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 기독교 생사학의 의미와 과제 기독교 인문 시리즈 6
곽혜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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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은 현대인들의 죽음의 질이 상당할 정도로 낮아졌다고 지적한다. 특히 질병사의 원인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암을 예로 들면, 다수의 사람들이 임종직전까지 공격적인 항암치료를 받느라 심신이 모두 탈진된 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성숙한 성찰, 소위 죽음학에 대한 연구의 부족을 꼽는다.

 

     책은 죽음에 대한 오랜 고민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 특히 그 중에서도 기독교적 배경을 언급하는 데 몇 장을 할애한 뒤, 뇌사, 안락사 혹은 존엄사, 완화치료, 고독사 문제, 자살 등 실천적인 문제들에 관해 논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죽음에 대한 좀 더 깊은 논의와 정리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2. 감상평 。。。。。。。  

 

     책을 열면서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십수 차례 이상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그 과정에서 예전엔 중환자실이라고 불렀던 집중치료실과 일반병실을 몇 번이나 오고 가셨더랬. 책에도 잠시 언급된 것처럼 집중치료실의 일상은 그 자체가 힘겨운 나날이다. 24시간 꺼지지 않은 조명에, 환자들마다 무거운 벽처럼 투박한 의료기기들에 둘러싸인 채 주기적으로 체크를 하는 간호사와 의사들의 점검을 받는다. 한밤중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상황에서 제대로 잠을 자는 게 어디 쉬울까? 덕분에 그곳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쇠약해지는 게 다반사. 그리고 제법 여러 사람들이 운명을 하곤 한다.

 

     과연 그게 적절한 죽음의 과정일까. 이 책에서 저자가 묻는 질문은 곧 내가 품고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책은 막연하게 품고 있던 문제의식을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기하고 있어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죽음에 관한 주제로 박사 논문까지 썼던 저자답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단지 소개나 정리 개념을 넘어서 좀 더 실질적인 해결책에 관해 모색한다.

 

 

     사전의료의향서와 사전장례의향서의 작성부터,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제시는 흥미로웠고, 고독사와 자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경제적 접근을 강력하게 반복하고 있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저자는 기독교적인 대안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이런 식의 사유가 나머지 내용들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보다는 좀 느슨하게 덧붙여진 듯한 느낌이다. 기독교적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독단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기독교적 접근 자체도 생각만큼 깊은 데까지 짚어주는 게 아니라 아쉽다.

 

     책의 마지막에 덧붙여진 서평은 비판적 고찰이라는 제목을 붙이기엔 확실히 부족해 보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가지고 있는 전제가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전제가 어떤 부분에서 모자라고 부당한지를 논리적으로 밝혀내기 보다는 시종일관 감정적인 부정을 하는 데 급급했다. 차라리 뺐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는 것도 바쁜데 죽는 일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은 강력하긴 하지만, 삶의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는 건 인간다움의 한 특성이 아니겠는가.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그 삶마저 추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제대로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회피나 외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수용과 대비를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에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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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자리가 성서적 증인들의 자리보다 높이 위치한다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다.

신학자는 성서적 증인들보다

천문학, 지리학, 동물학, 심리학, 생리학 등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학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성서적 증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 칼 바르트, 개신교신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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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동하지 않는 전통과 정통을 붙잡고 '공동체' 말하면서,

사실상은 '집단주의'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공동체는 집단 의존적 개인들이 많이 모인 곳이 아니라,

자립적 개인들이 함께 모여서 상호의존을 경험할 때 가능할 것이다.

 

- 양희송,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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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뺑소니범을 잡고 보니 근래 연쇄살인으로 서울 시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놈이라니, 이쯤 되면 대단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놈에게 마지막으로 희생된 것이 자신의 하나 뿐인 여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태수(김상경)는 큰 충격과 분노, 슬픔에 빠지고, 놈은 그런 태수의 모습을 비웃으며 감옥에 들어간다. 재판 결과는 사형. 하지만 우리나라는 17년 동안이나 형의 집행이 이뤄지고 있는 사실상의 사형폐지국가였다.

 

    3년 후, 한 조직폭력배의 두목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태수는 사건을 추적하던 중 죽은 여동생의 남편이자 자신의 매제였던 승현(김성균)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수감되어 있던 살인마 강천(박성웅)이 살해당할 뻔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태수는 두 사건이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승현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아내를 잃은 한 남자는 복수만 생각하면 됐지만, 동생을 잃은 또 다른 남자는 경찰이라는 직무를 안고 그를 막아야 하는 상황.

