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그 교회의 벽은 투과성 벽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런 벽은 신자와 불신자를 분리하지 않으며,

모든 이를 식탁으로 초대하고, 예수의 말씀을 들어보라고 권하게 한다.

그런 벽은 교파들 사이에,

년과 노인 사이에,

빈자와 부자 사이에,

윤리 문제로 힘겨워하는 이들과 도덕적으로 올바른 이들 사이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인종적·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집단들 사이에 분리 장벽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투과성 벽은 서로 판단하지 않으면서 들어오고 나갈 수 있게 해 준다.

 

- 스캇 맥나이트, 배제의 시대, 포용의 은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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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 전기
조지 M. 마즈던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전기(傳記)란 일반적으로 어떤 유명한 사람, 혹은 기억할 만한 사람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흥미롭게도 사람이 아닌 을 기억하기 위한 책이다. 바로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가 그 주인공. 일단 시도 자체부터가 흥미롭다. C. S. 루이스에 관한 연구서는 다양한 형태와 주제로 나와 있지만, 그의 책 한 권을 통시적으로 다루는 시도는 (우리말로 나온 것으로는) 처음인 듯하다. 비슷한 시도로는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다양한 해설서와 연구서들이 있을 텐데, 그 쪽은 통시성을 붙잡지는 않았으니까.

     1952년 출판된 순전한 기독교(사실 그에 앞서 1942~44년에 출판된 세 권을 합본한 것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교파에 속한 기독교인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책이다. 이 책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받아들일 만한(나아가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설명하기 위해 쓰였고, 때문에 특정한 교파에 치우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성공회적 배경은 남아 있긴 하다) 가톨릭에서 정교회, 개신교의 여러 교파에 그의 팬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루이스를 자신의 편으로 여긴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책은 순전한 기독교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들을 차분히 설명하고 그에 대한 반응들, 그 책이 가지는 특징들, 그리고 책에 대한 비판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물론 여러 책들에 순전한 기독교에 관한 언급과 비평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게 흩어진 내용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을 이 책은 줄여준다. 아니, 단순히 모음집이 아니라, 오랫동안 루이스의 삶과 저작을 연구한 저자의 노력이 담겨 있는 좋은 연구서다. 순전한 기독교를 좀 더 자세히 읽기 원한다면 꼭 한 번 봐야 할 책.

     책 뒷부분에 실려 있는 부록 중에는 루이스 작품 연표들이 일목요연하게 실려 있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책들이 어떤 시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다. 그런데 우리말로 출판된 책들의 이름과 대조하다가 한 권이 빠진 것을 발견했다. (초판 기준으로) 1941년에 나왔던 영광의 무게가 그것. 혹시 중판을 내게 된다면 추가되었으면 한다.

그는 탄탄한 논증을 펼치기 시작하지만 언제나 청취자를 작은 보폭으로 한 걸음씩 인도했다. 각 걸음마다 논리가 있지만, 그것은 흔히 철학자의 엄밀한 증명이 아니라 경험에 호소하는 설득 논리였다. - P53

"말씀하시는 두 가지 견해(최고라는 견해와 경멸할 가치도 없다는 견해)가 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제가 다룬 소재에 대해서라면 오래된 이야기 아닙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하거나 미워합니다." - P80

루이스에 따르면, 그가 방송을 하기 전 "믿지 않는 수많은 동포들은 기독교를 부흥사들이 제시하는 대단히 감정적인 형태로 접하거나 교양 수준이 대단히 높은 성직자들이 늘어놓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만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대다수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했기에 그는 "번역자"가 되는 임무를 감당하여 기독교 교리를 일상어로 옮겼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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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려서 마음 아픈 것은

손에서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오야마 준코, 고양이는 안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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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인생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정문정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에 들어가면 재미있는 통계 그래프가 있다. 연령별, 성별로 나누어 구매자를 표시하는 건데, 이 책의 경우 여성과 남성 사이에 극단적인 차이가 보인다. 20~40대 여성이 구매자의 대부분(74%).

 

 

     또 한 가지 포인트는 평점인데, 7.2점이면 나름 괜찮은 축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또 별 1개짜리도 적지 않다(17.8%). 이 부분은 성별 표시가 되어 있지 않긴 하지만 아마도 남성들의 평점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반되는 평가의 원인은 아마도 작가가 여성, 그것도 좀 세 보이는 여성(혹은 페미니스트?)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리뷰라든지 100자평을 보면 줄줄이 1점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면 대략 짐작이 가니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약간 씁쓸하다. 물론 책의 내용이 제목만큼의 명쾌함을 주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1점을 받을 만한(내 기준에 1점이란 전혀 읽을 만한 필요가 없는 책을 말한다) 건 아니니까. 사회적 약자로, 혹은 을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나쁘지 않고, 충분히 공감이 가는 문구도 보인다.

