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한 밤 중 검은 옷을 입고 차도로 뛰어들려고 하는 40대 여자를 보고 서둘러 달려가 말리는 남자. 밤새 달려 양배추를 배달하다 잠시 편의점에 들렀던 참이었고, 여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에게 차에 태워줄 것을 요청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장난 섞인 거짓말인지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여자였지만, 잠시 동안의 동행은 왠지 모를 동질감 같은 걸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여자의 이름은 토코.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녀는 오래된 극장에 간다. 극장 주인인 키쿠치와는 예전에 함께 일하기도 했던 사이. 영화가 끝난 후 두 사람은 극장 로비에 앉아 잃어버린 꿈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토코의 세 번째 행선지는 동물원. 대학 입시에 여러 번 떨어지고 동물원 매표소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야스코는 자신이 운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토코와의 우연한 만남은 그녀로 하여금 뭔가를 시작해 볼 수 있는 힘을 준다.

 

     거대하고 번잡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한없는 외로움과 팍팍함을 주기도 하는 도시 안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오아시스 같은 아줌마 토코의 활약(?).

 

 

 

 

2. 감상평   

 

     우연찮게 마음이 참 헛헛할 때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 속 토코와 만났던 사람들처럼 큰 위로를 얻거나 하지는 못했다. 다만 거대한 도시 속에서 길을 잃은 ‘도시 미아’들의 심정을 좀 더듬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 정도..

 

     서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자리에 앉아 같은 것을 바라보고 함께 이야기를 하다보면 조금쯤은 아는 사람이 되는 거고, 그렇게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위로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느냐는 메시지 자체야 크게 나쁠 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좀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보여서 잘 와 닿지는 않는다는 거.

 

 

 

     세 개의 에피소드는 토코라는 인물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빼면 표면적으로는 서로 별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속된 세 편의 에피소드들에 나오는 대사들을 잘 조합해야 한다. 예컨대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길을 잃은 할머니 에피소드를 통해 첫 번째 에피소드의 토코의 행동이 설명되고 하는 식. 그러니까 감독은 나름 잘 짜인 퍼즐식 구조를 담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일상적인 배경에,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해 무슨 큰 소란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끝나고 나면 나름 여운이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영화. 대박을 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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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문을 읽으면 조선이 보인다
구자청 지음 / 역사공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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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요약      

 

     상소란 왕에게 써 올리는 선비들의 제안을 담고 있는 글을 말한다. 현직에 있는 사람도 있고, 관직에 나가지 않고 재야에 있다가 왕의 하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개중에는 특정인 - 가끔은 왕 자신이 배후가 되기도 했다 -의 사주에 의해 특별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성되는 것도 물론 있었고.

 

     오랜 공직생활을 하고 은퇴한 전직공무원이자 한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이 재직하면서 수차례 작성했을 제안서와도 비슷한) 조선시대의 상소 스물다섯 편을 통해 그 당시의 상황을 더듬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 감상평    

 

     책의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번역도 괜찮은 편이었다. 아쉬운 부분은 서술의 방향이랄까, 이 책을 펴낸 이유랄까 하는 부분이 잘 와 닿지 않는다는 점. 상소는 일차적으로 매우 정치적인 문서이기에 그 안에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담겨 있는 건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다만 조선시대 내내 수만 편의 상소들이 등장했었을 텐데 그 중에서 굳이 스무 개 남짓의 상소들만을 뽑았다면 여기엔 뭔가 이유가 있었을게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어디에서도 굳이 이 상소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상소들은 그 연대가 조선 초부터 말까지 대체로 퍼져 있다는 정도는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임팩트가 부족하다. 각각의 상소 앞뒤에 붙어 있는 간단한 설명은 단편적인 지식일 뿐이고, 특히 앞쪽에 실려 있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상소문의 작성자 설명 부분은 서로 겹치는 부분도 보인다. 그래도 상소의 결과가 어떤지를 실어 놓은 것은 좋은 생각이었다.

 

     차라리 항목을 좀 더 분명하게 구분해서, 각각의 상소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목적에 따라 나눠두었다면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간신배가 올린 상소,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소, 정치적 목적에 의해 작성된 상소 하는 식으로. 여기에 적절하게 오늘날의 현실로의 적용까지 더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구성과는 별개로, 책에 실린 상소들이 정말로 ‘선비정신’을 제대로 담아내고, 또 그걸 잘 보여주고 있는가도 의문스럽다. 물론 당대의 역사적 상황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시종일관 성현들의 경전만 인용하며 뻔한 소리만 하는 상소들을 계속 읽고 있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개중에는 이론과 실제의 적용을 당부하는 율곡 선생 같은 분의 글들도 있었지만, 예송논쟁이니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밀려온다. 송시열, 윤선도 같은 인물들은 당대에 꽤나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던 인물인데, 백성들의 피폐한 삶은 생각도 안 하고 왕이 몇 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 같은 쓸 데 없는 논쟁으로 서로 죽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조선이 망한 데는 다분히 이런 좁은 시야의 헛똑똑이 선비들도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다고 할 수 없으리라.

 

 

     선택과 집중이 아쉬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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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우주 어디에선가 구조 요청이 오면 즉각 달려가는 우주영웅...은 개 뻥이고, 실은 생각이란 건 전혀 할 줄 모르는 단순 무식한 근육덩어리 외계인 스콜치. 하지만 그에겐 우주적 천재인 형 개리가 있어서 언제까지나 영웅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이 진짜 영웅이라고 믿고 있었고, 어느 날 지금껏 누구도 돌아오지 못한 ‘어둠의 행성’에서 온 구조신호에 출동하라는 약간은 미심쩍은 임무를 수행하러 독단적으로 떠난다.

