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 사라진 여자
이언희 감독, 공효진 외 출연 / 인조인간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선(엄지원). 양육비조차 거절한 채 홀로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매일 늦은 밤까지 일을 해야 하는 그녀에게, 아이를 봐주는 보모 한매(공효진)의 존재는 너무나 고맙기만 하다.

     목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출근길에 나서는 지선과 그녀에게 잘 다녀오라며 인사하는 한매. 하지만 그날 저녁 한매는 아이와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과의 양육권 분쟁에 불리해 질까봐 경찰에 신고하는 일조차 포기하고 스스로 아이를 찾아 나서지만,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거짓이고 조작된 것이었다.

     그 즈음 지선이 양육권 재판에서 질 것 같자 아이를 빼돌렸다고 주장하는 시어머니에 의해 경찰도 지선을 쫓기 시작했고, 지선은 우연히 발견된 단서를 따라 한매의 과거에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왜 갑자기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던 걸까.

 

 

 

2. 감상평 。。。。 。。。

     처음에는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한 엄마 홀로 벌이는 추적을 담은 스릴러물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감독의 섬세한 연출은 이 영화를 평범한 스릴러로 전락시키는 대신, 영화에 독특한 분위기와 무게감을 선사한다.

     예컨대 박해준이 연기한 박현익이라는 캐릭터는 극초반 지선의 추적에 도움, 혹은 방해를 하는 인물인데, 요새 나오는 폭력성 짙은 영화라면 그는 단순한 브로커가 아니라 좀 더 강력한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로 묘사되면서(여기에서 당연히 지선이 그 피해자가 되었으리라) 더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 사용되었을 게 분명하다.

 

     ​대신 감독은 인물들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한다.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괴롭히고 문제를 일으키는 악한 대신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고, 그 사연은 그대로 영화의 이야기꺼리가 되어 나온다. 말을 할 줄 아는 감독. 영화는 말을 해야 하는데, 요새는 보여주기에만 너무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말을 하지 않고 뭔가를 전달하려다보니 갈수록 자극적인 영상들만 난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중심은 여성’, 그것도 온갖 차별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여성이다. 때문에 영화는 단순히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나서는 엄마의 모성애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 지선은 워킹맘으로, 주변의 시선은 작은 잘못만 하더라도 바로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저 자기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조롱과 욕설을 내뱉는 천박함은 단순히 남성 직장상사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한매를 고통과 위기로 몰아넣은 데에도 물론 발정 난 동물처럼 묘사되는 덜 떨어진 남편과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딱히 자신의 것을 내어줄 만큼은 아닌 현익이라는 남성이 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같은 여성인 시어머니로부터 던져진다. 그녀에게 한매는 (여성이고 사람이기 이전에) 마치 물건처럼 다뤄질 뿐이다.(묘하게 아이를 두고 지선 역시 시어머니로부터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여성인 이 사건. 한 쪽은 욕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맡기고 전쟁터와 같은 일터로 나가야 하고, 또 한 쪽은 온갖 학대를 받은 후에 자신의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를 품으러 나가야 했다. 영화는 누군가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대신, 그렇게 양쪽 다 무거운 걸음으로 걷다가 마침내 서로 만나게 되는 장면을 연출한다.

 

     ​모두가 그녀들을 괴롭히고, 의심하고, 핍박하는 가운데, 서로를 이해하는 건 그 두 사람 뿐이었다. 둘은 모두 여성이었고, 핍박받고 있었고, 엄마였으니까, 공통점이 참 많았다. 영화 말미 바다로 뛰어드는 한매를 쫓아 지선이 함께 뛰어든 것은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기엔 이 땅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너무 컸으니까.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또 영화는 긴장감도 놓치지 않는다. 좋은 작품. 특히 엄지원의 연기력이 이렇게 좋았나 하며 다시 보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작품이지만, 한 번 볼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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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은 고양이를 닮았다
가와이 하야오 지음, 최용우 옮김 / 사계절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1. 요약 。。。。。。。

     고양이가 등장하는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 주제별로 분류해 놓은 책. 당연히 모든고양이 이야기를 담은 것은 아니고, 저자가 알고 있고 기억하는 이야기들이 언급된다.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도 있어서 일본의 옛 이야기가 다수 소개된다.

