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사토 타케루 감독, 코이즈미 노리히로 외 출연 / 인조인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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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친구들과 밴드 활동을 하던 아키(사토 타케루)는 우연히 캐스팅되어 데뷔를 앞두고는 충동적으로 탈퇴를 하기로 한다상업성에 찌든 프로듀서의 방향과 순수한 음악을 추구하는 자신의 성향이 맞지 않았기 때문어느 날 우연히 만난 소녀 리코(오오하라 사쿠라코)와 충동적인 연애를 시작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숨긴 상태였고리코는 그런 그를 순수하게 믿고 지켜주겠다고 장담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리코 또한 아키의 프로듀서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이 되고이 과정에서 아키의 신분이 드러나고둘 사이의 스캔들이 나고이를 덮기 위한 기획 스캔들을 일으키고 하는 복잡한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결국 거리가 멀어지지만결국 재회를 한다는 이야기.

 





     우리나라 일일드라마를 보는 듯잡다한 소재들을 마구잡이로 늘어놓은 스토리만 보면 그다지 눈에 띄는 부분이 없다일본 드라마 특유의 감성 위에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들의 허세 잔뜩 낀 아이돌 연기(이건 한국이나 일본이나)는 볼 때마다 오글거리고어설픈 개연성에 딱히 공감이 되는 면도 적다.


     이 폐허 속에서 그래도 유독 빛나는 건여주인공인 오오하라 사쿠라코의 청량한 목소리 뿐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서 캐스팅되어 첫 작품에 출연한 신인 치고는 꽤 준수하다차라리 스토리보다는 감성으로또 사건보다는 노래 가사에 집중하는 게 나을 듯한 영화.



 


 

     남녀 두 주인공이 선했던 부분이 그나마 다행이었다자주 말하는 거지만현실이 하도 엉망인지라 영화 속에서까지 비열한 일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니까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 마지막으로 보이는 진짜 결말도 (조금 오그라들지만마음에 든다.(하지만 그들은 이후 얼마나 많이 다투고토라지고실망하고화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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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 : 시대 논평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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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는 영문학자다그 중에서도 중세 문학을 전공했고그래서 그의 글에서는 오래된 이야기들이 배경이 될 때가 많다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우리가 오래 전 일이라고 그 효용성을 전혀 믿지 않는 케케묵은 이야기들이 살아나서오늘 우리에게 모종의 교훈과 지도가 될 때가 수두룩하다.


     물론 이번 책에서도 루이스의 그런 배경들은 여전히 기능한다가장 첫 글인 기사도의 필요성에서는 중세 유럽에서 통용되던 기사도 정신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그리고 꼭 직접적인 소재가 등장하지 않더라도많은 자리에서 예스러움과 역사 속 사건들에 관한 이해가 깔려 있다하지만 이번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이 때의 지금이란 루이스가 살았던 20세기 중반을 가리킨다.)

 


     책에는 루이스 당대의 중요한 논점들이 소개되고이에 대한 루이스의 관점이 제시된다예를 들면 자주 등장하는 논점 중 하나는 평등이다정확히는 평등주의로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루이스는 이 사고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과 그 한계를 날카롭게 포착한다당시에는 민주적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에도 평등주의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는데루이스는 이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를 한다그건 타락한 인간사회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정장치일 뿐이고정치적 영역을 벗어나서 힘을 쓰려고 한다면 더 많은 것이 망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반 세기가 더 지난 시대에 관한 이야기지만여전히 오늘에도 힘을 발휘한다왕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이 금지된 곳에서는 사람들이 백만장자운동선수영화배우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는 그의 지적은 정말로 옳다대학과 관련한 교육 계획에 필요한 두 가지 고려사항대학에서 요구하는 입학 기준에 근거한 교과과정을 만듦으로써대학에 가지 않을 학생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 대학의 연구 형태가 좌우되어 대학의 자율성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놈의 대입시험’ 때문에 여전히 온 나라가 들썩이는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처방이 아닐까.

