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인간인가? - 잃어버린 인간의 형상, 여성에 관하여
도로시 세이어즈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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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시 세이어즈라는 이름이 어딘가 익숙했다. 물론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단 한 권도 그가 쓴 책을 보지 못했지만. 리뷰를 쓰려고 저자에 대해 살펴보던 중, 내가 언제 이 이름을 들었었는지 깨달았다. C. S. 루이스다. 저자인 도로시 세이어스는 옥스퍼드 최초의 여성학위를 받았던 인물이고, 루이스와 지속적인 편지를 주고받았던 당대의 이름 있는 작가였다. , 후에는 루이스와 톨킨 등이 주축이 되었던 옥스퍼드의 문인모임인 잉클링즈에서 냈던 한 에세이집에 필진으로 참여하기까지 했다.

 

     루이스와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교류를 했다면 도로시 세이어즈 역시 평범한 수준 이상의 지적 사고와 신앙적 논리전개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음에 분명하다. 이건 이 작은 책(116페이지 중 절반은 영어 원문이 실려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겨우 50여 페이지가 넘는 수준)의 초반 몇 장을 읽어가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10장 쯤 읽었을 때, 나는 도로시 세이어즈가 쓴 책들 중 우리말로 번역된 나머지 책들도 모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간의 상황을 알기 전에도, 마치 루이스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담고 있다. 옥스퍼드의 최초의 여성학위자들 중 하나이자, 꽤나 유명한 연작 추리소설의 작가였던 저자에게 이런 식의 질문은 자주 접하는 것이었나 보다.(책 속에도 여성의 관점으로 탐정 소설을 쓰는 것에 관한 질문이 언급된다)

 

     저자는 여성을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고 던지는 이런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그는 오늘날 판을 치고 있는 포스트모던적 정체성 정치에 단호하게 반대했을 것이 분명하다. ‘여성은 하나의 동질적인 그룹이 아니다. 어떤 여성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심이 있지만, 또 다른 여성은 그렇지 않다. 물론 이건 남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남성이 어떻고 여성이 어떻고 하는 식의 논의에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지식과 능력 사이의 혼동이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예컨대 실내 인테리어와 관련해서 현재 상황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여성이 남성보다 관련된 능력이 더 많기 때문(능력의 문제)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가정 내에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면서 무엇이 더 적절한지 알고 있기 때문(지식의 문제)이라는 것이다.

 

     결국 여성적 관점은 존재하지 않으며 차라리 여성의 지식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하다. 정확히 반대를 선호하는(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여성적 관점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현대의 극단적 페미니즘이 종종 너무나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구름으로 기둥을 만들어 의지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책 말미에 저자는 모든 것에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있다고 주장하지 말자고 이야기 한다. 세상에는 성별 못지않게 훨씬 더 눈에 띄는 차이점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이 각각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진지를 구축하며 대결하다보면 세상은 뿔뿔이 찢겨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혼란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그렇게 정체성 정치를 주장함으로써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소수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여성을 남성과 대립하는 하나의 진영으로 구분하는 대신, 여성과 남성이 모두 인간이라는 좀 더 큰 범주 안에 있으며, 이들 사이에는 단지 성별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생각보다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이전 시대에서는 대부분 여성들이 가정에서 하던 일들을 이제 공장에서 남성들이 전유하며 재미없는 일들만 집에 남겨두고는 여성들에게 떠맡기려 한다는 부분에서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루이스의 글에서 느껴지는 유머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여성들도 사업이라든지, 경영, 관리 등을 오랜 시간 동안 잘 해내왔다. 그건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여성은 이런 일들에 익숙지 않고, 흥미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동일하게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다.(대표적으로 나 같은 인물은, 사업과 경영, 관리에 젬병이다) 성에 따른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지식(과 아마도 호불호와 능숙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속한 범주를 하나의 정체성화해서 적과 나로 갈라치기를 함으로써 뭔가 얻으려고 하는 행태는 정치인들이 잘 하는 꼼수다. 대표적으로 지역감정 조장이 있고, 극단적 페미니즘이 보여주는 정체성 정치도 그 중 하나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섹터를 강화함으로써 문제에 대처하려는 태도는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말이다.

 

     최근 연속으로 읽기 시작한 여성에 관한 책들 중 단연 돋보이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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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래전부터 그림자병

외로움을 먹고 자란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사랑과 친절의 관계로 거기에 맞서고 있지.

- 윌리엄 폴 영, 이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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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에 반대하는 영화에 출연했다가 향후 활동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출연 요청을 받은 일본 배우들이 연달아 고사해서 결국 우리 배우인 심은경이 주연을 맡게 되었다는 영화 신문기자. 덕분에 주인공 캐릭터의 배경까지 바뀌었다고 한다.(일본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정권에 미운 털이 바뀌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매장시켜버리는 일본의 분위기가 짙게 묻어나는 부분.

