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미소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 중반. 미국에 잠입해 있던 스파이 아벨(마크 라일런스)이 정부당국에 의해 체포가 된다.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선전하기 위해 당시 보험 전문변호사였던 도노반(톰 행크스)에게 변호를 맡긴다. 그러나 당시 레드 콤플렉스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은 최선을 다해 아벨을 변호하기로 한 도노반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과 손가락질을 하기 바빴다. 그러나 가까스로 사형만은 막아 낸 도노반...

      얼마 후 러시아 영토를 불법 정찰하던 미국 항공기가 격추되고 그 조종사가 생포되면서 양국은 서로 민감한 정보가 유출될 것을 우려해 아벨과 조종사 사이의 포로교환을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아벨이 자국의 스파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러시아와 생포된 조종사가 정부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는 미국 사이에 공식적인 회담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순수하게 민간인의 신분으로 협상에 참여하게 된 도노반, 그는 막 동베를린이 장벽으로 둘러싸이는 혼란한 시기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만나며 이 민감하고 미묘한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2. 감상평 。。。。。。。  

     두 시간이 훨씬 넘는 영화였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개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토요일에도 상영하지 않는 극장이 이렇게 많다니..(겨우 23만 명이 봤단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판결을 내려놓은 판사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언론과 여론의 모습은, 갈수록 국가주의적 색채를 강화해 나아고 있는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 나라 또한 국익이라는 말 하나로 얼마든지 인권을 유린하고, 국민들의 의사를 짓밟는 일들이 더 이상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으니까.

 

     ​당장 소련이 핵무기를 발사할 것이라며, 그 날을 대비하기 위해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화장실에서 숙제를 하는 도노반의 아들이 보여주는 코미디는, 짐짓 엄숙하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척 하는 권력자들이 하는 일이, 사실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 보여주는 코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무기를 개발해 실전에서 사용함으로써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나라가, 그렇게 자신이 열어 놓은 지옥문에 혹여나 자신이 빠질까 벌벌 떠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낸다. (불행하게도 이는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20세기 들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테러 위협에 대한 집단 노이로제 증상을 보이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도노반 같은 사람과 그가 했던 사건들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소위 주류 언론에서는 그를 향해 사상이 의심스럽다니, 과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거나, 그런 일에 참여한 단체와 관련이 있었다느니 하면서 색깔론 공세를 펼 것이고, ‘애국이나 보수같은 수식어를 잔뜩 늘어뜨린 백색테러단체들이 그의 집 앞에 가서 행패를 부릴지도 모르겠다. 아벨에 대한 재판은 증거의 적법성이나 논리성 따위는 필요 없이 국가보안법으로 이미 구속되었을 것이고,(21세기에도 간첩 조작하는 나라니 말 다했다.) 북한과의 포로 협상 따위는 애초부터 체제우월성을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30년 이상을 복역 중인 미전향장기수들이 남아 있다.)

      이건 뭐 모든 부분에서 미국을 닮아가려고 애쓰는, 열등감으로 충만한 모범생들의 나라이니 가능한 일들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민()의 뜻보다는 재벌과 권력자들의 의사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나라, 그래서 헌법마저도 얼마든지 궤변을 동원해 원문의 의미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는 법률가들이 넘쳐나는 나라, 그리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고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철저하게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의 충복 노릇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사정기관, 권력기관 종사자들이 떳떳하게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라 말이다. (, 나는 역사를 잘못 배워서 혼이 이상해진 걸까)

   

 

 

      스필버그 감독은 국가의 이익도 이익이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놓지 않으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CIA에서 파견된 요원은 끊임없이 도노반에게 생포된 미국인 조종사를 빼내는 데만 집중할 것을 요구하지만(이 조차도 그가 미국에 불리한 정보를 소련에 넘길까 걱정해서이지 진정으로 그를 걱정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도노반은 그와 함께 동독정부에 의해 구금되어 있는 미국인 대학생까지 함께 구해내려고 애를 쓴다. 덕분에 협상은 훨씬 힘들고 복잡해졌지만, 이쪽이 맞는 길이 아니던가.

     사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당장 계산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한 영혼이 온 세상보다 귀하다는 성경구절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진리다. 그리고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참 불행한 시대, 불행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감독의 훌륭한 연출, 그리고 의미가 짙게 묻어나오는 영상들, 배우들의 호연이 잘 버무려져 좋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대로라면 곧 상영이 끝날지도 모르니 서둘러 가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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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순간이 아름답기를

원하지 말자.