 

    ​그가 출동한 ‘어둠의 행성’이란 건 사실 지구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게 이 영화의 비장의 무기. 지구에는 외계인들을 납치해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는 악당 장군이 있었고, 스콜치는 아무 것도 못 해본 채 그에게 납치된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직접 지구로 날아간 개리가 동생과 다른 외계인들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환상적인 작전.

 

 

2. 감상평   

 

   어지간하면 이렇게까지 보기 힘든 애니메이션은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내 경우엔 보고 있는 내내 참 힘들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 대다수가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일단 달려들고 보자는 식이어서 한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일관된 흐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놀람, 아니 당혹스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건 그다지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런 의외성에서 재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

 

     더 힘든 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목적성이다. 영화는 외계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일종의 영웅놀이 이야기다. 이미 수많은 영웅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서, 이 작품은 생각 없이 달려드는 약간 멍청한 영웅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던 것 같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영웅들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가치’들마저 해체되고 있다는 것. 만화라는 특성상 조금은 가벼운 묘사들이 나오는 거야 이해하지만, 이 과정에서 윤리나 정의, 존경심, 심사숙고 같은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던 유산들마저 상당부분 제거된다.

 

 

 

    결국 하고 싶은 대로,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스러운 메시지가 영화 내내 선포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 따위는 들을 필요가 없고, 그저 내 생각에 괜찮으면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것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메시지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은 정신없이 빠르고 어지러운 영상으로 가려져 쉽게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마음을 괴롭히는 영화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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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중국의 형제 소방관이었던 타이콴(유청운)과 퀑(고천락). 꽤 잘 맞는 콤비였지만, 동생인 퀑은 구조 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퇴직 후 화재경보설비업체를 차린다. 공교롭게도 타이콴의 아내가 산부인과 정기검사를 하러 가는 건물에서 퀑의 회사 홍보를 위한 파티가 열렸고, 여기에 담뱃불로 인한 엄청난 화재가 발생한다. 아내를 위해 사직서를 낸 그 날, 타이콴은 마지막 출동을 나오고, 건물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타이콴과 소방대원들의 노력이 시작된다.

 

 

 

 

2. 감상평   

 

     고층건물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화재라는 소재가 익숙하다보니, 이 영화를 보면서 몇 년 전 개봉했던 우리나라 영화 ‘타워’나 그 밖의 유명한 헐리웃 영화들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게다. 감독은 이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에, 가족(형제와 부부, 부모 자녀 사이 애정)과 이기심을 넣어서 적당히 버무려 낸다. 여기에 원칙주의자 주인공(타이콴)의 모습은 영화 내내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갈등이라는 화학반응을 일으켜내고..

 

     확실히 영화는 재난에 관한 일반적인 속설들 - 사람들은 극한의 혼란에 빠지고, 대개 이기적으로 변하지만, 사랑이라는 관계로 묶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외적으로 이타성도 발휘된다는 -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덕분에 영화는 내내 비슷한 종류의 다른 재난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영화적 문법도 충실히 구현해 내고 있고.(다른 대원들은 다 어디가고 주인공 혼자 활약하는가 하는 질문은 하면 안 되는 거겠지?;;)

 

 

     이 영화에서 아쉬운 건 한결같이 어색해 보이는 컴퓨터 그래픽만은 아니고, 조금 지나쳐 보이는 우연과 작위적인 연출들(시종일관 사고 치던 놈만 딱 죽도록 떨어지는 철근 뭉치들..;;) 탓이 커 보인다. 규모로 승부를 걸었던 것도 아니고, 휴머니즘을 동반한 감동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애매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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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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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소설은 다양한 사정으로 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여러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을 드라마처럼 그려내고 있다. 우울증, 정신박약, 환청, 자폐증 등 다양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저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묘한 규칙성을 가지고 있는 병원생활에 잘 적응하며 서로를 배려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다.

 

     이 병원은 환자의 증상에 따라 폐쇄병동에서부터 준개방, 개방병동까지 다양한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고, 개방병동에서 생활하고 있는 환자들은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외출도 가능해서 마음에 맞는 환자들끼리 봄이면 꽃놀이도 다녀올 수 있는 식이었다.

 

     병원에서 여는 발표회에 올릴 연극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모두가 약간은 들떠 있을 즈음, 병원 안에는 잇따라 사건들이 (좋은 사건과 나쁜 사건이 함께) 일어난다.

 

 

2. 감상평   

 

     제목만 보면 전형적인 일본식 공포물이나 추리소설이 아닐까 싶었지만, 웬걸 내용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실제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작가는 정신과 병동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뭉뚱그려 ‘정신병자’로 치부하며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이상한 놈들’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쉬운 주인공들이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나름의 질서와 원칙에 따라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소설의 제목인 ‘폐쇄병동’은 언뜻 소설 속 배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유롭게 병원 밖을 오고갈 수도 있고, 사실 소설 속 ‘현재’ 동안은 그저 ‘괴벽’이라고 부를 만한 행동 정도만 가끔씩 보일 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병원에서 일한 지 오래된 간호사들은 그런 그들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들을 ‘폐쇄병동’에 가두려는 사람은 오히려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에게서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은..

 

     소설 속 중심인물인 주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런 외부인들의 시선이라는 철창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훈련을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해 오고 있었고, 마침내 스스로 병원 밖으로 나가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두려움의 극복’이었지만, 마침내 그들은 해 낸다. (이런 차원에서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책 전반에 걸쳐 보이는 저자의 따뜻한 시각이 마음에 든다. 문득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봐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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