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가까운 미래.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새로운 화학물질은 CW-7을 대량으로 살포한다. 그러나 그 결과 지구의 온도는 지나치게 떨어져버렸고, 전 지구적인 빙하기가 다시 도래해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 와중에 오직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 안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만이 유일한 생존자들이다.


     전 세계에 걸친 철로를 일 년에 정확히 한 바퀴 씩 도는 열차. 열사의 꼬리칸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팥양갱 모양의 단백질 블록만 던져주고 그들을 사육하는 앞 칸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고, 커티스를 중심으로 ‘거룩한 엔진’을 돌리고 있다는 ‘위대한 윌포드’를 만나기 위해 쳐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로부터 듣게 되는 열차 폭동의 비밀.





2. 감상평 。      


     인위적인 기상조작으로 인한 빙하기의 도래, 그래서 사람들을 열차 하나에 온전히 몰아넣을 수 있는 설정이 빠르게 진행된다. 열차라는 게 한 칸, 한 칸 자체가 그리 크지도 않고, 또 오직 차량들이 일렬로만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를 통과하지 않고는 다른 하나로 넘어갈 수 없다는 공간적 제약을 준다. 영화로 담아내기에는 어려운 면도 있지만, 또 그런 공간적 특성이 한 칸 한 칸을 지날 때마다 변주를 줄 수 있어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리는 듯한 느낌도 줄 수 있다.(일종의 횡스크롤 게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감독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한 칸, 한 칸 앞으로 갈 때마다 새로운 분위기와 적들을 등장시켜 주인공 일행을 괴롭힌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액션, 그리고 앞으로 한 칸 씩 나가고 있는 작은 성취감 등이 계속 주어지면서 지루함을 줄여준다. 무엇보다 주인공 일행은 빠르게 앞 칸으로 나가고 있으니까.




     영화에서 주인공이 그를 막으려는 이들과 싸우는 장면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묘사된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주인공의 동작은 느리게 처리하면서 지극히 평온한 음악까지 깔아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이건 뭐 폭력에서 미학을 찾아내겠다는 건지. 액션 영화가 그런 면이 좀 있긴 하지만, 사람 죽어나가는 걸 보며 쾌감을 느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영화 속 열차의 세계는 철저한 계급제 사회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자리가 있다고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윌포드와 그의 하수인들의 인식은 중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히 이를 보는 관객들도 이 불합리한 논리에 대항해 주인공들의 싸움에 동조하며 몰입하지만, 실은 계급이 단지 과거의 유물만이 아니라 21세기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골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거기에 대항해서는 영화처럼 분명한 반대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어쩌면 일종의 대리만족인데, 실제 세계에선 그렇게 해결책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떻게든 앞으로만 나가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는 열차 안으로 고정된 세계가 이야기하기에는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15세 관람가인 영화를 아무리 봐도 9살 이상은 안 돼 보이는 애들까지 데려와서 보고 있는 아줌마는 도대체 무슨 정신이었던 걸까. 아무리 애들이 방학이라고 집에만 있기에 답답하더라도, 좀 생각은 하고 영화를 고르시는 게.. 롯데 시네마는 이런 거 신경 안 쓰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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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민영화를 종교처럼 신봉한다.

'어떤 일이든 민간기업이 정부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떠들어댄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기업은 기본적으로 직원에게 임금을, 주주에게 배당금을,

CEO에게 엄청난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여기에 광고와 마케팅 비용이 들고

전용 비행기와 호화 사무실 유지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이에 비해 정부는 소속 공무원에게 월급만 지급하면 된다.


보수는 이런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기업이 정부에 비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데도 틈만 나면 민영화라는 주문을 왼다.


