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모금 생명의 떡
로날드 사이더 지음, 이영길 옮김 / IVP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예수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는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인물이다. 이미 1세기에도 교회 안의 빈부격차가 문제를 일으켰고, (정확히 말하면 교회가 빈부격차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니라, 빈부의 차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야고보서의 저자가 보기에 그건 믿음의 본질을 해롭게 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라’, ‘행함이 없으면 (그의 믿음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와 같은 단호한 어조는 이 편지의 특징이다.

 

     오늘날에는 많은 변화가 분명 일어났지만, 한 때 소위 보수적인 교회들에서는 사람을 먹이는 일보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이건 엄청난 착각이었고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강조점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좀 경직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이루어낸 엄청난 영혼구원의 숫자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시려는 그분의 계획을 제대로 수행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교회는 성장했으나,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에는 상당부분 달라졌다. 이제는 보수적인 교단에 속한 교회들도 이웃을 위한 나눔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회보장정책의 사각지대를 상당부분 보완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종교단체들인데, 그 중 기독교회의 비율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변화의 시작은 로잔 회의를 비롯한 다양한 자리에서 복음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애초부터 영혼 구원과 사람을 먹이는 일은 서로 떨어져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그런 총체적인 복음 사역이 어떻게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인종차별의 중심지에서 흑인들을 교육하고 훈련해 뿌리 깊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고, 인도의 빈민가에서 소규모의 신용대출을 통해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주고, 범죄의 진원으로 여겨지는 도심(미국의 경우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대개 교외 지역에 집을 마련한다)으로 이주해 지역을 변화시킨다. 이 모든 것들이 교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이런 일들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행동에는 깊은 철학적, 신학적 고려가 듬뿍 담겨 있다. ‘음란행위와 이혼에 대한 정죄만큼이나 예수님은 부자들을 경고하는 일에 힘을 쓰셨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빠른 회심 권유 대신, 그들을 애써 도운 뒤 해 주는 기도가 더 효과적이라는 말에는 묵직한 경험의 지혜가 담겨 있다. 교회(내부)를 향해서만 말하고 있으면서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실에 대한 분석은 머리를 쾅 때리는 듯했다.

 

   아쉬운 건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 점과 이 책에 담겨 있는 사례들이 벌써 반세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라는 점.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에 새롭게 축적된 이야기들을 담아 증보판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행함은 힘이 있다. 세상은 교회가 하는 이야기보다 교회가 하고 있는 일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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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유튜브에서 종종 보이던 광고다.

일제 불매운동으로 우리나라에선 한참 곤경을 겪던 유니클로에서 만든 새 광고.

MBC SPORTS를 비롯한 케이블 채널에서도 자주 보인다.

 

뭐 사실 옷을 그리 많이 사 입지도 않지만...

이 광고가 유니클로 홍보라는 게 꺼림직 했다.

하지만 가만 보면 내용이 더 신경쓰이는 게 있었다.

 

오늘 우연히 이런저런 뉴스를 보다보니

이 광고의 내용이 일제강점기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요구에 대한

노골적인 빈정거림, 조롱이 담겨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단다.

 

노인과 소녀가 등장해서,

자기 나이 때는 어떻게  입었었는지 기억하느냐는 소녀의 질문에

80년도 더 된 일을 누가 기억하느냐고 대답하는 노인.

문제의 그 '80년'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가 전국적으로 약탈되던 시기다. 사람도 물자도.

 

 

제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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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0-18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유니클로는 날씨가 쌀쌀해 지면서 한국상품중에 대체품이 없는 히트텍등을 위주로 일부 상품이 품절이 됬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그러다보니 일부 혐한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냄비근성이 다시 나왔다고 비웃고 있단 기사도 본 기억이 납니다.이런 와중에 유니클로 본사에서 저런 광고를 내 놓았다니 일본 유니클로 어떤 의도로 저런 광고를 방영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입장에선 무척 불쾌하고 분노를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군요.유니클로 불매 운동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려야 될것 같네요.

노란가방 2019-10-18 13:22   좋아요 0 | URL
정말 대체제가 없는 걸까요...
참 그렇네요... 에휴..
 

