로 정계은퇴를 한다. 누가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그럴 만한 위치도 아니었고), 애초에 6개월이었던 독재관의 임기 역시 그에게는 예외가 적용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오직 자의에 의해서 퇴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을까? 이 정도 법적 장치라면 누가 오더라도 한동안은 체제가 잘 유지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시 잠시 불안감을 드러냈듯, 법과 체제라는 건 한 순간에 뒤집힐 수도 있고, 역사란 늘 진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게 곧 드러날 터였다. (이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와 민족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또 하나의 동기는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 느낄 수밖에 없는 피곤함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번 권에서 술라는 꽤나 자주 이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은 누가 짐작이라도 할까. 많은 최고 권력자가 결국 부패하거나 폭군으로 치닫곤 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기를 원한다. 민주화 시대가 된 이후에는 왕이 아닌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대한 욕망은 강렬하다. 문제는 자신이 정말로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 여러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되는 걸 보면 더욱 와닿는 부분인데, 막상 그 자리에 대한 욕심이 눈을 가리면 그런 건 보이지 않는 듯하다. 본인도, 참모들도, 지지자들도.



책의 또 다른 축은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카이사르는 소아시아의 작은 왕국을 오고가면서 자신의 기량을 뽐낸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폼페이우스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술라의 영향력이 줄어가는 원로원 안에서 자신의 당파를 만들면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초반은 확실히 폼페이우스가 앞서나가는 모습인데, 조금은 무리하게 얻어낸 지휘권을 가지고 도착한 히스파니아 내전에서 그의 활약은 미미했다. 카이사르 못지않은 군사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명성과는 다른 모습인데, 하긴 20대의 젊은이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게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폼페이우스의 훗날을 예상할 수 있는 점이 몇 개 보인다. 그는 세르토리우스라는 강력한 적 앞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도 잠시 침울해지기는 했으나 끝내 자부심은 잃지 않았다(뭐 여기에는 그가 가진 재력이 한 몫을 하긴 했겠지만).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더 큰 인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큰 장애물이다.


또, 폼페이우스는 일단 자신의 전술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평소 무시하던 메텔루스의 작전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준다. 흔히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나가는 경향이 있고, 결국 더 큰 실패를 경험하기 마련인데 이런 면에서도 그는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이 있었다.



시리즈 전체의 제목처럼, 일인자가 되기 위해 달리는 군상들의 모습에서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그렇게 바라던 일인자가 된 후 말년이 행복해 보였던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함정. 마리우스도, 술라도.


대충 6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겨우 사흘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재미있으면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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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냥한 사신
기노 도리코 지음, 박대희 옮김 / 경당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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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나의 상냥한 사신’이라니. 사신(死神)이란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다준다는, 우리나라로 치면 저승사자 비슷한 존재다. 그런데 여기에 ‘상냥한’, 그것도 ‘나의’라는 개인적인 수식어까지 붙는 건 아무래도 어색해 보이니까.


‘죽고 싶다’,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더라도, 그런 생각쯤 한 번 해보는 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매일의 삶은 너무나 무겁고, 때로 살아가는 일 자체가 마치 격렬한 전투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렇게 이제 삶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려냐?



책의 첫 장을 열면 하얀색의 왼쪽 페이지와 검은 색의 맞은편 페이지가 강렬하게 대비된다. 이런 구성은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면서, 하얀 왼쪽에는 주인공 캐릭터가, 검은 오른쪽에는 해골 모양의 사신이 활동하는 무대로 설정된다. 주인공은 오른쪽 페이지로 계속 넘어가고 싶어하지만, 그 사이의 ‘막’은 오직 검은 쪽에서면 열어줄 수 있는 상황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페이지를 넘어가기 위해, 주인공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여기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는지를 강변하지만, 그의 사랑스러운 사신은 그런 주인공이 넘어오는 걸 막기 위해 애를 쓴다.(정말 사신 맞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사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는 주인공의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해주고, 그가 쏟아내는 넋두리에 공감도 해 준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괴로워하며, 함께 춤을 춘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 존재가 정말로 사신이라기보다는 주인공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신과 자신은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결국 사신은 주인공이 가진 죽음에로의 욕구를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방법은 설득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내가 너와 늘 함께 있다’는. 맨 앞장에서 무거운 갑옷을 입고 삶이라는 싸움을 간신히 견뎌낸 뒤 집으로 들어왔던 주인공은, 그렇게 사신의 공감을 받으며 잠에 빠져든다.



