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린: 최후의 결전 - New Shaolin Templ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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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상영


 

1. 줄거리 。。。。。。。                  

 

     청 왕조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건국되었지만, 각처에서는 군벌들이 활개를 치고 있던 시절, 하남성 인근의 호우지에(유덕화)도 그런 군벌 중 하나였다. 형님으로 부르며 절친하게 지냈지만 늘 위협적이었던 송호를 제거하려다 부하였던 카오만(사정봉)의 계략에 빠져 모든 걸 잃고 소림사로 들어오게 된다. 딸의 죽음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 그는, 이제 자신의 자리에 올라 자신보다 더 포악한 존재가 된 카오만의 위협에 맞서 절과 사람들을 지키는 싸움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전형적인 중국 무협영화의 공식을 따라가고 있는 영화다. 선과 악의 대립은 뚜렷하고, 주인공은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복수에 성공한다. 이 영화는 불교적 세계관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복수’라는 말이 적절할지 않을지 모르지만, 꼭 적을 죽이거나 쓰러뜨려야만 복수는 아니니까. 이 영화 역시 일종의 복수에 성공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관객은 편하게 주인공만을 응원하면 되니, 복잡하지는 않다.

 

     두 시간 여의 짧지 않은 상영 시간이었지만 주인공의 극적인 심정의 변화가 충분히 설명된 것 같지는 않다. 일차적으로 딸의 죽음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알겠는데, 인물의 깊은 심리적 고뇌를 그려내기에는 감독의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 대신 시원시원한 액션신은 그럭저럭 볼 만하다. 유덕화의 연기력이야 따로 말해 뭐하나 싶지만, 사정봉의 겉멋만 잔뜩 들어간 기울인 고개는 그냥 실소만.. 그리고 요새 들어 자주 조연으로 등장하는 성룡에 대해선 아쉬움만 짙게 든다.

 

 


 

 

     영화에서 중화사상을 읽어내려는 네티즌들도 있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딱히 그렇게까지 봐야 할까 싶다. 그보다는 전통적인 문화를 파괴하고 약탈하는 서양세력에 대한 반감 정도가 약간 느껴진다. 왕을 반신(半神)으로 생각하는 일본이라면 존왕양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만, 영화가 다루고 시대의 중국은 이미 왕이 폐위되었으니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고 그냥 자국의 전통에 대한 강한 향수 정도일 것 같다.

 

     이걸 또 딱히 뭐라 할 수 없는 게,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 우리민족 역시 그렇게 일본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수많은 나라들에 의해 국권을 침탈당했으니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물론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런 약탈행위에는 언제나 개인적 탐욕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 나라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거고.

 

 


 

 

     그리고 역으로 우리나라가 그런 식으로 주변국들에게 끼친 피해도 있다는 점과 심지어 자국민에 대해서도 그런 식의 악랄한 조치들이 있었음 또한 인정해야 하지 않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무슨 뿔난 괴물로 묘사하는 쓰레기 주류 언론들과, 여기에 편승해 자기들이 나라는 다 지키는 양 부화뇌동하며 국가 전체에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족속들 역시, 이 영화 속에서 문화재를 약탈하고 수틀리면 다 때려 부수는 외국인들과 다를 바 없다. 충만한 열등감 감춰보려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해 멸시와 우월감을 쏟아내는 작자들은 또 어떻고.

 

 

     뭐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다. 얼마 전에 본 일본식 하드코어물 보단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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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10-1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형적인 중국 무술 영화입니다. 즐겁죠. 그 외에 다른 무엇은...

노란가방 2011-10-18 16:47   좋아요 0 | URL
네. 딱 거기까지만이죠.. ^^
 

 

 

미국이 비난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자신에게 있습니다.

미국은 스스로 도덕적 원칙을 대외정책의 전면에 내세우고

스스로를 착한 경찰로 선전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윤리적인 판단을 하고,

기대를 하게 만든 일차적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 김준형,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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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츠: 퍼펙트 앤서 - GANTZ: Perfect Answer
영화
평점 :
현재상영


 

1. 줄거리 。。。。。。。                  

 

     전편인 ‘간츠’를 이어가는 스토리. 간츠의 지령에 의해 계속 싸움을 계속해나가는 ‘대원들(?)’. 하지만 새롭게 전송된 곳은 이전과는 달리 사람들이 가득 찬 지하철이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성인(星人)들의 무리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저항. 성인들은 복수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고, 간츠의 대원들은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마침내 성인들의 무리는 간츠가 있는 방까지 도착하게 되고, 그 좁은 방에서 최후의 결전이 벌어진다. 

