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한 장면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개그콘서트 코너 '민상토론'에 징계의견을 냈단다.

'민상토론'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 제5호

"그 밖에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

위반했다고 판단해 행정지도를 하라는 ‘의견제시’ 를 하기로 의결했다는 것.

 

그럼 그 코너에 무슨 이야기가 나왔냐 하면..

"낙타 고기는 도대체 어디서 먹으라는 거냐"

"정부 대처가 빨랐더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

"항간에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얘기가 떠돈다. 그럼에도 방역을 위해 굳이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모범 국민이 있다"며 문형표 복지부 장관 거론

 

야당 추천 심의위원(박신서·장낙인)은 "풍자 방송일 뿐"이라고 했지만,

제재를 주장한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김성묵·함귀용·고대석)이 다수여서,

결국 2-3으로 '의견 제시'가 확정됐다고 한다.

 

 

그래.. 그렇게 완장 채워준 놈들 열심히 핥아줘라.

그래야 또 다른 것도 시켜주지.

 

참고로 심의위원장인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는

5.16은 혁명이고, 일제의 식민지배는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을 다졌다고 주장하던 분.

 

뭐..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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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들의 핵심적인 질문은 단순한 것이었다.

 

반세기 동안의 산업적 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대중의 상황이 여전히 그전처럼 비참하다면,

그리고 8세 미만 어린이들의 공장노동을 금지하는 것이

입법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면,

산업 발전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이 모든 기술 혁신과 이 모든 노역과 인구 이동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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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1978년 부산의 한 국민학교에서 은주라는 이름의 여학생 한 명이 납치되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유괴범에게서는 전화 한 통 오지 않았고, 덕분에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 아이의 엄마는 점집까지 전전하지만 모두들 아이가 죽었을 것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단 한 명 김중산(유해진)을 제외하고.

 

     사주에 ()’이 있는 사람이 수사에 나서야 아이가 살 것이라는 중산의 말에 따라 은주의 부모는 공길용(김윤석)에게 사건을 맡기기를 원했고, 제법 사는 집 부모의 요청이기 때문인지 윗선에서도 그렇게 조치가 된다.

 

     그렇게 유괴된 아이를 찾기 위한 형사와 도사의 협력이 시작되는가 싶지만, 어디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에게 그게 영화처럼 쉬운 일이던가.

 

 

 

2. 감상평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수사물. 하지만 배경이 70년대 말인 관계로, 현대식 수사기법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걸 원하면 CSI 시리즈를 보는 게 낫고..) 영화의 포인트는 형사와 도사라는, 쉽게 조합이 되지 않는 팀이 꾸려지고 (, 이쪽도 비슷한 콘셉트의 미드가 있었던가), 그들이 만들어가는 익숙하지 않음의 상태에서 뭔가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데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의도가 작품 안에 잘 드러난 것 같지가 않다. 우선 두 사람이 맡고 있는 캐릭터의 성격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김윤석이 맡은 공형사 역은 욱하면 위아래 가리지 않고 할 말을 내뱉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규정준수의 화신이거나 의협심으로 똘똘 뭉친 것은 아니다. 잔머리를 굴리는 타입도 아니라서, 그의 수사를 보며 치밀하다는 느낌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오랜만에 웃음기 싹 뺀 모습으로 등장한 유해진 역시 부적 몇 장 그리고 꿈 꾼 것 말고는 도사로서의 면모나 활약하는 장면이 그다지 보이지도 않고..

 

     캐릭터를 살리려면 인물들을 좀 더 과장되게 그렸어야 했지만,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다보니 내부적으로 좀 다른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이가 유괴되었는데 개그 치는 도사나 지나치게 방방 뛰는 형사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수사물을 보는데, 범인의 정체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상황까지 이르면 확실히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     오히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종반이었다. 사건 해결 후 논공행상을 하는 과정에서의 조작과 거짓 부분인데, 시간으로 보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사건 해결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경찰 조직 안의 알력과 배타성, 그리고 고생한 주인공이 물 먹는 장면은 모처럼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으니까.

 

    본편에서 잘 느껴지지 않던 두 캐릭터의 케미스트리가 살짝 느껴지기까지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이는 돌아왔고, 사건은 종결됐고, 실화를 표방한 이상 없는 일을 과하게 만들어 내기도 힘든 것을..

 

    이래저래 흥행은 쉽지 않을 듯. 뭐 그래도 지루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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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문명 - 별과 우주를 사랑한 지동설의 시대
박용숙 지음 / 소동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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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동서양의 방대한 유물 자료들을 수집한 저자는 샤먼문화가 고대 동서양에 걸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뭐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도 충분히 인정되는 설명이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한두 발 더 나간다.

