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엄연한 사유재산이다

불행도 재산이므로 버리지 않고 단단히 간직해둔다면 

언젠가 반드시 큰 힘이 되어 나를 구원한다.


- 소노 아야코약간의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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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2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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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편의 첫 번째 중심인물은 드루수스다지난 권에서 카이피오 가문과의 결혼 때문에 동생과 갈등을 빚었던 그는동생이 죽고 나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인다그가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건 이탈리아 반도 안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당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내의 여러 도시들에 차등적인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었다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등급이 이탈리아인들에게 부여되었는데그들에게는 참정권은 없는 대신 각종 세금과 십 분의 일세그리도 로마가 전쟁에 나갈 경우 병력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만이 부여되었다이런 불만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는데그들의 대표를 중앙에 보낼 수 없었던 탓에 문제 해결은 요원했다.


     드루수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에게 호민관이 되어 시민권을 확대하는 법률을 입안하려 한다그러나 어느 시대든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걸 인색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는 법흥미로운 건 가진 것도 별로 없었던 하층민들조차 이에 반대했다는 점이다.


     사실 시민권이라는 건 혈통과 관계가 없다.(그리고 혈통에 대한 집착이라는 게 얼마나 허구적인 고집인지는 과학적 분석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출생을 통해 시민권을 얻은 이들은 그 사회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거나심지어 해를 끼치더라도(예컨대 범죄자들도 국적박탈을 당하지는 않는다개인적으로는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 권리를 누린다그렇다면 사회에 적절한 기여를 하는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도 아니다.


     최근에는 인도적인 이유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들도 있다이른바 난민들인데유럽 등지에서는 (그리고 아마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피부에 와 닿는 문제다다만 이 부분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경우(사회에 대한 기여)와는 달라서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인권과 시민권은 다른 개념이고시민권의 부여 대상은 그 사회가 결정하는 것이 보다 이치에 맞다고 본다어떻게 위기에 처한 사람의 인권을 적절히 보호하면서 사회의 역량을 해치지 않을 수 있을지 좀 더 실제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드루수스의 암살로 더 이상 합법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이탈리아 사람들은 동맹시 전쟁이라고 불리는 반로마 전쟁을 시작한다그리고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 술라였다이제까지는 마리우스라는 큰 그림자 안에서 역할을 담당하던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전쟁의 과정에서 작가는 로마의 지배층들이 가지고 있는 잔인성을 생생하게 드러낸다물론 잔인성의 측면에서는 그 반대편 이탈리아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산 채로 사람을 뜯어 죽이거나한 도시의 남자들을 모두 학살하고여자들을 전리품으로 챙기는 식의 행동은 르네상스 시기의 문인들이 찬양해 마지않던 고대의 잔혹한 이면이다특히 모든 것을 계약의 차원에서만 이해했던 로마인들은 이런 행위에 대해 어떤 양심의 가책이나 도덕적 갈등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술라는 첫 번째 책에서부터 보여주었던 소시오패스적인 성격을 이번에도 여실히 보여준다그는 자신보다 누군가 위에 서는 것을 못 참고 어떻게든 끌어내리겠다고 거듭 다짐하는 그의 모습은후에 독재관이 되어 엄청난 사람들을 숙청하게 될 미래를 엿보게 되는 듯하다이번 책에서 그는 로마의 최고 훈장인 풀잎관을 마침내 머리에 쓰는데앞으로 능력 있는 소시오패스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게 될지 불안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한뇌졸중으로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마리우스와그런 마리우스를 곁에서 간호하며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카이사르(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아직 아무 것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하지만훗날 로마의 정체를 변화시킬 그의 활약이 기대되는 모습들이 틈틈이 발견된다.

