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백혈병이 걸린 아들 규완과 함께 살고 있는 주연(오정세). 규완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썬더맨’을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의 영웅으로 알고 있는 여덟 살짜리 소년이다. 어느 날 방송국 사정으로 ‘썬더맨’이 갑자기 종영되고, 규완은 크게 낙심하고 만다. 아들을 위해 직접 썬더맨이 되기로 결심한 주연. 처음에는 어설픈 연기로 시작했지만, 썬더맨 촬영팀에 의해 절도 현장에서 잡혀 교도소에 다녀온 영탁(박철민)이 출소를 하면서 이야기는 좀 더 꼬이기 시작한다. 평범한 일상과 판타지가 뒤섞인 영화.

 

 

 

2. 감상평    

 

     일단 영화의 기본 틀만 보면 병 든 아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는 아버지라는 구도가 나온다. 뭐 기본은 할 수 있는 설정. 그런데 감독은 여기에 좀 더 상상력을 가미하려고 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텔레비전 속 영웅이 되는 아버지. 그런데 그 아버지가 실제로 영웅이 되어버린다. 어느 순간 개연성이라는 고리는 떨어져 나가 버렸고, 그 때부터는 억지 웃음을 유발하려는 과장된 몸짓과 설정들만 난무하기에 이른다.

 

     영화가 처음부터 완전한 코미디로 가기로 했었더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는데, 이 영화는 휴먼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어디에서 함께 공감하고 울어야 할지, 또 얼마나 웃어야 할지 난감해지고 만다. 요컨대 영화의 장르가 주는 신호와 실제 감독의 진행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유턴을 하는 격이랄까. 당연히 그 차를 따라가고 있는 뒷 차들은 짜증이 날 수밖에.

 

 

     영화 속 박철민의 존재는, 밋밋한 스토리에 전환부를 제공하고,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내는 나름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그 캐릭터 자체가 지니고 있는 황당한 설정은 전혀 설명이 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오히려 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감독이 제대로 된 에피소드들을 구상해내지 못한 탓이다.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던 영화는 이렇게 B급 코미디를 섞은 정체불명의 어이없는 영화로 전락했다. 배우들의 수고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영화. 관객들과의 소통보다는 감독 자신의 생각만 강요했던 게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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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생각 - 지성과 지혜의 아이콘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세계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김세영.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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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요약     

 

     물리학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그 이름, 아인슈타인. 이 책은 그가 생전에 각종 행사에서 한 연설문들, 신문이나 잡지 등에 발표한 기고문 등을 과학, 종교, 유대인, 평화, 개인, 학문, 경제와 같은 항목에 따라 분류해 실었다. 겨우 몇 줄에 해당하는 짧은 글부터 몇 페이지에 달하는 조금은 긴 글들까지 다양한 분량의 글들이 있지만 대체로 한 번에 읽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의 짧은 분량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리학 주제를 다루고 있는 1부를 넘어가면, 이 책의 제목처럼 말 그대로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을 접할 수 있다.

 

 

2. 감상평   

 

     아인슈타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가진 짧은 지식으로 그에 관해 전체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게 좀 우습기도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관한 그의 생각들을 접할 수 있었으니 짤막하게 드는 생각 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그는 인류의 ‘선의(善意)’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휴머니스트였다. 물리학이라는 조금은 딱딱한 학문을 연구하면서도, 인간성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활동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시대적 한계에 매여 있었던 인물이다. 그의 전공 영역에서는 단숨에 이를 초월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 외의 분야에 있어서는 당대의 사상 그 이상을 볼 수 있는 예언자는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계몽주의적 사상은 모든 것을 인간 이성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설명해 낼 수 있다는 낭만적 견해를 보인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인간 이성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간직하고 있는 모습은 조금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

 

     계획경제에 대한 신봉이나 세계정부에 의한 전쟁 억지에 대한 기대 같은 부분은 좀 당황스럽다. 초국가적 기구가 모든 무기를 통제해야만 인류는 전멸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199)은, 그 기구를 어떤 성향의 인물이 선출되어 통제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데도, (선거가 늘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요새 자주 보지 않던가) 이에 대한 생각의 발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주의나 계획경제의 이상이 어떤 식으로 독재자들에 의해 변질되었는지를 그가 보았다면, 이 일견 전체주의적으로 보이는 발상을 수정했을까? 요컨대 이상적으로는 계획경제 만한 게 없겠지만, 그것을 제대로 구현해 내는 것은 어쩌면 인류의 능력 밖의 일일지도 모른다.

