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
웨스 볼 감독, 딜런 오브라이언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자, 전작에서 위키드에게 잡혀간 민호를 구하기 위해 나선 토마스 일행. 영화의 시작부터 서부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화끈한 열차 탈취가 성공하지만 어이없게도 그 칸에는 민호가 없었다. 결국 성벽으로 둘러싸인 적진 한 가운데로 잠입할 계획을 세우지만, 그게 어디 애들 몇 명의 힘으로 될 것 같으면 진작 문제가 해결되었을 터.

     하지만 그들에게는 벽 안 쪽과 통하는 작은 통로가 있었으니.. 전편에서 일행을 배신하고 위키드 쪽에 붙은 트리사가 그것. 트리사를 통해 벽 안 기지로 들어간 토마스 일행은 민호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2. 감상평 。。。。 。。。

     91년생으로 알려진 주연 배우 딜런 오브라이언은 영화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급격히 나이를 먹어가는 느낌이다.(사실 나머지 배우들도 마찬가지) 사실 영화 속 시간으로는 채 1년이 되지 않는 기간의 이야기인데, 갑자기 턱밑이 거뭇거뭇한 모습으로 나오니 이질감이 강하게 든다. 어린 배우들이 시리즈물에 출연했을 때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

 

     ​물론 이 영화의 문제는 단지 배우들의 외모가 변해서 시각적으로 연결이 안 된다는 점만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시리즈 마지막 작품에 이르렀는데도 전혀 성장하지 못한 주인공 캐릭터니까. 여전히 중구난방, 하고 싶은 대로 나서고, 전략적 판단이라는 걸 전혀 하지 못하는 주인공. 덕분에 그가 얻어낸 성과는 순전히 운빨그 이상이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주변에 수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는 이 독불장군 캐릭터는 호감을 가질려야 가질 수 없는 수준.

 

     ​사실 그의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동료들을 한 명도 잃지 않은 채 어디 먼 데에 가서 자기들만 살겠다고? 중무장을 하고 있는 상대 진영에 쳐들어가는, 일종의 전쟁을 하면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유아적 발상일 뿐. 그리고 이미 전 세계에 바이러스가 퍼져 있고, 심지어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도구도 없이 그저 면역을 가진 주인공 혼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영화가 가진 가장 좋은 무기였던 독특한 설정이 급 흔해빠진 액션물로 바뀌고 말았다. 실망스러운 마무리.

 

 

 

      마치 일제의 731부대처럼, 살아있는 인간을 재료로 사용해 치료제를 만드는 게 무슨 대단히 거룩한 사명인 듯 여기는 트리사는 가증스럽다. 아예 윤리적 사고가 작동하지 않는 건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반성조차 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우기고 있으니 약간 소시오패스의 느낌도 난다.(영화 최고의 악역?)

     하지만 생각해 보면 현대 사회는 그렇게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의 피를 뽑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윤택하게 만드는 체제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며 지속적으로 비판했던 내용 중 하나인 치밀한 논리가 없이 감정적으로만 행하는 주인공 캐릭터도 실은 인간 본성과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고. 그 엄청난 전쟁까지 일으키면서 결국 예쁜 여주인공 구하겠다고 설치는 비이성적 모습은 우리가 매일 일상 속에서 보는 장면들은 아닌가.

     뒤죽박죽, 시원하거나 통쾌함도, 잘 정리된 결론도 없었던 영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이용한.한국고양이보호협회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사실 목차 제목만 보면 파트1과 파트2가 어떻게 다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길고양이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길고양이, 이것이 궁금하다는 뭐가 다른 걸까. 각각의 장 안에 담겨 있는 세부 내용도 딱 한 눈에 와 닿지 않는다. 예컨대 길고양이와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주제인 TRN만 하더라도 두 장에 모두 관련 항목이 담겨 있는 식이다.

     하지만 좀 중구난방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빼면,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고양이의 기본적인 습성부터 길고양이를 돕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조치(먹이 주기)부터 주변 사람들과 충돌하지 않고 길고양이를 돌볼 수 있는 노하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아낸다.

     책의 마지막 부록인 고양이에 관한 명언들부분은 고양이 애호가들이라면 하나하나가 반짝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문구들이다.

 

2. 감상평 。。。。。。。

     몇 달 전 텀블벅에 올라왔던 프로젝트에 후원을 하면서 받게 된 책이다. 적절한 기회가 될 때 읽으려고 잠시 묵혀두면서 감칠맛을 내고 있다가, 드디어 손에 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크게 부담이 없으면서,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 책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몇 마리의 길고양이들을 마주하곤 한다. 출퇴근 시간 말고 딱히 단지를 돌아다니는 습관은 없는지라 녀석들을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씩 녀석들을 만날 때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자리에 서 있곤 한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 뿐, 가끔씩 길고양이를 돌보기 위한 모금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녀석들을 위해 직접 행동하는 건 없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캣맘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보면서 이제는 좀 행동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이 정도의 세심함으로 녀석들을 돌보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동시에 떠오른다. 그만큼 생명을 대하는 일이란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조만간 뭔가 사고를 칠지도)

 

     생명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인성을 알 수 있다. 특히 자기보다 작고 약한 생명이라면. 그런 존재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언제든 그보다 조금 더 큰 또 다른 존재를 못 살게 굴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괴롭히는 대상은 조금씩 커져 마침내는 동료 인간들에게도 해코지를 하고야 말 것이다. 특히 고양이 같은 귀여운 존재를 학대하는 인간들은...

