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하지만 인본주의는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불변의 신념체계를 뒤흔들거나 거기에 도전할 필요까지는 없다.

 

 

1. 줄거리 。。。。。。。

 

     저자 자신이 왜 종교를 증오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은 책이다.

     별다른 이유의 제시 없이 그저 종교는 악하다고 주장한 저자는(1장), 종교인들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한 피해들(2-4장)을 그 이유로 제시하는 듯하다. 5장에서 종교의 형이상학적 주장에 대한 ‘형이하학적’ 분석을 하며 종교의 무가치성에 대해 열변을 토한 후에는, 우주에 대한 ‘지적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폭언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6장)

     7장부터 10장에서 구약과 신약, 코란 등 유력 종교의 경전들을 현대적 기준으로 비난한 저자는, 11-12장에서는 현대의 사이비종교의 탄생을 예로 들며 모든 종교의 시작은 그와 같다는 식의 비논리적인 유비추리를 전개한다. 13장은 2장의 내용과 같으며, 14장에서는 자신의 동양종교에 대한 몰이해를 여지없이 보여주며 그것들을 비난한다. 15장은 7-10장의 내용의 반복이고, 16장은 다시 2장과 유사한 내용인데, 이 장들의 가장 큰 특색은 특별한 ‘증명’ 없이 그저 자신이 경험한(어쩌면 경험하지도 못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욕설을 퍼붓고 있다는 점이다.

     17장에서는 ‘저자 자신이 정한’ 종교인들의 ‘최후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아닌) 경멸이 등장하며, 18장에서는 역사상의 ‘위대한 무신론자들’의 예를 열거하며 낯간지러운 무신론 찬양을 외친다. 결론부인 19장은 비록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을지라도 무신론은 인간을 진정한 유토피아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으로 마친다.

 

 

 

2. 감상평 。。。。。。。 

 

     무신론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여기서 백과사전이란 폭넓고 깊은 진리들의 모음집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전후 내용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잡다하게 늘어 놓여 있는 상태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거기에 필요 이상의 반복적인 내용으로 책의 두께가 두꺼워졌다는 의미도 추가할 수 있겠다.

     이 과격하고 자극적인 욕설로 도배가 되어 있는 두꺼운 책의 표지에 어째서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같은 종류의 책 가운데 단연 최고’라는 찬사가 인쇄되어 있는 지 쉽게 추측할 수 없다. 사실 책 표지에 인쇄된 찬사들은 책에 대한 지배적 의견이라기보다는 출판사 관계자의 구미에 맞는 노골적이고 낯간지러운 원초적 찬양일색인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말이다. 차라리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생물학’이라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기라도 했지만, 이 책의 경우는 그런 부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역시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원색적인 욕설과 조롱이다. 예컨대 “하지만 종교는 나 같은 행동을 할 능력이 없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리고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종교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러분과 나를 파멸시킬 계획, 인류가 힘들게 얻은 모든 성과를 파괴할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다.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29쪽)와 같은 문장들에서는 저자가 피해망상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저자는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야만적인 반응을 보이는’ 종교인들을 비난하지만(49쪽)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야만적인 반응을 보이는 ‘무신론자들’은 보지 못했나보다.

     저자의 사회적 차원에서의 교양 없음은 130쪽에도 등장한다. 저자는 단지 ‘이론’이라는 말에 자신과 다른 정의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상대를 ‘멍청한’이라고 조롱한다. 누군가 공식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책에서는 이러한 조롱이 허용되어야 하는가? 이 책이 삼류 포르노 잡지도 아닌데 말이다. 그 뿐 아니라 저자는 단지 소설 내용을 근거로 종교를 비난하는가 하면(317쪽) 저질 스포츠 신문에서 스크랩 한 듯한 종교에 관한 온갖 가십꺼리들을 모든 종교에 해당되는 양 제시하기도 한다.(87쪽) 사실 도킨스의 책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노골적인 비난과 조롱, 경멸은 ‘고상하신 무신론자님들’의 특성인 듯싶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결국 이 책에 가득한 종교에 대한 경멸과 욕설은, 단지 저자가 선한 종교인들을 ‘경험’해 보지 못해봤다는 이유일 뿐인 것 같다.(276-77쪽)

 

 