      물론 특정한 사안에 대한 관점이 살짝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이건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책 자체에 특별히 공격적이라거나 극단적인 관점이 내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사는 원래 멘토가 아니며, 수많은 고민을 하는 인간 중 한 명 일 뿐이니, 그의 자존심을 자극하지 말고 감정을 가라앉힌 후 소통을 시도하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기억이 난다.

      이런 식의 평점테러는 정상적인 독자들의 책 선택을 방해하는 행위다.(당연히 과장된 찬사 일색의 평가들과 별 5개 남발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지만..) 책에 대한 평가가 주관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건 받아들여야겠지만, 소위 집단지성을 좀 발휘해보자고! 집단 난장판 말고.

 

      책 자체가 깊이가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제목에서 언급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으로 소개되는 내용이 썩 충분치 않다. 대체로 무시하거나 잘 돌려서 반박해보라는 건데, 그게 통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사실 문제도 되지 않았을 내용이 아닐까. 대개는 그런 식의 소극적인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문제. 하지만 어떤 100자평에 실려 있는 말처럼 비록 우리가 작가의 말처럼 당당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긴 하더라도, 누군가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응원의 마음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다.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자신을 잘 살피며 소중히 여기라는 조언은 누가 하더라도 기억해 둘 만하다. 관계에 관한 고민은 어느 한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개인적으론 책 한 권 읽고 기억해 둘만한 문장 몇 개 정도를 건져냈다면 그리 나쁜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게다가 책 자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라서 금세 읽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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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우 2021-09-10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소한 거짓 근거로 선동은 하면 안되죠ㅎㅎ 소수자의 폭력은 정당화된답니까?

노란가방 2021-09-10 17:35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신지?
 
내 주님 걸으신 그 길 - 톰 라이트와 떠나는 성지순례
톰 라이트 지음, 강선규 옮김 / 살림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복음주의권 개신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에게 순례란 살짝 껄끄러운 느낌을 준다. 가장 큰 이유는 중세 말 교회가 순례에 일종의 공로적 가치를 부여했고, 개혁자들이 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개혁자들의 후예인 우리가 어떻게 다시 순례의 공로를 탐하겠는가.

     물론 저자인 톰 라이트 역시 우리로 하여금 다시 중세적 순례를 하자고 재촉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순례에 새로운 의미창조 세계의 선함과 은혜가 전달되는 신비적인 매개체로서의 가치를 제안한다. 이 논지는 서문에 담겨 있는데, 사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주장이다.

     은혜의 수단보다 은혜 자체에 집중하자는 복음주의 개신교의 가르침 자체는 옳다. 다만 인간은 현실 세계에 발을 딛고 있고, 그 현실의 물질이 인간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준다는 점을 놓쳐버린다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물질보다 은혜에 깊이 천착한다는 이들이 예배당 건물에는 또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걸 보면(근대 이후 건축된 세계의 크고 아름답게 예배당은 대개 복음주의자들의 솜씨다) 말이다.

 

     1장부터 9장까지로 이어지는 본문은 예수의 공생애의 주요 지점들을 선택해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묘사하고 거기에 담긴 신학적, 신앙적 함의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1장의 경우는 예외로 다메섹에 관한 묵상인데, 우리는 예수께서 그곳에 가셨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역사적, 성경적 해석은 물론 알레고리적 해석도 곁들여지는데, 단지 복음서에 등장하는 내용뿐 아니라 구약의 여러 관련 내용들까지 풍성하게 담겨 있다.


      팔레스타인의 공생애 로드를 따라가면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 또한 그분의 길을 따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요단에서의 세례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광야에서 들리는 유혹의 목소리를 물리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예루살렘의 왕좌에 새로운 왕이 앉으셨음을 믿고 선포해야 한다. 이 선포는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용서하며 불확실해 보이는 세상의 바다로 나아감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여정에 용기를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잘 구성된 순서와 내용.

 

     이 내용 못지않게 후기에 해당하는 부분 또한 인상적이다. 서두에 언급한 이유와 함께, 우리가 성지 순례에 약간의 불편한 마음을 갖는 이유는 오늘날 그 지역이 갖는 독특한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20세기 초중반 팔레스타인을 거점으로 건국된 현대 이스라엘은 그 이전 오랫동안 살았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추방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월등한 군사력으로 그 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순례라는 이름으로 그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혹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하지만 또한 2천년에 걸친 강제적 이산과 고난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 또한 가볍게 무시해버릴 수 없는 일이다.

 

     자는 둘 중 어느 편을 드는 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는 듯하다. 우선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은 구약 선지자들의 이스라엘 회복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유일무이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유대인(혹은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점이다. 현대 이스라엘에 대한 무비판적인 지지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학대를 모른 척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정치적인 견해를 표시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그 땅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 (실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힘도 없다)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는 그 탄식이 가득한 땅에 기도하러 가야 한다. 우리는 십자군이 아닌 순례자로서 가는 것이니까.

     팔레스타인의 여러 지역을 둘러보는 성지 순례를 위한 준비과정이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 (근데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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