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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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사고와 관련된 여섯 개의 단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미스터리물 쪽에는 일가견이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인데책 뒤에 ‘10년 만의 후기라는 게 붙어 있어서 2010년도에 나온 책인가 싶지만실은 2010년도에 이 책이 처음 나올 때도 같은 이름의 후기가 붙어 있었다(내가 읽은 건 2019년에 나온 개정판이었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라는 것그 사이 출판사도번역자도 바뀌었는데몇 부분의 번역을 비교해 보니 어떤 건 이전 번역이또 어떤 건 새 번역이 나은 편인지라 크게 우열을 가리기는 어려울 듯.

 


     교통사고라고는 하지만 여섯 개에 실린 이야기는 다 각각 다른 소재를 바탕으로 한다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 여고생의 놀랄 만한 청력과 기억을 바탕으로 사고를 재구성하는 천사의 귀는 맨 앞에 실려 있는 작품인데기분전환으로 책장을 여는 순간 단숨에 눈이 문장을 쫓아가기 시작해서 앉은 자리에서 금세 다 읽어버렸다.


     무사고 트럭운전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고의 원인을 추적하는 중앙분리대와 좁은 도로에서 위협운전을 하다가 된통 얻어맞은 운전자의 이야기 위험한 초보운전’, 주택가 이면도로의 불법주차로 인해 벌어진 사고와 보복을 다룬 건너가세요’, 고속도로에서의 쓰레기 투척 문제를 다룬 버리지 말아 줘’, 일본 특유의 운전문화로 인해 벌어진 사고를 그린 거울 속에서’ 하나하나가 개성 있는 이야기들이다.

 


     소재도등장하는 인물도 모두 다른 이야기들이지만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작가는 청음부터 악한 마음을 먹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을 굳이 등장시키지 않는다(물론 그 비슷한 음모를 꾸미는 사람도 한 명 나오긴 하지만). 작가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듯애초에 뺑소니를 치는 것 같은 악한 일을 계획하는 건 인간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물론 현실엔 그보다 더 인간 같지 않은 일들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작은 위반이 점점 눈덩이처럼 굴러가며 커지는 이야기의 과정그리고 그 기발함과 트릭으로 보는 승부인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작가다단편이라 복잡한 기술이 들어가지는 않지만하나하나가 꼭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실제로 있었을 것 같은 내용들로 만들어져있다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운전을 그리 즐겨 하지도 않지만우리가 저지르는 작은 위반들이 얼마나 큰 일이 될 수 있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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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나라는 1991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북한과 동시에 유엔 가입을 했다.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조차 되지 않은(못한나라였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그땐 그랬다전쟁으로 모든 게 폐허가 되어버리고군부독재의 힘든 시기를 지났음에도 아무튼 그렇게 정상국가가 되어왔다(물론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북한이 정상국가인지는 여전히 미심쩍지만).


유엔 가입은 국제사회에서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받는다는 걸 의미했고북한과의 체제경쟁에 한참이었던 시기 우리나라는 당연히 이 일에 매진했을 것이다영화는 그 시절 유엔에서 가장 많은 표를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애썼던 우리 외교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 모든 게 갖춰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이야, ‘체제 경쟁을 위해 했던 여러 일들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하지만 한 국가에 있어서 정통성이란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고냉전이 여전히 지속되던 시절 그건 존립을 흔드는 위협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영화는 그 시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었는지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도한 번 진지하게 떠올려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우리 참 힘든 시기를 잘 헤쳐 나왔다이건 당연한 일도자연스러운 결과도 아니니조금쯤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위기.


작중 소말리아에 머물고 있던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반군이 시작한 내전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된다어린 아이의 손에도 들려진 AK-47 소총의 총구는 누구를 향하게 될지 알 수 없었고국제법적으로 다른 나라 땅으로 인정되는 대사관마저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대사관 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탈출을 계획한다.


감독은 이 위기 상황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그려낸다현지 상황은 전혀 모른 채늘 안전한 곳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며 딴지나 걸어대는 훈수꾼들의 생각과 달리실제 상황에선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이 수두룩하기 마련이다감독은 예측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들을 적절하게 나열해서 보는 사람들도 긴장감을 갖게 만든다.