 





     결국 동맹시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나지만시민권은 점차 이탈리아인들에게도 확대된다이렇게 될 거면 애초에 왜 전쟁까지 벌어지도록 방치했나 싶기도 하지만인간이란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주기 전까지는 뻔히 보이는 현실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작가의 특성상 전장에서 칼과 창을 맞대고 벌어지는 싸움보다 원로원 회의장과 광장그리고 개인 저택 등에서 말로 벌이는 싸움을 좀 더 잘 묘사하고 있으니앞으로 벌어진 이야기에서도 기존에 알았던 내용들과 조금은 다른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된다.(마리우스가 등장해 벌이는 정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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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이 각각 구별된 영역을 차지한다는 개념은 

고대 희랍과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후 산업혁명과 빅토리아 왕조 때에 인기를 얻었다

핵심 관념인즉 남성은 정부와 기업 등을 포함하는 

공공의 영역을 점유하고

여성은 자녀 양육과 가정 관리 및 교육이 전부인 

가정의 영역을 점유한다는 것이다

 (중략) 

불행하게도 이런 생각은 성경과 거의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해 빅토리아 왕조를 거쳐 

현대의 성경적 가부장제로 이어진 관념인즉

여성은 본성상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이다.


- 송인규 외 4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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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시대와 한국교회의 과제 - 한국교회, 공교회성과 공동체서 그리고 공공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망한다
이도영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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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이끌려서 손에 든 책이다코로나19는 지난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했고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만 입었지만그래도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1년이나 이 사태를 겪으면서 나름 대응체제를 마련하고는 있지만충분한 대응여력이 없는 자영업자들 사이에는 피해가 누적되고만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대응능력이 부족한 업장(?)들 중 하나가 바로 교회다!(물론 교회는 단순히 수익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은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1년이 넘어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 없이, ‘곧 나아지겠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회로만 돌리고 있다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고최근에는 짜증을 부리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기도 하다.(물론 그 마음이야 알겠지만어디 교회들만 고통을 감내하고 있던가.)

 





     책은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사회적인 변화를 분석하고교회가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그리고 교회는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해 나가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1장에서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을 해석하는 기독교계의 관점이 지나치게 신정론에 치우쳐져 있다고 말한다신정론이란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신앙적 고백을현실 속 악의 파괴성 앞에서도 여전히 유지시키기 위한 신학적 작업이다그러나 이건 교회 안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내밀 수 있는 답변이지교회 밖 사람들에게 할 말은 아니다. C. S. 루이스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번역작업이 필요한 건데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이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저자는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신정론이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사실 세상이 욕하는 건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다신정론을 강조하며 하나님을 변호하려고 애쓰는 건 애초에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우리가 이 상황에서 말 도 안 되는 정치논리에 편승해 투덜대는 대신 제대로 희망을 보여주었다면 교회를 향한 눈이 이렇게 악화되었을까?


     2장부터 4장은 각각 성부성자성령을 각각 정의와 생태평화에 대응시켜 이 시대가 제기하는 과제에 어떻게 교회가 대답해야 하는가를 제안하는데문제분석과 인식에 좀 더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고그에 대한 해결책 부분은 조금 빈약한 느낌이다분석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책이나 신문을 찾아본 사람들은 충분히 알만한 내용들인지라 새로움도 덜하다.


     이데올로기의 전환(우에서 좌로의 가치 이동)을 다루는 5장으로 넘어오면 사회분석서로서의 이 책의 정체성이 좀 더 두드러진다개인적으로는 교회가 이런 부분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2~5장에서 분석하고 있는 문제들이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인해서 새롭게 나타난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이건 책의 내용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내용은 적절하다책 제목에서 지목하고 있는 주제가 책 내용에서 잘 풀려나오고 있는가의 차원이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직접 다루고 있는 6장은 약간 다르다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해진 불안을 다루면서초기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파라볼로이”, 즉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로 정의한 저자는오늘날 교회에게 필요한 모습이 이것이라고 말한다동시에 저자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서 시행했던 다양한 노력들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좋은 도전을 받게 된다.

