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란 간단히 말해서 범죄사건 그 자체를 넘어 존재하는 당시 사회의 문제상에 좀 더 집중하는 양식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논픽션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근대 일본에서 벌어졌던 세 가지 사건을 묘사하면서 작가의 논평을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전골을 먹는 여자는 일본의 침략전쟁 중 고립된 산촌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던 계모가 딸을 죽여 그 인육으로 전골을 만들어 가족에게 먹인 사건을 통해 그 배경에 있는 희미한 전쟁의 참상을 드러낸다.

 

     이는 세 번째 이야기인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에서도 비슷하게 반영되는 주제인데, 츠야마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에서도 요바이라는 일본의 전통적인 성적 풍속과 함께 전쟁의 잔혹성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제기 된 두 건의 공소제기 건을 그린 내용인데, 상식적으로 공범이 아닌 이상 하나의 살인 사건에 두 명의 범인이 있을 수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사당국은 선입견과 고집으로 두 개의 기소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한쪽이 유죄판결이 났는데도 다른 피의자를 석방하는 데 반 년이나 늑장을 부린다. 작가는 이를 통해 전후 일본의 사법제도가 지나고 있던 과도기적 모순을 드러낸다.

 

 

2. 감상평 。。。。。。。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편 든 책이었는데, 지하철에서 칠십 여 페이지를 읽다가 덮으면서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싶은 생각이 들어 덮어 버리고 가방에 들어 있던 다른 책을 꺼내 읽었다. 그만큼 사건 자체가 엽기적이고, 그 서술 또한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로 리얼해서다. 사실 서술 자체는 굉장히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일부러 감정을 고조시키려는 격동적인 문장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게 오히려 사건의 비극성을 더욱 강화시켰던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뭐 작가가 쓴 다른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읽어본 게 아니기에 작가의 작품 세계 운운할 상황은 아니고, 겨우 이 작품 안에 담겨 있는 작가의 시선 정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텐데, 드러난 사건 이면의 깊은 근원을 추적하려는 저자의 태도가 꽤 인상적이다. 오늘날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보면 작가의 그런 태도는 좀 더 두드러진다. 아마 대개 미친 놈(혹은 정신이상)’이라는 반응이나 뭐 좀 더 하면 지역감정을 들먹이나 (대상이 외국인이나 조선족일 경우) 인종비하, 혹은 종북타령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사건의 배경에 깔린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발을 덧붙임으로써 기자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엽기적인 범죄들의 원인을 지나치게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니냐는 반발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 그런 부분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다만 작가가 굳이 공격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는 하다는 점과, 이야기 속 등장하는 범인들이 하나같이 별다른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라는 부분은 좀 더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다.

 

     작가가 쓴 다른 추리 소설 쪽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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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우연히 발견한 어린 시절 생일파티 영상에서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데이비드. 아버지의 실험실로 쓰던 지하실에서 타임머신의 프로토타입을 발견하고, 친구들과 함께 그것을 완성해 마침내 과거로 돌아가는 데 성공한다. 각자의 아쉬운 선택들을 수정하고, 자신이 좋아하던 제시를 위한 이벤트까지 만들어 낸 데이비드. 하지만 모든 것이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변했다고 생각하던 순간, 자신들이 바꿔놓은 과거 때문에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들까지 일어나고 말았음을 깨닫는다.

 

     아주 성품이 삐뚤어진 녀석이었다면 그런 것 다 무시하고 자기 좋을 대로 행동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영화는 좀 더 흥미로워졌을지도) 달라진 과거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사람들이 모두 자기 책임인 것만 같았던 데이비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과거로 향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또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오는 사고들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었고, 마침내 그는 맨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2. 감상평 。。。。。。。  

 

     이즈음 마땅히 볼만한 영화가 없었다. 극장에 도착한 시간 즈음에 가장 빨리 하는 영화를 선택했는데 이게 걸렸다. 그래도 간단한 줄거리 정도는 찾아보고 들어간 거라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사실 그런 거 없어도 워낙에 단선적인 스토리라 이해에 어려움은 없을 듯)

 

     극 중 상당 시간이 데이비드의 여동생이 들고 다니며 사건을 촬영한다는 설정으로 진행되는데, 핸디캠 특유의 흔들림을 굳이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기다보니 눈이 좀 아프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까지 준다.

