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소련과 미국이 우주경쟁을 하던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전산원으로 일하던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있었다.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메리 잭슨(자넬 모네)가 그들. 전산원이란, 아직 컴퓨터에 의한 계산이 일반화되기 이전 계산기를 들고 이를 수작업으로 하던 이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수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캐서린에게 곧 기회가 주어진다. 새로운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데 필요한 인원을 찾던 중 그녀가 합류하게 된 것. 유색인 전산실의 리더였던 도로시는 얼마 후 IBM의 컴퓨터가 들어와 전산원들의 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새로운 도구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익히기 시작했고, 메리는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유색인종의 입학을 거부하는 학교에 대항해 소송을 벌였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그 시대, 온갖 편견과 차별을 딛고 조금씩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던 그녀들의 이야기.

 

 

 

2. 감상평 。。。。。。。

 

     ​여전히 인종차별이라는 미개한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던 미국의 60년대. 공공도서관에서조차 흑인들은 백인들과 다른 문으로 들어가 다른 서가를 이용해야만 했고, 버스에 타서는 뒷자리로 가야했으며(앞 쪽에 자리가 남아도 앉을 수 없었다), 학교 입학에 제한을 받았고, 심지어 화장실도 구분되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도 잠깐 나오지만, 당시 거리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인권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투쟁을 벌여야만 했던 (그리고 그런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테러와 공격이 심각했던) 시기였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 차별을 극복해 낸 영웅적 인물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슨 전사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백인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나사 안에서, 순수하게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인정받았다.

 

 

 

 

      감독은 자극적인 영상이나 전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들이 겪었던 억압의 무거움을 잘 표현해 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주인공이 성취한 업적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오죽하면 미국이 로켓을 우주로 날려 보내는 모습을 긴장하며 지켜보았을까. 심지어 그건 인류애도, 순수한 과학적 발전도 아닌,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프로젝트였는데도 말이다.

      당시 미국의 로켓 개발은 다분히 과장된 정치적 수사의 결과물이었다. 소련이 우주인을 배출했다는 소식은 바다 건너 미국에는 당장에 인공위성으로 미국을 샅샅이 감시하거나, 우주에서 핵을 쏠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시켰는데, 당시의 기술수준을 보면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책상 아래로 대피하는 공습대비 훈련까지 시킬 정도로 당시는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기서 오늘날 사드 배치 옹호론의 향기가 느껴지는 건...

 

 

 

 

     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특별한 것도 아닌) 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영화의 감동으로 그냥 넘어가기엔 무거운 주제다. 인종에 따라, 직업에 따라, 성별이나 신념, 종교에 따라서 차별받는 문화는 틀렸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구별을 인위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식의 전체주의로 치닫자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이런 차별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식으로 극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대개 도덕적으로나 실력으로도 자신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건데.. 자기들은 극구 사실을 부인하니.. 언젠가 이런 영화가 정말 과거 한 때의 역사로만 남게 되는 날이 올까.

 

      올해 봤던 영화들 중에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밀로셰비치의 독재는 결국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것이었다.

이웃에 대한 두려움,

감시에 대한 두려움,

경찰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그러나 공포의 시절, 우리 세르비아인들은

두려움의 가장 큰 적수가 웃음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 스르자 포포비치,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
주용일 지음 / 오르페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시집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마지막으로 시집을 봤던 게 학교에 다닐 때였던가. 알라딘 북플에 올라온 글을 보다 보면 자주 시집에 관한 포스팅을 보게 되는데, 그게 머릿속에 남았는지, 도서관에 간 김에 모처럼 시집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여러 시집들 중에 굳이 이걸 꺼내든 이유는 책장을 넘기다가 본 한 구절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었는데, 이런 내용이다.