 

 

재미나게도 신앙에서는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

신을 믿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하든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신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에서는,

가령 약간의 좌절은 있더라도 그런 좌절에서조차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찾아낸 의미가 인생의 빛이 된다.

이 빛은 세상에 널리 흔한 빛이 아니다.

세상이라는 어둔 그림자 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나만의 기쁨이다.

 

-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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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쓰레기가 넘쳐나고, 십대의 불량 청소년들은 이유 없이 사람을 패고, 전철 안에서는 겨우 어린 티를 벗은 술 취한 금융가 회사원들이 여성들을 희롱하는 고담시. 망상에 빠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하는 일은, 작은 이벤트 업체에 소속되어 광대 분장을 하고 온갖 행사에 출연해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었다.

 

이런 하 수상한 시절, 최악의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란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코미디언이 되기를 원하지만, 사람들을 웃기는 일에 영 재주가 없어 보이는 플렉의 삶 또한 순탄치 않았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총으로 사고를 쳐버린 플렉. 그런데 사고의 여파가 이상하게 확산되었고, 여기에 어머니의 망상이 가득한 편지로 인한 희망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마침내 위태롭게 유지해 오던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조커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그렇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이 살아왔던 주인공이 어떻게 조커가 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그려낸다. 처음부터 불안 불안해 보이던 그의 삶에서 조금씩 희망이 사라져버리고 막다른 길에 몰려가는 과정이 호아킨 피닉스의 명품 연기로 묵직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처음부터 바닥에 붙어 있는 사람은 떨어질 데가 없는 법이다. 플렉이 조커가 되기 위해서는 조금은 높은 데로 올라설 (그리고 거기서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영화 속 플렉의 삶은 소위 루저의 전형이다.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 그러면서도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생각조차 해 보지 못하는 그였다. 그런 그가 어머니의 편지 속 내용을 보면서 순간적이나마 희망을 품었고, 그 희망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전에 있던 자리보다 훨씬 더 아래쪽으로 떨어져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긍정의 힘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의 강요가 수반된다. 현실은 어렵지만, 막연히 앞으로는 잘 되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그러나 고담시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희망이 더 큰 절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정작 그가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하나씩 치워지는데도, 아니 이제 사다리로 오르기에는 너무 높이 올라가고 있는데도, 20, 30년 전 3층집일 때의 이야기만 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희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어설픈 희망의 강요는 도리어 수많은 조커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만약 그처럼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진료소가 문을 닫는 대신 좀 더 체계적인 지원을 했더라면, 그저 남을 웃기고 싶지만 재능이 조금 부족한 이들에게 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더라면, 챨리 채플린의 영화 속 슬랩스틱을 보고 웃기만 하는 대신 그것이 풍자하고 있는 현실 속 문제들에 대해 좀 더 공감하는 사람들이 극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있었다면, 조커는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한 명의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 작품의 구성과 배우의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배경에 깔리는 음악이 멋있었지만, 내용은 조금 씁쓸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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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0-15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커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더군요.어떤분들은 너무 음울한 분위기의 영화로 본뒤 오히려 약간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하더군요.

노란가방 2019-10-15 23:04   좋아요 0 | URL
연기를 워낙에 잘 해놔서 인물에 너무 깊이 몰입하셨던 분들인가봐요.
저는 좀 거리를 두고 감상했던지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살짝 엿들은 주변 사람들의 평들도 갈리더라구요.
 

 

한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이 교회를 떠나는 시기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몰려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교회의 청년부는 변증을 가르치지 않고

게임이나 유쾌한 프로그램에 집중한다.

정서적 헌신의 수준을 높이는 각종 이벤트를 계획하고 운영하는 것이

청년부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체험의 강도를 높이면 지적 의문이 다 상쇄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서적 헌신의 강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오늘날 청소년들의 의문을 차단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런 체험이 무언가 이루는 것이 있다면

기독교 신앙을 순전히 정서적 관점에서 재정의하게 만든다는 것뿐이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지적 의문에 봉착할 때

더더욱 그 위기에 취약한 상태가 될 뿐이다.

 

- 낸시 피어시, 완전한 확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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