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어렸을 때부터 탈 것만 타면, 그게 자동차든, 자전거든, 심지어 소달구지를 타도 멀미를 하는 만복(심은경). 병원에 가도 별다른 이상 원인을 찾을 수 없자, 아빠는 만복에게 의지 부족이라는 진단명을 붙인다.

 

     그렇게 걸어서 두 시간 거리의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만복.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사명으로 충만한 열성 담임선생님(김새벽)의 추천으로 육상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경보라는, 자신에게 최적화 된 운동을 만난다.

 

     ​그러나 단순히 걷기와 빠르게 걷기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고, 운동부 선배 수지(박주희)의 눈에 만복은 그저 할 게 없어서 뭐라도 해 볼까 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게다가 대회는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2. 감상평 。。。。。。。

     소소한 소재에 소소한 이야기. 평범한 고등학생이 주인공인데, 무슨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도리어 일종의 핸디캡만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밝아서 함께 있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매사에 별 의욕이 없어 보이는, 말 그대로 평범한 고등학생.

 

     ​주인공이 이렇다보니 영화의 전반적인 템포가 느슨해져버린다. 만복이 유일하게 적극성을 보이는 건 동네 중국집 배달을 하고 있는 효길을 만날 때인데, 그나마 딱히 진지하게 발전되는 것도 아니고(물론 만약 그랬다면 영화가 또 산으로 갔을 거다). 일본 영화에서 종종 보던 느릿한 속도로 진행되는 소소한 이야기.

 

     다만 느릿함이 지루함으로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뭔가 짚어주는 지점이 아쉬웠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주인공의 성장기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도 그런 공식에서 딱히 벗어나지 않는다. 관건은 그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가 인데, 감독의 작업에서 특별함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약간은 억지로 짜맞춰가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장편영화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아쉬운 부분. 작사, 연출, 각본, 디자인 어시스턴트, 스토리보드까지 혼자 거의 다 만든 영화라는데, 의욕만큼 수준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좀 많이 밋밋한 영화.

 

 

 

    영화의 메시지는 빨리 가는 것이 꼭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주인공 만복은 차를 타지 못하고 두 시간씩 학교에 걸어 다니지만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주변에서는 자꾸만 뭔가 되어야 한다고 재촉하지만, 만복은 그저 무사태평해 보일 뿐. 심지어 남들보다 빨리 걸어야 하는 경보에서까지 만복은 빨리 걸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쯤이면 영화는 말 그대로 온 몸을 던져 이 질문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삶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다른 회사보다 더 빨리 신제품을 내놓아야 하는 무한 경쟁에 돌입한 기업들의 일정에 맞춰, 사람들은 점점 더 빠르게 멀쩡한 휴대전화를 새로운 제품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거리에는 패스트 패션을 표방하는 매장들이 늘어가고, 마트에는 당장 껍질만 벗기면 먹을 수 있도록 반쯤 조리된 즉석식품들이 냉장고를 점령하고 있다.

 

    우리는 뭐 때문에 이렇게 빨리 가려는 걸까. 빨리 가서 사람들은 점점 더 행복해지고 있는가?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행복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물건을 팔아서 많은 돈을 번 사람들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오늘날의 세계를 보면, 딱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길이 맞긴 한 걸까?

     다만 영화는 질문을 던지긴 했는데, 대답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막연히 멈추고, 느려지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성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 뿐. 어쩌면 이게 길을 잃은 오늘날 우리들이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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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간의 어떤 상태들이 다른 어떤 것들에 대한 상태이며,

그러한 상태들이 참 혹은 거짓일 수 있으며,

그러한 상태들이 그 상태들의 내용에 의해 다른 상태들을 유발할 수 있으며,

논리적 법칙이 존재하며,

이러한 논리적 법칙들은 심리적 사건인 믿음의 실제적 발생과 연관되어 있고,

합리적 추론에 기초가 되는 형이상학적 의식의 단위가 존재하며,

우리의 추론 능력이 확실하다면,

 

인간은 합리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물리적 법칙에 의해 전적으로 행동을 지배받는 존재에게

이러한 능력은 불가능한 것이다.

