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만일 ‘신의 죽음’이 있었다면,

과연 ‘어느 신이 죽었는가?’하고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서양 유신론의 신,

곧 여러 가지 존재 증명으로 입증된 그 뛰어난 존재인 것 같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가 믿지 않기로 작정한 이 신은 17세기의 산물이다.

더군다나 이 유신론의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과 너무 동일시되어 온 나머지,

많은 사람은 전자를 버리는 것과 후자를 버리는 것을 동의어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 케네스 리치, 『하나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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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12-0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락과 배경은 무시하고 결론만 따다가 신은 죽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니체의 저작은 다 읽었습니까? 하나님 체험이라 한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노란가방 2013-12-02 19:01   좋아요 0 | URL
괜찮은 책이었어요. ^^
 
엽문4: 종극일전
구예도 감독, 황추생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불산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영춘권의 대가 엽문. 정식으로 도장을 차리기를 마다한 그였지만, 모여든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까지 물리친 것은 아니었다. 평생을 무도의 길을 가며 옳은 일에 무술을 사용하려 했던 그의 주변에 자주 다툼이 생기곤 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던 20세기 중반 국제도시 홍콩을 배경으로 엽문과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그의 제자들, 주변인물들이 벌이는 여러 에피소드들.

 

     영화는 만년의 엽문을 아들의 회고 형식으로 잔잔하게 그리는 영화.

 

 

 

2. 감상평    

 

     엽문이라는 인물을 다룬 영화가 참 자주 만들어진다. 그만큼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사람이었던 걸까? 이 영화 자체도 엽문의 네 번째 이야기라는 걸 제목부터 보여주고 있고, 얼마 전 압구정 CGV에서 봤던 ‘일대종사’라는 영화도 엽문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다.

 

     그 많은 엽문의 이야기 중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이라면 역시 ‘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 엽문 시리즈의 전편에는 견자단이 연기하는 좀 더 젊은 엽문의 이야기였다면, 또 일대종사에서는 양조위가 주연한 중년의 엽문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보다 더 늦은 시기의 엽문을 황추생이 연기한다. 확실히 같은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연령대에 따라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 이 작품에선 늘 한 발 뒤에서 좀처럼 나서지 않는, (물론 필요할 때는 주저하지 않지만)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노신사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제야 이소룡의 스승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이랄까.

 

 

 

     1900년대 중반의 홍콩이라는 도시는 뭔가 짠한 느낌이 든다. 영국의 조차지가 된 그곳에서의 중국인들의 삶은 마치 식민지 시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지나치게 과장된 세계관이나 얼토당토않은 엄청난 무게를 부여하는 (예컨대 민족을 위해 1:1 싸움을 한다는 식의) 대결 따위는 없다. 어쩌면 그냥 시장판의 소동을 진정시키고, 투덕거리는 수준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나름 한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왔던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년의 한 모습이 아닐까.

 

     무술영화 특유의 적당한 대결신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스토리가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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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언젠가 자신의 운명의 남자가 나타날 것이라며 기다리는 수진(홍수아)과는 달리, 육감적인 몸매로 적극적인 대시를 하는 지영(한수아)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둘도 없는 친구사이다. 어느 날 우연히 당첨된 필리핀 세부 여행권을 가지고 한국을 떠난 두 사람. 실수로 가방을 놓고 와 공항에서 방황하던 중 태훈(서지석)을 만나 가까스로 세부에 도착하지만, 잘 생긴 2인조 사기꾼들에게 걸려 남은 카드와 비상금마저 털려버린 그들. 가까스로 다시 태훈을 찾아가게 되고, 그를 유혹하기 위한 한 판 승부(?)를 벌이는가 싶었지만 의외로 결판은 싱겁게 나 버리고..

 

 

 

 

2. 감상평   

 

     영화 제목은 왜 ‘연애의 기술’일까. 영화 속 어디에도 연애를 가르쳐 주는 내용 같은 건 없다. 그냥 우연히 얼굴 잘 생기고, 돈 많고, 성격까지 좋은 남자를 만난, 또 예쁘장한 여자의 이야기일 뿐. 딱 영화처럼 우연이 연속되고, 딱히 기술 같은 거 없이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끌려버리고 마는데 말이다. 그냥 처음 제목이었던 ‘망고 트리’ 쪽이 좀 더 나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이 허접한 제목은 제작자 쪽에서 낸 건가.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듯한데, 딱히 특별함을 찾아 볼 수 없다. 등장인물들도 그렇고, (특히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문제는.. 서지석은 이렇게까지 연기를 못하나 싶었고, 홍수아도 이제 일정 수준에는 올라야 하는 연차인데.. 한수아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스토리도 산만하기 그지없다. 필리핀 관광청의 지원을 받아서 만들어졌나 싶을 정도로 뜬금없이 등장하는 관광장면들은 또 뭐고..

