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논쟁 - 사도 바울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질문들
톰 라이트 지음, 최현만 옮김 / 에클레시아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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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 책은 저자가 쓴 훨씬 더 두꺼운 어떤 책(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우리말 번역본은 두 권의 양장본으로 2,313쪽이다)에서 핵심적인 주제들을 엮은 책이다. 저자는 바울의 신학에 관한 몇 가지 대립적인 주장들을 소개하면서, 그가 유대교적 배경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으로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세워가려 하고 있다.

 

 

2. 감상평 。。。。。。。

 

     톰 라이트라는 이름을 듣고 사버린 책이다.(요새 들어 자꾸 저자 이름만으로도 집어 드는 책들이 늘어난다. 뭐 어쩔 수 없는 건가) 게다가 책 제목마저 바울 논쟁이라는, 기독교인이라면 흥미를 끌만한 이름이 아닌가. 다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은 에클레시아북스라는 생소한 출판사 이름이었다.

 

 

     이제까지 읽어왔던 톰 라이트의 책과는 다르게, 이 책은 꽤나 힘들게 책장을 넘겨야 했다. 물론 책 자체는 그리 두껍지 않아서 시간으로만 보면 아주 오래 걸린 건 아니었지만, 같은 페이지를 몇 번씩이나 다시 읽거나 앞으로 넘겨보거나 하면서 책 두께에 비해 좀 많은 노력이 들어간 느낌.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신학 서적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인 톰 라이트가 신학자니까 그가 쓴 책들은 대개 신학서적이다. 하지만 다른 책들은 신학을 담고 있으면서 일반 신자들에게도 읽어볼 만한 내용과 문장들이었다면, (개인적으로 신학자와 일반 신자를 구분하거나, 신학과 신앙 사이에 큰 거리를 두는 걸 선호하지 않음에도) 이 책은 말 그대로 신학자들을 위한 책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난 독서가지 신학자는 아니니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논쟁적 주제들은 그 자체로만 두고 보면 너무 전문적이다. 전문적인 내용이 실제 신앙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가 좀 더 설명됐다면 읽기가 좀 나아졌을지도 모르지만, 책 자체의 짜임새가 그렇게 치밀하지(혹은 친절하지) 못하다. 오히려 각각의 논쟁적 주장들이 맥락과 상관없이 소개되고 있어서 앞선 책을 읽지 않은 상태라면 그 흐름을 잡는 데만도 시간이 꽤나 걸린다.

 

     뭐 책의 구성은 저자의 선택이었겠지만, 번역 부분도 책을 어렵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같은 저자가 쓴 다른 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읽혔으니까.(흥미롭게도 톰 라이트의 책을 많이 펴내는 이 출판사의 번역은 거의 한 사람이 전담하듯 하고 있다)

 

 

     바울에 관한 고전적 이해(그가 완전히 탈유대적이고, 종종 반유대적으로도 보이는 새로운 신앙을 만들어냈다는)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충분히 보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면 꼭 이 책이 아니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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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렸던 리뷰 중에

살림출판사에서 나온 『그리스인 이야기 3』에 실려 있는

오탈자들에 대해 좀 썼습니다.

리뷰를 올리고 나서 출판사에도 좀 고치시라고 리뷰 링크를 보냈더랬죠.


하루만에 바로 답신이 왔고,

지적한 사항은 새판(4쇄 이후)을 찍을 때 교정이 됐고(제껀 2쇄)

또 한 가지는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겠다는 답장이 왔네요.


그런데 메일 말미에 '정중하게'(담당자분의 표현입니다),

오탈자 관련 내용을 리뷰에서 지워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덧붙여져 있어서요.

뭐 이미 고쳐진 오류들이라면 지워도 되겠다 싶기도 하면서,

오탈자는 출판사하고만 얘기해 달라는 부분은 좀 갸우뚱 하네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뷰에 오탈자 관련 내용은 넣으면 안 되는 걸까요?ㅋ

(전 이미 전적이 제법 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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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특별하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그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

 

- 웨인 마틴데일, C. S. 루이스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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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3 -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 그리스인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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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총 3부작 중 마지막 책이다. 1부가 그리스의 형성기를 다루고, 2부가 아테네,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전성기와 그 둘의 충돌로 초래된 쇠퇴기를 다룬다면, 이번 3부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쇠락한 도시국가들을 대체하며 그리스 세계의 맹주로 부상한 마케도니아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마케도니아의 체질개선을 시작한 왕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3)이 그 주인공인데, 역시 분량으로 따지면 알렉산드로스 쪽이 월등히 많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의 결전과 인도 북서부까지 진출했던 그의 정복기, 그리고 그가 남기려고 했던 동서양의 융합 같은 사상이 중심이 된다.

 

 

2. 감상평 。。。。。。。

     사실 필리포스나 알렉산드로스에 관한 내용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싼 돈을 주고(이 책값은 무려 23,000원이다) 책을 사 보게 되는 이유는, 우선은 시오노 나나미라는 이름값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특유의 제국주의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이 종종 드러나고(굳이 고대의 제국과 근대의 제국주의는 성격상 다르다고 어필하면서), 특히 종교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자료들을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로 엮어내는 능력만큼은 수준급이니까.

