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분자들 사이의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신기술을 발명한 행크 박사(마이클 더글러스). 그는 이 기술이 군사적으로 이용될 경우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채 스스로 기술을 봉인해 버린다.

 

     십 수 년이 지난 후, 핌이 은퇴한 회사는 그의 제자였던 대런(코리 스톨)이 장악했고, 그는 자신의 스승이 감췄던 기술을 거의 복원해 내기에 이른다. 물론 그는 핌과는 달리 자신의 기술을 더 많은 돈을 제시한 회사에 팔아넘기기로 했고.

 

     결국 핌은 자신을 대신해 슈트를 입고 개미군단을 이끌고 대런의 계획을 막을 인물을 찾아야 했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스콧(폴 러드)이었다. 며칠 동안의 피나는 훈련(?) 끝에 완벽하게 슈트와 개미군단에 적응한 스콧은 마침내 엄중한 보안으로 둘러싸인 회사에 잠입해 임무를 시작한다.

 

 

2. 감상평 。。。。。。。   

 

     마블의 코믹북을 원작으로 하는 또 하나의 히어로 영화다. 영화 속에서도 몇 차례 등장하듯이 어벤져스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만,(그런데 이런 세계에서 제정신으로 살 수는 있긴 할까?) 이 영화 속에서 어벤져스는 때려 부수기 좋아하는 팀 정도로 치부함으로써 이 영화의 주인공의 특징을 드러낸다. 앤트맨. 개미처럼 작은 크기지만, 그만큼 힘은 농축되어 엄청나지는 영웅. 작기에 훨씬 섬세한 작업이 가능한 신개념 히어로.

 

     작품 속 등장하는 소재들과 기술들에 관한 허점은 지적하지 않기로 하자. (물론 그래도 결국 훨씬 잔인하게 죽이고서 끝낼 거면서, 애초에 대런이 핌 박사의 집에 아무 무장도 없이 찾아왔을 때 그냥 제거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미지수지만..) 그러면 이 영화에 남는 것은 신기술과 권선징악적 요소를 가진 영웅, 그리고 가끔씩 튀어나오는 개그 코드 정도다. 그리고 다시 뒤의 두 가지는 다른 히어로물들에서도 자주 봤던 것들이고, 역시 주목할 것은 초소형 전투요원으로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무서운 계획.

 

 

 

 

     영화 속에서는 겨우 한 벌의 슈트(옐로우 자켓) 정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이런 계획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들에서 연구되고 있다는 것이 무서운 부분. 물론 실제 사람을 작은 크기로 줄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미 초소형 드론이나 전투로봇의 개발은 상당 수준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이런 기술들이 실제 전투나 분쟁의 현장에 적용되면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통제사회가 완성될지도 모르겠다. 초소형 카메라로 원하는 모든 곳을 감시할 수 있고(물론 이건 이미 거의 달성된 상황이다), 원하는 지역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잠입해서 마음대로 죽이고 파괴할 수 있는 힘. 누가 그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을까.(심지어 영화 속 대런의 프로모션 비디오 속에는 이 기술이 파업과 같은 분규를 분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광고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기술은 인류를 이롭게도 하지만, 상당부분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은 그 기술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내다본 핌 박사에 의해 기술이 봉인되지만, 실제 사회에선 대런과 같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거라는 게 더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개발하는 쪽에서는 온갖 장밋빛 전망들을 덧붙여서 연구를 정당화하겠지만, 인류 역사가 언제 그렇게 좋은 쪽으로만 돌아가던 적이 있던가. 신무기의 개발은 전쟁을 끝내기는커녕 군비경쟁을 초래해 세계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을 뿐이었고, 새로운 경제이론은 전 세계를 잘 살게 해 주는 대신 소수에게 모든 부와 권력을 몰아주고 말았다.

 

     그래서 기술은 민주적인 절차와 권위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특히 이전에 없었던 신기술의 경우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실존적, 역사적 함의가 드러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 부작용이 드러났을 때는 이미 돌이키기 늦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나름 재밌게 봤다.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고 해서 바로 일어서지 말자. 마블사 영화 아니던가. 숨겨진 장면이 나올 때는 이미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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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고 싶은 탐욕은 무서운 것입니다.

오로지 사랑을 위해 산다고 (거의 자부심을 갖고) 말하는 사람들 중 얼마는

결국 끊임없이 분개하면서 살게 됩니다.