 


 

 

2. 감상평 。。。。。。。                  

 

     뭐가 ‘퍼펙트 앤서’라는 건지 좀처럼 스토리 전개가 명확하지도 않고, 주제의식도 불분명하다. 전편과는 달리 ‘대원들’이 갑자기 자신들이 왜 싸우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하지만, 그 대답 또한 영화의 내부적 논리랑 맞지 않는다. 성인들의 정체도, 간츠에 관해서도 아무 것도 대답하고 있는 게 없다. 그저 결국 사랑이 모든 것을 정리해주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건 뭐 앞서 벌여놨던 장황한 이야기를 제대로 수습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결말이다. 만화의 원작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그냥 연출력 부족이라고 할 수밖에. 

 


 

     이렇게 된 데는 갑자기 너무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버린 탓이 크다. 후편이라 하면 전편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만들어 놓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하는데, 너무 많은 인물들이 갑자기 등장하다보니 각각의 인물들의 사연이나 배경을 설명할 틈도 없이 그냥 이야기를 끌고 가는 식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혼란스러운 스토리는 어떤 부분을 매듭을 지어야 할지를 놓쳐버리게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주제의식이 약하다보니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해졌다. 간츠는 선인가? 그의 대원들은 좋은 싸움을 하고 있는가? 성인들은 박멸해야 할 대상인가?

 

     전형적인 용두사미 식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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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선하지 안다는 비극적인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의 과학적 재능이 시대에 뒤떨어져서가 아니라

우리의 도덕이 낙후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현대 인간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면

인생의 영적인 목표보다

삶의 수단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입니다.

 

- 마틴 루터 킹, 『한 밤의 노크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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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전쟁 - 연금제도가 밝히지 않는 진실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손성동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미국에서 퇴직연금을 두고 일어난 파국적인 결과를 돌아봄으로써 바람직한 연금정책에 관해 생각해 보게 만들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 책이다. 책은 GM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 회사들과 노조의 대결, 뉴욕 주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노조들과 주정부의 대결, 그리고 샌디에이고 시정부와 공무원들 사이의 대결을 중심으로, 방만한 연금구조와 계획이 어떻게 재정적인 압박을 가하게 되었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피고 있다.

 

     저자는 당장에 지불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급여보다 연금을 높여주는 근시안적인 자세와 자신이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서(그게 공무원이든 CEO든) 발생한 도덕적 헤이를 가장 큰 문제로 짚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오직 급여를 늘리는 데만 관심이 있는 노조들도 연대책임이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문제의 해결은 제대로 적립되지 않는 연금적립금의 문제, 또 적립된 연금을 지나치게 차입하는 관행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 감상평 。。。。。。。         

 

     최근 우리나라도 복지라는 주제가 사회 전체 논의의 중심에 오르게 되었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어떤 식의 복지정책을 추진할 것인가를 국민들 앞에 제안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이와 관련한 이유로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다가 서울 시장이 중도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연히 ‘복지 전쟁’이라는 제목을 보고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복지라는 주제 중에서도 연금이라는 좀 더 하위의 항목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제대로 된 제목을 붙이려면 ‘연금 전쟁’이라고 해야 할 텐데, 홍보를 위해서였을까.

 

 

     책은 앞서 소개한대로 방만한 연금정책과 계획으로 인해 위기를 겪게 된 기업과 정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람직한 복지 정책으로서의 연금 모델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물론 모두에게 열심히 일한 만큼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 줄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역시 문제는 돈이다.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후손들에게 모든 부담을 지운 채 당장의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대단히 비겁하고도 무책임한 결론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나라의 진보정당들은 재원조달의 문제에 관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한 번도 집권을 해 정부를 운영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행착오를 감안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러면 보수정당들에서 주장하는 것 같은 단계적 복지, 선별적 복지가 대안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쪽은 그동안 워낙에 해먹은 것들이 많은지라 도덕성, 신뢰성이라는 부분에서 약점을 갖고 있다. 온갖 전시성 예산, 쓸 데 없는 토목공사들로 낭비되는 예산(다 뒷돈으로 들어가는)들의 존재는 여당이나 제1야당이나 공통적으로 벗을 수 없는 원죄다.

 

     필요한 건 이해당사자들은 물론 국가 공동체 전체가 나서서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여기엔 필수적으로 (우리에게는 없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한 마디로 해결이 요원한 문제라는 거. 하지만 지름길은 없다. 작은 부분에서부터 큰 그림을 바라보며 조금씩 양보하고 합의를 이뤄가는 연습을 하는 것 밖에는. 물론 그런 의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모든 걸 시장에 맡기면 된다고 했던가. 유사 이래로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면 다 같이 망하고 말았거늘. 책 전체가 미국의 상황만을 다루고 있지만, 미국에 국한되는 일이라고만 보고 넘길 수는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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