 

 

  

     전역 하고 반 년 정도 머물렀던 필리핀의 풍경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던 점을 빼면,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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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사회학자라면 민심이 신성하다거나 특별히 현명하고

고결한 사상을 대변한다고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민심은 국민의 생각을 표현하며,

국민의 생각은 국민이 신뢰하는 지도자와

여론 조작에 능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

 

- 에드워드 버네이스, 『프로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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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11-3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도 사놓고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책입니다. 요즘 다른 책에 꽂여서 말이죠. 요즘 같은 시대에는 꼭 읽어야할 책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사족이지만 헝거게임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노란가방 2013-11-30 23:19   좋아요 0 | URL
책이 처음 나왔을 땐 확실히 센세이션을 일으켰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근데 요새는 이 정도 내용은 거의 다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헝거게임 영화죠?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1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3
노암 촘스키 지음, 이종인 옮김, 장봉군 그림 / 시대의창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미국의 반정부운동가 노암 촘스키가 다양한 강연에서 청중들과 했던 대화들을 책으로 엮었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된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데, 여기에서는 미국의 추악한 제국주의화 과정과 이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주류 언론의 야비함을 주로 다루고 있다.



2. 감상평   


     20세기 들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가장 광범위한 테러를 지원하며, 나아가 독재자들의 주요 자금과 무기 공급책을 맡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나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다.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라는 명목 아래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과 파괴, 그리고 수탈이 자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이 정의의 편인 양 행세한다. 결국 그들은 막강한 군사적, 경제적 우위를 가지고 세계를 종속시키는 탐욕스러운 국가에 다름 아니었다. 비밀 지정 해제가 된 여러 정부문서들을 토대로 한 촘스기의 날카로운 지적은 미국 정부의 이중성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이런 태도의 배후에는 막대한 부를 가지고 권력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항구적으로 독점하려는 기업들, 소수의 특권층들이 있었다. 주류 언론들은 자체적인 검열을 통해 이런 특권층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기사를 만들어냄으로써, 민주주의로 위장된 전제적 국가 형성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미국의 상황을 열심히 베껴서 적용하려고 발버둥치는 무리들이 있다는 점이다. 언론을 장악하고, 기업활동을 최우선으로 지원하기 위해 온갖 규제를 철폐하고, 법인세을 낮추는 대신 일반 국민들과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율과 각종 요금은 올리는 전형적인 정책들은 지난 몇 년간 당연하다는 듯 추진되었고, 이에 반대하면 당장에 온갖 채널(여기에는 공식적인 정부발표보다는 수준 이하의 여당 관계자들과 각종 어용단체들, 그리고 쓰레기 언론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들을 동원해 빨갱이, 종북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게 일상화되었다.

 

     모든 것이 명백히 소수의 특권 귀족들을 위한 중세적 체제로 전환되고 있음에도, 형식상의 투표용지를 하나 손에 쥐었다고 자기들이 대단한 양 착각하는 시민들은 그마저도 정확히 자신들을 노예화 시키는 집단에게 투표하고 있으니.. 저자의 말마따나 매일같이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다.

 

 

     저자의 분석은 대체로 날카롭다. 하지만 동양 쪽의 상황은 일반적인 서양인들의 나이브한 이해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이를 테면, 일본의 식민지배가 유럽의 식민지배와는 달리 한국이나 대만 등을 발전시켰다는?), 사회학적인 문제 이외의 종교와 같은 영적 차원에 관한 인식도 계몽주의시대 이후의 근대인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저자의 날카로움은 종종 같은 편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도 베지는 않을까 싶은 우려도 좀.. 뭐 그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신민(臣民)이 아닌 시민(市民)으로 살고 싶다면 확실히 노력이 필요하다. 그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듯이, 거저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자유와 업적과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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