 

- C. S. 루이스, 피고석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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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비비어의 관계 - 자유함과 영적 성장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계획 존 비비어의 관계
존 비비어 지음, 우수명 옮김 / 엔씨디(NCD)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깨어진 관계 때문에 생긴 상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존 비비어의 신앙적인 조언이 가득 담긴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를 최종적으로 망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인정하고, 해결하기 위한 제대로 된 방법을 수행하기만 하면 말이다.

 

     책은 서로 다른 방식의 관계로부터 받은 상처들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성경적 방식을 차분하게 풀어놓는다.(4장과 5) 나아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신앙적 유익들, 그리고 용서와 사랑이 가치에까지, 관계로 인해 생긴 문제에 관한 거의 모든 조언들이 담긴 백과사전 같은 책.

 

 

2. 감상평 。。。。。。。

 

     언제 봐도 기본 이상은 할 것 같은 존 비비어 목사의 책이다. 이 책에서도 흔히 실족이라고 부르는 깨어진 관계에서 나오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차분하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맥락은 상당부분 교회와 관련된 상황들이지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처하는 데도 충분히 유용하다.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지만, 그 안에는 늘 다양한 종류의 문제들이 발생한다. 최근 들어서 그런 문제들이 더욱 자주 공개되고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아는 교회는 최근에 완전히 둘로 쪼개졌고, 또 나 역시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새 나오는 교회 문제를 다루는 책들을 보면,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고, 공격하는 데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문제는 교정되어야 하고, 피해는 복구시켜야 한다. 그러나 원망과 보복으로 과연 이런 일들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비단 교회문제만이 아니다. 최근들이서 우리나라의 갈등수치가 역사상 최고점 언저리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고구려, 백제, 신라 나뉘어 싸우던 시기 정도가 비슷할까) 그리고 우리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편 가르고, 보복하고, 상대를 힘으로 누르는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하는 정치인들을 보아왔다. 과연 그랬더니 문제가 해결되던가?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면 결국 그 문제가 일종의 덫이 되어 우리 자신을 옭아매게 될 것이라는 결론부의 조언은 그래서 더욱 무겁게 와 닿는다. 잘못을 내버려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언제나 죄가 없고, 무고하고, 결백하다는, 늘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 하나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 책에 실려 있는 예화들처럼 모든 일들이 잘 풀리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독을 품고 사는 건, 언제나 너무 위험한 일이다.

 

 

. 괜한 딴지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책 제목을 붙이는 방식에 좀 불만이 있다. 이런 식으로 제목에 저자의 이름을 떡 하니 박아 넣는 것은 마케팅 쪽에서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과연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나온 판단인지는 확실치 않다. (비교적 일찍 출판된, 같은 저자의 책 순종에서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후 서너 개 출판사에서 경쟁적으로 내고 있는 비비어의 책은 이런 식으로 저자의 이름을 제목에 큼직하게 써 넣고 있다.) 이런 제목은 책의 내용이 비비어의 조언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드러내지만, 책 자체가 표방하는 것은 관련된 문제에 대한 성경적 해결책이 아니던가. 표지는 책의 얼굴이다. 출판사의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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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대한민국 대표 똘아이 경찰 콤비 정진(임창정)과 유민(최다니엘). 범인만 보면 일단 패고 보는 정진과 여성편력으로 이름 높은 유민이었지만,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누구 못지않은 근성의 소유자들이다. 극락교라는 이름의 허접한 사이비종교재단을 세워 놓고, 뒤로 온갖 불법적인 일들을 하며 모은 돈으로 대한민국을 주물럭거리는 강성기(장광)를 잡기 위해 특단의 대책으로 모은 것이 이들 두 명이었던 것.

 

     좀처럼 머리라는 걸 쓸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이었지만, 어찌어찌 영화는 몇 번의 잠입과 발각 끝에 마침내 놈을 잡는 데 성공한다.

 

 

 

 

2. 감상평 。。。。。。。  

 

     경찰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나쁜 놈을 육탄전도 불사하며 마침내 잡아낸다는 설정만 두고 보면, 최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천 만 명의 관객을 모았던 베테랑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한 영화는 모자란 부분이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영화의 경우 가장 눈에 띄는 건 허술한 캐릭터와 개연성 없는 사건 진행 등 구성 부분의 문제다.

