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뭘 해야 할지 몰라 싸움질만 일삼던 고3 시절, 전학생 승희(박보영)를 만난 우연(김영광)은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이 다 끝나기도 전에 승희는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우연히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를 시작한 우연은 마침내 그녀를 다시 만나지만, 승희의 옆에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자신이 있을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승희 옆을 맴돌게 되는 우연. 하지만 있어야 할 시간에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경험이 반복되는 사이, 우연의 앞으로 봉투 하나가 배달된다.

 

 

 

  

2. 감상평 。。。。。。。

     함께 본 친구 말에 따르면, ‘첫사랑 역할 사기캐릭터 박보영이 출연해 딱 첫사랑 연기를 하는 영화. 영화를 보고 나오면 박보영 예쁘다는 말이 딱 터져 나온다. 좀 비슷비슷한 캐릭터가 겹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을 때 가장 멋있는 게 사실이니까.

     영화의 기본적인 얼개나 전개, 그리고 결말까지도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유사한 건 역시 그녀와의 결혼이 아니라 그녀의결혼이라는 결말부.(뭐 이쪽은 제목부터 그러니까 딱히 특별한 스포일러는 아닐 듯) 연애라는 게 첫 눈에 반해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니까. 동화적 결말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인 상황으로 돌아온, 그러면서도 나름 예쁘게 그리려고 노력한 영화다.

     영화는 깨어진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역시 가장 먼저 드는 건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독백. 내가 얼마나 상대를 좋아하느냐보다, 상대에게 내가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진심을 다해 상대를 사랑하면 언젠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대개 실연의 아픔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에쿠니 가오리의 문장은 진실을 한 움큼 담고 있다.

     하지만 또 어디 헤어짐의 이유가 한두 개로 설명될 뿐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람의 숫자가 많은 만큼, 성격도 다양하고, 만나고 헤어지는 이유도 다양할 테니까. 이번의 패배 이유를 아무리 잘 복기해도, 다음 번 전투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건 아닐 게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고 해도, 아니 결혼까지 성공했다고 해도, 사랑이란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러 갔지만, 배우도, 스토리도 나름 나쁘지 않았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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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
톰 라이트 지음, 김재영 옮김 / IVP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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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정의에 대한 욕구로 시작해, ‘관계’, ‘아름다움같은 주제로 논의를 이어간다. 인간에게 이런 요소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 세계의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일종의 메아리 같은 것이며, 그 소리가 울려나오는 근원을 찾아갈 때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다.(1, “순전한 기독교에서의 C. S. 루이스의 도입과도 유사하다)

     기독교는 그 대답으로 어떤 이론적 틀보다는 일종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바로 기독교의 이야기, 혹은 성경의 이야기가 그것. 저자는 자연스럽게 구약과 신약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구속의 이야기로 넘어간다.(2)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그는 당연히 예배라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기도와 성경을 읽는 삶, 교회로 모이는 것, 나아가 하늘과 땅이 만나는 비전을 품고 세상을 그에 어울리는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 역시, 그분을 알 때(만날 때) 가능해진다.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란 바로 이런 비전을 바탕으로 새창조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2. 감상평 。。。。。。。

 

     책의 판형이 좀 작다. 그런데 책 두께는 얇지 않다. 여기에 면의 여백도 좁다. 한 마디로 말해, 적지 않은 내용을 타이트하게 꽉 채워낸 느낌. 그런데 단지 글자의 배치만이 아니라 책의 내용도 그렇다. 오랫동안 우려낸 고기국물처럼 짙은맛이 느껴지는 글이다.

     저자는 예배, 기도, 성경읽기 같은, 어떻게 보면 관행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신앙의 각 요소들에 담긴 깊은 의미들을 잘 풀어낸다. 이 개념들을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하나님 나라 개념 아래 효과적으로 종합해 내고 있다. 큰 그림에서도, 각론에서도 묵직한 책.

 

     ​우리말 번역 책 제목은 기독교 여행이지만, 원제목은 'Simply Christian'이다. 둘 다 이 책이 어려운 신학책 보다는 신앙서적에 가깝다는 점을 어필하는 듯하다. 하지만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개념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면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하지만,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논지들은 가볍게 읽기에는 좀 무리지 않을까 싶다.