 


     열아홉 개의 이야기마다 독자를 자극하는 지점들이 별처럼 박혀 있다물론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역사적 배경에 관한 지식혹은 글 사이에서 그것을 이해해 낼 수 있는 독해력이 필요하긴 하지만그 작은 문턱을 넘으면 풍성한 통찰을 마주할 수 있으니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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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란가방 2021-05-01 23: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도 관심 부탁드립니다 ^^
 




     정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급격히 바뀐 조선의 정치지형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배를 가게 된 정씨 삼형제그 삼형제의 막내가 정약용이고맏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정약전이다가난한 흑산도로 귀향을 온 약전(설경구)섬사람들은 그래도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그가 무슨 죄를 지어 왔다고 해도자신들에게는 손님이라는 생각.


     섬에는 물질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혼자 글공부를 하고 있는 청년 창대(변요한)가 있었다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배움에 관한 열정은 식지 않았던 그를 약전은 눈 여겨 보기 시작했고결국 서로가 가진 지식을 교환하는 관계를 맺게 된다약전은 창대에게 글공부를 가르치고창대는 약전에게 섬의 생태를 가르쳐주어 후에 자산어보라고 불리는 일종의 생태백과를 편찬할 수 있도록 돕기로 한 것.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영화는 뭔가 대단한 사건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특별할 것 없는 삶의 이야기를 그려낸다중앙 정치무대와는 멀리 떨어진 섬에서수탈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지만그래도 함께 사는 법을 아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덕분에 영화는 시종일관 평안함을 준다사실 좁은 섬 안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의 경우수가 매우 적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편안해서는 조금 부족하다 싶었는지감독은 창대를 섬 밖으로 내 보낸다이 과정에서 스승인 약전과의 사이에도 약간의 충돌이 생기지만사실 이 정도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정도다다구나 창대의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설정이었으니까.


     감독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인물들이 처한 시대상황에 대한 쓴소리를 담아낸다어린 소나무부터 뽑아내는 가거댁의 모습이나환곡을 위해 빌려주는 곡식에 모래를 섞는 모습들죽은 지 수년이나 된 사람과 갓 태어난 아이에게도 매겨지는 군포 등우리가 흔히 국사시간에 배웠던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부패가 극에 달한 세도정치는 말단에서부터 백성들의 삶을 말려죽이고 있었지만윗자리에 앉은 인간들은 학자연하며 성리학의 도나 운운하며 정적들을 제거하기에 바빴으니...(또 그런 성리학지상주의가 창대 같은 민초들에게까지 퍼져있었으니...)


     입만 열면 국민국민 하면서 정작 자기들의 이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오늘의 정치인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그러니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이들까지 비트코인에 빠져있고주식으로 대박을 노리겠다는 투기꾼의 길을 어쭙잖게 따라하는 걸 보면서 이상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난 왜 사람들이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끔찍한 결과를 보고 놀라는 척을 하는지 모르겠다.)

 





     영화 전체를 흑백으로 제작해 독특한 느낌을 준다앞서 같은 감독의 동주와는 또 다른 느낌영화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이런 영화는 그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짙게 묻어나는 사람 냄새가 더 크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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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반성이 드문 것은 탈세자들만이 보이는 특징은 아니다

