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는

과학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과학 이론에 사실의 위엄과 엄밀성을

더 쉽게 부여한다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C. S. 루이스, 폐기된 이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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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진로인문학 - 나를 찾고 꿈을 찾는 인문학 강의
김경집 외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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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인문학 강좌를 책으로 엮었다. 여덟 명의 강연자가 나섰는데, 각각 자신의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강연을 녹취한 듯한 느낌으로, 강연자들의 말투까지 대체로 살려낸지라, 강연자마다 그 내용만이 아니라 말투와 진행 방식도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냉혹한 현실을 부드럽게 비춰주면서 독서를 통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것을 권유하는 김경집의 이야기는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꿈을 가질 것을 제안하는 이남석의 접근방식은 생각한 만큼 잘 진행되지는 않은 듯했지만(살짝 웃음) 나쁘지 않은 강의였다.

 

     반면 힘든 일이 있어도 웃으며 지내라는 김종휘의 말은 살짝 막연했고, 시종일관 깐족대는 느낌으로 학생들의 대답을 비웃는 강신주의 글은 불편했다. 즐겁게 놀다보면 좋은 것이 떠오를 수 있다는 이명석의 말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게 학생들에게 잘 와닿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또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탐색하는 게 중요하다는 박승오의 말이나, 꿈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작은 행동이라도 시작하라는 김영광의 조언은 실천적인 면에서 귀담아 들을 만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큰 깨달음까지 준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 강연은 지나치게 막연한 느낌이랄까...

 

 

     책 제목만 보고 조금은 딱딱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훨씬 더 수월하게 읽히는 내용이었다. 다만 강연자들 사이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강신주의 깐족거림과 나머지 강연자들의 격려 사이에) 조금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건 공저자들이 각각 내용을 쓴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약점이다. 물론 개중에 마음에 드는 내용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점은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의 양 때문에, 혹은 처해 있는 상황 때문에 청소년 시기에는 확실히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내 경우에도 그랬다) 인문학은 그렇게 좁아진 시야를 넓혀주고, 구부정하게 굳어진 자세를 한 번 크게 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런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이런 강좌를 준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직접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어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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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말 시작된 국가금융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맡았다. 정책 당국의 무능함과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등 여러 원인들이 지적되지만, 여튼 문제는 그렇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 문제의 끝자락 즈음에 달려 있었던 것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태였다. 국책은행인 외환은행은 금융위기 사태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결국 매각 절차를 밟기로 결정되었다. 이 때 나타난 것이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였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여러 가지 불법적 정황이 있었다. 우선 금산분리법을 어기고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은행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었고, 그나마 이 과정에서 인위적인 주가조작을 통해 헐값으로 인수가 이루어졌다.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금산분리법을 피해가기 위해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한 허위문서의 제작과 제출 과정의 문제를 실마리로 삼아 파고들어간다

 

     ​이 일을 담당한 은행직원과 금감원직원이 내연관계였고, 얼마 후 두 사람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사건을 맡고 있던 양민혁 검사(조진웅)이 수사를 시작하지만, 갑자기 수사 과정에서의 성추행 스캔들이 일어나면서 수사가 중단된다. 자신의 누명을 벗고 사건을 실체를 파고들어가던 중 이 거대한 문제와 맞닥뜨린다는 것.

 

 

 

 

     때문에 영화는 시종일관 우울하다. 사태는 이미 벌어졌고, 그 과정에는 불법과 탈법이 잔뜩 묻어 있었다. ‘모피아라고 불리는 전현직 재정관련 부서의 고위 공직자들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거대 로펌의 사주들은 물론, 자칭 타칭 통상전문가라고 불리지만 결국 막대한 현금에 굴복하는 비열한 인물들, 그리고 승진을 위해 법 적용을 미루고 타협하는 검사까지... 수 조원의 국민 세금을 지들끼리 나눠먹는 비열한 모습이 영화 속에서 그렇게 펼쳐진다.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건, 이런 영화 속 상황이 현실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나랏돈은 눈 먼 돈이라고 여기며 기회가 되는 대로 먹을 줄 아는 똑똑한이들과, 자신이 가진 권력을 오직 자기 한 몸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는 부지런한인간들은 널려있는 데다, 그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좀 더 작은 규모로 열심히 연습하는 꿈 많은이들까지 있으니까.

