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십 수 년 전 교통사고로 딸이 죽은 후 대화가 끊어진 더그와 로이스 부부. 치유하지 못한 상처는 낫지 않고 점점 곪아만 갔다. 로이스는 그 뒤로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고, 더그는 밖으로만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뉴올리언즈로 출장을 갔다가 스트립걸인 말로리를 만난 더그는 딸처럼 느껴지는 그녀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당분간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더그의 전화를 받고 그를 찾아가기로 한 로이스. 그렇게 치유는 시작되고 있었다.

 

 

 

2. 감상평 。。。。。。。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이유들로 상처를 받을 때가 많이 있다. 당연한 일이다. 세상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으니, 그 안에 사는 동안 원하지 않더라도 때가 묻고, 상처가 나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문제를 치유하는 일은 누구나 해 내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일일이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최근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들 중에 이런 식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작년 말에 개봉했던 ‘래빗 홀’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어떤 분은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0년이 넘어가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추모와 치유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분석하던데,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어디 그것뿐일까. 사실 우린 늘 그렇게 상처에 대한 회복을 갈구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먼저 내민 누군가의 손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라고 옳게 지적한다. 상처를 안고 있는 더그가 내민 손은 말로리와 로이스를 변화시켰고, 그들은 점차 치유되기 시작한다. 물론 이유 없는 비난과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면서까지 먼저 선을 내미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그렇게 손을 내밀고 나면 막혔던 둑이 터지듯 해결의 물꼬가 열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다만 모든 인간의 본성에 선한 무엇이 내재되어 있고, 적절한 정서적, 기술적 치유로 회복될 수 있다는 미국식 심리학의 전제들도 함께 보인다는 점은 집고 넘어가야겠다.(분명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과는 다른 데 말이다.) 인간에 대한 이런 낙관적 견해는 도리어 치유를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잔잔한 드라마다. 초반에 극 전체의 흐름을 잘 잡아낸다면 은은한 향을 즐길 수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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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를 복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복수란 자기의 온 시간을 바쳐서 해야 하는 일인데,

그녀는 지금 남에게 해를 끼치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천사들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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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정신병리학에서는 ‘자폐증’이라고 한다.

폭탄주는 집단 자폐증상이다.

 

자폐증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아동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자폐현상은 나타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구체적 신상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세계가 타인과 공유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경우도 약한 정도의 자폐증상이라 할 수 있다.

 

- 김정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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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완벽하게 조화되어


보탤 것도 뺄 것도, 고칠 것도 없는 것.

 

by 카를로티(이탈리아 화가)

 

 

- 영화 '넥스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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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세계대전. 상호원조조약을 맺고 있었던 영국과 독일이 폴란드를 지원하러 올 것을 알고 있었던 폴란드 군은 열심히 맞서 싸웠지만 상황은 어이없게 정리되고 말았다. 독일과 폴란드의 땅을 나눠먹기로 비밀리에 동맹을 맺었던 소련군이 배후에서 공격해 들어왔기 때문. 소련군은 폴란드 군의 장교 2만 5천 명을 포로로 삼았고, 그들은 그렇게 끌려가 카틴 숲에서 아무런 재판 없이 처형되어 암매장된다. 이른 바 카틴 숲의 학살.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를 점령한 나치 독일군은 이를 볼셰비키의 만행이라며 폴란드의 남은 반절을 차지하기 위한 정보공작을 펴지만, 결국 독일군이 패하고 소련군이 진주해 들어오면서 공산정부가 세워지자 모든 일은 나치의 소행으로 발표된다. 그러나 학살 당한 이들의 가족들은 분명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이 영화는 떠나간 남편과 오빠, 아빠를 간절히 기다렸던 가족들이 이야기다.

 

 

 

 

 

 

 

 

2. 감상평 。。。。。。。                    

 

     쇼비니즘과 코뮤니즘의 협공. 그 사이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폴란드 국민들뿐이었다. 양쪽 모두 국민보다는 국가라는 실체 자체가 모호한 집단적 개념을 더 우선시하는 사상체계다. 실체가 없는 것에 매달리니 실체가 있는 존재가 희생되는 당연한 상황. 사전에도 없는 국격 운운하며 국민을 비난하고 잔뜩 거드름을 피며 훈계하는 어떤 정부도 길게 보연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어떤 유형의 정부냐가 아니라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가이니 말이다.

 

     소련군 진주 후 폴란드 공산 정부는 카틴 학살에 대한 소련측의 범죄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소련과의 관개냉각을 우려한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들도 학살에 대한 책임을 모른 척 하기에는 마찬가지였다(심지어 전후 영국과 미국은 소련 측의 주장을 전적으로 따른 국경선을 폴란드 정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관철시켰다). 결국 199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사건의 실체가 공식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고, 죽은 이들은 그 때까지도 진짜 사인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분명한 것은, 무슨 이유를 대든지 감추는 것이 많은 정부는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참 잘 만들었다. 초반에 상황과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면 두 시간 여에 달하는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영화 전체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감독은 비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들 대신,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멋진 연출 방식이다.

 

 

     덧. 2010년 공교롭게도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내외와 정부 요인들이 카틴 학살 70년을 추모하기 위해 러시아로 가던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그들을 초청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개인 자격으로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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