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 - 서양 근대교회사 His+STORY 그리스도교의 역사 4
윤영휘 지음 / 홍성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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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사에서 좋은 기획을 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라는 기획인데, 기독교의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어 몇 개의 강좌를 진행했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엮었다. 흥미로운 건 이들 저자들이 흔히 보는 역사신학을 공부한 신학자가 아니라는 것. 모두 서양사를 전공한 사학자들이다. 물론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러니까 이 기획은 일반 역사가의 눈으로 교회의 역사를 교회 밖 역사와 함께 조망해 보는 그런 그림을 그려낸다.



지금까지 네 권의 책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이 책은 근대 교회사를 다룬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 이 시기는 혁명의 시대였다. 프랑스에서는 전제군주를 몰아내는 혁명이 일어났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었고,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라는 사상적 혁명도 있었다. 그야말로 서구 세계가 들썩였던 시기다.


당연히 기독교회 역시 다양한 변화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직전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30년 전쟁의 여파로 유럽 내 사람들의 신앙심은 크게 떨어져 있었다. 여기에 계몽주의와 과학 혁명은 치명타를 가하는 것 같았지만, 북미 대륙에서의 대각성운동, 또, 영국의 노예무역폐지운동과 다양한 경건운동들이 일어나면서 또 한 편으로 나름의 부흥을 이루기도 했다.


교회의 역사란 확실히 어느 한 가지 요인 때문에 일어나거나 넘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에, 또 교회는 놀라운 방식으로 자신 안에 있는 생명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전의 잘못된 부분들은 타격을 입지만, 본질이 아닌 부분이 그런 식으로 깎여나감으로써 새살이 돋는 느낌이랄까.





단순한 교회사, 종교사만이 아니라 당시의 일반 역사들에 대한 충실한 요약과 설명이 이 시리즈의 가치를 더해준다. 사실 근대 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그리 멀지 않지만, 의외로 잘 모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점은 교회사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수백 년 전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본 사람도, 근대 교회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낯설게만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교회가 어떤 일들을 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고, 그 시대에 관한 어느 정도의 인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꽤 좋은 교양서적이다.


아쉬운 부분은 근대 아시아의 역사 부분은 별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책 후반 중국 청 말기의 상황이 살짝 언급되어 있긴 하지만, 또, 인도나 일본, 그리고 조선의 상황도 아주 잠깐 훑고 지나가지만, 그 분량이라든지 깊이 부분은 확실히 아쉽다. 저자의 전공이 서양사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부분이 서양이기 때문이겠지만, 이 부분을 다룬 책도 하나 나와 주면 어떨까 싶다. 사실 근대 역사 중에서도 아시아의 근대는 더더욱 낯선 부분이기도 하니까.


나머지 세 권의 책도 결국 다 손에 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마침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할 다음 콘텐츠가 근대와 현대 교회 이야기이기도 하니, 이 작업에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 같고. 홍성사에서 이런 시리즈 정도만 계속 내주어도 감사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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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이 세상에서 우리는 제대로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나에 대한 오해와 억측이 당연하다고

미리 마음먹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은 마음가짐이며, 때론 싸움도 불사해야 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산다는 것은

따뜻하게 이해받음과 더불어 함부로 무시되고 오해받는 고통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임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만일 이런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의 내 모습보다

훨씬 유치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더 빨리 늙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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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도 샀다.

뭐 다 내가 보려고 샀던 건 아니지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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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0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 숫자 2천 단위 맞죠? 굉장하네요. 그 정도면 VVIP 끕인데요? ㅋ

노란가방 2024-07-02 10:01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들 사주려고 구입한 것도 좀 있어서 금액이 올라갔나 보네요. ㅋ
요새는 저렇게 못 삽니다. 돈이 궁해서...ㅎ

leiah1004 2024-07-0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노란가방 2024-07-03 10:04   좋아요 0 | URL
아유 아닙니다.. 대단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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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0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홍성사와 협업을...? 홍성사가 가방님의 너튜브를 눈여겨 봤나 봅니다.
잘 됐네요. 축하해요!^^

노란가방 2024-07-01 22:48   좋아요 0 | URL
무슨 공중파도 아닌데 ˝너튜브˝라고..ㅋ
대단한 건 아니고, 홍성사에서 유통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분과 만나서
이런저런 일을 좀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정도입니다. ㅎㅎ
앞으로 어떻게 꾸며가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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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히틀러의 독일은 유럽 전역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만행은 역시 6백 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집단학살한 인종청소였다. 결국 나치독일은 패망했고,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에게 충성을 바치면서 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부역자들 역시 비슷한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해외로 도피하는 데 성공했다. 몇몇 나라에서는(이를 테면 아르헨티나 같은) 이들 도피한 나치 부역자들에게 관대한 대응을 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아이히만이었다. 친위대 제국지휘관 소속 보안대로 일을 시작했던 그는 곧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능력을 인정받았고, 점차 중요한 임무들을 맡게 된다. 그는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이어질) 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담당했다.


