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밤 믿음의 글들 322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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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요약 。。。。。。。

 

     루이스가 생의 후반기(여기에 실린 글은 모두 1955년에서 1959년 사이에 쓰였다)에 썼던 일곱 편의 글들을 엮었다. 책 제목인 세상의 마지막 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의심에 관한 대답을 담은 마지막 글의 제목에서 따왔는데, 사실 나머지 글들에서도 이런 종류의 의심에 대한 설명과 대답이 한 축을 이룬다.

 

     이 책의 다른 한 축은 당시 사회상에 관한 비평이다. 루이스는 당시 소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패거리문화의 천박함, 교육과 직업(), 개발 이면에 감춰진 착취의 역사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고발한다.

 

 

2. 감상평 。。。。。。。

 

     확실히 만년에 쓴 글들이기 때문일까. 각각의 글이 실제 쓰인 연도를 알기 전에도, 이전에 읽었던 글들과는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논리의 틀은 좀 더 분명하게 보이고, 무성한 나무처럼 뻗어나가던 설명들은 좀 더 정돈되었다. 덕분에 짧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문제의 본질까지 깊숙이 들어가면서도 두루뭉술하지 않은 결론까지 이끌어 내는, 탁월한 글을 볼 수 있다.

 

 

     루이스는 기도의 본질을 신적 인격에 대한 요청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기도응답의 비밀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인격체일진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요령을 생각한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일까. 소위 기복신앙은 이 관점에서 보면 인격적인 하나님을 부정하는 불신앙과 다름없어 보인다.

 

     기도의 본질은 내가 요청하고 있는 상대에 대한 신뢰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일견 증거와 상관없이 믿는 행위를 지속하는 모습이 결코 비논리적이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루이스는 이 책의 두 번째 글에서 이 부분에 관해 의견을 더한다.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세 편의 글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 대한 루이스의 폭넓은 식견이 돋보이는 부분. 루이스의 글은 이렇게 단지 기독교회만의 성장이 아니라, 좀 더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고민이 빠지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글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제안들이 딱딱하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생기발랄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쓴 글임에도 비유는 살아 있고, 덕분에 재미가 있다.

 

     예컨대 5장인 종교와 우주개발은 외계인의 존재가 기독교 신앙에 발생시킬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룬다. 루이스는 이 안에서 인류가 외계의 순수한 생명체를 오염시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과거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정책을 폈을 때 보였던 범죄들을 상기시킨다. 신학적 논의가 실제 세계에서 벗어난 현학적인 말잔치로 치닫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드는 균형 감각이란 이런 게 아닐까.

 

 

     완숙한 루이스의 신앙적 사고를 만날 수 있는 작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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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꿈속에서 자꾸만 자신과 관계된 불길한 사건을 미리 보는 박자기 선생. 그녀는 곧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영탁과 기면증을 가지고 있으면서 꿈속에서 10분 후의 일을 볼 수 있었던 세윤, 그리고 10초라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민혁 등을 만나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일을 막기 위해 나선다. 그러나 그들이 나설수록 미처 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일은 자꾸만 꼬여간다. 강풀의 동명의 원작 웹툰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

 

 

 

2. 감상평 。。。。。。。

 

     원작 웹툰이 다음(Daum)에 연재되는 동안도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었다. 강풀 웹툰의 특성인 탄탄한 스토리와 특색 있는 캐릭터, 그리고 소재 자체의 독특함 등이 이 작품에도 잘 드러나고 있었기에, 볼만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웹툰과 애니메이션은 분명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면이 있다. 일단 그림체도 달라져야 하고, 캐릭터들은 목소리도 가져야 한다. 여기에 마음먹은 대로 스토리의 분량과 전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웹툰과 달리 제한된 상영 시간 안에 모든 걸 완결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점도 있고.

