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고등학교도 들어가지 않고 다방 카운터에서 일하는 현우(강하늘). 어느 날 그는 한밤 중 목격한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되지만, 경찰의 구타를 동반한 강압수사로 얼마 후 그는 살인자로 복역을 하게 된다. 10년 만에 석방된 그에게 5년 후 날아든 구상권 청구서. 당시 피해자 쪽에 보상금을 지급한 공단에서 그에게 그 비용을 청구한 것. 이자까지 포함해 1억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에게 나타난 변호사 이준영(정우). 지방대 출신으로 변호사가 되어 집단소송으로 한 몫 잡아보려다 실패하고 오갈 데 없는 그에게, 대형 로펌에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일을 맡긴 것. 점점 현우의 억울함에 깊이 공감하게 된 그였지만, 이미 확정판결까지 나서 형기까지 마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재심신청 뿐.

 

     ​이미 실화로도 잘 알려진 2000년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2. 감상평 。。。。。。。

 

     ​여전히 우리나라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고, 영화나 드라마 속 악당들의 상당수는 그런 식으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로 등장한다. 그만큼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일 테다. 특히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차별은 대단한 위화감을 줄 정도. 사실 국경일만 되면 재벌들 사면해주기 바쁜 권력자들을 보면서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물론 이 영화의 경우는 지나치게 이런 쪽으로 파고들어가지는 않는다. 그저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접근인 듯하다. 그리고 또 모든 검찰이, 모든 경찰이 다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일 테니까. 적당한 수준에서, 정당한 깊이에까지만 들어가려는 감독의 태도를 두고 뭐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연인 정우와 강하늘은 모두 열연을 했고, 극의 진행 상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만 했던 폭력은 나름 절제되어 있었다. 극화하기 위해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설정을 넣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그 때문인지 조금 밋밋하다는 느낌도 살짝 들었다. 법정심리물은 아니고,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악의 카르텔과 싸우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 영화는 악한 구조 속에서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약자를 변호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변호사이고, 그가 들고 있는 무기 역시 법이다. 과거 은폐되고 무시된 증거들을 모아 재심을 청구하고, 다시 재판을 열어 무죄를 증명 받는 것, 그것이 영화 속 그의 목표다.

     (스포일러일지도 모르지만, 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니까..) 결국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무죄판결까지 얻어내지만, 살인범으로 몰린 현우의 지난 15, 그리고 10년의 수감생활은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미국이라면 수 백 억의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그런 뉴스를 본 적이 없다. , 그 모든 고통이 돈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물론 이게 영화 속 이준영 변호사의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님은 물론이다)

 

     ​영화 속 이야기를 보면서 살짝 놀랐던 한 가지 포인트는, 이 사건이 2000년에 일어났었다는 점. 이런 불법 수사 이야기는 6, 70년대, 조금 더 치면 80년대 독재정부 때나 있었던 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이미지인데, 2000년도라니. 뿌리 깊은 권위주의, 기득권의 잔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나보다.

 

 

     재심이 받아들여진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다행이지만, 더 중요한 건 잘못된 수사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고, 힘을 가진 이들로 하여금 자기가 가진 힘을 마음대로 사용했다가는 큰 일이 날 것이라는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일일 거다. 법이, 강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든 도구가 아니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되려면, 그냥 좋은 법을 만드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다수가 그 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는 사람들의 의식이 깨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시민들의 눈이 아니었으면 법원에서 이재용을 구속시키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권력을 사유화하며 떵떵거렸던 인간들도 여전히 웃는 낯으로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 흐름이, 이 나라가 조금 더 나은 지점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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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위한 교회, 세이비어 이야기 IVP 모던 클래식스 14
엘리자베스 오코너 지음, 전의우 옮김 / IVP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세이비어 교회 사역에 비교적 초기부터 참여해 온 저자가,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냈다. 우리나라에는 2016년에 번역되어 나왔지만, 책 자체가 나온 지는 아주 오래 되었다.(1968) 세이비어 교회가 창립된 것이 1947년이고, 저자가 세이비어 교회를 방문한 것이 1952년이니, 말 그대로 내부자의 시각으로 교회의 사역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주인공.

 

     ​책은 크게 두 부분(1~3, 4~10)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반부는 세이비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인 내적 여정에 관한 설명이고, 후반부는 그와 대비되는 외적 여정, 즉 세이비어 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사역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2. 감상평 。。。。。。。

     흔히 세이비어 교회 하면 우선 150여 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교회가 감당하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 활발한 사역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의 후반부에 그 일부 사역들이 설명되고 있는데, 기금을 모아 낡은 주택을 구입해 수리한 후 집이 없는 저소득층에게 나누어주는 사역(복구지원팀),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포터스하우스), 빈민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역(언약 공동체), 주니어 빌리지(시에서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아이사랑선교회 등등.