 

     우선 이 책의 제목처럼 샤먼문화가 단지 문화적 양상을 넘어서 (상당한 정도의 교리적 체계 가지고 있는) 하나의 문명을 형성했으며, 여기에는 상당히 과학적인교리들(지동설이라든지 별자리의 움직임을 반영한 무구라든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몇 발 뜀뛰기를 시작하더니 동서양의 고대문명을 아예 사면문명의 발명품 정도로 이해하려는 시각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엔 저자의 전작 샤먼 제국에서 주장했던 시각 - 동서양 역사의 뒤섞어 하나의 문명(사실 이 책에선 그냥 하나의 나라로까지 만들어버리긴 했다.)으로 묶어버리려는 까지 살짝 엿보인다. 결국 태초에 샤먼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

 

 

2. 감상평 。。。。。。。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후자가 실제로 있었던 일 그 자체를 가리킨다면, 전자는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틀 안에서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사실을 통해서 진실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는 필연적으로 나의 해석(그리고 선입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게 역사탐구에는 종종 심각한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걸 이 책의 저자인 박용숙 전 교수는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오늘날 랑케식의 실증주의적, 나아가 있는 그대로를 기술하는 것이라는 관점은 철지난 역사관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창의적인 해석을 내놓는 게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과학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고대 샤먼들이 과학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저자 자신은 물론 출판사의 책소개에도 이 책이 과학적탐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역사가 과학적으로 탐구되는 완전히 객관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랑케의 의식을 반영하는 걸까? 그런데 책의 내용은 그와는 반대이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전작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되던 증거였던 발음상의 유사성은, 이번 책에서도 주요한 증거로 제시된다. 예컨대 저자는 동양에서 머리에 쓰는 은 무속의 굿과 연관이 되고, 이는 다시 영어의 ‘god’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241). 물론 이건 부여의 대소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과 동일인물이라는 전작의 설명 정도는 아니나, 과연 이걸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또 형태상의 유사성 역시 중요한 증거라고 본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형태상의 유사성은 , , 같은 매우 단순한 형태의 기호들이다. 하나의 선 위에 다른 선을 더하기만 하면 만들어지는 이런 기호들은 그저 곳곳에서 서로 관계없이 그려졌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을까.

 

     책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금성 이데올로기도대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어떤 것에 이데올로기라는 명칭을 붙이려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큰 문명사적 영향력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 이건 단순히 어떤 상징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수준을 넘어서, 그것이 사람들의 정신적, 물질적 세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이 책의 금성 이데올로기는 여러 지역에서 삼각형의 도상이 사용되었다는 것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물론 이 책은 한민족이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모두를 합한 개념으로서의) 아시아의 중심이었다고 주장하던 전작의 과도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정면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그 중심에 샤머니즘이 있었고, 샤머니즘이 하나의 사원국가형태로(275) 아시아와 (이번에는) 유럽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제국을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제국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듯하다. 중세 유럽에서나 볼 법한 기마무사가 훨씬 이전의 고구려 고분에 그려져 있는 게 그 증거라는(305) 설명은, 제국이 무력까지 행사할 수 있는 실제의 국가라고 보는 듯하다.

 

     중국정부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정부의 임나일본부설도 이런 식으로 주장되지 않았을까. 적은 문헌자료와 사연이 정확히 적혀 있지 않은 유물들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 그리고 여기에 역사에 특정한 관점을 부여하려는 강력한 동기.

 

 

     동서양의 다양한 유물들의 사진을 한 권의 책 안에 (그것도 상당히 많은 컬러 도판으로) 모아놨다는 점은 분명 이 책의 공헌이다. 저자의 중후반 결론부의 과도한 감정이입(이 부분은 사실보단 감정의 문제인 듯)을 뺀다면 모음집으로서의 이 책의 장점은 그대로 남는다. 그런데 이 부분 역시 생각해 보면 전작에 대한 내 서평의 마지막 부분 -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 살았던 고대인들에게 때때로(‘항상이 아니다) 나타나는 매우 놀라울 정도의 공통적 기억에 관한 발견과 그 자료들에 대한 매우 견실한 수집이 이루어졌다‘ - 이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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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제가 저 자신을 견딜 힘을 주소서

모든 짐 중에 가장 무거운 짐

내버릴 수 없는 근심 덩어리

 

- 크리스티나 로제티, ‘누가 나를 건저내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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