 

     그런데 이런 애니메이션화 과정에서 추가되어야 했던 대부분의 요소들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림체에는 꽤나 공을 들인 게 보이는데, 그 움직임과 진행이 성우들의 목소리와 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이야기가 충분히 소개되지 못하고 군데군데 잘린 게 확연히 보이는 것도 아쉬운 부분. 감정선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이 정도 스토리와 소재면 실사판으로 제작되어도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좀 마이너일 수밖에 없는 애니메이션을 택한 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특히 점점 발전하고 있는 우리나라 영화제작기술이라면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소재들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질 수 있을 텐데 싶기도 하고.

 

 

     참, 이번에 보면서 새삼스럽게 느꼈던 건, 자살이나 죽음이라는 소재가 좀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주 나왔었구나 하는 부분. 강풀의 그림체로 볼 때는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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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이 문제다.

 

- 조정로, 민주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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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2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자도 같은 말을 했던 걸로 압니다..

예.. 평등하지 않으면 부족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노란가방 2016-02-26 12: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지만, 확실히 이즈음과 같은 수준의 과도한 불평등은 큰일을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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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 상 - 제6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대상 수상작
야마다 무네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애플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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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줄거리 。。。。。。。

 

     인간 불노화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이 바이러스를 몸에 이식하는 시술을 하게 되면 원칙적으로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는 기술이 현실화된 가까운 미래의 일본. 그러나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금방 인구폭발로 모두가 파멸하게 될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입안된 법률이 소위 백년법이다. 위 시술을 받은 사람은 시술 후 100년이 되는 해에 모든 인간으로서의 권한을 박탈당하게 될 거라는 것. 말이 박탈이지 실제로는 사형이나 마찬가지다.

 

     소설은 이런 설정을 배경으로, 백년법을 두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벌이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백년법의 첫 시행을 앞두고 결정을 국민들에게 돌리는 무능한 정치인들의 한편에는 국가를 위해 백방으로 이 법의 시행을 추진하려는 또 다른 이들이 있다. 백년법이 시작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법망을 피해 다니는 소위 거부자들이 나타났고, 국가권력은 이들을 찾아내 제거하러 나선다. 그리고 이 모든 소동 뒤에는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발악하는 추잡한 인물들도 보이고..

 

 

2. 감상평 。。。。。。。

 

     불로불사라는 오랜 꿈이 현실화 된다면 과연 인류는 행복해질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 소설 속에서 일차적으로 당면하는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특히 실업난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 간단한 이치다. 이미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영원히 현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다음 세대들은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되는 것.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신적인 부분이다. 시술로 몸은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발맞추어 정신의 노화는 좀처럼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다. 사회 전체가 그렇게 정신적으로 노쇠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국가적 활력도 떨어지기 마련.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연히 모든 사회 정책은 오로지 현재의 세대를 위해 디자인 되고, 더 이상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단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라는 체제 자체의 위기가 된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은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백년법, 혹은 생존제한법은 이 소설 속 갈등을 일으키는 큰 축이긴 하지만, 그건 일종의 소설적 장치일 뿐이다. 어차피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이 법에 구애받지 않고 있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런 우려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일본사회에 대한 작가의 통찰에서 나온 게 분명하다. 현실 속 일본은 상당히 여러 부분에서 소설 속 일본 공화국의 모습을 빼다 박고 있으니까.

 

     전후 10여 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이어져 온 지독히도 오래된 일당독재, 출산율 저하와 생존율 상승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인구의 고령화, 사회 전반의 활력 실종, 장기적인 경기 침체 등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세대가 나와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소설의 주제는 정확히 현실에 대한 저자의 대책이기도 하다.

 

     소설 속 디스토피아는 단지 일본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상당한 부분에서 일본의 전철을 20년쯤 뒤따라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그 징조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니까. 사회는 급속도로 노령화되고 있고, 전반적인 활력도 떨어지는 게 확연히 보인다.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사회에 희망을 찾지 못하고,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놓지 않기 위해 온갖 방법들을 다 동원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결국 국가는 망한다.

 

 

     소설 속엔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정치인과 관료들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모든 문제를 일거에 끝내버린 건 자연의 힘이었다. 어느 정도 그렇게 끝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살짝 허무한 것도 사실. , ‘국가를 위해 상당수의 국민이 희생될 수 있다는 개념이 좀 우려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술술 잘 읽혔던 책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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