글보다 그림이 차지하는 영역이 훨씬 많은, 그림책이다. 이야기의 성격을 보면 동화책 같기도 하고. 단순한 흑백의 선으로 이런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확실히 예술적 감각인 것 같다. 무엇보다 책의 구성도 신선하고, 메시지도 여운이 깊게 남는다.


오늘도 삶이라는 힘겨운 전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누운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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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0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끌리는데요?! 인상적이예요.

노란가방 2022-04-05 22:38   좋아요 1 | URL
인상적인 책이었어요.^^
 


AI와 관련한 논쟁에서 잠재적인 혼란의 원인 중 하나는 

학습, 계획, 추론, 지능과 같은 일상의 단어를 

무생물인 기계를 기술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일부 컴퓨터 과학자는 그러한 일상의 용어를 협소한 의미로 사용하여 

AI 시스템을 실제 이상으로 느껴지게 한다.


- 존 레녹스, 『2084 :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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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주한 옮김 / 포이에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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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2천 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사회학적으로 봐도 2천 년은 결코 짧지 않아서그 사이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은 오늘날 기독교의 형태에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신학적으로 봐도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이끌어 오신그리고 그분의 교회에 허용하신 유일한 시간들이고쉽게 말하면 이 시간들에 관한 이해 없이 오늘날의 교회를 제대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교회는특히 개신교회는 역사 부분에서 특히나 취약한 것 같다종교개혁 이래로 개신교회는 단절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아왔고마치 그들이 성경 시대에서 바로 튀어나온 사람들인 양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이건 가톨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오늘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신앙의 각종 의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신조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아는 일은 생각보다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된다다들 학창시절 덮어놓고 외우라는 말이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기억하지 않는가.



기독교의 역사 전반을(이 책은 그 시작부터 20세 중반까지를 담고 있다다루고 있는 이 책은일단 그 볼륨에서부터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각주를 빼도 850여 페이지에 달하해서그냥 보고만 있어도 왠지 배가 부른 느낌이다이 한 권이면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새벽까지 즐길 수 있을까 하는..?


볼륨만이 아니라 내용도 알차다사실 어쭙잖은 저자라면 이 정도 두께의 책을 쓸 문장을 떠올리지도 못한다(두꺼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저자는 교회와 세상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다양한 자료들을 종합해 능숙하게 엮어낸다핍박을 받던 교회가 제국의 종교가 되고게르만족의 침범을 어떻게 흡수하면서 그들을 지도하는 자리에 이르렀는지군주들과의 권력게임에 참여해서 자신의 몫을 챙기려 하다가 어떤 변질을 겪었는지 등등.


특히 저자는 이 과정을 비판적으로 서술하려고 애쓰고 있다기독교교회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대부부분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고그 결과로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에 자주 서게 되는데이 책의 저자는 일부러 그런 관점을 피하려고 노력한다역사 서술에서 객관성은 꽤 중요한 요소니까.


다만 이 객관성이라는 요소가 무조건 서술 대상의 동기를 (안 좋은 쪽으로의심하거나깎아내리거나 하는 것으로 확보되는 건 아니다물론 이 책이 꼭 그런 식으로 쓰였다는 말은 아니지만분명 일정 부분에서는 그런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사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신앙의 특성상그 중 어느 한 쪽에 서게 되면 다른 쪽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는 측면도 분명 있긴 하다.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책의 서술이 유럽의 기독교 역사에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물론 기독교의 전성기가 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하긴 했고다른 지역의 기독교 역사에 관한 자료가 월등히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최소한 아시아 지역으로 한동안 꽤나 확장해나갔던 동방 기독교에 한 장을 할애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의식혹은 역사에 관한 감각을 갖게 되는 데는 따로 정도가 없다역사를 다룬 좋은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길러가는 수밖에여기에 이렇게 2천 년의 역사를 통시적 관점으로 써 내려간 책은 많은 도움을 준다한 번에 쭉 읽어나갈 수 있으니까물론 다른 모든 분야들처럼 꽤나 세분화된 오늘날의 역사계에서한 사람이 이런 식으로 전체를 써 내려가는 일에 약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그건 학자들끼리 다투라고 하면 그만이고.


이런 책을 보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문제는 참가자가 있을까 하는 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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