2차 세계대전 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국된 현대 이스라엘은 이런 악랄한 나치 범죄자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 도피해 심지어 자서전까지 쓰고 있던 아이히만을 납치해 예루살렘의 법정에 세우는데 성공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재판에 관한 관찰 기록이다.





저자인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이다. 그녀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이미 1930년대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기에 처음에는 프랑스로, 나중에 독일이 프랑스까지 점령하면서 1941년에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쯤 되면 아렌트가 재판에 참관하면서 아이히만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지지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책에 실린 내용은 오히려 그와는 반대되는 주장처럼 느껴진다.


예컨대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치의 고위직에 속한 적이 없었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엄청난 수의 유대인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했던 아이히만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었다는 말이다. 정말로 그가 단지 중간관리자였을 뿐이라면,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전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 정당할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점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법정 주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히만은 자신은 그저 명령을 받은 대로 행했을 뿐이며, 당시 그 명령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었던 정당한 것이었으므로, 그에 따른 행위를 수행한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실제로 아이히만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죄목으로 처벌을 하는 건 정당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가진 가장 큰 악덕은 허풍이었다고 말하면서, 그가 말했던 많은 범죄행위들은 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했던 과장이었다고 말한다. 다만 이런 내용이 아이히만의 죄를 줄여주는 듯한 인상을 주고, 이것이 그를 단죄하려 했던 유대인들에게 어떤 식으로 비춰졌을 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사실 이보다 더 큰 비판은, 애초에 이 재판 자체에 대한 정당성 문제였다. 아이히만을 납치해서 재판에 출석시킨 것부터가 절차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아이히만이 행위를 했을 당시에는 없었던 법을 근거로 그의 행위를 단죄할 수 있느냐 하는 형식론적 반론에 저자는 강하게 동조한다. 또, (비록 이스라엘 자신이 전승국은 아니었지만) 전승국에 의한 재판이라는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사건을 국제재판소에서 다루는 것이 옳았다는 내용도 보이고.


물론 형식적으로는 충분히 지적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나치가 저질렀던 그 만행을 제한하는 법이 없었던 것은, 하나의 국가나 정부가 그 정도로 엄청난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미처 못 했기 때문이거나, 당연히 그와 같은 일은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기에 굳이 따로 법제화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런 행위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았을까?


예컨대 우리는 얼마 전 소위 부패방지기구라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대통령의 부인이 고가의 사치품을 뇌물로 받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기에, 실제로 발생한 ‘그 사건’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코미디를 목격했다. 전형적인 형식논리에 치우친 궤변인데, 물론 절차와 형식은 중요하다. 그런 것이 없다면 사법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형식론에만 매몰되면 우리는 거악을 스스로 놓아주는 멍청한 짓을 하게 되고, 이는 두고두고 그 사회의 질서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최근 다시 이슈가 되고 있는 20년 전 밀양 사건처럼.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 자체가 나치의 패망 이후였기에, 이스라엘의 법률에 근거해 나치 전범들과 그 부역자들을 재판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모두 소급적용이다. 그러나 이 소급적용이 부당한 일이라고 비판하는 건 “정당”할까? 그것은 “책임” 있는 비판일까? 어쩌면 스스로 유대인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던 한나 아렌트의 교묘한 논점 흐리기는 아니었을까? 또 그녀가 불륜관계를 맺었던 하이데거가 나치 찬양자였다는 점도 예사롭게 넘어가지지는 않는 부분이고. 실제로 아렌트는 하이데거가 나치부역 혐의를 벗는 데 중요한 법정(허위?)증언을 하기도 했다.





보통 이 책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멋진 문구로 유명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모른 채로 거대한 악에 종사하게 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난 그냥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했을 뿐”이라는 식의 변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쏠쏠하게 사용되고 있으니 좋은 지적이다. 개인의 윤리와 집단의 윤리가 다를 수 있고, 개인적으로 선해 보이는 인간도 악한 조직의 일원이 되면 어떻게 저열하고 추잡한 짓을 하는지 우리는 날마다 확인할 수 있다.


이 세기의 재판을 관찰하면서 뭐라도 하나 남기고자 했다면 그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다만 정말로 아이히만의 사례가 여기에 들어맞는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결국 이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나치 치하에서 온갖 범죄와 인종말살에 동참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줄 수도 있을 테니까. 이 또한 형식논리에 집착하느라 현실의 악에 어떤 식으로든 서사를 부여하려는 학자연하며 행동을 한없이 미루는 모습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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