     저자는 고양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에 주목한다. 고양이는 사납고 난폭하기도 하지만, 꾀가 많고 자립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매혹적인 면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아주 느긋한 게으름뱅이의 모습도 보인다. 양면을 넘어 다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고양이의 이런 다양한 모습을 따라 이야기를 분류하고, 각 이야기 속 고양이의 특성과 여기에 반영되어 있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작가의 사상을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고양이영혼사이의 관계에 집착한다. 영혼에 대한 저자의 정의는 독특한데, 영혼을 몸과 마음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두 부분을 이어주는 매개체라는 것. 이런 차원에서 영혼은 불가결하지만 명확히 보여줄 수가 없는 애매한 존재인데, 이런 면이 고양이와 닮았다는 주장이다. (약간 억지스럽긴 하다)

 

2. 감상평 。。。。。。。

     표지에 묘한 느낌의 고양이가 앉아 있다. 최근에 고양이를 키워볼까 하는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지라 이런 책을 보면 괜히 눈이 간다. 도서관 신간코너를 살피다가 별 부담 없이 골랐다.

 

      고양이라는 소재를 담은 이야기가 전 세계에 걸쳐 이렇게 다양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익히 읽어본 작품을 설명하는 장면을 만날 수도 있고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접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이런 옛날이야기 책이라면 대박은 아니라도 소소한 재미는 확실히 준다.

 

      다만 아무래도 저자가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서 추린 것일 수밖에 없기에, 전반적으로 일본 이야기가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뭐 일본 이야기가 아니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면 접해보기 힘든 일본의 옛 이야기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실감이 좀 덜 난달까. 저자는 신나게 설명을 하는데 그런 얘기가 있구나정도의 반응이니까. 물론 이건 일본 이야기만의 문제는 아니고, 잘 모르는 작품을 소재로 한 글을 읽을 때 겪게 되는 공통적인 문제다.

 

      앞서도 언급했듯, 책 전반에 걸쳐서 고양이의 다양한 면을 강조하면서 영혼의 특성과 지나치게 연결시키려고 하는 부분은 확실히 억지스럽다. 그냥 좀 더 캐주얼 하게 진행해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심리학 전공자이다보니 계속 뭔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았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개인적으론 이 심리학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 항상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는 생각)

 

 

      이야기 속 고양이는 현실 속 고양이의 느낌은 좀 덜하다. 좀 더 보송보송하고 귀여운 느낌의 녀석들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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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인 2045. 철근 구조 위에 컨테이너를 켜켜이 쌓아 올린 빈민촌 이모 집에 얹혀사는 웨이드(타이 쉐리던)의 유일한 낙은 가상현실 세계인 오아시스에 접속해 동료들과 함께 지내는 것. 그곳에서는 암울한 현실과 달리, 사람들이 상상하는 판타지가 현실이 될 수 있었기 때문.

     ‘오아시스의 창업자이자 개발자였던 할러데이(마크 라이런스)는 죽기 전 자신이 그 안에 감춰둔 세 개의 열쇠를 찾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유산을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사람들은 그 열쇠를 찾기 위해 저마다 달려든다. 웨이드 역시 그런 도전자 중 하나. 할러데이에게 푹 빠져 있었던 웨이드는 마침내 첫 번째 열쇠를 얻을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되었고, 그 뒤로 감춰졌던 수수께끼가 급속도로 풀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 속 보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뛰어들 만큼 큰 시장에 이권을 노린 이들이 개입하지 않을 리가 없다. IOI라는 깜찍한(?) 이름의 회사를 경영하는 소렌토는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열쇠를 찾는 일종의 군대를 만들었고, 웨이드를 위협하며 쫓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

 

     ​3D, 4D 영화관이 아니라 일반영화관에서 봤는데도, 우퍼 스피커의 효과가 뛰어났던 건지 마치 놀이기구를 몇 번 타고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스피커의 힘만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디자인 된 영화 속 가상현실 세계의 모습도 한 몫을 했다. 사실 영화의 거의 절반이 (어쩌면 그 이상이) 오아시스 속 모습이기에 이 부분에 적지 않게 신경을 쓴 모습이다.

 

     ​영화는 급격하게 발전하는 현실을 잘 담아낸다. 가상현실에 감각을 더한 장치는 이미 활발하게 개발되거나 일부 실현되고 있고, 영화 속 드론을 이용한 다양한 용도(피자를 배달하고, 원하는 차량을 검색하고, 심지어 폭탄을 설치하는 등)도 하나둘 현실화되고 있다. 그뿐인가. 빚으로 사실 상 대기업의 노예가 되어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착취당하는 모습이나, 현실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가상현실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현상마저도 그렇고.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도 미래를 그리는 듯하지만, 실은 현재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

 

 

 

 

     ​영화 전반에 걸쳐 80년대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일단 디스코음악이라든지, 댄스홀 모습, 그리고 도트 베이스의 초기 컴퓨터 게임까지. ‘오아시스의 문제를 푸는데 할러데이의 과거가 단서로 제시된다는 설정 때문이지만, ET로 상징되는 스필버그 감독의 SF 전성기를 추억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물씬 든다.