 

     사고뭉치 형사들이 일반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식의 작품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방식이 해도 너무한다. 두 형사의 머리는 그냥 폼인지 주구장창 들이받기만 하고, 또 그 과정은 얼마나 허술한지 그 때마다 번번이 강성기의 앞까지 가기는 한다.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을 검찰은 뭐 그리 구인하는 데 힘들어 하는지.. 보안은 치밀은 커녕 그냥 프리패스 수준이고, 막판의 권총 릴레이는 한숨이 나올 정도다.

 

 

 

     무엇 때문에 영화가 이렇게 망가졌을까? 일차적으로는 감독의 부족한 고민 탓일 것이지만, 굳이 변호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현실 속 그 장면을 너무 의식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 속 강성기의 모습은 누가 뭐래도 유병언의 그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들 모아놓고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모습이나, 늘 근접수행하는 여자 경호원, 자신이 찍은 사진을 고가에 팔아먹는 모습 등은 언론에 보도되었던 유씨의 행적을 너무나도 닮아 있다. 여기에 영화 속 극락교의 모델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실제 종교단체들의 모습과도 닮은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런 부분들은 꽤나 폭발력 있는 소재들인데, 자칫 너무 리얼하게 그렸다가는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게 뻔하다. 어쩌면 이 부분을 걱정한 건 아닐까.(뭐 이쪽은 대기업 쪽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여긴 아무래도 눈을 의식해야 하니까..)

 

     물론 이런 생각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고, 역시 근본적으로는 감독의 역량 문제였던 듯. 임창정과 최다니엘이라는 썩 괜찮은 콤비는 공모자들이라는 꽤나 잘 만들어진 분위기 있는 스릴러를 보여줄 수 있음을 이미 증명했지만, 이번 영화에선 그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허둥대기 바쁘다. 물론 영화를 너무 심각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감독의 생각이 있었다면야 그 고집은 고집대로 인정해줘야겠지만.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런 영화는 시간이 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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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신앙이 평일로 이어질 때
톰 넬슨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신앙과 일상의 직업(여기에서는 교회나 교회병행단체에서 일하는 것 이외의 직업을 가리킨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실천적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1장에서 3장까지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설명한 저자는, 4장에서 우리의 현재 일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해 조망한다.

 

    5장은 소위 일상적인 일에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설명하는 장이고, 이어서 어떻게 하면 일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성취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내용이 이어진다(6). 저자는 우리의 일이 다른 무엇을 위한 도구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신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일차적으로 그것은 공동선을 성취하는 모습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7).

 

    8장에서는 어떻게 우리에게 맞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지 하는 방법이 실려 있고, 9장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유혹들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 장은 지역 교회를 통해 이 책에서 살핀 일의 신학을 어떻게 적용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를, 저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의 사례를 예로 들어 제시한다.

 

 

2. 감상평 。。。。。。。  

 

     중세교회는 거룩함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보인 나머지 성속이원론이라는 치명적인 함정에 빠져버렸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하고 속된 것을 나눴고, 교회와 그 안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은 근본적으로 거룩하지만 그 밖의 영역은 거룩함에서 삐져나가버렸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이 벽을 허물고, 온 세계를 하나님의 것으로 회복시켰다는 점이다. 마틴 루터는 교회 안에서 설교를 하는 성직자와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사람은 모두 똑같이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교회는 다시 이전의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돌아간 듯하다. 교회는 성전으로 불리고, 목사만이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일상적인 직업들은 2등 직업, 혹은 하나님의 일을 섬기기 위한 보조적 도구로 전락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니 은혜 받으면 신학을 공부해야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 = 교회 전임 사역과 같은 공식 아닌 공식이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런 잘못된 성속 이원론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쓰였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우리의 일상적인 일들이 얼마나 거룩한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설명한다. 설명들 사이에는 적절한 사례들이 더해져 있어서 이해를 돕는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건, 교회 안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학교에서, 거리와 가정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예배당 안이 아니라 밖에서 하는 거니까. 이 부분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교회생활이 곧 신앙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린 결과가 오늘날 기독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물론 문제는 단지 이것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복잡하다고 지레 겁먹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시작을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에서부터 한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시기에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물론 섣부른 예단이나 기대부터 하는 건 금물이다)

 

 

     상당히 짜임새 있게 잘 쓰인 책이다. 창조, 타락, 구속의 원리에 따라 차분하게 정리된 일의 신학 위에, 실제로 어떻게 일을 통해 소명을 실천할 수 있을지를 제시하고, 이 과정에 필요한 실제적인 지침들까지 잘 담아내고 있다. 그리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딱딱한 이론서도 아니고,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적절한 분량이라 주변에 추천해주기도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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