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 문학클럽 - 더 옥스퍼드 잉클링스
콜린 듀리에즈 지음, 박은영 옮김 / 이답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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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에 대해 좀 깊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그가 멤버로 활동했던 클럽인 잉클링즈에 대해서도 들어보게 될 것이다옥스퍼드에서 교수직을 맡은 후비슷한 취향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결성한 조금은 비정형적이고 덜 공식적인 모임이다.


모임에서는 서로의 미발표 원고를 읽거나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했다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거기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의 면면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거루이스만 해도 옥스퍼드의 영문학 교수였고또 다른 주요참가자였던 톨킨 역시 옥스퍼드 교수였다당장 이 두 사람이 판 책만 해도 몇 백만 권은 되지 않을까그 외에도 여러 명의 작가들과 비평가학위소지자들이 모였으니보통의 잡담만 늘어놓는 자리는 아니었을 게다.



이 책은 그 잉클링즈의 역사와 성격을 추적하는 이야기다루이스 연구자인 콜린 듀리에즈(바로 얼마 전에 그가 쓴 나니아 연대기 해설집을 읽기도 했다)모임의 주요 멤버들을 루이스가 만나는 과정그들의 성격모임의 진행 등 다양한 부분을 짚고 있다루이스의 팬이라면 즐거워할 만한 수집물(?).


책은 전체적으로 시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한 모임의 역사를 살피는 거니까 자연스러운 구성인 듯도 하지만애초에 모임 자체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고 해산된 게 아닌데다가저자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또 그게(시간의 선후관계잘 눈에 들오지 않기도 한다뭐 그냥 루이스의 다양한 면모를 보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면 뭐가 문제랴.



잉클링즈와 같은 모임이그렇게 정기적으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고서로의 작업물을 보여주면서 냉철하지만 격의 없는 비평을 주고받고 하는 시간이 얼마나 큰 유익이었을까 하는 부러움이 생긴다.


확실히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이 모임에서그리고 루이스의 격려가 완결을 맺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고루이스의 경우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생각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이런 모임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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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영화는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벌어진 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주인공 석진(고수)은 마술사로우연히 만난 여인 하연(임화영)과 함께 공연을 하다가 결국 결혼에 이른다어느 날 하연이 숨기고 있던 비밀(지폐 동판)을 발견하고그녀를 쫓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다결국 살해되고 만 아내의 복수를 위해사건의 원흉인 남도진(김주혁)을 고생 끝에 찾아냈고그의 운전기사로 취직하며 틈을 노리다 복수에 나선다는 스토리.


복수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재도 없을 것 같다또 다른 중요한 동기는 사랑인데아무래도 이쪽은 조금 더 감정적인 측면이 강한 데 반해복수는 감정 이외에도 정의의 실현이라는 또 다른 감각을 만족시켜주기도 하니까물론 모든 복수가 그런 건 아니고억울한 일을 경험했지만 누구도 그가 겪은 부정의를 해소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약자인 경우가 그렇다이 영화는 이쪽인 편.


하지만 단순히 당한 대로 돌려준다는 식의 복수는 지나치게 원초적이다. ‘작품은 이 복수의 과정을 좀 더 효과적이면서정의로운 방식으로 수행한다물론 그 과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면 흥미가 반감되겠지만괜찮은 구성을 할 줄 아는 작가와 감독이라면 이 과정을 개연성 있게동시에 정당한 통쾌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이 영화가 그랬다.






반전.

사실 영화의 초반부터 반전을 깔고 들어간다한 저택에 뛰어 들어간 형사는 그곳에서 총을 들고 있는 사내를 발견한다그리고 장면은 재판정으로 옮겨져서 살인사건의 재판이 진행된다영화는 현재의 재판장면과 과거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는데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한 후에는 당연히 그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 복수에 나선 석진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다 피고의 얼굴이 확인된 순간 딱그는 도진이었다아 실패했나.