 

     ​여기에 영화 속 등장하는 고전 명작 속 장면들이 재해석 되어 등장하는 모습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예컨대 주인공이 오아시스안에서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속 타임머신을 꼭 빼어 닮았다. 이 외에도 곳곳에 살짝살짝 보이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

 

 

     최첨단의 가상현실을 중심소재로 두고 있는 영화지만, 영화의 주제는 스필버그 특유의 따뜻함을 담고 있다. 역시 아날로그적 감성이 잘 어울리는 감독이다. 가상현실이 아무리 찬란하고 좋아보여도, 실재 위에 단단히 세워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는 너무 당연하지만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기도 하고.

 

     ​놀이공원에 가는 기분으로 보기 시작하다보면,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 영화. 다만 이 기억에 전혀 남지 않을 것 같은 제목은 좀 어떻게 했어야... (영화관에 들어간 후에도 내가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지 표를 확인해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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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해부 - '앎'을 위한 팩트체크 옥성호의 성경 직독직해 시리즈 1
옥성호 지음 / 테리토스(Teritos)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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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책의 초반부 기도로 폐병을 고쳤다고 확신한 채 촉망받는 물리학자의 삶을 포기하고 신학으로 돌아선 한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애초의 진단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그가 쓸쓸하게 걸어간다는 내용으로 마치는 이 이야기는, 그가 신앙으로 자기합리화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저자의 거의 사실화된 강력한 추측으로 이어진다.(이 책에선 매번 이런 식이다. 자신의 추측이 곧 사실이다.)

     처음의 예와 거의 반복되는 또 하나의 사례(이번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를 든 후, 저자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자신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이라는 것. 이를 위해 심지어 아담의 역사성까지 믿고 있다는 식으로 (다분히 깐족대는 어조로) 자신의 보수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건 다음 내용을 전개하기 위한 밑밥이었다.

 

     ​본론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자신이 볼 때, 성경 속 하나님의 모습은 차마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의 원시적이고, 무능력하며, 과격하고, 잔인한 신이며, 나아가 성경 속 각종 명령과 규례들은 온갖 모순을 안고 있으며,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전근대적 법령들이라는 것. 이를 위해 저자가 분석하는(이 책의 제목을 따르면 해부하는’) 대상은 놀랍게도 십계명이다.

 

  

2. 감상평 。。。。。。。

     먼저 책 서두에 나오는 한 전직 물리학도의 실감나는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전하는 사람들은 일어난 사건을 단순히 옮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맛대로 더하거나 빼기 마련이다. 더구나 저자가 전한 이야기는 그 자신의 생각으로 마무리 되고 있고, 또 마지막을 최대한 허탈하게 만들기 위한 구성도 엿보인다. 설사 그가 한 설명이 사실이 근접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속 주인공이 젊은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물리학자가 되었을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런 그의 삶에 대한 평가를 단순히 속은 것이라고 평가하는 저자의 판단은 무엇에 근거한 걸까? 또 그는 신앙에 의해 속임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가 물리학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주변의 기독교인들의) 강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다분히 이 이야기를 가지고 전통적인 신앙인들을 조롱하거나, 그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못 미더운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이런 식의 개별적(귀납적) 경험사례를 가지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실히 판단내릴 수 없다는 건 논리학의 기본적인 원칙이 아닌가.

 

     저자가 십계명의 조목들을 해부하는모습도 썩 능숙해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가 이 과정에서 참고한 것은 대체로 자유주의적 관점을 지닌 신학자들의 의견일 뿐이고, 각각의 판단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신학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잠재적인 것일 뿐인데, 저자는 지나치게 자신의 판단을(정확히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자유주의적 신학방법론을) 확신하고 있다.

 

     ​예컨대 왕하 3장의 모압전투 가운데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히브리어 원문은 주어를 아예 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만을 보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없다. 본문에서 저자는 그것을 신의 분노라고 읽지만, 꼭 그렇게 읽어야 할 것은 아니다. 모압 비문에서야 그것을 자신의 신학에 입각해 해석해놓았지만, 그 비석이 성경기록을 해석하는 키는 아니다.

     [엘 엘룐][엘로힘]을 두고 저자가 그리는 신관의 발전에 대한 이미지(다신교일신교유일신교)는 애초에 문학적 수사법 안에서 두 단어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히브리 수사법에서 대구, 반복 등은 매우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고, 각각의 단어들이 꼭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전반적으로 이 책 속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사적 표현과 논리적 정합성을 다투는 문장 사이의 혼동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물론 저자가 선택하고 있는 문자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물론 저자가 책 속에서 지적하고 있는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발견되는 이중적인 모습들, 말과 행동의 불일치, 작은 부분에 집착하면서 더 큰 기회와 관계를 포기하는 좁은 시야 등은 분명 곱씹어 들을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심지어 여호와가 인신제사를 좋아하는 신이라는 식의 주장까지도 거침없이 하는 걸 보며(이 부분에서 저자는 레 27장의 속전 개념, 3장의 레위인 대속 개념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메스를 들고 진리의 배를 가를 수 있는 능력은 있는 건지 싶다. 저자는 마치 자신이 성경 속 신앙인들로부터 바로 나온 것처럼 여기는 듯하지만, 그가 책 속에서 비웃고 있는 수많은 무명의, 그리고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신실하게 살려고 애썼던 신앙의 선배들 덕택에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생각지 못하는 것 같다.