안락의자에서 죽는다면

그건 잘 산 것이지,

잘 죽는 게 아니니까.

 

- 오선화, 야매상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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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나라. 도시에는 오직 결혼한 사람들만이 살 수 있었다. 111개월 동안 부부로 함께 살다가 근시라는 이유로 혼자가 된 데이비드(콜린 파렐)은 커플 메이팅을 위한 호텔에 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 호텔에는 무시무시한 규칙이 있었으니, 45일 안에 그 안에서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게 된다는 것. 호텔 밖의 숲에 사는 동물들은 모두 그렇게 짝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한편 숲 속에는 또 다른 사람들도 살고 있었으니, 이른바 외톨이들이었다. 그들은 결혼을 강제하는 억압적인 사회에 반기를 든 사람들로 숲에서 살고 있었다. 호텔에 투숙한 사람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마취총을 가지고 그런 외톨이들을 사냥하는 시간을 갖는데, 한 명을 사냥할 때마다 숲에서 보낼 수 있는 유예기간이 하루씩 늘어나는 구조.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자신을 속여 가며 커플이 되려고 했던 데이비드. 하지만 그런 위장은 얼마 가지 못해 파국을 맞고, 곧 숲으로 도망을 치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처럼 근시인 한 여인(레이첼 와이즈)을 만나 곧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곳에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규칙이 있었으니.. 오직 독신만을 강요하는 그곳은 또 하나의 지옥이었다.

 

  

 

 

2. 감상평 。。。。。。。  

 

     아.. 여러 가지 의미로 꽤나 충격을 주는 영화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불협화음이 강조되는 우울한 배경음악, 그리고 창백해 보이는 화면, 배우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모순적이고 과장된 세계관까지.(개인적으론 숲의 녹색이 이렇게까지 우울하게 느껴질 수 있었는지 새삼 놀랐다.)

 

     영화는 확실히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45일 안에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던지, 오직 커플들만 살 수 있는 도시, 반대로 솔로들만의 숲, 외톨이 사냥 등등 어느 것 하나 현실 속에서 문자적으로 찾아볼 수도, 발견될 수도 없는 모습들. 하지만 물론 이건 겉모습이 그렇다는 거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감독은 이런 모순과 부조화를 통해 현실의 억압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세계(도시와 숲)와 그 경계선(호텔)의 구조를 가진다. 그런데 이 모든 영역은 하나같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커플이 아닌 사람들을 추방하는 도시나 솔로가 아닌 사람들을 처벌하는 숲 모두 폭력성에 있어서만큼은 지극히 닮아있다.(마치 남한의 반공정부와 북한의 공산정부가 똑같이 독재적 사회를 만들어낸 것처럼) 어느 한 곳이 선이고 다른 곳은 악이라는 고전적인 구도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호텔은 이 두 독재사회 사이에 그어져 있는 경계선이자 끊임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또 다른 폭력의 공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며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체제에 대해 무조건적 복종을 하도록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제정신으로 될 리가 없다. 때문에 호텔 안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과 행사, 교육은 철저히 투숙객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종의 우민화정책의 일환이다. 파티장 안에서 이뤄지는 왜 커플이 되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한 강의의 내용을 보라. 여자 혼자 다니면 성폭행의 위험이 있으니 커플이 되어야 하고, 남자 혼자 식사를 하면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위험해질 수 있으니 커플이 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유치한 교육이 끝날 때마다 교육 참가자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낸다. (문득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앞날이 환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감독은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억지로 커플을 만들어주지 못해 안달하는 기존 체제도, 그렇다고 지나친 반감으로 혼자 지낼 것을 강요하는 소위 자유로운 문화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함께 지내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거슬려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커플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어떤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상을 갖고 있다는 것. 함께 노래를 하거나, 같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혹은 심지어 코피가 자주 난다거나 하는 작은 공통점이 커플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처럼 여겨지는 것.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사회가 심어 놓은 편견이다. 주인공 데이비드가 숲에서 만난 사랑은 그녀가 근시라는 것을 알기 전에 이미 시작되지 않았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우울한 분위기가 보는 내내 좀 힘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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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상품화를 이끄는 여러 잡신이

대부분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활동한다.

그 결과, 착취를 일삼는 이런 잡신들의 시스템 또한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사람들 눈에도 띔이 없이 활동한다.

착취(혹사)는 일상사가 되었다. 쉼이 없음은 예외가 아니다.

불안은 애초부터 있는 것이요, 폭력도 사업에 따르는 대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 모든 것이 실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다 보니,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애초부터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시스템에 중독되고 말았다.

