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의 역사에 관한 책은 오랜만이다. 아마 학부 시절에 한 권 본 것 같으니 시간이 꽤 지났다(사실 그 책은 교회음악사만 담겨 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구약 시대의 종교음악부터 시작해 현대(20세기 초중반)의 가스펠 음악까지, 말 그대로 찬송이라고 불릴만한 음악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어가는 책이다.
그리고 앞서 교회음악이라는 단어로 시작했지만(실제로 책의 대부분은 여기에 할애되어 있지만), 방금 언급했던 것처럼 저자는 이를 단순히 교회 안에서 연주되고 불리는 음악만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던 찬양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 부분은 성경에 언급된 악기나 곡조에 관한 기록 등을 언급하는 정도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초기 기독교 시기의 찬양에 관한 언급을 간단히 한 뒤, 본격적으로 교회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에 관한 내용이 따라온다. 흔히 이 성가들은 대교황이라고 불리는 인물들 중 하나인 그레고리우스 1세 때 교황청이 주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당시 교황들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었으며 오히려 이 노래들은 (당시 서부와 중부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프랑크족의 것이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아일랜드 출신의 수도사들이 이 작업에 큰 공헌을 했다고.
그 다음은 종교개혁 시기 개혁자들의 음악이었다. 개혁자들의 성격에 따라 교회 음악에 대한 입장도 달랐는데, 어지간한 건 그대로 남겨두었던 루터와 모든 걸 다 새로 만들기를 원했던 츠빙글리,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칼뱅은 교회음악에 대해서도 꼭 그처럼 차이를 보였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를 거치며 청중은 그저 듣기만 했던 교회음악이 청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함께 부르는 식으로 발전한 것은 큰 변화였다.
한편 그레고리안 성가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단선율의 음 위에 성경 속 가사를 얹은 것이었다. 쉽게 말해 하나의 음이 이어지는 노래였다는 것이다. 노래라기보다는 시처럼 들리기도 하는 독특한 형식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많은 음이 함께 어우러지는 다선율 음악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런 변화의 대표자로 팔레스트리나라는 작곡가를 꼽는다. 참고로 이 장부터는 주요 작곡가들(바흐, 헨델, 모차르트, 멘델스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바흐와 헨델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났던 교회음악은 점차 교회 밖으로 나와 세속화의 길을 걷는다.
책의 마지막 장은 가스펠 음악에 할애되어 있다. 저자는 몇 번이고 “아프로아메리칸”이라는 학술적 용어로 부르는, 그러니까 흑인들의 음악에서 시작된 가스펠은 노예로 끌려온 그들의 역사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특유의 소울과 브루스 리듬, 독특한 창법 등이 더해지면서 곧 가스펠은 교회음악은 물론 세속 음악계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어떤 것의 역사를 공부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고작해야 수십 년을 사는 인간이 절대로 다 경험할 수 없는 수백, 수천 년의 역사를 훑어가는 건 마치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문을 살짝 열고 한 발을 내딛는 느낌을 준다. 내가 역사를 읽을 때마다 설레는 이유다.
이 책은 교회음악에 관한 오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좀 전문적인 음악 이론과 관련된 내용이 나와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책을 읽어갈 땐 그런 부분은 과감히 쓱 훑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사실 이 책의 중심은 그런 세부적인 음악 변화보다는 그런 변화들이 어떤 사회적 양상의 변화와 연결되어있는지를 살피는 것에 있으니 말이다.
다른 모든 제도나 문화, 양식들처럼, 교회도 시대적 상황에 맞춰 다양한 옷을 입어왔다. 교회 음악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단지 이전 시대의 음악을 반복하기만 한 게 아니라, 자기 시대에 맞는 음악을 새롭게 만들어 냈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음악이 경건하지 못하다고 경계하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반항은 역사의 큰 파도 앞에서 곧 묻혀버린다(하지만 여전히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자의 신학적 입장도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고 한때 루터교 목사로도 일했던 저자는,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계몽주의의 세례를 축복으로 여겼던 초기 자유주의자들에게 우호적인 입장으로 보인다. 물론 이 부분이 전체 역사를 훑어가는 데 큰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거나 모두를 어느 정도 시니컬하게 평론하는 태도가 최선인 것은 아니니까.