     하지만 저자는 책의 시작을 오히려 세이비어 교회가 어떻게 교인들로 하여금 믿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지, 즉 내적 여정을 설명하는 데 책의 첫 머리를 할애한다. 책 속의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도시를 바꿀 계획은 있으나 정작 자신을 바꿀 계획은 없는 사회 개혁가들과 공동체 지도자들은, 경건하다지만 세속에 물든 자들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구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확실히 이런 구조는 옳다.

 

 

     ​세이비어 교회에 관한 이야기는 이 번 책이 두 번째다. 10년 전 쯤 우리나라 저자가 쓴 책(유기성, 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이 한 권 더 있었다.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에 관한 소개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두 책이 비슷하지만, 유기성의 책이 사역 자체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그리고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간 문장들 때문에 좀 읽기에 불편했다면), 이 책의 경우는 각각의 사역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내부적인 논의와 고민들이 있었는지를 담아내는 데 더 힘을 쓰고 있다.(확실히 내부자만의 시각이다.) 또 한 가지 차이는 이 책이 좀 더 일찍 쓰여서, 소개되고 있는 사역의 종류가 좀 덜 다양하다는 점.(그 후에도 점점 이 작은 교회의 사역은 늘어갔다는 말) 목적에 따라 적당히 골라 읽으면 될 것 같다.

     책 말미에 세이비어 교회 관계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열었던 한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여러 사람들이 집중했던 것은 그 교회가 하고 있는 그 많은 사역들에 들어갈 재원을 어떻게 충당되고 있는지 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담당자는 그런 질문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고. 중요한 문제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이지, 무슨 돈으로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 교단별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당 건물을 여러 개 갖고 있다는 한국 교회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장명인 듯해서 부끄러웠다.

 

     ​그와는 반대로 이 책 전반에 걸쳐 참된 교회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여러 노력들이 보여서 뿌듯했다. 책 안에 이런 예측이 들어 있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을 넘어 그들이 고통 받는 그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는. 물론 여기에서 ‘20년 후, 책이 쓰였던 당시부터니까 지금은 거의 50년이 지났다. 우리의 교회는 과연 사람들이 고통 받는 그 자리에 있는 걸까.

 

 

     ​다만 아쉬운 걸 꼽자면, 문체나 구조가 깔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책 초반부에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하다가 갑자기 끝나버리는 감도 있고. 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지만, 이 책 자체가 잘 쓰였다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책 자체의 작품적 완결성보다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의 덕을 더 많이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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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영화는 시가전의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적진의 폭발물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지만, 전투 중에는 끊임없이 대장이라고 불렸던 주인공의 현실은 피씨방 죽돌이. 옆자리에 놓고 간 휴대폰을 가져다주면 사례금 30만원(너무 많다. 여기서부터 의심을 했어야 했다)을 주겠다고 하는 전화를 받으면서 그는 곧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가까스로 탈주에 성공한 그는 게임 속 한 팀이었던 인원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이 모든 조작의 근원에 접근해 가기 시작하고, 당연히 그런 이들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뭐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마침내 진실이 밝혀진다는 이야기.


 

 

2. 감상평 。。。。。。。

 

     솔직히 영화를 보러 갔는데, 마땅히 볼만한 다른 작품이 없어서 골랐다. 정확히 말하면 볼만한 다른 영화들은 이미 본 상태였다. (, ‘더 킹을 아직 못 봤는데 볼만한 영화일까나.) 영화를 보기 전 대략적인 줄거리를 파악한 상태였는데, 덕분에 그저 그런 액션, 추격영화가 아닐까 하는, 낮은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확실히 재미가 있었다는 것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게임 팀원들이 실제로도 하나의 팀이 되어 주인공을 돕기 위해 나선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판타지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설정만이 아니라 영상에 있어서도 게임과 현실을 뒤섞어 버린다.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개조된 마티즈의 비현실적인 움직임이나 주인공의 액션들, 그리고 사실상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빅데이터를 축적해 놓은 허름한 건물 등등.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설정들이 눈에 거슬리거나 따로 논다는 느낌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어버린다는 점. 감독의 연출력이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는 부분.

   

 

      영화의 주요 포인트는 아니지만, 영화 속 빅데이터를 이용해 살인범까지 조작해 내는 행태에 대한 우려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민의 개인정보를 국가에서 모두 강제적으로 수집해 관리하는 국가에서는 이런 문제가 서구보다 훨씬 더 파괴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야 모든 것을 영상으로 공개해버리면 사건이 다 정리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현실에선 그보다 더한 증거가 발견되어도 조작 운운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내는 몰염치한 인간들이 훨씬 많기도 하고..