다른 엘리트들의 위법 행위에서 보듯

엘리트들 사이의 일반적인 규칙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미하엘 하르트만엘리트 제국의 몰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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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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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말하고 있는 착각은 정확히 말하면 능력주의는 언제나 공정하다는 생각을 말한다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 신화적 주문이 실은 잘못되어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지적한다언뜻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다능력이 있는 사람이그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일까?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는 것은 대학 입시와 관련된 문제다매년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자살하도록 만드는 우리나라의 입시지옥은 잘 알고 있었지만최근에는 미국도 관련 문제가 점점 부각되는 듯하다몇 해 전에는 유명한 대학교들과 연관된 대규모 입시부정사태가 적발되기도 했다니어떤 학생이 어떤 대학에 들어가는 자격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할까간단히 생각하면 공정한 시험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이 입학하는 게 가장 공정해 보인다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의 수학능력성적은 부모의 경제력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부모의 재력이 아이의 대학입학성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이해가 되는 이야기다꼭 불법적인 입시부정이 아니라도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고과외를 시키고입시에 도움이 되는 각종 경험과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는 데는 돈이 필요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이 대입에 유리한 자리를 얻게 된다면그건 공정한 걸까이런 현실이 장기적으로 계층의 고착화를 초래할 게 분명하다는 점은 뒤로 하고라도흔히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개인의 실력에 달린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책에서 지적하는 능력주의의 또 다른 문제는그것이 성공한 이들에게는 교만을 실패한 이들에게는 굴욕을 안겨주어 결국 공동체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신분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그가 타고난 행운 때문이다하지만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그 자신의 노력으로 취득한 능력 때문이다(물론 실제론 앞서 언급했듯 거기엔 개인의 능력 이외의 것들이 개입되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할 이유도필요도 없다.


     반면 능력주의 사회에서 실패한 이들은 게으르고무책임한 인물들로 치부된다. “공부 못하면 저렇게 배달이나 한다는 식의 멍청한 조롱도 이런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이다문제는 그것이 절반의 사실만을 다룬 의견이라는 것과이런 식의 무시와 조롱이 반복되면극단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게 되고나아가 공동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이다.(이 주장은 책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실제로 세계는 트럼프(미국)나 르 펜(프랑스같은 포퓰리스트들과 브렉시트(영국같은 정책을 지지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저자는 여기에 오랫동안 능력주의에 의해 무시받아 왔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분노가 깔려 있다고 본다한 번 분열된 세상은 쉽게 다시 하나가 되기 어려운 법이다이들의 분노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누가 알게 될까.

 





     그럼 대안은 무엇일까저자는 서문에서 언급한 학력주의의 타파를 그 시작으로 본다오늘날 학력주의는 능력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다특히 대학 입학과 관련된 절차는 문제의 핵심이다부모의 재력이 아이의 점수와 상관관계가 있으며오랫동안 극심한 수험경쟁에 시달린 학생들이 겪는 일종의 트라우마 문제도 심각하다여기에 학생시절부터 능력주의에 물든 그들의 태도는 사회를 찢어놓을 뿐이다.


     저자는 여기에 아주 흥미로운 해법을 제안한다현재처럼 대학입학시험에서 거둔 성적 순으로 입학자를 자를 것이 아니라지원한 학생들 중 일정한 자격이 되지 않는 인원들만 탈락시킨 후 나머지 인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제비뽑기를 통해 입학자를 선정하자는 것입학성적이 우수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인재라고 할 수는 없고최소한의 학업능력을 가진 이들 중에서 뽑았기 때문에 충분히 학업을 지속할 수 있다애초에 시험 성적 하나로 인재여부를 파악하는 것 자체도 무리였으니까.(문제 하나를 더 맞추고 못 맞추고가 그렇게 중요할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직 경제적 지표로 사람과 자격을 평가하는 현재의 기준관점을 변화시키는 일이다일의 존엄성을 회복하고그가 공동체에 얼마나 유익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예컨대 GDP 수치는 상승시키나 실제로는 어떤 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금융업계(투기종사자들의 막대한 수입에는 보다 적극적인 세금을 매김으로써 그 사회적 인정의 수준을 낮추는 식의 정책도 가능하다.

 





     물론 이런 식의 일은 엄청난 저항을 받을 게 뻔하고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도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전 국민이 빚을 내서 주식투기에 빠져 있거나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지 못해 안달하는 절망적인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1점이라도 내가 얻은 것이라고 여기며 악착같이 싸우려는 사람들에게서 과연 이런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까.


     하지만 뭔가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받은 것에 감사하고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수고를 인정함으로써 사회적 연대를 이뤄내지 못한다면결국 다 같이 침몰하게 될 뿐이다능력주의는 공정하지 않다애초에 우리가 가진 능력의 대부분(부모의 재산과 건강심지어 지능도)은 우리의 선택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얻은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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