 

     ​좀 더 어릴 때부터 동물들과 함께 하는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주변의 생명들과 공존하는 연습은, 유치원 시절부터 영어단어를 몇 개 더 외우는 것 따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여기고, 나와 조금만 달라도 금세 모욕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수준 이하의 인성을 가진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세상은, 모두에게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수준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존을 위한 교육을 좀 더 일찍, 그리고 제대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시작으로 귀여운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매우 영리한 선택일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줄거리 。。。。。。。

     영화가 시작되면 한 여자가 강으로 뛰어든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노어 릭비(제시카 차스테인). 다행이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 팔에 골절상을 입은 채 집으로 돌아온 그녀. 그런데 그녀를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뭔가 조심스러움이 엿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녀에게 남편이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와 버렸음을 알게 된다. 얼마 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남편 코너(제임스 맥어보이)가 찾아오고, 엘리노어는 큰마음을 먹고 나왔지만 다시 코너와 사랑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갈등을 한다. 그가 가까이 올 때는 밀어내다가도 갑자기 그에게 달려가는 그녀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녀가 코너를 떠난 이유는?

 

 

 

 

2. 감상평 。。。。 。。。

     같은 이름의 영화가 세 가지 버전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 여자’, ‘그 남자’, ‘그 여자 그 남자’. 각각 여자의 관점에서, 남자의 관점에서, 그리고 양쪽의 관점에서 같은 사건을 바라본 영화라는 것. 이번에 본 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자의 입장에서 본 이야기.

 

      영화가 참 느리다. 이건 단지 분위기가 잔잔하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인물들의 대사가 적고(은유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절대적인 양이 적다), 감독은 핵심적인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감추기만 한다. 영화 속 엘리노어의 행복을 보며 라는 질문은 계속 나오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일부러 뒤로 미루고 숨기기만 한다. 대신 영화는 분위기를 공들여 만들어 내고 있다. 영상의 색감이라든지, 툭툭 던지는 상징적인 대사라든지, 무엇보다 주인공의 표정으로.

 

 


 

      영화는 인과관계에 집중하려고 한다면 극히 재미가 없는 작품이 될 것이고, 그냥 잔잔하게 분위기를 느끼려고 한다면 그럭저럭 볼 수 있는 정도. ‘왜 엘리노어가 코너를 떠났는지는 영화 말미 결국 밝혀지긴 하지만, 영화 내내 그녀가 보여주는 건 상실의 아픔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를 몰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모습으로만 보였으니까.

 

     ​뭔가를 말하려고는 했으나, 솔직히 다음 편들이 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롭지는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이는 것, 다르다는 이유로 균열되는 것은 인간이 타락한 결과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중심으로 연합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 제라드 윌슨, 『세상이 흉내낼 수 없는 기독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독교는 이슬람을 어떻게 볼 것 인가 - 종교개혁자들이 바라본 이슬람
유해석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가장 먼저는 마르틴 루터, 장 칼뱅(책에서는 칼빈으로 표기), 불링어(책에서는 불링거로 표기) 등의 종교개혁자들이 이슬람교에 대해 했던 발언들, 저작 속 내용들을 정리하는 부분이다. 종합하면 당시 유럽의 기독교계의 부패상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이슬람교도들의 종교적 열심에 대해서는 일부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교리상의 문제점을 강력한 어조로 비판했다.

 

     ​책의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사실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2부에서는 이슬람 국가 안에서 살았던 기독교인들(딤미)이 어떤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었는지 잠시 설명한 뒤, 할랄 제도가 갖는 신학적 함의로 넘어간다. 하지만 딤미에 관한 논의는 주로 오래 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할랄은 현대적 의의에 집중해 구성상 매끄러운 연결은 아니다.

 

     ​3부는 최근 들어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보고로 시작한다. 나아가 선교사 경력을 갖고 있는 저자답게, 이슬람교 선교를 위한 예비적 조치들을 제시한다

 

  

2. 감상평 。。。。。。。

 

     ​어떤 책을 낼 때 일반적으로 상정하는 목표가 세 가지 있다. 1) 새로운 정보 전달, 2) 저자의 주장 설득, 3) 작가의 감동/감상 전이가 그것. (오로지 개인의 만족을 위한 출판이라면 논외다.) 이 책은 이 중에서 어떤 것을 목표로 했을까? 대략 1)에 집중을 하려 했던 것 같지만, 여기에 충실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저자 자신의 주장을 덧붙여 가며 2)의 영역을 더해버린다. 물론 이 둘이 좋은 구성 아래 적절히 조화가 된다면 나름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그런 게 쉽지는 않다

 

     ​이 책이 갖는 비교우위는 종교개혁자들의 이슬람교에 대한 관점을 잘 정리해 내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런 내용은 다른 책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점을 좀 더 부각시키려면 책의 제목과 부제가 서로 바뀌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 ‘종교개혁자들이 바라본 이슬람이 제목이 되고, ‘기독교는 이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부제로.

 

     ​책의 주요 논지 가운데 하나가 종교개혁자들이 이슬람을 이렇게 생각했기에, 기독교는 이슬람교를 그대로 생각해야 한다는 식인데, 이 논제는 반론의 여지가 많다. 우선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모든 주장이 옳다고 믿지 않는다. 차라리 그들의 주장을 잘 정리해서 소개하는 데에만 힘을 쏟았더라도 책의 평점은 1점 이상 올라갔을 것. 그 뒤에 저자 자신의 주장을 부록처럼 덧붙였더라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구성 면에서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이슬람교도들을 무작정 적대하기 보다는 친구로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면서, 동시에 기독교가 가진 독특성을 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기억해 둘만하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어느 정도 어울리지만, 전체적인 분량이라든지 하는 부분으로 보면 앞서 내 제안처럼 가는 게 좀 더 나았을 듯. 물론 더 중요한 문제는 책의 방향성을 좀 더 분명히 하는 것이었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