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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03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많이 읽으시는 거 아닙니까? 저에겐 1년치 도서량인데...
로고 들어간 티셔츠도 입으시고.
그럼 꼭 진짜 책방 주인 같잖아요.ㅋㅋ

노란가방 2024-05-03 16:18   좋아요 1 | URL
허헛... 그럼 가짜 책방 주인이라는 말입니까... ㅋㅋ

stella.K 2024-05-03 18:01   좋아요 1 | URL
ㅎㅎ 큐레이터잖아요.
 


죽어가는 사람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

살아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죽음의 경계에 아주 바짝 다가서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릅니다.

전쟁으로 치면 그들은 최전방에 배치된 병사이고

우리는 후방에, 일반 사회에 속해 있달까요.


- 신아연,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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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와의 연애를 후회한다
허유선 지음 / 믹스커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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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연애 에세이 같은 걸 읽는 게 살짝 어색하긴 하지만, 제목이 재미있어서 골라봤다. 오래 전 읽었던 비슷한 제목이 살짝 기억이 난다. 미디어에도 자주 보였던 심리학자 김정운이 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책이었는데, 지금 내용은 거의 기억에 남지만 제목은 10년 넘도록 기억나는 걸 보면 잘 지은 것 같긴 하다.


아무튼 이 책 역시 제목을 보고 손에 들었다. 어느 정도 예상이 되듯, 연애에 관한 에세이인데, 결국 연애라는 것도 단순히 남녀 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좀 더 크게 보면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니 만큼, 나는 이미 그 시기를 지났다거나 연애에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소구하는 지점이 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도 그랬고.





책은 연애라는 관계를 어떻게 시작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조언이 중심이 된다. 구체적인 팁에 해당하는 내용도 있지만, 좀 더 큰 그림에 관해서도 자주 말해준다. 여기에는 작가가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무려 칸트 전공이라고) 배경이 강하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참고로 책의 부제가 “나를 철학하게 만드는 사랑에 대하여”다.


예컨대 작가는 에리히 프롬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정신을 놓거나 얼이 빠져버리는 건 상대가 천생연분이거나 유일한 사랑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지금까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일 분이라고 말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도 곱씹어 볼 만하고, 지나치게 다른 사람, 혹은 상대방을 인식하면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보다, 중심을 잘 잡고 자신을 잘 살펴야 한다는 말에서는 살짝 칸트의 흔적이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어려운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니니,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손에 들어도 괜찮을 만한 책이다. 기독교적 배경 위에 쓰인 것 같지는 않으나, 교회 안에서도 청년들과 함께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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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라는 세계
이종태 지음 / 복있는사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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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말 나타난 계몽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전의 무지몽매했던 시대를 끝낸,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으로 가득했었다. 그들을 “계몽주의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여전히 이런 과잉 자의식에 기초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들은 시대를 계몽시킨 선구자들이었다, 뭐 이런.


그들이 이전과 좀 다른 방식의 접근을 시도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중세 기간 안에도 그와 비슷한, 혹은 그 선구적 탐구가 존재했었다. 물론 그 시대 등장했던 여러 지식인들이 가져온 공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과학적 사고의 발달로 이전 시대의 각종 주술적(혹은 미신적) 행태를 몰아내는 계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이 책의 저자는 계몽주의 시대가 낳은 가장 큰 문제로 이 세계에서 “경이”를 함께 몰아내버린 것을 꼽는다. 사실 이건 앞서의 공헌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계몽주의자들은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일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연을 감싸고 있던 신비의 영역,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인간이 경험하는 경이의 순간이 사라져 버렸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과정이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무지개를 여전히 신의 활 정도로 믿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그건 단지 빛의 굴절일 뿐 아니냐.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을 애써 무시하라는 뜻이냐 하고. 당연히 그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과정에서 세상의 의미,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 시대 사람은 자연을 어떤 의미가 있는 곳으로 보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텔로스(목적)를 찾아 철학을 시작했고, 동양에서는 도(道)를 찾는 이들이 비슷한 시기 나타났다. 신의 섭리나 로고스와 같은 원리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에게 우주는 어떤 의미도 없는 말 그대로 그냥 있는 것(자연), 나아가 어떤 필연적인 의미도 없는 텅빈 공간(the Space)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세계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물론 그런 어려운 것은 생각 안 하고 내키는 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대표적인 신(新)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조차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우리가 다시 한 번 세상을 경이로운 곳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반복해서 주장한다. 그리고 여기에 핵심적인 변호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C. S. 루이스다(사실 저자는 루이스의 가장 유명한 책 “순전한 기독교”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루이스의 다양한 작품들을 인용하면서 루이스가 간절히 찾았던 경이를(루이스의 표현으로는 joy) 살펴본다.(물론 그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언급된다.)


경이가 사라진 세상은 “노래가 불리지 않는 세상”이 될 거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노래라는 것이 애초에 대상의 경이로움에 대한 찬탄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모든 것을 물질로, 재물로 환산하는 환금주의와 물질주의, 그리고 오늘날 더더욱 부각되고 있는 다양한 인간성 상실을 떠올릴 만한 사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그 전조가 있었던 것. 시와 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메마르고 답답할까.


저자는 왜 우리가 경이감을 회복해야 하는지, 세상을 단지 기계론적으로만 보는 것이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다양한 방향에서 조망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세계관을 여기에 접목시킨다. 다만 이 지점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그렇게 경이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으나, 세상을 경이로운 곳으로 인식하게 될 때 나타나는 변화가 단지 우리의 심리적인 부분에 한정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 또한 그런 다분히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도움인 것처럼(물론 저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보지만) 볼 여지가 있다는 점도. 물론 이 책이 기본적으로 EBS라는 공영방송에서 한 강의를 모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긴 하다.



우리는 경이를 회복할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시인도 있고, 가수도 있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미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감정과 경이, 신앙을 모두 2층 다락방 구석으로 몰아넣은 시대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날마다 더 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날마다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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