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지 않는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제대로 살지 않은 삶은 뒤돌아볼 가치가 있을까?


-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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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삶의 기본적 성격이나 방향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의 손 너머의 영역이라고 말한다면,

즉 기본적 필요의 서열―음식, 거처, 안전에서 공동체로,

그리고 자존감으로 이어지는―에서 진전을 이루어야만

비로소 참된 삶의 의미를 고찰하고

그 형태를 헤아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미로슬라브 볼프, 매슈 크로스문,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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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그리스도인의 일상 중심 잡기 1
손성찬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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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의 저자와는 학부 4년, 신대원 3년을 같이 다닌 친구다. 몇 년 전 개척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느 샌가 책을 한두 권씩 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인기 있는 작가가 된 듯하다. 그 사이 한두 번 만나기도 하고 했던 것 같은데, 정작 책을 제대로 읽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이런 친분 관계가 서평에 영향은 전혀 주지 않았다. 물론 뭐 내가 정한 중립성을 지켜가며 리뷰를 써 온 것도 아니기도 하고, 이게 무슨 대단한 글도 아니니 애초에 상관 없기도 하지만.


한 해에 백 여 권 정도 책을 읽고 있지만, 그 중 설교집을 읽는 경우는 드물다. 작년 같은 경우 딱 한 권을 읽었는데, 유진 피터슨의 “잘 산다는 것”이라는 책이다. 그나마 그 책도 설교집이라기 보다는 교인들에게 쓴 일종의 목회서신 비슷한 것이었고. 그 전 몇 년을 검색해 봐도 설교집 리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설교집에 따로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설교라는 자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로 인해, 전개할 수 있는 내용의 범주와 깊이가 제한되기에, 탁월한 무엇을 얻기 쉽지 않기도 하고, 내가 그 자리에서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있지 않는 이상은 온전히 그 내용을 내 것으로 수용하는 게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읽을 만한 설교집을 만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손성찬 목사가 쓴 이 설교집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평가를 내려도 될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앞서 말한, 설교라는 자리가 안고 있는 상황적 한계 때문에 논지를 좀 더 깊게 들어가지 못하거나, 너무 날카롭지 않게 다듬었던 게 아닐까 싶은 부분이 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이 주제에 대해 깊은 고민과 그로부터 나온 통찰이 잔뜩 묻어난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설교는 제목처럼 돈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처음 세 편은 일반론적인 고찰로, 돈이라는 것이 기독교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룬다. 그것은 그 자체로 복의 상징이라거나, 반대로 무조건 멀리해야 할 악의 결과물이 아니라 중립적인 도구로서의 성격을 강조한다(물론 과연 돈이 “중립적”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들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도구로서의 돈은 쉽게 목적으로 치환된다. 이른바 돈이 신(우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매우 경계하며, 특히 복음서에서는 이런 방향을 바꾸어 돈을 하나님을 향해 사용하는 법에 관해 일부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의 반복이지만, 그 안에서도 저자의 통찰력이 언뜻언뜻 튀어나온다.


예를 들어 저자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에서, 주님이 그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시자 “심히 근심”했다는 구절에서, 그가 이제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겨왔다고 자부하던 생각이 허상임이 드러났다(58)고 지적한다. 또, 같은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다 팔아 나누어 주라는 명령에 관해 저자는 이를 “네가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을 버리고 비우라”는 명령으로 읽어내기도 한다(67).


책의 후반부인 4장부터는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다룬다. 사실 이 책의 진가는 이 부분에서 좀 더 두드러지는데, 단순히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하면 된다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날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인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의 비대칭성, 그리고 그 대표적인 부작용인 투기의 문제까지 직접 지적한다(해본 사람은 안다. 이런 주제를 설교의 자리에서 꺼내는 것이 어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그리스도인의 돈벌이에 관해 저자가 마무리 부분에서 하는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윤의 결과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들보다 조금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걸 기억하라는 부분이다. 이 정도면 젊은 목사 치고 꽤 용감한 발언이 아닌가.