     이와는 반대급부로 무신론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도 문제다. 저자는 세상을 참 간편하게 이해하는데, 모든 악은 종교로, 모든 선은 이성으로라는 이분법적 구도이다.(cf. 45쪽) 무신론에 대해 거의 반사적인 칭송을 하려다 보니 약간은 혼란하지만 자생적인 문화적 발전보다는 ‘식민지 시대의 장엄한 건물들’을 찬양하기도 하고(38쪽,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던 대학교수가 있었지 않던가? 일제시대는 우리민족 발전의 전기였다고.) 만약 종교인이 그랬다면 당장에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을 만한 윤리적 문제도 무신론자가 그랬다면 관대하게 넘어간다.(274쪽)

     종교를 비난하기 위해서라면 자료의 인용도 제멋대로다. 마이모니데스라는 중세의 철학자를 예로 들면, 저자는 이 한 명의 인물이 남긴 저작의 신뢰도를 한편에서는 부정하고(100쪽), 다른 한편에서는 그대로 인정한다.(325쪽) 하지만 둘 다 결론은 ‘그러니까 종교는 나쁘다’는 것이다. 정확한 연구 없이 단지 기분에 따라 악평을 써 내려가기도 하고,(283쪽) ‘남아프리카 사회가 야만성과 내부 붕괴로부터 구원될 수 있었던 것은 호전적 불가지론자들과 무신론자들 때문’이라는 낯간지러운 찬양도 보인다.(365-66쪽)

     아마도 저자는 ‘상징적인 행위’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이 거의 틀림없는데, 간디의 물레를 단순히 ‘문명에 대한 비이성적인 종교적 거부’로 비아냥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271쪽) 저자는 그야말로 굉장한 문자적 해석을 하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한 나라의 독립운동가를 편협한 전통주의자로 비난하는 꼴이다.(아마도 윤봉길 의사가 어떤 종교신자임을 알게 된다면 당장에 종교적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지 않았을까?)

 

 

     만약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는 이 책의 정확한 반대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쓸 수도 있다.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이 저지른 역사상의 만행과 오류에 대한 사례들을 잔뜩 수집해서 아무렇게나 늘어놓으면 되니까 말이다. 물론 이 때 양을 필요 이상으로 늘리거나, 그렇지 않다면 두꺼운 종이로 출판을 해 ‘권위’가 있는 척 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종교인들의 조심성 없는 말과 행동에 실망한다. 때때로 자신의 욕심을 위해 고의적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모습에는 히친스의 편에 서서 함께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이며 악질적인 과학자를 본다고 하더라도 과학을 경멸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이성적인 관점’은 이런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과 ‘과학주의’를 적절하게 구별하지 못한 채 이 편의 것은 무조건 옳다는 오류에 빠져있고, 이는 그다지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는 기술적 도구’이고, 과학주의는 ‘모든 것은 과학으로만 설명해야 한다는 신념체계’이다. 저자의 엄격한 ‘과학주의(혹은 증거주의나 기초주의)’를 택한다면 우리는 이 책의 내용을 하나도 믿을 수 없어야 한다.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저자 자신의 문장 이외에는 전혀 얻을 수 없으니까. 물론 책에 등장한 사례들을 일일이 조사해 본 후에는 이 책의 내용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그런 시도가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저자는 ‘하지만 인본주의는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불변의 신념체계를 뒤흔들거나 거기에 도전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단언하는데(363쪽), 이러한 단언이야말로 인본주의의 신앙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이토록 극렬한 분노를 터뜨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는 듯하다.(70쪽) 이해 비해 저자의 철학에 대한 몰이해(‘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말을 그럼 신이 언젠가는 존재했었다는 뜻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으로 보아, 104쪽)나 신학적 진술에 대한 몰이해(주로 할례의 대상과 범위에 관한, 328쪽)는 오히려 작은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같은 종류의 책 가운데 단연 최고’라는 소개글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유사한 책인 『만들어진 신』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과 상당부분이 겹치고 있으며(서평까지도 거의 같아야 할 정도다. 그냥 앞선 서평을 읽어보면 될 것 같다), 그나마 독창적인 점이라고는 좀 더 원색적인 욕설과 조롱이 등장한다는 점과 좀 더 많은 모순적 문장들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책 표지가 내가 좋아하는 밝은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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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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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우리는 항상 같은 도식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거지?」

「인간이란 존재를 쉽게 변화시킬 수 없으니까요.」

 

 

 

1. 줄거리 。。。。。。。

 

     과밀한 인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 끊임없이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는 정치인들과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종교인들,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지구에 소망이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우주과학자인 이브 크라메르는 아버지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우주범선을 제작할 꿈을 꾼다. 양자로 구성된 빛을 이용해 우주선에 돛을 달아 움직인다는 생각이었다. 말기 암으로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했던 억만장자 맥 나마라의 자금력은 이 황당한 프로젝트가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었다. 여기에 이브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전직 요트 항해사 엘리자베트까지 합류하면서 얼추 프로젝트 팀은 완성되었다.