 

     또, 아인슈타인은 여러 연설에서 ‘도덕적 가치’ 강조하고 있지만, 그 근원, 혹은 기초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더하지 못한다. 우주의 신비로움 자체를 통해 범신론적 경외감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종교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도덕이라는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절대적인 근원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총평을 하자면, 한 분야의 우수한 인물이 다른 분야에까지 늘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번역이나 편집은 대체로 괜찮다. 다만 그다지 깊은 통찰이 담겨 있지 않은, 또 앞서 나온 내용들과 비슷한 문장들이 반복되는 글들까지도 여럿 집어 넣은 게 아쉽다. 어느 정도 페이지를 맞추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늘어지는 느낌이랄까.

 

 

※ 83페이지 네 번째 줄은 줄바꿈이 잘못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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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중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여왕이었던 측천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천재적인 수사관 적인걸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측천은 자신에 반대하는 신하들의 상소를 무마시키기 위해 적국인 부여국(?)과의 전쟁을 개시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파견된 함대는 바다괴물에 의해 궤멸되고 말았고, 민심은 더욱 흉흉해진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측천은 대리사의 위지진금에게 사건을 열흘 내에 조사해 진상을 밝히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제 막 지방에서 올라와 대리사의 일원이 된 적인걸도 우연찮게 사건해결에 말려들어가게 된다.

 

 

 

2. 감상평   

 

     일단 기본은 동양을 배경으로 한 셜록 홈즈 같은 느낌이다. 근데 여기에 좀 과장된 판타지적 요소들 - 거대한 바다괴수라든지 먹으면 괴물로 변하는 기생충 같은 -까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추리라는 건 어느 정도 사실성 있는 현실을 배경으로 할 때 가능한 장르인데, 어느 순간 이야기가 판타지로 넘어가면서 주인공 특유의 예리한 관찰과 분석은 그냥 소품으로 전락해버린 듯한 느낌이다. 일단 뭐 칼 들고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등장하니...

 

     여기에 극 전체적으로 두 개의 에피소드 - 바다괴물과 괴물로 변하는 공자 - 모두 당 왕실을 전복시키려는 음모의 일환이라는데, 그 둘이 적절하게 융합되지는 못한 것 같다. 거대한 바다괴물로 당의 수군을 몰살시킬 수 있다면, 육지괴물로 육군까지 물리치지 못할 건 또 뭐고, 갑자기 왕실에서 마시는 차를 통해 기생충에 감염시킨다는 계략을 세운 건 또 뭔지. 후자 쪽의 계획을 추진할 거라면 차라리 아무도 위협을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진행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1편을 보지 못했던 터라, 전편의 적인걸 역의 유덕화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우정의 적인걸도 충분히 매력적인 역할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김범도 출연했다고 하던데 영화가 끝나고 난 뒤까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괴수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어..;; 딱히 비중이 있는 역할도 아니었으니.. 영화 홍보 차원에서 끼워 넣은 건가 싶기도.

 

     그래도 영화는 재미있는 편. 종반부에 좀 늘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보이지만, (한 20분 정도는 잘라내도 좋지 않았을까) 골치 아픈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그냥 즐길만한 영화 정도는 충분히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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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가까운 미래의 일본. 정부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 아래 전 민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등록에 나선다. 이름 하여 플래티나 데이터 프로젝트. 그러나 몇 건의 연쇄살인 사건에서 나온 유전자 정보는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이의 것이었고, 이는 플래티나 데이터 프로젝트를 현장에서 지휘하던 류헤이나, 이를 수사하는 경시청 소속의 아사마 형사 모두에게 난간한 문제였다.

 

     어느 날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핵심 인력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유전자 자료는 류헤이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뭔가 음모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류헤이는 도망을 치기 시작하고, 이를 쫓던 아사마 역시 사건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전 국민의 유전정보를 등록해 놓겠다는 건 역시 단지 범죄해결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고위층과 그 가족들의 유전자를 경찰의 데이터에서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완전한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었고, 마침내 음모는 밝혀진다.