 

 

 

     전체적으로 좀 심심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캐릭터들이 평면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착한 캐릭터들만 등장하는데, 그건 그렇다쳐도 영화 상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적들까지 없다보니 확실히 이야기꺼리를 만들 만한 게 부족했다. 파릇파릇 헐리우드에서 떠오르는 젊은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는 걸 빼면 그다지 인상적인 것은 부족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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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은 큰 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목표는 분명하지만 길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산마루에 도착해 오르기 시작해야 비로소 조금씩 보입니다.

고속도로처럼 활짝 열린 길이 아닙니다.

구불거리며 돌아가는 길입니다.

- 신국원,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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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을 돌보는 사람들은 특히 잘 아실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얼굴을 가려 버리기엔 충분합니다.

 

- 조지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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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 What's Up 1
알랭 바디우 지음, 현성환 옮김 / 새물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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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바울 텍스트를 철저하게 비종교적인 문맥에서 읽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스스로를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자부하는 저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그가 당시 로마 제국으로 대변되는 전체주의적 사상과 문화(여기에 유대주의도 포함된다)에 대항해 일종의 특수성(책에서 이는 주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을 강조함으로써 저항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전체에 걸쳐서 바울이 선언했다고 생각하는 주체성에 대한 강조가 이어지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아래에서 하도록 하겠다.

 

 

2. 감상평 。。。。。。。  

 

     '제국의 권력에 맞서 싸우는 투사 바울'이라는 책 뒷표지의 홍보문구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제국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의 정치적, 군사적 세력으로서의 제국이라기보다는 거의 철학적인 차원에서의 제국즉 비유적인 표현으로서의 제국이다. 따라서 바울이 했다고 설명되는 투쟁도 철저하게 철학적인 차원에서의 투쟁일 뿐이지, 딱히 실제적인 무엇을 했다고 하기 애매하다. 저자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주체성을 회복하는 게 투쟁의 내용이라는 것.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바울 텍스트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울의 편지들은 철저하게 현실 위에 기반하고 있다. 각각의 편지들은 특수한 상황과 사례들 위에 올려져 있으며, 그 사례라는 것은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교인들 사이의 분열과 다툼, 새롭게 만들어진 공동체 안에서의 권위 문제, 그들의 신앙을 떠받혀 주는 교리에 관한 조언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그런 실제적인 차원을 모두 지워버리고 모든 것을 철학적인 사유로 전환시킨다.

 

     요컨대 바울은 시장의 언어로 편지를 썼지만, 저자는 그걸 철학자들의 언어로 개작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바울의 분명한 지시들마저 모호한 주체성에 대한 강조로 변질되고 있고, 이는 주체성에 대한 강박관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바울의 메시지를 현대적으로 읽어내려는 시도 자체는 뭐라 하기 어렵지만, 그의 이름과 용어만 빌린 채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건 좀 부당해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바울은 사상가이자 시인, 투사(13)이다. 물론 바울에게 그런 면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쓴 편지들의 또 하나의, 아니 가장 중요한 축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도가니 속 불순물’(12), 또는 우화’(16)로 여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질문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바울의 종교적인 언설들을 비유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시도까지도 보여주는데, - 요컨대 바울이 그토록 강조하는 예수의 부활을 단지 가능성의 선언으로 해석해 버리기도 한다(170). 그러나 이건 명백히 바울의 생각과는 다르다 이쯤 되면 지금 저자가 말하는 바울은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울의 좀 더 실제적인 정치사상이나 개혁가로서의 면모를 읽어보고 싶다면, 이 책보다 브라이언 왈쉬가 쓴 제국과 천국이란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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