교회음악에 관해서 이만큼 정리된 책도 없는 듯하다. 관련 정보를 위해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수작이다.
이 출판사에서 앞서 나온 “바벨론의 역사”가 꽤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빌려봤다가 결국 지금은 집 책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워낙에 오래된 나라이기도 해서 제대로 그 역사를 설명하는 책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괜찮은 책이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같은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이 책 “비잔티움의 역사”도 데려왔다.
기본적으로 이 시리즈는 개론서다. 사실 족히 수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책 한 권으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또 그렇게 썼다고 해서 어려워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손에 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런 차원에서 개론서는 분명 필요한 책이다. 특히 역사 분야 같은 건 좀 더 쉽게 접근해서 그 중 흥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또 개론서라는 데 있었다. 말했지만 개론서란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을 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반대로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선지식이 있다면, 개론서는 좀 시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장르다. 정확히 내 경우가 그랬다.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만들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 여기저기를 찾아보며 정리한 상황이기에, 적어도 책에서 간략히 서술된 내용보다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이름에서부터 그리스 출신임을 물씬 드러내고 있는 저자가 쓴 이 책이 평범하다거나,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잔티움 사회사에 대한 다양한 최신 연구 결과가 곳곳에 실려 있고(물론 그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몇몇 포인트에서는 꽤 새로운 관점을 얻기도 했으니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비잔티움”이란 동로마제국을 말한다. 한 때 지중해를 둘러싼 세계 전체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은, 시간이 흐르면서 내부적 문제와 외부적 요인들이 겹치며 점차 힘을 잃어 간다. 결국 제국의 방위를 위해 몇 명의 “황제들이” 동시에 자신이 맡은 구역을 방위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고, 이게 공식화된 것이 동서 로마의 분리다(물론 이 때도 공식적으로는 동등했으나, 상대적으로 동쪽의 황제가 서쪽에 비해 우위에 있는 느낌이었다). 이 때 동로마 제국은 비잔티움 제국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명칭 자체는 16세기에나 사용되기 시작했으니 적절한 이름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서 로마의 분리는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은 후 그의 두 아들이 나라를 나눠 상속한 395년을 보통 기점으로 보고, 동쪽을 상속받은 아르카디우스를 동로마제국의 첫 황제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이 책의 저자는 비잔티움 제국의 첫 황제를 콘스탄티누스 1세로 설명한다(의외로 학자들은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의 역사의 시작을 한참 과거로 밀어 올리는 데 꽤 많은 공을 들이곤 한다). 역시 그 주된 이유는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의 수도를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기 때문.
책은 그렇게 콘스탄티누스 1세부터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될 때까지의 역사를 쭉 훑어간다. 다만 많은 서술이 단지 황제의 교체와 정치적 투쟁을 중심으로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당대의 경제적 상황, 제도의 변화가 보여주는 사회적 상황 등에도 나름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사실 이 부분이 이 책이 갖는 고유의 가치다).
전체적으로 복잡한 동로마제국의 역사를 한눈(300페이지를 한 눈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에 조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괜찮은 개론서다. 하지만 제국 말기로 들어가면 워낙에 잦은 정변과 복잡한 인척관계, 그리고 긴 이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아예 흥미가 없다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뭐 역사라는 게 그 정도의 문턱은 넘어가야 즐길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니까.
마르틴 루터는
복음이란 우리에 갇힌 사자와 같아서
변호는 필요 없고 해방만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 마이클 고힌,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세계관은 이야기다』 중에서
아이러니하게도,오히려 소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사람들의 구매 비용이삼림 파괴, 대규모 단일작물 재배, 유독성 살충제와 제초제 사용 같은파괴적 농법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더 높다.콩의 일부는 가축사료로 쓰인다.또한 콩은 으깨서 콩기름을 추출한 후
탈지대두와 콩 레시틴으로 만들어지는데,모두 비건 식품에 많이 쓰는 가공식품 첨가물이다.- 니콜렛 한 니먼, 『소고기를 위한 변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