     이브의 계획은 태양계 밖의 새로운 행성을 찾아 ‘건강한’ 사람들만을 정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아무리 빨리 날아가도 족히 1,000년은 걸리는 이 여행의 가장 큰 적은 시간이었다. 이브는 완전히 새로운 발상 - 우주선 안에서 계속 생명을 번식시키겠다는 -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2. 감상평 。。。。。。。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노아의 방주’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노아의 방주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간 듯 보인다. 또 그것 말고도 책 전반에는 성경 이야기에 대한 패러디들이 많이 엿보인다. 144,000명은 요한계시록의 상징적인 숫자(12 X 12 X 1,000)이고, 탐험에 참가할 사람의 숫자를 줄여내는 작업은 사사기의 기드온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과 동물이 쌍을 이루어 배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마지막 장의 창세기 패러디는 작가의 재치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성경적’이라거나 ‘기독교적’이라는 말은 아니다.(오히려 작품 전체에는 종교에 대한 반감이 좀 더 자주 드러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첫 작품인 『개미』에서부터 작가의 작품들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신과 함께 사는 인간’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제도 ‘인간’이다. 특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쿠아리움’, 혹은 ‘마이크로 월드’에는 이런 소망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외부의 간섭(신?)없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닫힌 세계’가 그것이다.

     외부의 개입을 완전히 거부하니 자연히 남는 것은 인간들 자신의 의지뿐이다. 이런 세계가 망하지 않으려면 인간 개개인에게 ‘선한 무엇’이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혹은 원시공산주의로 돌아가자는 히피나 공산주의자, 또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은 여기에 근거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만이 그들의 주장이 설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주니 말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그 반대증언을 자주 하고 있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작품 안에서도 파노라마식으로 보이듯 사람들은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세상, 곧 모든 종류의 인위적 질서를 없애버린 세상에선 오래 살 수 없었다는 것이 현실이니까. 이브의 탐험이 결국 ‘실패 같은 성공’을 남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인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인간은 그들의 생각처럼 기계와 같은 정밀성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멋진 상상력을 접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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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으면,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책에서 감동을 받는지를 관찰해 보면 돼.

책이란 건,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는 달라서,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거든.

 

 그런 노력을 기울이면서까지 읽는 책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감동이라면,

틀림없이 그 사람에 대해 뭔가를 알려주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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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고 싶은 일들

함께 가고 싶은 장소들

함께 기억하고 싶은 추억들.

 

많은 걸 꿈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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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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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 미치광이가 뒤죽박죽으로 풀어낸 사랑 이야기이다.

 

 

1. 줄거리 。。。。。。。

 

     애인과 헤어진 뒤 감정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얼마 뒤 살인청부업에 뛰어든다. 타고난 사격술에, 감정까지 사라졌으니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살인을 하는 과정이 자신에게 묘한 성적 흥분까지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제 살인을 유쾌한 오락으로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관의 가족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면서, 주인공의 삶은 크게 변한다. 장관의 딸과 일기장, 그리고 자기 방으로 날아 들어와 죽은 제비 한 마리는 그 변화의 시작 단추였다.


 

 

2. 감상평 。。。。。。。

 

     책의 마지막 부분에 쓰여 있는 한 마디 문장이 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책 전체는 기준이나 판단이라는 면에 있어 뒤죽박죽이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주인공은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대반전을 기대하고 계속 책장을 넘겼지만, 이 책에는 그런 것이 없다. 동시에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인물에 대한 평가부터(과연 이 인물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사건에 대한 판단(살인이라는 일에 담긴 사회적, 윤리적 함의)도 없으니까. 작가는 그저 ‘묘사’만 하고 있다.

     작가의 묘사력은 여전히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왠지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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