 

오늘 저녁 아내는 내 등에 붙은 파리를 보며 파리는 업어주고 자기는 업어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린다. 연애시절엔 아내를 많이도 업어주었다. 그때는 아내도 지금처럼 무겁지 않았다. 삶이 힘겨운 만큼 아내도 조금씩 무거워지며 나는 등에서 자꾸 아내를 내려놓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거의 수필처럼 보이는 산문시인데, 평범한 시골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사건 속에서 깊은 아쉬움, 아련함, 미안함을 끄집어내는 능숙한 솜씨가 마음에 와 닿았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귀농을 한 시인은 이 작은 시집에서 전원적인 풍경을 물씬 담아낸다. 일상적인 일들, 풍경들에서 작은 것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런 소리들을 듣지 못하는 나 같은 도시인들에게 번역해 준다. 덕분에 시들을 읽으면 눈앞에 파란 풀들이 흔들거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모두 마흔다섯 편의 시들이 실려 있는데 물론 다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아니고, 앞서 인용했던 것 외에 두세 편 정도가 더 있었다. 한 달에 한 권 쯤은 시집을 일부러라도 골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회는 질문을 끌어내는 곳이라고 알려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의 분위기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 엘리자베스 오코너, 『세상을 위한 교회, 세이비어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줄거리 。。。。。。。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기. 진주만 공습 이후 자원입대를 결심한 데스몬드 도스(앤드류 가필드)는 훈련소에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양심에 따라 총기를 손에 드는 일을 거부한 것.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같이 비난하거나 그의 신념을 꺾으려고만 한다.

 

     ​명령불복종으로 감옥에 가기 직전, 가까스로 무기를 들지 않을 헌법적 권리를 인정받게 된 그는, 의무병으로 훈련을 마친 후 동료들과 함께 최전선 오키나와의 핵소 고지 점령 작전에 투입된다. 치열한 전투 끝에 고지를 점령하지만, 이튿날 숨어 있던 일본군의 대규모 반격으로 부대는 거의 궤멸상태에 이르고 모두 급히 후퇴한다.

 

     ​그러나 부상을 입고 애타게 위생병을 찾는 전우들을 두고 그냥 갈 수 없었던 데스몬드. 그는 그날 밤이 새도록 일흔다섯 명의 부상병들을 홀로 고지 밖으로 구조해 내는 데 성공한다.

 

 

 

2. 감상평 。。。。。。。

     고대 로마군에는 시민관이라는 떡갈나무 가지로 만든 관이 있었다. 이건 전쟁시 동료나 아군측 시민을 구해온 병사들의 머리에 씌워주는 명예로운 관이었다고 한다. 두려움이 극한에 달하는 전쟁터에서, 자신이 부상을 입으면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후방으로 이송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큰 위로과 격려가 된다. 때문에 로마군에서는 그 일에 대해 큰 영예를 수여했던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 속에는, 로마군 소속이었다면 시민관을 한 트럭은 받았을 주인공이 등장한다. 적군이 활보하는 전장에서, 홀로 무기도 없이 일흔다섯 명의 전우들을 구해 나온 영웅적인 인물. “One more, one more"를 외치며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작품이 담고 있는 휴머니즘적 메시지를 그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없을 것처럼 표현해 낸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건, 역시 2차 대전의 배경 위에 전개되는 대규모 고지전. 이런 걸 이 정도의 규모와 이 정도의 퀄리티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역시 엄청난 자본의 헐리우드이기 때문에 가능한 걸까. 물론 최근에는 우리나라 영화들 중에도 제법 수준 있는 전쟁장면을 그려내는 경우들이 있었지만, 이 정도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영화는 많지 않을 것 같다.

 

 

 

 

​     흔히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 속 데스몬드는 이른바 양심적(혹은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일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병역을 수행하는 것 자체는 수용하지만 총을 들기를 거부했으니 신념에 의한 집총거부자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을 그를 겁쟁이, 배신자, 명령불복종자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정작 전장에서 그는 누구보다 용감했다. 사람들의 판단이라는 게 얼마나 부족한 근거 위에 세워지곤 하는 지를 보여주는 부분. 그리고 여기엔 다분히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터부, 배타심이 엿보인다.

 

     ​뭐 여기서 이 문제에 관한 긴 논의를 다 옮길 필요는 없겠지만, 좋은 사회는 나와 다른 이들을 받아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사회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들과 다른 것(물론 이게 이유 없이 의무를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을 선택해도 비난받거나 따돌림을 받지 않을 수 있을 때, 좀 더 창의적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도 나타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집단주의가 횡횡하는 사회는 그 경직성으로 인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는 법이다.

 

 

     ​잔혹한 장면이 좀 걸리긴 하지만(멜 깁슨이 이런 그림들을 좋아하는 듯), 메시지는 묵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