 

     영화의 결론도 감독의 이전 작품들처럼 썩 개운하지 않다. 끝까지 현실과의 접점을 연결해 두고 싶어 했던 걸까. 정의감이 넘치던 한 검사의 싸움은 거대한 벽에 부딪혔고, 믿고 있었던 젊은 통상전문가는 이익 앞에 비굴하게 입을 닫아버렸다. 나머지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림힘없는 이들의 시위와 이를 가로막는 공권력 그리고 진압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평온함...이다. ..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이런 답답한 가운데서 작게나마 문제를 풀 실마리도 발견된다. 영화 속 모피아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여론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어떻게든 숨겨, 여론의 악화를 막으려 한다. 어차피 정치권은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강력한 여론의 지지는 이들이 세금으로 잔치를 벌이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그러려면 결국 더 많은 정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사실 이 역할을 하라고 언론이 있는 건데... .. 또 한숨인가.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조금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먼저 나서서 진실을 밝히고, 알리는 수밖에. 이런 영화도 그런 진실을 알리기 위한 작은 노력 중 하나일 거고.

 

     우리에겐 힘이 있다. 다만 스스로 그런 힘이 있음을 모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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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1-10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론’이라는 말씀에 정말 새삼 크게 공감합니다. 정부 혹은 국가의 유일한 약점이 여론이라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

노란가방 2020-01-10 21:53   좋아요 0 | URL
네 민주국가의 시민들에게는 생각보다 강한 힘이 있죠. 기득권자들은 시민들에게 그런 힘이 있음을 모르게 하려고 애쓰고 있구요..

레삭매냐 2020-01-11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금융은 론스타와의 소송에서 완승했지만
정부와의 5조원대 ISD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
고 하네요. 결론은 언제 날 지 알 수가 없고요.

사태가 이렇게 진행될 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하나 없다는 게 놀라울 따름
입니다. 당시 산업자본인 론스타에게 인허가
를 내준 이들에 대해 1차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아닐지...

노란가방 2020-01-11 20:13   좋아요 1 | URL
사실 책임 묻기가 굉장히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어지간히 법의 틈새를 찾아다니는 게 일이었던 사람들이니..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문제에 애초에 관심을 갖지 않으니,
여론이라는 큰 힘이 모아지기가 쉽지도 않고...
 
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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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서두에 실려 있는 추천사를 보고 조금 낯간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추천사를 쓴 교수는 이 책을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와 대조하면서, 이 책이 얼마나 뛰어난 저작인지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지면을 채웠다. “다이제스트에서 문학으로와 같은 표현까지 등장하니..

 

     그런데 한 30여 페이지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아 이 책은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 안 되겠구나. 자칫 내릴 역을 놓치겠구나’. 실제로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던 상황에서, 이 책을 몇 줄 읽고 내릴 역을 확인하고를 반복했다. 그만큼 소설의 문장들은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고, 소설답게 인물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배경이 되는 BC 2세기 말의 분위기도 정교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빠져들게 된다. 좋은 문학이다.

 

 

     ​책은 로마 공화정 후기의 군인이자, 군제 개혁(이건 단지 군사적 측면에서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구조와 구성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으로 새로운 시대로 가는 디딤돌을 놓았던 마리우스와 우리가 잘 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할아버지인 또 다른 카이사르를 중심으로 (그리고 잔혹한 독재자 술라가 더해진다) 펼쳐진다

 

     명문 귀족(파트리키)이었지만 부유하지 못했던 카이사르는 지방의 여유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마리우스를 자신의 큰 딸인 율리아와 혼인을 시켜 동맹을 맺으려 한다. 여기에 몰락한 파트리키 출신으로 비루한 삶을 살다가 때를 보고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제거하고 카이사르의 둘째 딸인 율릴라와 결혼을 앞둔 술라의 이야기가 또 더해지고.

 

     그런데 이 책에서 좀 더 비중을 두는 부분은 이런 인물들 이야기의 배경에 깔려 있는, 공화정 말기 로마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반복해서 묘사하는 데 있다. 이 시기 로마는 금권만능주의가 온 사회에 퍼져 있었고, 돈이 아니면 높은 관직에 올라 성공할 수도 없고, 그런 성공도 돈을 벌기 위해서인 악순환... 이 과정에서 힘이 없는 소농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

 

     율리우스 가문과 마리우스의 결합이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이후의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이 결합은 결국 문제를 근원부터 깨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근본적인 개혁은 체제의 파괴와 재구성이었다. 이미 재물의 보유수준에 따른 계급제도가 다시 한 번 그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지난 세기부터 수많은 사람이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해왔지만, 세상(그리고 기득권층)은 당연하게도 그런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 결과는 또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시오노 나나미가 소위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는가를 그렸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어서 다음 권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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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여성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신체에 차이가 있다.

한 사람이 나뉘어 두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삶을 얻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태어난다.

그리고 서로의 안에서, 서로를 통해서 존재한다.

 

-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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