 

     ​칼을 들고 다짜고짜 배를 가른다고 다 수술은 아니다. (, 저자는 수술이 아니라 해부라고 했으니 상관이 없는 걸까.) 해부용 메스는 휘두르는 게 아니라 조심스럽게 관련된 부분에만 그어야 한다. 하물며 의학적 목적으로 기증된 시신을 대할 때도 난도질을 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할 때는 좀 더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추는 게 기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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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게임
개빈 후드 감독, 벤 킹슬리 외 출연 / 데이지 앤 시너지(D&C) / 2014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1. 줄거리 。。。。。。。

     외계인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지구. 가까스로 공격을 물리친 인류는 우주 함대를 만들어 적들의 본거지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간다. 이 과정을 위해 많은 아이들이 훈련병이 되었고, 주인공 엔더 위긴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외계종족과 싸움을 할 병사들을 길러내는 줄로만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이 훈련 프로그램은 함대를 총 지휘할 사령관을 길러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짐작할 수 있듯 엔더가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고, 동료들과 함께 실전과 같은 모의 평가로 최종 테스트를 받게 된다.

     인접한 모든 것들을 분자부터 분열시켜 파괴해 버리는 가공할 무기를 끌고, 적의 행성을 직접 공격하기 시작한 앤더의 함대. 큰 승리를 거둔 기쁨도 잠시, 앤더와 동료들은 그들이 모의전투가 아니라 실제 전투를 벌이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그들은 정말로 하나의 행성과 종족을 멸망시켜버렸던 것이다.

 

 

 

2. 감상평 。。。。 。。。

     작가는(이 영화도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왜 주인공으로 아이들을 내세웠을까? 사실 근력이나 지구력만 보면 성인들을 따라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영특함의 수준이라는 것도 분명한 한계가 있기 마련. 사실 전략 차원의 큰 그림은 애초부터 생각에 넣어야 할 자료가 워낙 방대하기에 영특함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고, 현장의 흐름에 따라 임기응변의 상황대응력이 필요한 전술 쪽에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기본기가 제대로 갖춰진 다음에서다. 그리고 기본기는 어린 아이들이 몇 달 연습해서 갖춰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 속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아이들은 조작하기 쉽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훈련 책임자 격으로 나오는 그라프 대령(해리슨 포드)은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고 있었고, 특히 앤더와 그의 동료들로 구성된 함대가 외계인들의 행성을 공격하는 실제 전투를 벌일 때도 그저 모의전투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어떤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고, 적들을 끝까지 멸절시킬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차원에서 영화 속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들을 열악한 아동노동에 내모는 탐욕스러운, 그리고 무책임한 현실 속 어른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 작가는 왜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웠을까? 작가 역시 아이들의 그 순진함에 주목한다. 비록 그들이 조작을 당하기 쉬울 정도로 순진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기괴하게 생긴 외계의 존재와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선입관으로부터 자유롭다. 또 아이는 으로 규정된 이들의 고통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존재이기도 하다. 작가는 인류의 미래는 역시 그런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50년 전의 침략과 피해로 적들을 궤멸시켜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영화 속 군부의 모습은 딱 지금 이 나라의 자칭 보수 세력의 뇌구조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쩌면 상대가 우리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엔더의 말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극한의 대결구도의 사고방식,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정신의 유연함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결국은 독재적인 행태로 치닫다가 몰락해버렸다. 핵무장 운운하는 자칭대안 보수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그런 대결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모두를 소진시키다가 끝나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은 아이들과 같은 약자들이고. 아이들이 이용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 간절히 필요하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함선들 사이의 대규모 전투신은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고,(물론 이 부분은 돈이 좀 많이 들 테니..) 영화 중반 훈련병들이 팀별로 각개전술을 훈련하는 장면도 그냥 아이들의 서바이벌 게임을 보여주는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움직임에서 제대로 된 전술적 동작들이 나오기엔 무리.. 사실 이 부분은 그냥 끼워넣은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그리고 무엇보다 10대의 소년에게 인류의 운명이 달린 함대 운영의 전권을 쥐어준다는 설정 역시 무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개연성보다는 일종의 동화적(이상향에 관한) 메시지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 시는 시처럼 감상하면 되는 거다. 시에서 신문기사 수준의 상세함을 찾는 것 자체가 넌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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