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작고 통통한 체구에 재치 있는 말솜씨를 뽐내던, 텔레비전에도 종종 출현해 얼굴도 어느 정도 낯익은 심리학 교수가 도무지 즐겁지 못한 한국 남자들의 삶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 강연을 하듯 거창하고 어려운 이론 대신 편하게 무엇이 문제이고, 해답은 무엇인지를 던져준다. 즐거워야 행복하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메시지가 저자의 글을 통해 새롭게 다가온다. 

 

 

 

2. 감상평 。。。。。。。               

 

     어찌되었건 제목으로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했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영 아닌 것도 아니어서 나름 재미있는 시각으로 한국의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를 조명해내고 있다. 저자가 보는 한국 남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소통의 어려움이다. 소통이 어려우니 어찌 되었든 다른 방식으로 - 마라톤을 하고, 여자들을 끼고 폭탄주를 마시며, 종종 다른 사람에게 터뜨리는 등의 - 그 불만족을 표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삶의 중심을 주체적으로 자신이 설정하고, 그것을 즐기며 살아가는 데부터 시작한다. 잘 놀아야 일도 잘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여기에서 나온다. 결국 문제 해결의 근원은 내 안에 있고, 기준과 생각을 바꾸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심리학의 일반적인 결론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인데, 어찌나 설득력 있게 말을 하는지 그냥 그대로 믿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우리는 독수리오형제가 아니니 세상을 구할 걱정일랑 좀 치워버리고, 그저 즐겁게 행복하게 살기 위한 고민이나 해 보라는 말은 분명 설득력 있다. 다만 좀 덜 행복하고, 좀 덜 즐거워하며 불만 속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는 이들 덕택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것만은 좀 기억하면서 그랬으면 좋겠다. (물론 저자가 그런 것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런 삶의 방식은 자칫 냉소주의나 이기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니까.

 

     반복하지만 재미있다. 대화 중 꺼낼 만한 좋은 이야기꺼리들도 있다. 그리고 가끔 번뜩이는 통찰도 보인다. 이 책을 많이 팔아 캠핑카를 사고 싶다던데, 그만큼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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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12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오를 거부한 인간이라... 저는 그렇게 되기 힘들 것 같아요.
카이사르처럼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자부심은 들지 않거든요.
오히려 때때로 열등감에 휩싸이는게 평범한 인간이니 ㅡ,ㅡ
그래도 참 비범한 인간이었네요 카이사르는!

노란가방 2011-08-12 16:05   좋아요 0 | URL
시오노 나나미가 생각했던 카이사르가 그랬다는 거니까요..
너무 실망 마세요.ㅋ;;

그래도 증오를 '열등한 사람'이 품는 감정으로 보는 시선은 신선하죠.
 
블라인드 - Blin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사고로 눈을 다쳐 시각장애인이 된 수아는 어느 날 밤 자신이 탄 택시가 뺑소니를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가까스로 그곳을 빠져나와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그녀가 진술하는 내용만으로는 좀처럼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같은 시각 사고를 직접 목격한 기섭은 현상금을 준다는 말에 경찰에 나가 신고를 했고, 그는 사고차량이 택시가 아닌 외제차라고 말한다. 보이진 않지만 듣고 냄새 맡고 느낄 수 있는 수아와 범인과 그의 차를 본 기섭, 그리고 이들과 함께 범인을 쫓는 조형사의 활약이 뭔가 길을 찾았다 싶을 즈음, 살인자는 증인들을 없애기 위해 은밀한 추격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와우 대단히 잘 만든 스릴러물이다. 눈이 아닌 청각과 후각, 촉각으로 범인을 느낀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김하늘은 이 매력적인 인물을 잘 연기해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인 수아 역의 김하늘은 드라마 온 에어 이후 가장 잘 맞는 역할을 맡게 된 듯하다. 영화로 본 유승호도 빼어난 얼굴만큼 연기력도 점점 발전해나가는 듯했다. 여기에 영화에 재미를 덧붙여주고 수아와 기섭을 이끌고 사건을 전개시켜나가는 조형사 역의 조희봉도 나름 역할을 해냈고, 사이코패스형의 소름끼치는 범인 역의 양영조라는 배우도 연극에서 익힌 실력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괜찮게 된 캐스팅의 좋은 예. 아,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역할은 수아의 안내견 초롱이 역을 맡았던 큰 개.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지.