 

 

 

 

2. 감상평 。。。。。。。  

 

     일반적인 스릴러는 범죄가 일어나고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범인의 정체는 가려져 있고, 그가 누구인지 정체가 밝혀지면서 클레이맥스에 이르는 식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범인은 처음부터 등장하고, 얼마가지 지나지 않아 잡히고 만다. 그렇다. 이 영화는 범인을 잡는 과정이 아니라 잡고 난 이후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영화다.

 

     문제는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라는 게 충분히 예상되던 것 그 이상의 무엇이 없었다는 것이다. 놈에게 아내를 잃은 남편의 모든 것을 던져 복수하려는 심정이야 충분히 공감도, 예상도 되는 부분이니까. 감옥에 있어서 직접 처리할 수 없는 놈을 끌어내기 위해 그가 사용한 방식은 나름 신선했지만, 그리고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했지만, 여기서 질문. 그게 피해자들의 심정을 그려내는 것과 직접 연관이 있는가?

 

     처음부터 감상적인 부분에 집중을 하려 했던 것이라면, 굳이 이런 트릭에 힘을 줄 게 아니라, 조금씩 무너져 내려가는 승현과 태수의 모습을 그려가면서 동시에 반성하지 않는 강천의 모습을 대조시키는 것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여기에 사실상 사형을 폐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률적 상황의 모순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텐데, 여기에 액션과 스릴러적 요소를 넣으려고 애씀으로써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흐름을 억지로 엮어 놓은 모양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요컨대 뭘 말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는 것.

 

 

 

 

     무게감 있는 배우들이 잔뜩 출연했지만, 연기력이 딱히 인상적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김상경은 너무 자주 경찰 이미지를 보이고 있고, 이번이 마지막 악역이라고 선언한 박성웅은 지독하게 선이 강한 악역으로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죽지 않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액체로봇이냐는 비아냥거림을 사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인 김성균도 예전 이웃사람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만 줄 뿐.

 

     여기에 요즘 나오는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인 폭력의 과잉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점점 비호감으로 변해간다. 이 정도의 폭력은 뭔가를 강력하게 제시하기 위해 매우 절제된 상태로 사용되어야 할 텐데, 이 영화에선 그 목적도 불분명한 채로 그저 자극적인 영상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빠진 유일한 대중적 상업코드는 작품을 위한 여배우의 노출정도?

 

 

     배우들의 몸매 관리가 가장 인상적이다. 김상경은 영화 초반 일부러 찌웠던 두둑한 뱃살을 완벽하게 지워버렸고, 박성웅의 잘 다져진 근육에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복수를 위해 단련한다는 설정을 가졌던 김성균도 나름 열심히 운동을 했구나 하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게 다이어트 비디오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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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중국 송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영화. 각각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네 명의 포교(오늘날로 치면 특수수사관 정도?)들과 그들이 소속된 특수수사부 신의부의 수장 제강정아(황추생)가 나서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스토리인데 이번 작품이 시리즈 세 번째.

 

     전편에서 믿고 따르던 철수(예성)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데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안 무정(유역비)가 신의부를 떠나려고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사실 그는 황제의 명령을 받아 수행했던 것이었고, 나중에 밝혀지지만 황제 역시 모함에 속아 그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시, 영화는 곧 황제를 죽이고 그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안 대인의 음모로 넘어간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황제는 신의부로 몸을 피하고, 제갈정아를 비롯한 신의부 포교들은 황제를 보호해 가까운 군영에서 군대를 빌리기 위해 길을 나선다. 물론 이 과정은 방해를 받고 엄청난 내공의 신 대인에 의해 모두가 위기에 처하는 듯하나, 시리즈 마지막답게 곧 훈훈하게 마무리 된다.

 

 

 

 

2. 감상평 。。。。。。。  

 

     이름만 과도하게 웅장하다. 종극대결전이라니. 솔직히 이런 거창한 이름이 붙을 만한 작품은 아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엄청난 수의 보조출연자가 출연하는 부분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화려한 액션이나 정교한 스토리와 추리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오랫동안 찍어왔던 시리즈를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 이런 부제를 붙였던 걸까.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과도한 CG는 영화 전체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쯤 되면 그냥 잘 만든 콘솔 대전게임에서 나올 법한 수준의 영상이고, 그나마 액션은 게임들보다 떨어지지 않나 싶다. 전통적으로 강점이었던 화려한 기술들이 들어간 액션마저 사라진 마당에 영화의 볼꺼리는 주연 여배우인 유역비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망가질 거면서 처음부터 3부작이 아니면 감독을 맡지 않겠다는 진가상의 배짱은 어디서 나왔던 건지..

 

 

 

     개봉된 된 지 며칠만에 벌써 케이블 채널에서 볼 수 있어서 좀 의아했는데, 딱 그 정도 수준. 대륙판 특촬물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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