 

- 빅터 레퍼트, C. S. 루이스의 위험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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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나라를 찾아서 C.S. 루이스 연구서
홍종락.정영훈 지음 / 홍성사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1. 요약 。。。。。。。

 

     C. S. 루이스의 작품을 몇 편 번역해서 루이스 번역가로 잘 알려진 홍종락(사실 이 분은 다른 좋은 책들도 제법 번역했다)과 평론가 정영훈이 힘을 합쳐 나니아 연대기를 분석하는 책을 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홍종락이 뽑은 주요 주제들을 중심으로 총 일곱 권으로 구성된 나니아 연대기를 전체적으로 훑어간다면, 후반부는 정영훈이 연대기의 각 권을 차례로 살피면서 그 안에서 생각할 꺼리를 이끌어낸다. 크게 보면 가로세로 격자식으로 나니나 연대기를살피는 책.

 

 

2. 감상평 。。。。。。。

     비슷한 내용의 책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데이비드 다우닝이 쓴 C. S. 루이스와 나니아 나라 이야기였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과 같은 해에 출판되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알라딘에서 나니아 연대기와 관련된 다른 안내서, 연구서들을 몇 권 찾아봤는데 한결같이 2005년인데다, 죄다 그 해 12월을 출판일로 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알고 보니 그 해 나니아 연대기를 영화로 만든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우리나라에 개봉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비슷한 유형의 책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잇따라 출판된 것이다. 물론 책이라는 게 앉은 자리에서 바로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가끔은 그렇게 쓰인 것 같은 책들도 있긴 하지만, 이 책들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수개월, 혹은 수 년 동안 쓰인 것일 테니까, 이 경우엔 영화 출시에 맞춰 책을 좀 더 팔아보려고 했던 출판사들의 마케팅 전략 덕분이었을 것이다.

 

 

     뭐 어찌 됐든, 나 같은 루이스 애호가에게 나니아 연대기를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건 그 자체로 기쁜 일이다. 그리고 다행히 이 책은 지난번에 읽은 책과는 내용면에서 차별점이 있으니까. 다우닝의 책은 좀 더 학술적, 신학적인 느낌인데, 이 책은 더 편안하게 쓰였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나니아 연대기를 읽는 사람들이 함께 생각하고 토의할 수 있는 가이드, ’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애초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듯싶다.

 

    살짝 아쉬운 부분은, 책 자체가 1, 2부로 나뉘어 두 명의 저자가 쓰면서, 어쩔 수 없이 원전의 내용이 반복된다는 점과 같은 서술을 두고서 살짝 다른 견해를 담은 서술들도 엿보인다는 점. 가벼운 논의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책의 완성도라는 면에서는 확실히 마이너스다. 두 사람이 좀 더 긴밀하게 힘을 합쳐 이야기를 썼다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물론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가로, 세로 격자형으로 접근한다는 기획도 아주 나쁜 건 아니었지만.

 

     굳이 두 부분 중 더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으라면, 홍종락이 쓴 1부를 고르겠다. 책 전반을 오고가면서 자유롭게 중요한 부분을 골라내고 설명하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연구자가 있다는 게 감사하다. 2부도 나쁜 건 아닌데, 상대적으로 내공이 적다는 느낌?

 

     ​교회나 작은 모임들에서 나니아 연대기를 읽고 나누는 데 참고할 만한 괜찮은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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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다.

사회구성원 간의 의견충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복되는 역사의 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시민사회를 향한 발걸음에서

서로의 다름을 좁히기 위한 치열한 논쟁은 필수불가결하다.