이 위기 상황 속에서 더욱 돋보이는 건역시나 동포애가 아니었나 싶다대사관을 습격당한 북한 외교관들이 중국 대사관에 이어 결국 찾아간 곳이 우리나라 대사관이었다는 거굳이 통역이나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대화가 통한다는 것만 해도 급할 때 매우 큰 메리트인데다국교관계를 수립했느니 안 했느니 하는 의례를 생략하고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대라는 게 드러나는 장면이런 결단이 정부 사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지금보다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훨씬 더 진전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고.





 


반복.


영화 속 비참한 현실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상 수많은 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10년이 넘은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예멘이나 시리아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수는 이미 수백 만 명을 넘겼다가깝게는 최근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탈레반의 보복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는 상황이고.


이 혼란상을 보면서 다양한 감상이 생길 수 있겠지만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떠오른 건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무질서한 상황이 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물론 거의 대부분의 혁명은 피를 흘리기 마련이지만그렇게 흐르는 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감상적인 이상주의에 취해서 혁명이니전복이니 하는 단어들을 가볍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제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가능해야 한다그렇지 못하면 앞서 설명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죽일 테니까하지만 그게 대책 없는 질서 무너뜨리기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현실은 아무렇게나 무너뜨리고 쉽게 다시 조립할 수 있는 레고 블럭이 아니니까.(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보수적으로 되나 보다)


 

간만에 본 잘 만든 영화올해 지금까지 본 30여 편의 영화 중 가장 괜찮았던 작품오락성도 있고생각할 꺼리도 던져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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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반주자를 위한 반창고
안선 외 지음 / 올포워십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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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널리 퍼져있는표준화된 예배 방식에서 찬양을 위한 반주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만약 반주가 없다면 꽤나 예배의 분위기가 밋밋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그러면 예배 반주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해야할 것이다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서이에 대한 이해는 생각보다 부족한 경우가 많다.


     사실 반주자라는 자리가 교회 안에서 그리 눈에 잘 띄는 곳은 아니다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반주가 나오고예배 참여자들의 시선은 스크린 속 가사나손에 든 찬송가에 집중될 뿐이다하지만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그 중요성마저 우리의 생각에서 지우면 안 될 일이다.

 


     이 책은 어렸을 때부터 교회 반주자로 섬겨왔던 다섯 명의 대담자들이 만나 교회 반주자로 일하는 것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걸 엮은 것이다크게 네 가지 주제를 두고 각 주제에 맞춰 이야기를 하지만딱히 제한되는 것 없이 자유롭게 말하는 형식 때문인지 책 전체에 약간 생동감이 느껴진다.


     책은 사례비음향 시스템반주자의 신앙생활교회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들 등의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사례비와 관련해서 교회 음악을 전공했는데도 교회 안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교회가 영세하기 때문이겠지만교회 음악을 전공한 이들이 교회를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이 분야의 발전은 불가능한 게 아닐까더 좋은 기독교 음악을 향유하고 싶다면그에 대한 투자혹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반주자들의 신앙에 관한 고민도 귀담아 들을 부분이다작은 교회의 경우 반주자 한 명이 여러 자리에서 반주를 해야 할 경우들이 생기는데이런 경우 교회 안에서도 제대로 된 멤버십을 누릴 수 없게 되곤 한다책에서는 신앙생활을 꼭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서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좀 엉뚱하게 내용이 흘러가긴 하는데사실 이 문제도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은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지만기독교는 처음부터 한 번도 그렇게 개인적 신앙으로 머문 적이 없었다교회란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들의 모임이고그 안에서 교제를 이루는 것도 매우 중요하니까반주자들이 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의식을 느끼기 어려워진다면그건 큰 문제다.

 


     앞서 이 책이 약간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했었는데사실 이 말은 조금 바꿔보면 약간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라는 뜻도 된다함께 대화하고자 하는 주제의 방향에 대한 이해가 서로 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고특정인들이 대화를 좀 많이 이끌어간다 싶기도 하고대화에 앞서 어떤 설문조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각 챕터의 앞쪽에 그 설문의 내용과 결과를 시각적으로 배치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이 책을 보면서 평소에 제대로 관심을 갖지 못했던 교회 반주자라는 자리를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다면 좋을 듯하다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음악을 담당하는 책임자들은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싶고어디다 제대로 얘기하기 어려웠던 고민을 안고 있던 반주자들교회의 여러 음악 사역자들도 읽어볼 만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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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문화들은 모든 눈물이 씻겨 나갈 다른 세상을 약속하기에 

이 땅에서 삶이 주는 고달픔을 인정할 수 있었다

뒤이어 등장한 인본주의 문화들은 

그보다 한층 믿기 힘든 일을 장담한다

미래에심지어 가까운 미래에 모두가 행복해지리라고 단언한다

진보를 믿는 신념을 토대로 세워진 사회들은 

인생에 담긴 통상적인 불행을 인정할 수 없다.