 

     여기에 감독의 연출력도 훌륭했다. 특히나 볼 수 없는 수아의 ‘시야’를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시도는 절묘했다. 한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이렇게도 표현해 낼 수 있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를 지나치게 흔들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실감나는 추격신을 그려냈고, 쓸 데 없이 관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 않으면서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갖도록 만든다. 아쉬운 것은 영화 말미의 지나치게 환한 에필로그였는데, 앞서의 이야기들과 분위기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아주 못 봐줄 그런 건 아니니까. 아무튼 두 시간 여에 달하는 상영 시간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은 빠른 전개는 큰 장점이다. 

 

  


 

덧.

 

     영화를 보면서 문득 얼마 전 동기 여학생에게 술을 먹이고 옷을 벗겨 추행하고 영상까지 촬영했다던 고려대 의대생들이 떠올랐다. 영화 속 연쇄납치범도 낮에는 정상적인 산부인과 의사였지만 밤에는 자신의 욕정에 따라 여자들을 납치해 감금하고 철저하게 자기의 의지만을 관철시키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못 느끼는 그런 종류다. 결국 전자 같은 이들이 후자가 되는 게 아닐까. 그나저나 그놈들 처리가 됐나 모르겠다.

 

     영화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배려 없음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너무나 쉽게 병신이라는 말로 그들을 모욕하고, 그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영화 속 안내견인 슬기만이 그런 수아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데, 이건 뭐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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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실 죄와 타협할 때가 있다.
뻔뻔스런 죄악 앞에서 우리는 참지 말고 분을 내야하고,
죄에 대해 무관심하기 보다 오히려 화를 내야한다.
하나님께서 죄악을 미워하신다면,
그의 백성들도 죄악을 미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 존 스토트 


We human beings compromise with sin
in a way in which God never does. 
In the face of blatant evil
we should be indignant not tolerant,
angry, not apathetic. 
If God hates sin,
His people should hate sin too.
- John St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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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3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저자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가 태생적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며 중독성 있는 호르몬을 분출(57)케 하는 ‘부정적인 영향’(57)을 초래하는 음악이기에 이를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예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록에 기반한 찬양들이 예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결국 복음/성경의 메시지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이런 경향의 원인을,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교회가 자신을 세상에 맞추어 변형시키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2부에서는 성경에 기초한 바른 예배의 정의와 형태에 관해 말하면서, 바른 예배 찬양이 가져야 할 요건들을 제시한다. 또, 예배 음악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소명을 드러내는 한 방식으로서의 음악(저자는 CCM을 이렇게 정의한다)의 필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위해 음악적 재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분발해야 한다는 요청이 덧붙여 있다. 

 

 

 

2. 감상평 。。。。。。。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책은 앞서의 책들보다 더 잘 드러나는 부분인 ‘교회 안의 음악’에 관해 다루었기에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읽힐 것 같다. 최근의 ‘이상한’ 찬양들에 대해 뭔가 불만이나 불안감을 품고 있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의 논지 중 어떤 부분은 상당히 명쾌한 조언을 제시하고 있으니 읽어볼 만하다. 나도 저자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만들고 향유하는 음악들을 예배를 위한 것과 예배 이외의 목적을 가진 것으로 나누어서 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전자의 경우는 예배라는 일종의 의식에 맞게 제작된 것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부분에도 찬성한다. 저자의 말처럼 성경 구절 한두 개를 떼어 내서 가사에 집어넣었다고 해서 모든 게 ‘찬양’이 되는 건 아니니까. 찬양이란 말 그대로 상대를 높이는 것이지, 그것을 하는 행위자 자신의 만족과 위안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저자가 말하는 주요 주장에 동의를 함에도, 책 자체를 보면 좀 아쉬운 점이 많다.