 

- 마이클 샌델, 왜 도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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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뭔가 위험한 일(?)’을 하는 듯한 형욱(유해진). 일을 처리하는 동안 묻은 피를 닦아내기 위해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기억을 잃고 만다. 그리고 그의 캐비넷 열쇠를 바꿔치기 한 반() 백수 배우지망생 재성(이준).

     기억은 잃었으나 몸이 기억하는 날렵함, 그리고 칼을 손에 쥐고 있으면 자꾸만 떠오르는 창의적 생각(?). 자신을 병원으로 옮겨주었던 구급요원 리나(조윤희)의 도움으로 조금씩 일상에 적응을 하기 시작하고, 이 와중에 바뀐 옷 속 고지서를 따라 간 재성의 집에서 발견한 책들 때문에 자신을 배우지망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코믹스러운 형욱의 배우도전기에, 리나와의 잔잔한 로맨스, 그리고 졸지에 형욱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된 재성과 의뢰와 관련해 얽히게 된 은주(임지연)와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약간은 어이없지만 흥미로운 방향으로 진행되어 간다.

 

 

 

 

2. 감상평 。。。。。。。

     쉬는 날 가볍게 즐길만한 영화를 보고 왔다. 최근 삼시세끼의 두 주인공 차승원과 유해진이 각각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영화가 연달아 개봉하고 있다. 앞서 차승원 주연의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좀 무거운 분위기로 힘을 주다가 아직까지 100만 명을 채 넘지 못하며 흥행실패를 하고 말았는데, 이 영화 럭키는 정반대로 가벼운 코미디에 초점을 맞춰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2백 만 명을 넘어섰다.

     유해진의 연기력이야 오랫동안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보장되었던 것이고, 최근 예능프로그램이 출연하면서 친숙해진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차승원도 비슷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고산자의 경우는 그 친근한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다는 차이가 있다.(물론 스토리에 무리수가 있기도 했다)

 

     ​사실 이 영화 럭키역시 스토리 측면에서는 헐거운 면이 많다. 일일이 따지고 들어가면야 지적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일단 이 영화는 작정하고 코미디로 나갔기 때문에 그런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도리어 우스워져버린다. 헐겁든 어쨌든 영화는 우선 재미가 있고, 기억상실증으로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는 재미있는 설정 안에서 마음 놓고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영화의 핵심은 주인공 형욱이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전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직업이었지만, 그가 정말로 자신을 배우 지망생이라고 믿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어 버린다. 우리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하게 될 일이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실제보다 작고 힘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그만큼에 머물 것이다. 영화 속 재성이 그랬듯이. 이건 긍정의 힘류의 믿는 대로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와는 조금 다르다. 이쪽은 우리의 진짜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최근 들어 평범한 사람들의 자의식이 부쩍 위축되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를 흙수저에, N포 세대 비유하고, 그런 평범한 이들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힘을 가진 계층이 존재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특권층의 일원은 시험도 없이 대학에 입학하고, 그 후에도 출석 한 번, 제대로 된 과제 한 번 내지 않아도 대학졸업까지 프리패스를 부여해주지만, 평범한 이들은 작은 항의만 해도 당장에 수사기관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현실에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도 별 거리낌 없이 고위 공직에 오르면서 도리어 자기들더러 뭐라 하는 이들을 힐난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자의식을 지켜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진짜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 나라의 경제발전은 반신반인의 영도자 하나의 성과가 아니라, 박봉에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견디면서 묵묵히 일해 온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 때문이었고, 이 나라가 적화통일이 되지 않은 것 역시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이름 없이 산화해 간 무수한 무명용사들의 피 때문이었다. 특권층들이 아무리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소리 지르더라도, ‘니들이 밥 먹고 사는 건 우리가 일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대꾸할 배포를 갖자.

 

 

 

 

     ​언젠가 우리 모두가 자신이 가진 힘을 깨닫게 되면, 그 때 우리 자신은 물론 세상도 크게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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