존 그레이


팀 켈러팀 켈러고통에 답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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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식사에서 시작되었다 - 사회적 실험 그리고 초기 기독교의 정체성
할타우직 지음, 예가교회 엮음, 조익표 외 옮김 / 동연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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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 보면 신약성경 속에는 수많은 식사 자리가 묘사되어 있다당장 복음서 속 예수님만 하더라도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를 하셨고이 과정에서 중요한 교훈들이 여럿 있었다뿐만 아니라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 중 하나인 성찬은 식사를 그 모티브로 하고 있다그러니 이 책의 제목인 기독교는 식사에서 시작되었다는 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주장을 펼친다저자는 아예 초기 기독교의 예배가 식사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이 식사는 의식적 성격을 지닌 헬레니즘 연회의 변형으로그 자체로 특별한 저항과 변혁의 의식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말한다그리고 이런 식사’ 모델이 1-2세기 유일한 예배 형태였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꽤 과감하다.



     사실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면이 많다오늘날 우리가 흔히 예배하면 떠오르는 정교한 예전에 따른 공식적 의식이 초기 기독교 시대에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아마도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종종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과정에서 대화가 오고가며 하나님과 그분의 새로운 통치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을 것 같다.(이 점은 IVP에서 최근에 나온 ‘1세기 교회 시리즈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에 관한 한 가지 대안은 회당 모델이다유대인들은 포로기 이후 오랫동안 회당을 중심으로 한 예배 전통을 유지해 왔고초기 기독교회도 이를 차용해서 예배를 진행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저자도 책에서 이를 언급하지만회당을 가리키는 시나고게가 폭넓은 회집을 가리키는 용어였다면서 이 모델을 탈락시키려고 한다그러나 이 단어가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과 초기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예배 형태를 회당예배에서 가져왔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저자의 판단은 조금 성급해 보인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식사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상당부분 공감이 되면서도그것이 유일한’ 모델이었다는 데까지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무엇보다 당시 예배의 유일한 형태가 식사였다면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문헌들예컨대 1세기 속사도들이나 교부들의 편지혹은 디다케나 헤르마스의 목자’ 같은 당대의 유명한 글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주장은 성경 속 여러 에피소드가 식사라는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데 근거한다하지만 이는 저자가 말한 대로당시 식사가 폭넓은 인적 교류의 자리였기 때문에그 자리에서 기록될 만한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났기에 일어난 결과이지는 않을까그렇다면 이 식사모델이 과대대표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이 책에서 살펴본 당시 식사모델이 가지고 있는 의식적 성격그리고 비스듬히 기대어 눕는 것부터 시작해연회의 여러 순서들과 이에 대한 기독교적 변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은 기억해 둘만한 부분이다.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책의 번역 수준에 관한 것이다예컨대 책 초반에 이런 문장들이 있다. “그러한 구두의 연습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를 물을 때증거들이 암시하는 것은 거의 유일하다”, “여기서는 참고문헌을 알려주는 각주가 있는 짧은 요약에서 두 주제의 상호관계에 대한 일부 제안을 잇는 정도로 만족할 것이다”.


     네 명의 번역자가 번역을 나눠서 진행했기에 부분에 따라 어느 정도 번역의 질 차이는 나지만사실 책 전체가 이런 문장들로 가득하다원 저자가 문장을 복잡하게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이런 문장으로 400페이지가 채워져 있는 책을 읽는 건 좀처럼 머리가 아픈 일이다.


     또이미 언급된 주장이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면서독자를 지루하게 만든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마치 논문처럼 주장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모두 싣기도 했지만대중들에게 읽히고자 한다면 나라면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이 책의 절반 정도의 양이 되는 책을 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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