 

 

     저자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에 관한 이야기로 본론을 시작한다.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만으로도 우리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39) 어떤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그의 행동을 달라지게 하는 것, 일반적으로 이런 작업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즉 저자의 말대로라면 음악은 교육을 위한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런데 또 다른 곳(181)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동안 진짜 중요한 것을 노래로 배운 게 있’느냐고 반문한다. CCM을 통해 부드럽게 복음을 전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며, 그러니 좀 더 진지하게 말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내포하는 것 같다. 아니, 음악이 그렇게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데 말과 함께 음악과 노래를 사용해서 안 될 이유는 또 뭔가? 그리고 저자의 말과는 달리 우리는 살면서 중요한 것은 노래로 다 배웠다. 유치원을 가면 서로 도와야 하며, 사랑해야 하고, 길은 횡단보도로 건너고, 양보하고, 효도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내용들을 다 노래로 배운다. 유대인들은 쉐마라고 불리는 신명기의 성경구절을 노래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시편을 노래로 암기하며,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일종의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예컨대 빌 2:1-12 같은)

 

     물론 오늘날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들이 이런 복음의 내용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는 백번 공감한다. 그런 노래들을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정말 엉뚱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들이라면 그 외의 시간에도 부르지 않는 게 옳다. 그런데 저자의 좀 과격한 입장에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좀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이라고 하면서 그 자체에 선하고 악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47) F단조는 악하고 C장조는 선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일한 사람이 몇 장 뒤에 가서는 특정한 비트와 코드 패턴, 그리고 큰 소리(저자가 말하는 록의 특성들이다)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부정적인 영향’(57)은 그것을 듣는 이들이 반복해서 찾게 된다는 것 말고 별다른 것이 제시되지 않는다.(아, 청력에 문제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긴 하다) 심지어 저자는 ‘음악은 그냥 음악일 뿐이다’라는 주장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면서 ‘도와 솔은 중립적이지만 이런 음계가 합쳐져서 화성을 만들고 리듬을 이루고 멜로디가 더해지면 더 이상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99) 앞서의 논리와는 모순되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는 록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매우 대략적으로 특정한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일종의 중독상태를 일으킨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여전히 이 부분에 관해서는 충분한 의학적 연구 결과가 없는 것으로 안다. 참고로 프랭크 갤럭 등이 쓴『위험에 처한 교회음악』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이 책처럼 주관적인 느낌과 경고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요컨대 이 록이라는 특정한 음악 형식이 주는 메시지가 얼마나 강한지 거기에 어떤 거룩한 가사가 붙어 있더라도 그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113)는 주관적 견해를 일반화하고 있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 세상의 어떤 부분(록과 같은)은 악하다는 식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건 아닌가. 그건 성경적인가?

 

     이 외에도 2장의 ‘CCM 옹호론에 대한 반론’은 저자가 잘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그치고 있고,(거기 나오는 상대방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위로와 격려, 축복을 주제로 하는 노래들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복음을 나쁜 소식으로, 그래서 예배 음악에는 죄에 대한 강조만이 강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부분(143-144)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마다가 경외와 감탄으로 기쁘게 노래했던 구약과 신약의 전통과도 어긋나 보인다. 성경 어디에도 기독교인들/하나님의 백성들을 집단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그리고 있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뻐하며 서로를 축복하는 이들이 아닌가.

 

 

     문제는 예배 음악을 엉뚱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감정적 충동을 성령의 은혜라고 가르치는, 감정만 뜨거워지면 그게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선 것이나 그분을 바르게 예배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찬양인도자들이 문제 아닌가. 여기에 인격적으로 그분을 만나기 위해 성경을 읽고 깊은 기도를 하기보다는 컵라면 끓이듯 손쉽게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인 양 착각하는 게으른 신자들도 문제가 있고.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를 좀 더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려는 욕심, 그래서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자세가 되어있는, 준비되지 않은 목회자들일 거고. 이런 차원에 이 책은 전작인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거의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부록에 가깝다. 주제의 발전에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물론 이 말이 이 책이 나쁘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쉽다. 세 번째 책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이, 이 시리즈에 속한 앞서 두 권의 책과 비교해 이 책을 가장 덜 논리적이고 쫓기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이 주제에 관해 저자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적 경험’(26)들을 자주 삽입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물론 짤막한 글이라도 자주 써 본 사람이라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잘 쓰기는 힘들다는 데 공감을 표할 것이다) 주관적 신앙 경험과 견해를 일반화하기 위해선 좀 더 조심스럽고 폭넓은 연구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엔 곱씹어 볼만한 내용들이 많으니, 차분히 읽어본다면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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