     사람들의 행동을 단순히 서술하는 것을 넘어, 왜 그런 행동이나 선택을 했는지 합리적으로 추측해 가는 서술을 보는 맛이 있다. 이를테면,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가 과두정으로 넘어간 것은 스파르타의 강요 때문이라기보다는 아테네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민주정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관찰 같은 건 흥미롭지 않은가.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번 책에서는 번역의 문제였는지, 원래 본문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오타로 보이는 본문이 자주 보인다. 스파르타의 반노예 계급을 헤일로타이가 아니라 헬롯이라는 영어식으로 표기하는 건 페리오이코이나 대부분의 용어와 이름을 그리스식으로 쓰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일관성 없는 번역이라 계속 눈에 걸린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편에 서서 싸웠던 그리스 용병대장인 멤논의 부하들을 포로로 잡은 후 멤논의 군대에 들어오라고 했다’(273)는 표현은 명백한 오기다.(멤논의 군대가 아니라 자신의 군대겠지) 알렉산드로스가 ‘315,000명과 함께 아시아로 들어왔다는 문장(278) 역시 35천 명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이고.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가 달아나지 않고 전사했다면 마케도니아 왕조의 마지막 황제로서 명예롭게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366)이라는 설명은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이건 번역 오류인지 원저자의 오기인지 모르겠다) 알렉산드로스가 화려한 복장을 입었다는 비난을 변호하는 문맥에서 전쟁터라면 군장도 여러 장식이 달린 호화로운 것을 걸쳤다’(379)는 문장은 의미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전쟁터라면 입지 않았을이라고 써야 하지 않았을까.

     사실 한길사에서 냈던 로마인 이야기 때에는 이 정도까지 번역이나 교정에 오류는 없었는데,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살림출판사라면 제법 알차고 좋은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인데 말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여정을 이해하는 데는 이 책 한 권이면 정리 끝. 이렇게 그리스의 전성기는 지나버렸다. 로마인 이야기에 비하면 훨씬 적은 분량이지만, 사실 로마가 여느 국가들보다 좀 오래 갔던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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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짬짜미 대회를 꾸미는 협회 부회장에게 한 방 먹이고 제명되어 버린 전직 복서 역기철(마동석). 가족들의 도움으로 한 시골마을 체육교사로 일하기 시작한다. 마을에서 얼마 전 실종된 친구 수연을 찾는 유진(김새론)을 만나지만, 친구가 실종되었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어른들에게 실망한 유진은 기철에게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 어른 중 하나로 여기고 무시하기 급급하다.

 

     그러나 조금씩 유진의 친구 찾기에 관심을 갖게 된 기철. 사건을 감추려고 하는 이들의 배후에 점점 접근하면서 둘은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마동석의 근육은 괜히 있는 게 아니라구!)

 

 

 

 

2. 감상평 。。。。。。。

     잠언의 한 구절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28:12) 그 말처럼 부패한 지역유지와 공생관계에 있는 지역 경찰이 지배하는 마을에서 정의는 자취를 감춘다. 한 소녀가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진실을 찾아가는 이들을 위기로 몰아간다

 

     영화 속에서는 마동석의 완력으로 어지간한 방해물들은 쳐 맞고 나가떨어지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제지당한 방해물들은 큰돈을 들여 구입한 변호사의 힘으로 정의를 찾아 나선 이들을 처벌하는 데 성공하고 만다.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몇 해 전 신안군의 한 섬에서 발각된 염전 노예 사건을 기억한다. 악랄한 염전 주인은 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노예처럼 부렸고, 지역 경찰들은 한패가 되어 도망쳐 나온 피해자를 염전주인에게 돌려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내용들이 밝혀지면서 더 이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나보다 했었는데, 얼마 전 봤던 한 후속기사에서는 여전히 그런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정치인들도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문제제기를 삼가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런 쓰레기들은 어떻게 치워야 할지...

 

 

 

 

     영화가 개봉하고 얼마 후부터 마동석표 영화에 지친다는 식의 기사나 리뷰가 여럿 나왔다. 영화를 보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데, 그게 마동석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의 각본이나 제작이 직접 참여했던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영화에서 지치게 만드는 건 본인은 다 컸다고 생각하면서 미숙한 판단과 행동으로 쉴 새 없이 자신과 자신을 도우려는 교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여고생 유진이라는 인물이었으니까. 혼자 자신만만하게 돌아다니다가 납치가 되거나 죽을 뻔 했으면서도, 별다른 경계심도 없이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는 여고생이라는 캐릭터가 그리 실감나지도 않고.(김새론의 연기는.. 확실히 좀 더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영화는 답답하다. 그런데 그건 캐릭터 쪽 보다는 상황 자체가 그렇다. 그리고 그 해결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간질거림이 꽤나 길게 이어지니 문제. 마동석의 통쾌함도 생각만큼 시원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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