도진은 손가락밖에 남지 않은 살인사건의 재판을 받고 있었고검사와 변호사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다당연히 현재와 같은 DNA 검사 같은 기법이 없었던 그 시절최대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혈액형 정도였고시신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도진의 범죄를 입증하는 건 쉽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재판 전망이 어두워질 무렵검사측에서 결정적인 증인을 내세운다그리고 보이는 얼굴은 석진이었다두 번째 반전석진은 교묘한 방식으로 도진이 자신을 죽인 것으로 꾸몄고자신은 다른 사람인 척 나섰던 것결국 그는 직접 그를 죽이는 대신도진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음으로써 복수했던 것이었다통쾌한 반전이다.






원작.

영화 머리에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원작을 소개하는 자막이 언뜻 지나간다빌 벨리저의 소설인 이와 손톱이라는 작품읽어본 작품은 아니지만꽤 흥미롭게 진행되는 추리소설인 것 같다원작이 탄탄하게 받쳐주니 배우들의 연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된다이름값 있는 배우들을 잔뜩 등장시켜놓고 허술한 이야기로 망가뜨리는 영화도 적지 않으니까.


1955년에 나왔던 작품이다 보니 확실히 요새 나온 소설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전적인 추리소설들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랄까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꽤나 추리소설을 읽어왔기에 이런 작품들이 주는 그 특유의 분위기를 만나면 살짝 설레기도 한다.


원작을 제법 우리나라의 배경에 잘 옮겨온 영화였다개봉 당시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뭐 나처럼 뒤늦게라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으니 부디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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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빡빡하게 관리할 필요를 느끼는 순간,

당신은 채용에 있어 실수를 범한 것이다.

최고 인재들은 관리할 필요가 없다.


-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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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같은 소리 하네 - 과학의 탈을 쓴 정치인들의 헛소리와 거짓말
데이브 레비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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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부제가 과학의 탈을 쓴 정치인들의 헛소리와 거짓말이다저자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략적 목적을 위해 과학을 멋대로 인용하는 행태를 그 유형에 따라 구분해 정리하고 있다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거나(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중요한 내용들이 생략되거나 왜곡된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들만 모아서 이론을 만들거나겉으로는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뒤로는 예산을 삭감하는 등의 방식.


그 외에도 공적인 자리에서 내뱉은 주장의 근거가 고작 비전문가적 블로그라거나(우리나라의 경우 편향되거나 특정한 사정기관/정치세력과 유착된 일부 유사언론 보도를 가져오는 식의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좁은 문자주의적 해석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거나(예를 들면 가습기 살균제에 독성물질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넣은 것은 아니라는 식의),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아직 모든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니 섣부른(?) 행동을 하지 말자는 식으로 넘어가는 일 등은 오늘날에도 쉽게 볼 수 있는 꼼수다.



미국을 배경으로 쓰인 이 책에서전부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과학을 오용하는 선동을 남발하는 정치세력은 대개 공화당 쪽이다남북전쟁을 승리하고 노예 해방 선언을 한 링컨의 정당이 오늘날 고작 음모론에 뿌리를 박은 채 기득권 옹호에만 열을 내고 있는 현실이 퍽 안쓰럽다.


정당의 존재 목적이 단순히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고 정의하는 3류 정치인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의 오래된 격언이 정치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일지도 모르겠다정당은 고작 권력을 잡아서 휘두르려는 게 아니라국민의 일반의 삶을 좀 더 향상시키기 위한(물론 그 정의와 수단에 대해서는 치열한 다툼이 있겠지만좀 더 나은 비전을 향해 움직이는 결사체여야 할 텐데 말이다.



우리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치는 과학이지만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라는 영역에 막연한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이란 뱀이나 곰을 만났을 때와는 다른수학에 대한 두려움과 비슷한 느낌이다잘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누가 그 부분을 가지고 뭐라고 하면 금세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어차피 들어도 모르는 내용이니 전문가를 따라가자는 식일까.


물론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모르는 것 투성이일 것이다바쁜 삶을 살면서 그런 영역까지 모두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고다만 과학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인 합리성을 가지고 나름의 검증을 시도해 보는 건 필수적일 것 같다코로나19 백신 음모론이나텔레비전의 생활정보프로그램을 빙자한 건강보조식품 광고에 선동당하지 않는 건 우리의 건강과 지갑 사정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니까.