 





     덧셈과 뺄셈을 배우지 않고는 곱셈과 나눗셈을 배울 수 없다.(C. S. 루이스의 책에서 본 비유다). 하나의 단계를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는 말이다이 책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한국교회의 과제들비록 그것이 꼭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코로나19 때문에 그 문제점이 더욱 커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그리고 이 과제들을 적절히 풀어내지 못한다면우리는 좀처럼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할 것 같다끊임없는 과거로의 회귀와 이로 인한 정체그리고 퇴보라는 교과서적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여기저기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고민들을 열심히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점점 많이 발견된다는 점이다당장 내 동기들 중에서도 그런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까그들의 고민과 작은 실천에 박수를 보낸다좀 더 많은 이들이 이 고민과 문제풀이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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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에 개봉한이민자 혐오를 다룬 영화다만 영화는 드라마가 아니라 가상의 미래를 통해 이방인 혐오의 민낯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영화 속 세상에서는 이민자들을 도시 외곽에 떨어뜨려 놓고자력으로 도시 중앙의 통신탑에 도착하면 영주권을 주는 게임이 합법화 된 세상이다이 과정에서 이민자들의 길을 막는 클럽들이 존재하고 이들에게는 게임에 참여한 이들을 죽여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무려 TV쇼로 제작되는 이 게임에 우연히 말려들어간 주인공 조(마티스 란드베어)공격을 당하던 이민자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사고로 클럽원들 중 하나를 죽이고 만다게임에 참여한 이민자들을 도와주면 그 역시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법 때문에 그 자신도 이민자들과 함께 달리게 된 조그를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조차 믿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감독은 이 과정에서 이민자들을 공격하는 이들의 모습을 매우 한심하게 묘사한다사춘기 반항아들처럼 머리를 염색하고 자기만의 스웨그에 빠져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영화 초반 깝죽대다가 조의 한 주먹을 맞고 쓰러져 그대로 죽은 조직원의 모습은 그 백미.


     마스크 하나만 쓰면 갑자기 없던 용기도 어디서 솟아나는 건지 조직원들은 대부분 뭔가를 뒤집어쓰고 있는데이 동네의 마스크에 관한 인식은 이런 것이었나 싶은 깨달음이 새삼 든다.(그래서 그렇게 마스크를 안 쓰고 뻗댔던 건가.)


     이들은 혐오로 먹고 사는 종족이었다영화 속에서는 이들의 활동 대가로 어떤 금전적인 보상을 얻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그들은 TV쇼의 인기인들이었고그들과 비슷하게 머리가 빈 사람들의 추종을 받기도 한다영화를 보는 내내 이 모든 것들에서 구역질이 느껴졌다우리 사회에도 이와 비슷하게 혐오로 먹고 사는 이종족들이 있지 않던가.

 





     주제와는 별개로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주인공 캐릭터의 떨어지는 현실인식/대응 능력 때문이었는데영화 설정 상 이미 이런 게임이 TV쇼까지 방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좀처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뻔히 안 될 것은 여자친구에게 연락하게 휴대폰 좀 달라는 소리는 왜 그렇게 반복하는지.


     게임에 참여한 이후에도 멍 때리며 서 있거나공격하는 상대에게도 시종일관 수동적으로 대응할 뿐인 그의 모습 역시 좀처럼 몰입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여기에 감독은 영화의 결말을 최악으로 그려냈는데안 그래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은 작품이 이 결말 때문에 1점을 더 잃었다어떤 메시지도감동도심지어 드라마도 없는 허무한 결말.

 






     수십 년 동안 세계화를 추진해 왔던 국제사회의 여러 나라들은, 2000년 대 들어서면서 금융위기와 분쟁으로 인한 난민사태그리고 최근의 전염병으로 인해 점점 고립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지중해만 건너면 바로 유럽인 아프리카에서의 이민자들은 물론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가면서 이 문제를 두고 갈등이 많이 일어났었다.


     우리나라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국가다. 1년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사례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이고여론도 굉장히 경직되게 반응한다중앙 정치계에서도 난민들에 대한 혐오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고온라인상에서는 아주 저열하고 끔찍한 발언들이 일상적으로 널려있다. ‘반 만년 이어 온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는 진작 거짓으로 밝혀졌지만내 삶이 각박해서인지 좀처럼 외부자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영화는 우리의 이런 마음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과장되게 보여준다우리는 그저 외면했을 뿐이고욕설을 한 번 내뱉었을 뿐인데 하는 게실제로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물론 이민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하지만 세상에 간단하지 않은 문제가 어디 한둘인가갈수록 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이민자들은 언젠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일 텐데이제는 조금씩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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