이 외에도 언급하지 않은 인상적인 구절들이 적지 않다. 사실 돈에 관한 성경 본문이라는 것이 은근 해석하기가 난해한 것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용기 있게 그런 구절들 앞에 서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이 주제에 관해서 교회 안에 온갖 얼치기 진단과 처방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만 해 줘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부분은 여덟 번째 장에서 시도했던, 희년을 고리로 해서 좀 더 큰 사회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도가 그리 인상적이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뭐 한 편의 설교에서 다루기엔 조금 큰 이야기였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쉽고 짧은 문장에, 논리 전개에도 뭉개짐이 없다. 또, 책에서 중심에 두고 있는 돈이라는 주제에 대해 피해가는 바 없이 담백하게 직면하는 부분도 좋다. 썩 괜찮은 설교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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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소유하는 새로운 방법 - NFT로 만나는 예술과 콘텐츠의 미래
박제정 지음 / 리마인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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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의 블라인드 이벤트로 골라온 책이다. 책을 포장지에 싸서 표지를 볼 수 없게 하고, 간단한 소개글 한 문장만 보고 대출을 하는 이벤트였는데, 나름 흥미로운 시도였다. 영화 블라인드 시사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참고로 이 책에는 “디지털 예술 혁명 소유를 넘어 가치의 공유로”라는 묵직한 단어들이 잔뜩 나열된 소개글이 달려 있었다.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듯, 이 책은 최근 유행 중인 미술품의 NFT화(化)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NFT란 Non-Fungible Token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 풀이하면 대체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이다. 토큰하면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잠시 본 적도 있을 텐데, 버스 탈 때 가운데 구멍이 뚫린 금속재질의 동전 비슷한 것을 기리 킨다. 일일이 몇백 몇 십원 하는 식으로 돈을 내기 번거로우니 사전에 그 금액에 해당하는 토큰을 구입해 한 개씩 내는 식이다. 토큰이란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는 무엇을 가리킨다.


이 기술은 또 다른 최신 기술인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이 개념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온라인상에서 어떤 데이터를 나타내고 사용하려면 그것을 저장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소위 서버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인데, 기존에는 그 데이터를 관리하는 주체가 직접 서버공간을 만들어서 저장하고 관리를 해야만 했다면, 블록체인은 이 작업을 그 데이터에 연결된 모든 사람에게 분산시켜 저장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게 뭐가 좋은가 하면 기존 방식에서는 소위 해킹의 위협이라는 게 늘 존재한다. 그리고 한 번 뚫리면 그 안의 데이터가 유출되어 개인정보라든지 중요한 데이터값의 임의적 수정이라든지 하는 피해가 생긴다. 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애초에 이 해킹이 불가능에 가까운데, 어떤 데이터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그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데이터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불가능한 토큰” 같은 개념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





최근에는 예술품도 이런 NFT로 만드는 시도가 있다. 저자는 이런 시도가 가져올 수많은 장점들을 이 작은 책에 가득 채운다. 일단 NFT화된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굳이 무거운 분위기의 미술관 같은 데를 갈 필요가 없으니 개인의 인적 정보를 노출해야 하는 불편함이 없고, 예술가들은 각종 수수료(판매, 경매 과정의)를 떼지 않고 직접 작품을 판매할 수 있으며, 구매자도 작품을 보관하기 위한 환경(온도와 습도 관리 등등)을 애써 구축할 필요 없이 언제나 온라인에만 접속하면 볼 수 있어서(?) 편하다. 여기에 그 토큰을 구입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커뮤니티가 작가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도 있고, 자신이 구입한 작품의 작가를 홍보하는 서포터즈가 될 수도 있다는 내용도 보인다.


아무튼 여러 면에서 좋다는 말인데, 책을 읽으면서 정작 중요한 내용이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작품을 NFT로 구입(소유)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 걸까? 물론 책 후반에는 이와 관련된 기술적인 내용이 약간 실려 있지만, 정작 실제적인 묘사가 부족하다. 그건 어떤 작품의 이미지를 다운로드 받아서 모니터로 볼 수 있다는 것일까? 다운로드 쪽은 좀 다르지만, 모니터를 통해(각종 증강현실 기기 등을 포함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맞는 내용인 듯하다. 과연 그게 실제로 그 작품 앞에 서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경험일까?


텔레비전 화면이 아무리 발달하고 기술이 좋아진다고 해서 직접 경기장에 가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것과 같은 경험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AI가 어느 정도나 발전할지는 모르지만, 그 냄새와 바람과 옆 사람들과 함께 느끼는 강한 아드레날린의 분출, 처음 본 사람들과 같은 것을 바라보며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경험 같은 것들이 온전히 온라인으로, 디지털 기기로 재생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영양소가 포함된 알약을 삼키는 것으로 우호적인 교제와 함께 이루어지는 식탁을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도 단순히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과는 좀 다른 요소가 필요한 건 아닐까?


토큰 구매자들의 커뮤니티는 현재의 연예인 팬클럽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자칫 그 안에서 작가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하려는 시도나 악플러들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고, 또 저자가 NFT의 장점으로 꼽는 것 중 하나인, 복잡한 공부가 없이도 좀 더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폐쇄적인 커뮤니티 안 “똑똑이”들로 인해 또 다른 꼰대문화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현상에 관해 가장 우려 되는 부분은, 역시나 미술품의 NFT화와 그 거래라는 마당에서 벌어질 투기적 위험이다. 저자도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 현재 이 바닥은 미술품의 감상과 공유보다는 돈을 벌 수 있는 마당이 열렸다는 식의 투기적 심리가 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건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코인투기판으로 바꿔버린 앞서의 예를 봐도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저자가 예상하는 “예술을 소유하는 새로운 방법”은 “예술품으로 한탕 크게 버는 새로운 투기법”으로 전락할 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이를 우려했던 듯, 새로운 좋은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덧붙이지만 여전히 우려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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