이 책의 주장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니다일부 영역은 사실 과학이라기 보다는 가치판단이나 윤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저자와 입장을 달리하는 부분도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연구가 무한정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연구윤리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에는 늘 빠져나갈 구멍이 있고규정이라는 건 빈틈을 완전히 메울 수 없기도 하고예컨대 인간의 생체조직을 이용한 산업적 활용은 처음엔 지방 같은 단순한 부산물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곧 배아세포로 옮겨졌고그보다 더 나아가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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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회주의자였을까
로렌스 W. 리드 지음, 조평세 옮김 / 개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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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기독교 관련 책과 그 이외의 책을 한 권씩 교대로 읽어나가는 루틴상이 책은 기독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 손에 들었던 참이었다우선 제목에 예수라는 주어가 들어가 있었으니까하지만 막상 일기 시작하면서 곧 그런 예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책은 기본적으로 경제학혹은 정치학을 다루고 있었고특정한 경제사조즉 사회주의는 반성경적이며 자본주의야 말로 그리스도인에게 맞다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반복한다.


사실 책의 첫 머리는예수님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며그렇다고 리버럴이나 보수주의자도특정 정당의 당원이나 특정한 교파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옳게 단언하며 시작한다그렇다예수님의 가르침을 특정한 철학 사조에 구겨 넣으려는 시도는 거의 확실하게 실패할 것이다문제는 많은 수의 편협한 신학이 그렇듯자신의 마음에 드는 성격에 특정한 구절들만 가져다가 뭔가를 구성하려는 태도가 좀 더 일반적이라는 점일 테고.


한편으로 이 책은앞서 나온 잘못된 또 다른 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튀어나온 것 같기도 하다책의 여러 페이지에 인용되어있는예수님을 과격한 사회주의자로 묘사하는 의견들이 앞서 있었고저자는 그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 이 책을 쓰고 있다앞서의 주장이 과격하다면그 반작용도 조금은 과격해 지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서저자의 주장은 사회주의 자체를 부정하고나아가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문맥에서예수님이야말로 자본주의자였을 것이라는 뉘앙스로까지 나아가버린다.



저자가 보는 사회주의자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늘 불평만 떠들어대는 한심한 인간들’(108) 좀처럼 누군가를 도울 생각이 없는 냉혈한이며어쩌다 누군가를 도우려고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또 다른 사람을 해치는 무능한 이들’(145)이다거의 혐오에 가까운 인식인데개인적으로는 일단 책에서 이런 문장들을 보면 저자의 나머지 글들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객관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사회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도 공감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다사회주의의 실패 사례들을 제시하면 앵무새처럼 그건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다며 회피하는 모습은 얄밉긴 하다책에 인용된 것 같은 나이브한 성경 이해를 가지고 예수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덧씌우려고 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좀 더 근본적으로 국가라는 의심스러운 조직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꽤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마찬가지의 논리가 저자의 주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걸 몰랐을까책에는 자본주의의 실패에 관한 내용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예를 들면 금융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각종 편법행위들사실상 도박을 조장하는 각종 금융의 문법들시장의 실패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문제를 개인의 호의에 맡기는 방임을 했을 때 황폐화되는 공유지들자본주의가 주류가 된 이후 집중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환경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가지고 온 성경에 대한 해석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상당부분 현대적인 견해에 근거해 각 구절들을 해석하고 있으며당시의 문화와 배경을 반영해 바른 문맥에서 보면 조금은 다른 결과도 나올 수 있다무엇보다 예수님은 부의 강제적 재분배는 강도질이며그런 정책은 부도덕하다’(164)는 식으로 말씀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그분에게 사회주의자가 찾아왔다면주님은 그를 내쫓으셨을까?



저자가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회주의는 스탈린의 (그리고 아마도’ 마오쩌둥의사회주의인 것 같다수백 만 명을 죽음으로 내 몰았던 무능한 계획경제말이다오늘날에도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이들을 교조주의적으로 좇고 있지만솔직히 누가 요새 그런 낡은 주장을 따라가겠는가.


사실 현대사회에 있어서 사회주의의 의의는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영감을 주는 차원에 있지 않나 싶다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만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리주의자가 아니라면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는 방식이다물론 그걸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전반적으로 많이 아쉬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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