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환상 -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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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인 캘리니코스는 2008년 발생했던 러시아-그루지야 전쟁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비롯된 금융위기를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위기에 몰리기 시작한 증거라고 진단한다. 나토를 토대로 러시아를 둘러싼 국가들을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으로 바꾸려고 했던 시도는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루지야에 서방국 중 어느 한 나라도 도움을 주지 못함으로써 실패했음이 드러났고, 이는 곧 미국의 힘이 이전과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또,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의 연쇄부도로 인한 경제위기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가 절대선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런 조짐들과 더불어 여러 통계 자료들을 제시하며, 단지 미국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방식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신자유주의) 자체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시장에 무한대의 자유를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는 낭만적 기대는 거짓이었고, (이미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듯이) 국가적 차원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저자는 곧 단지 체제 안에서의 정권과 정책의 교체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며, 시민과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된 새로운 체제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2. 감상평 。。。。。。。

 

     러시아-그루지야 전쟁과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엮어내는 저자의 솜씨에 우선 감탄했다. 두 사건이 미국과 미국이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생긴 균열의 증거라고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책을 읽으며 예전에 봤던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패권국가는 자신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점차 많은 비용을 쏟게 되고 결국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책. 폴 케네디가 말한 ‘패권 국가’를 이 책의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로 대치시켜도 유사한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인류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하며 완전무결한 제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조처럼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전 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일종의 사상개조의 강요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자본주의를 택하지 않은 나라는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르기라도 한 것과 같은 시선을 보내는 것. 생물계에는 다양성이 사라져버리면 단 하나의 바이러스에 의해서도 멸종과 같은 엄청난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도 충분히 치유되지 못한 지난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는 어쩌면 이 진리가 단지 생물계만이 아니라 사상계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하지만 현실에 대한 이런 날카로운 비평에 이어지는 대안 제시는 좀 아쉽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답게 노동자와 시민이 주축이 된 사회제도를 제시하기는 하나 충분치는 못하다. 그래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던 폭력에 의한 혁명의 정당화가 아닌 민주적 합의에 의한 체제의 변혁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좀 현실적인 느낌이랄까.

     인간이 만든 모든 사회제도와 사상은 한계를 지니기 마련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을 위해 만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희생되는 모순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그리고 여기에 그 체제가 애초부터 문제가 많은 것이었다면 더욱 큰 피해를 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더 많은 것을 감추고, 더 많은 부분을 숨겨야 할 테니까. 모두가 정신없이 앞으로만 달려가야 한다고 말하는 지금, 과연 이 길이 맞는 길인가 따져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나 이 책은 신자유주의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론적 근거를 더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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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은 마치 거미줄처럼 작동했다.

거미의 분별력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 - 이를테면 바람 같은 것 -은

그냥 뚫고 지나가도록 두지만,

붙잡힌 파리들은 잡아먹을 필요가 있을 때까지

그냥 거미줄에 매달려 있도록 둔다.

 

- 『꿈 꾸는 책들의 도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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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to church doesn't make
you a Christian any more
than going to the garage
makes you a car.



- Laurence J. Peter


 

차고에 간다고 차가 되는 것이 아니듯

교회에 다닌다고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로렌스 J. 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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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국민이 정부를 감독할 때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20여년 동안의 군부 독재정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하다

지난 토요일 연금해제가 된 한 여성의 생각이

수백 km가 떨어진 이 나라의 정치상황에 울림을 주는 이유는..?

'국민의 감시를 받는 정부'는 커녕

'국민을 감시하는 정부를' 이룩한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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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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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네 개의 출판사가 모여 전태일을 추모한다. 이 추모는 단순히 그의 일생과 그가 했던 일의 의미를 반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그런 작업은 이미 『전태일 평전』을 통해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되어 있지 않은가). 대신 네 개의 출판사들은 각각 그 느낌도, 조명하는 방식도 다른 네 개의 개성 있는 조각을 가져와 하나의 조각보로 만들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갖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며 의미를 찾아내고도 있고,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을 하기도 하고, 이 시대 노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백과사전식으로 정의하기도 하며, 심지어 만화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2. 감상평 。。。。。。。

 

     전태일 평전을 처음 읽은 것은 고3 때 수능을 치르고 난 뒤 얻은 한 달의 여유시간 동안이었다. 당시 다니고 있던 학원 선생님이 빌려준 몇 권의 책 속에 그 책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읽었던 세 권의 책이 지금까지도 내 주요 관심사로 남아 있다 (나머지 두 권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이었다). 그 땐 아직 노동이니 인권이니 하는 주제에 대해 눈을 뜨기 이전이었기에, 책을 읽으면서도 무엇인가 부당한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 정도만 받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시간이 지나며 머리가 커지면서 이 딱히 영웅적 풍모도 보이지 않는 젊은이가 한 일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일부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그가 한 일의 의미를 확대, 재생산 해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저 그가 한 일을 되뇌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과거가 의미가 있는 것은 그 과거의 사건이 오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접근 방식은 나름 의미가 있다. 네 개의 출판사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이 시대에 있어서 노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전태일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고 반향을 일으켜야 하는 지를 흥미롭게 적어내고 있다. 내용은 어렵지 않게 만들려고 한 노력이 엿보일 정도로 쉽고 흥미롭게 읽어나갈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는 데 우선 책 전체가 유기적으로 잘 엮였다기 보다는 의식적으로 엮어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예쁘지 않다는 말이다. 주제나 내용의 연속성보다는 각각의 부분들의 독립성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한 권의 책의 네 부분 보단 네 권의 짧은 소책자를 하나로 붙여놓은 듯하다. 여기에 각각의 부분마다 않고 있는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지나치게 미화하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그가 한 모든 일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두 번째 만화는 주제의식이 부족해 보이고(마지막 등장하는 결론이 좀 뜬금없다), 세 번째 토론은 그저 한풀이 같다는 느낌(그 내용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이 든다. 그나마 네 번째 글이 가장 안정적인 느낌인데 좀 건조하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방향에는 십분 공감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시도를 한 네 출판사의 아이디어도 좋다. 현실의 부조리에 눈을 감지 않는 생각 있는 젊은이들에게 권해줘도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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