     책의 전개 방식에서도, 저자는 일단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혹은 받아들이겠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전제(前提)주의적 입장을 취하는데, 이 부분에 불만을 품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반 틸의 주장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어차피 자연주의적 입장을 가진 이들 역시 그런 전제를 강요한 채 이론을 펼치고 있으니 피장파장이긴 하다.

 

 

     ​이런 종류의 책읽기에 익숙하다면 추천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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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좋아하면 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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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한 것 때문에 내 기도가 산만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 내 기도를 방해합니다.

기도가 끝나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는 것이나

기도가 끝나면 금세 잊어버리는 것이

내 기도를 방해합니다.

 

- 페리 브램릿, 작은 그리스도 C. 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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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회식 후 새벽의 귀가길, 새로 장만한 집에 들어온 상훈(이성민)은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베란다로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 가운데서 살인을 저지르는 놈의 얼굴을 보게 된다. 본능적으로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놈이 자신의 집이 몇 층인지를 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멈칫한다. 상훈에게는 지켜야 할 아내와 아이가 있었으니까.

     자신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해코지를 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는데도 잠잠히 있었던 상훈. 그러나 놈은 조금씩 상훈의 주변을 조여 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위기감은 점점 더해간다.

 

 

   

 

 

2. 감상평 。。。。。。。

     한 때 아파트 단지에 무슨무슨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전국적인 동향까지는 모르겠지만, 분당 쪽엔 그런 아파트 단지가 제법 많았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탑 속에서 살면서도 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는 안정감, 연대감 같은 걸 느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계획이 얼마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얘기하면 일단 철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든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 않던가.

     영화의 포스터는 그런 아파트의 불안감, 고립감을 잘 보여준다. 좁은 아파트 복도 끝 현관을 붙들고 반대쪽을 바라보는 이성민의 모습. 분명 카메라와 이성민 사이에는 많은 문들이 있고, 그 문 안쪽에는 또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만, 그들은 아예 카메라 앵글에서 잘려 있다.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고, 그런 이웃은 옆에 있긴 하지만 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거대한 단지 가운데 오직 나만 있다는 자각, 이건 금세 일종의 공황을 일으킨다.

 

 

 

 

     감독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그런 의도적인 고독, 외로움, 소외감 같은 정서를 반영하기 위해 애를 쓴다.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데도 누구도 나와 보지 않는 상황, 나아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을 방해하면서 그냥 어서 사건에 대한 소문이 잠잠해지기만을 바라는 부녀회장과 그에게 암묵적인 동의를 표하는 주민들, 심지어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한 전단을 붙이는 남편을 비난하며 추방하려고 하기까지...

     흥미로운 건 그들이 그런 행동을 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대표적인 이익은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고) 주인공을 비롯한 주민들은 내 가족, 내 돈을 지키기 위해 침묵의 카르텔을 구축했다. 아파트를 마을로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그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이익을 위해 모여 있는 무리가 되어버렸다. 언제라도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일단 흩어져버리면 다음은 각개격파가 남을 뿐.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위해했던 침묵과 외면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걸 깨닫는 지점에서 주인공의 성격이 비로소 변한다. 주민들이 마치 위험에 처한 타조가 땅 속에 머리를 쳐 박고 적이 자신을 보지 못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사건에 눈을 감고 쉬쉬하는 동안 살인범은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었다. 당연하다. 눈을 감고 있는 상대를 다루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눈을 뜨고, (심지어 어린 아이가) 그냥 소리쳤을 뿐인데도 놈은 도망가 버린다.

 

 

 

     공동체와 연대는 흩어진 개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이기심에 기초한 사회계약이 아니라, 이타심에 기초한 사회 연대가 공동체를 안정되게 만들 것이다. 이기심은 세우기보다는 파괴하고 흩을 뿐이다. 자유방임의 가치를 추종한 체제는 진작 무너져버렸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연대의 가치를 도입하지 않고 유지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즈음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종주의(혹은 민족주의), 보호(무역)주의, 또 다양한 종류의 혐오는 우리가 사는 이곳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전 지구적으로. 우리는 눈을 뜨고 함께 나서게 될까, 아니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깨져 나가게 될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좀 부정적인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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