 

- 월터 브루그만, 안식일은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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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에서의 실험 동문선 현대신서 103
C.S. 루이스 지음, 허종 옮김 / 동문선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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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 책은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문학비평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비유컨대 오늘날의 소위 전문화된 비평은 대상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환원시킴으로써, 그 문학이 원래 가지고 있는 중요한 모든 향기들을 날려버린 채 남아 있는 시체들을 분석하고 있을 뿐이다. 루이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적인 청교도들은 안타깝게도 어김없이 실패하는데, “그들은 진지하게 수용적인 독자가 되기에는 한 인간으로서 너무 지나치게 진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20).

 

     이런 비평적 태도는 다양한 부분에서 비문학적인 태도를 고양시킴으로써 독자가 문학을 수용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들은 종종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비평이론을 속에 작품을 재단해 억지로 끼워넣거나, 작품 자체에서 무슨 주의, 어떤 학파의 경향이니 하는 것들을 과장해 끌어내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루이스는 그들이 렌즈 너머로 꿰뚫어보는대신 렌즈를 쳐다보고 난 뒤 렌즈를 비판하곤 한다며 못마땅하게 여긴다.(46)

 

     루이스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특수한 이야기 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52) 또 비록 허구의 이야기라도 그것이 개연성이 있거나 인생에 진실할 때 내용의 측면에서의 리얼리스틱(73)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는 문학에 대한 루이스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어떤 것을 뜯어보다고 해서 그것을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꽃잎을 잘라 현미경으로 분석한다고 해서 꽃을 모두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문학 역시 분석에 앞서 우선 그 자체로 감상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내려놓고, 침묵하며 작가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110)

 

 

 

2. 감상평 。。。。。。。

 

     지금까지 읽어본 수십 권의 루이스 책들 중에 가장 이질적인 느낌의 저작이다. 홍성사에서 출판된 다양한 장르(소설과 변증서, 강연원고, 편지 등)의 루이스 책들은 그 자체로도 물론 아름답지만 대부분 그의 신앙을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을 하던 글들이고, 다른 몇 개의 출판사들에서 낸 책들도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영문학자로서의 루이스의 면모가 훨씬 더 두드러진다. 그래, 생각해 보니 루이스는 일생의 대부분을 영문학자로서 일했었다!

 

 

     책은 위에서 정리한 것처럼 문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관한 비판과 조언을 담고 있다. 물론 이 책은 기본적으로 문학을 대하는 자세에 관해 논하고 있지만, 비평이라는 차원에서 훨씬 더 넓은 영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젠가부터 비평가라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고 있다. 물론 그들이 비평하는 대상들은 천차만별이지만 고전적인 문학이나 문화비평가들부터 시작해 요새는 음식평론가들이 다수 얼굴을 알리고 있고, 심지어 섹스에 관한 평론가를 자부하는 사람들까지 설쳐댄다 많은 경우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란 이 책에서 루이스가 비판하고 있는 정확히 그것과 일치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어려운 용어와 각종 수치들을 잔뜩 인용하며 내뱉는 그들의 말들은 일견 현상을 보는 전문적인 시각을 제공해주는 듯하지만, 사실 대개는 그냥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과장되게 꾸며대는 것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르면 자신이 꾸며낸 이론이 그 자신을 사로잡아 버리는 경우까지 나타난다.

 

     최근 신경숙 작가의 표절사건을 둘러싸고 일부 평론가들(특히 그녀의 남편을 포함한)이 내놓은 전문가적 비평을 들여다보면 정확하게 이런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어려운 말들과 이론을 잔뜩 사용해 베끼는 것도 예술일 수 있으며, 그 판정은 자신들 같은 전문가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아무 부끄러움 없이 내놓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언론이나 대중매체에 나와 떠드는 그들의 의견은 훨씬 더 파급력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인 양 착각하고, 어느새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생각이나 감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점점 퇴보해버리고 있는 듯하고.

 

 

     책의 내용 중 문학적인 사람과 비문학적인 사람을 대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서자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문학적 운율과 같은 감각이 떨어지며, 과도하게 의미를 이끌어 내거나 부여하려는 태도 등이 루이스가 꼽는 전형적인 비문학적인 사람의 특징인데, 의외로 책 많이 읽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관찰되는 걸 보면 재미있다.(사실 가끔은 내 모습이기도 하다)

 

     꼭 평론과 관련되지 않았더라도, (특히 문학작품)을 읽는 자신의 자세를 점검해 보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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