 

 

 

 

2. 감상평   

 

     줄거리만 써 놓고 보니 상당히 평범한 범죄 스릴러물이다. 그런데 오히려 영화는 좀 다른 곳 - 유전자가 인간을 결정하는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가 그것이다 -에 힘을 주고 있다. 영화 초반부 내내 겉멋에 찌든 류헤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사를 하는 아사마 형사를 비웃으며, 자신이 가져온 유전자 분석 수사기법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이른바 유전자는 그 인간의 모든 것이라는 식의. 물론 류헤이가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이런 허세는 더 이상 부릴 수 없게 되지만, 영화 후반부 그의 어머니이자 감춰진 음모의 배후 중 하나인 미나 박사의 입으로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이중인격을 가지고 있는 류헤이(류)와 그의 또 다른 인격인 가쿠라의 전혀 다른 성격은 이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한 몸의 두 인격이라는 설정이니까. 또, 결국 유전자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미나 박사는 유전정보만 남는다면 그 생명은 어찌되던 상관없다는 식의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기계적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와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에 대한 적대적인 느낌을 갖도록 만든다.

 

 

 

 

     영화 자체의 주제가 좀 흩어져 있다. 전 국민의 유전 정보를 모아 범죄해결에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빅 데이터의 문제를 지적하는 쪽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 유전 정보가 인간의 모든 것이라는 반복적인 주장은 좀 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실존적인 물음을 던지는 건데, 서로 다른 이 두 가지가 어설프게 뭉그러져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지나치게 판을 크게 벌였다가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아마추어 예술가를 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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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김선일 옮김 / IVP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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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지난 한두 세기 동안 기독교, 그 중에서도 소위 ‘복음주의’라고 불리는 그룹은 교회 안팎의 다양한 비난과 도전에 직면해 왔었다. 밖으로는 근대의 계몽주의로부터 ‘비이성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고, 안으로는 그런 비난을 일찍 수용해 보다 ‘현실성 있는’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낸 이들로부터 고루하다는 조롱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마침내 시대가 변했다. 이 책의 저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 이전 시대 각종 비난과 조롱에 시달려왔던 복음주의가 이젠 자신 있게 자신의 학문적 위치와 자격에 대해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전 시대를 풍미하던 계몽주의가 당연하듯 전제하던 이성의 절대성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었고, 거기에 기대 복음주의를 공격하던 자유주의 신학이 생각만큼 튼튼한 기초를 가지고 있거나 내적, 외적 논리적 정합성을 유지하고 있지도 못하고 있음마저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기 두 개의 장은 복음주의의 특징 -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강조하고 성경의 신적 권위를 인정한다는 -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고, 나머지 세 개의 장은 후기 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종교 다원주의들과의 관계 속에서 복음주의의 자리를 어떻게 정립할 수 있을지에 관해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2. 감상평    

 

     책의 원제목이 인상적이다. ‘진리를 위한 열정(A Passion for Truth)’. 부제는 the intellectual coherence of evangelicalism이다. ‘복음주의의 지적인 일관성’ 정도가 될까. 복음주의권에서 제법 알려져 있는 저자는, 기존의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을 향한 도전에 대해 취해오던 일반적인 자세들 - 보다 ‘영적인 일들’로의 회피나, 상대가 전개하는 논리를 따라가며 수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은 -을 떨쳐버리고, 좀 더 당당하게 공적인 영역에서 그들이 가진 보화를 자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런 자신감은 책 전체를 통해서 전해진다.

 

     책의 부제는 이 책이 복음주의에 속한 기독교인들의 삶에 ‘일관성’을 부여해주는 데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내용임을 보여준다. 솔직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 밖에서는 자신들이 믿는 바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게 사실인 상황에서, 특히 지적인 측면에서 교회 안과 밖의 간격을 메울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의의를 가진다고 하겠다. 적어도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이 믿는 것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책의 내용이 결코 쉽지는 않다. 적어도 현대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저자가 말하거나 암시하는 내용의 절반은 손에 잡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미주만 해도 대부분이 참고문헌 일만큼 책은 광범위한 주제를 제법 깊게 다루고 있다. 자연스럽게 저자가 사용하는 방식을 그대로 실제의 변론에 적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인 복음주의의 경쟁자(혹은 적들)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가 그다지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과 복음주의만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무례하거나 독단적인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잘 붙잡는다면 그것으로도 일단 큰 유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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