   

 

      영화 소개에는 주연이 지창욱과 심은경이라고 되어 있고 오정세는 조연으로 나오는데, 사실 이 영화는 거의 오정세가 이끌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이 영화에서 그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 성격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면, 영화는 매우 평범해져버렸을 테니까. 온갖 게임과 같은 액션으로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영화에 그나마 극으로서의 무게를 잡아주는 일등공신.

 

     ​여전히 지창욱과 심은경은 젊었고, 특히 주연이었던 지창욱의 연기력은(난 그의 표정에서 별 감동을 받지 못했다) 좀 더 무르익을 때를 기다려야 할 것처럼 보인다. 일부 영화평에서는 지창욱의 재발견이라는 문구도 보이던데, 그보단 마티즈의 재발견이 더 어울리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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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비평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르게 사용된 양식비평은 역사를 신화로,

혹은 신화를 역사로 축소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시를 시로, 산문을 산문으로, 상징을 상징으로,

그리고 목격한 진술을 목격한 진술로 읽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 피터 크리프트, C. S. 루이스, 천국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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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어느 날 전 세계 열두 개의 장소에 거대한 UFO가 나타났다. 선체는 18시간마다 한 번씩 문이 열리고, 그 곳에 들어가면 반투명한 장벽을 두고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어학자인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가 불려온다.

     가까스로 그들에게 인간들의 단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자 그들은 문자를 벽에 쓰는 방식으로 대답을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종족의 대화는 오해를 낳았고, 상황은 일촉즉발로 치닫는다.

 

 

 

 

 

2. 감상평 。。。。。。。

 

     ​UFO와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조용하다. 외계인들은 레이저 광선을 쏘지도 않고, 인간을 납치하거나 실험을 하지도 않는다. 대신 여기에는 서로 대화를 하려고 애쓰는 두 종족이 노력이 중심이다. 확실히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들 중에서는 매우 독특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인류는 이런 경험들이 수차례 있어 왔다.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해서 그곳의 원주민들과 대화를 시도했던 탐험가들이나, 미지의 세계로 수차례 여행을 했던 장건, 마르코 폴로 같은 이들이 다 이런 작업들을 앞서서 해왔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아마도 고대의 인류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으로써 이런 노력을 해오지 않았을까.

 

     ​이제까지 만나본 적 없는 미지의 상대를 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떨리는 일이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성품이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처음 접해보는 상대하고는 이제부터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느냐가 전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기 나름이니까.

 

     ​그런데 인류는 어디에서 배워먹은 못된 버릇인지, 그런 미지의 상대와 조우할 때마다 어느 한 쪽이 심각하게 손해를 보거나 착취를 당하는 쪽으로 결론이 맺어지곤 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노예가 되었고, 개척자와 모험가들의 뒤를 이어서 나타난 것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약탈자들이었다. 이런 역사는 영화 속에서 주요한 갈등의 한 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몇 문장으로 요약을 할 수 있다. (1) 우선 누군가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의 사고까지도 영향을 준다. (2) 처음과 마지막을 한 번에 생각하고 구사할 수 있는 존재들인 영화 속 외계인들은 그래서 시간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3) 주인공은 그런 외계인들의 언어를 배워가면서 시간에 관해 좀 더 확장된 이해(일종의 예지)를 갖게 되었다.

 

     ​주로 사용하는 말이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은 경험적으로도 옳다. 예컨대 박사모나 애국보수에서 자주 사용하는 언어습관이 익숙해지면, 정말로 그걸 믿고 따라가게 된다. 광장에 나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노인들은 원래부터 어딘가 악한 면이 특별히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말의 세례와 세뇌를 받아 확신범이 된 것 뿐이다.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원을 바탕으로 한 특별한 문자를 고안해 낸 것은 탁월했다. 이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포인트. 시작과 끝이 있는 단어의 나열 형태가 아니라, 처음도 끝도 없는 원 안에 메시지를 담아내는 한 글자 문장이라니. 천재적이다.

     하지만 외계인의 언어를 배워가면서 루이스가 갖게 되는 특별한 능력 부분은 구체적인 연결점이나 설명이 부족하다. 사실 이건 영화 전체의 마무리 부분이 갖는 약점이다. 뭔가 제대로 벌려 놓았는데 좀 서둘러 마무리 한 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영화가 갖는 한계(영상으로 표현해 내야 한다는)를 느꼈던 게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루이스가 외계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루이스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가르치는 일은 동시에 배우는 작업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장면만큼 탁월하게 보여주는 영화도 없지 않나 싶다. 깨달음은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의 것이고, 오직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판단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래 알고 있는 것 이외에 새로이 제시할 것이 없는 법이다.

 

     ​눈과 귀보다는 머리를 자극하는 영화. 확실히 원작 소설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물씬 들게 만드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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