톰 하트만, 『중산층은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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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 이즈 굿
올 파커 감독, 다코타 패닝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백혈병으로 하루하루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져가고 있는 테사.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실행에 옮겨 보지만, 어디 섹스 하고 물건 훔친다고 해서 그 마음이 온전히 풀릴 수 있을까. 성격이 또 아예 엇나가지는 못하는 지라 잠시 일탈을 시도하다가도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준수한 청년 아담을 만나게 된 테사. 두 사람은 곧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얼마 남지 않은 남들을 함께 보내기 시작한다.

 

 

 

 

2. 감상평    

 

     불치의 병에 걸린 여주인공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새로운 구도는 분명 아니다. 대학 다닐 때 봤던 10년 전 영화 ‘워크 투 리멤버’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물론 인물들의 성격에는 약간 변화가 있다. 여주인공은 좀 더 자주 짜증을 내기도 하고, 주인공의 부모들은 좀 덜 보수적으로 변했다.(사실 두 사람은 별거/이혼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불치의 병이 가미된 로맨스라는 큰 구도는 변화가 없이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가족이라는 요소다.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그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주변 이야기로 물러서는 게 아니라, 가족은 끝까지 여주인공을 감싸주고 안아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가족을 중요시하는 미국적 정서가 좀 더 강하게 묻어나온다고나 할까.

 

 

 

     여주인공인 다코타 패닝은 어느새 이렇게 커버렸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고, 멋진 자연의 풍경은 영화의 분위기를 좀 더 인상적으로 만든다. 역시 사랑 이야기엔 이런 멋진 해변과 자연이 필수적인 건가.

 

     결국 삶을 얼마 남기지 않고 가장 생각나는 것은 ‘사랑’이었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 즉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런데 주인공보다 몇 년을 더 살뿐인 우리들은 이 중요한 걸 놓친 채 엉뚱한 것들을 손에 넣으려 애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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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분을 종착지가 아닌 길로 본다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고 다가간다면,

그분께 전혀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 C. S. 루이스, 『헤아려 본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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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안식일 그리고 주일 -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양용의 지음 / 이레서원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저자는 구약성경과 신구약 중간기 문서들 등을 통해 안식일의 개념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살핀 후, 마태복음에 실린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를 추적한다.

 

     처음 규정상으로는 단지 쉬는 날이었던 안식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예배와 관련된 특별한 날로 그 성격이 변해가고, 또한 그 날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규정들이 더해지면서 일종의 율법적 짐이 되어버렸음을 밝힌다. 그리고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그 날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보여주셨고, 제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예수님의 이해에 근거해 더 이상 안식일의 다양한 규정들을 준수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흘러 중세에 이르면서 ‘주일’에 안식일의 개념이 더해지는, 일종의 변형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잠시 교정되기도 했던 이런 경향은 다시 청교도시대를 거치면서 주일에 관한 안식일적 엄숙주의로 변해버렸다.

 

     한국 교회의 주류인 보수적인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런 경향을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예수님의 안식일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주일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용에 관한 제안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한주일의 일곱 번째 날인 안식일을 준수해왔다. 오늘날에도 안식교와 그 뿌리에서 뻗어 나온 다양한 이단들은 안식일 준수를 신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규범으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기념하며 지키지 않고, 일요일을 예배일로 삼고 있다. 과연 어디서부터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일까? 나아가 어떤 이해가 성경적인 바른 이해일까?

 

     저자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이 책에서, 앞선 주제에 관한 성경적, 그리고 문헌적 연구를 시도한다. 이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저자는 예수님의 안식일 이해는 이전의 어떤 설명과도 다른 새로운 것 - 예수님이 곧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그분은 사람들이 만든 규례에 구속되지 않으시며, 나아가 안식일의 제정 목적은 그분 안에서 성취되었다 -이었음을 밝혀낸다. 안식일 규정에 관한 비문법적, 비문학적, 비역사적 해석을 바탕으로 특정한 교리적 설명에 구원이 달려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좋은 대답이다.

 

     학위 논문이다 보니 전문적인 용어도 자주 등장하고 해서 비전공자들이 읽기에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맥을 제대로 집으며 본다면 꽤 도움이 될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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