 

     영화는 몇 년 전 일본 아베 정권에서 벌어진 사학 스캔들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여기에 단순히 인허가와 부지매입상의 특혜에 더해 비밀스러운 대학 설립 목적 문제까지 덧붙여지면서 문제는 좀 더 심각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에 부담이 되는 이 모든 사건들이 밝혀지는 것을 막고, 혹여나 드러나게 될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묻어버리기 위해 내각정보조사실을 동원한 여론조작이었다.

 

     분명 일본의 이야기지만,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권과 기무사를 동원한 여론조작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루어졌는데, 일본은 그나마 어영부영 다 묻혀버리는 듯. 우리나라였다면 진작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을 텐데, 어지간히 여론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일당독재 국가인 일본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게 진행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들처럼 각자의 일(여론 동향 파악 및 조작)만을 하고 있는 내각정보조사실 사무실의 모습과 이 기구를 이끌고 있는 전직 경찰간부 출신의 실장의 냉철한 모습이 그 분위기를 묘사하는 주요 이미지다. 그 반대편에는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부당한 일들에 분노하는 여기자(심은경)가 있고, 조사실의 일원으로 여론조작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는 외무성 출신의 조사원의 갈등이 있다

 

     ​최근 다양한 문제로 거리가 시끄럽다. 수많은 사람들을 그 거리로 이끌어낸 것은 단연 어떤 것에 대한 분노다.(그 분노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편견에 근거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어떤 이들은 그런 상황을 보고 국론 분열이니, 극한 대치니 하면서 금세 큰일이라도 날 듯 놀라기도 하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명백히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그리고 현 정부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가 뒤섞여있음을 인정하고, 그 욕구를 합법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으니, 조금은 시끄럽더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     실제로 민주주의일 필요는 없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될 뿐이라는, 영화 속 정보기관 수장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민주주의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연약한 꽃이다.(이건 우리나라의 예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거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여간 한숨이 나오는 일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몸에 좋은 것들은 대개 조심히 다뤄야 하는 것을.

 

     문제는 우리 사회에도 영화 속 그 대사를 진심을 담아 하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 여전히 설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음침한 음모를 꾸미는 이들은, 마치 곰팡이가 햇볕에 살균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을 공개하는 것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다. 그들이 정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체다. 적들과 싸워야 하니 너희들은 알 것 없다고 말하는 이들을 주의하자. 그런 이들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주범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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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10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대착오적인 삶의 주인공들에게
삶의 지평을 넓혀 주는 카를로 로벨리
선생의 책을 추천해 주고 싶군요.

뭐 그들이 책을 읽을 리도 없지만요.

노란가방 2019-12-12 15:14   좋아요 1 | URL
음.. 물리학자이신가요?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ㅎ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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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봤던 같은 이름을 가진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공유와 정유미가 연기했던 영화와 큰 틀에서는 비슷한 내용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의 매체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구성도 약간 다르다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건 남편’(영화에서는 공유가 연기했다)의 비중이다. 영화에서는 남편의 비중이 소설보다는 커서, 그는 자신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의 문제에 끊임없이 공감을 시도하면서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감독의 의도는 짐작이 간다. 영화가 단지 남녀의 대립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림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닐까 싶다. 다만 덕분에 남편이 그렇게 잘해주는 데 복에 겨워 그런다는 의도치 않은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지만.(그런 빈정거림은 저열한 태도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극의 느낌이다. 소설이라고 해서 좀 더 극적인 구성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책 뒷표지에 실린 소개글처럼 한편으로는 보고서의 느낌이 들 정도로 작가는 담담하게 서술을 이어나간다. 여기에는 자주 인용되는 통계자료와 연구 보고서 등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도 한 듯. 물론 이건 영화와 소설이 다르다는 말이지,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둘 다 나름 장점이 있는 작업이었다.

 

 

     소설이 여성중심이고, 여성들이 겪었던 부당한 대우와 시선들을 모아놓은지라, 자칫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예컨대 50년 전 어떤 이들이 겪었던 일을 오늘 내가 겪은 일로 여기면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경우다. 작품 속 지영의 어머니 미숙이 겪었던 일은 지영이 겪은 일과는 분명 다르다이런 상황에서 (책 뒤 비평가의 글처럼) ‘딸 김지영의 삶은 어머니 오미숙의 삶에서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것은 그저 감상적 반응일 뿐이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를 보고, 그 나이 대 사람들(혹은 남성들)이 모두 자신이 덕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게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사회는 변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 아니 인간에 대한 관점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미숙이 겪은 일은 분명 지영과는 다르다. 그리고 지영의 딸 지원이 겪을 일은 분명 지영과는 또 다를 것이다. 미진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겠지만 분명 그래왔고, 그럴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어떤 이들이 겪은 문제를 그들의 문제로만 여기고 외면하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과 연대할 수 있고,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나 다양한 희생자들에게 힘을 더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감상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에 근거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공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오히려 소설을 넘어서는 힘이 느껴진다. 3자의 시선으로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담담하게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서술해나가는 방식은, 영화 속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들과는 또 다른 설득력이 있다.

 

 

     조만간 내가 있는 교회에서 이 책을 함께 읽는 남성들의 독서모임을 준비해 볼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도 그랬지만, 문제는 관련된 사람들이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입장에 서볼 때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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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당사자에게 능력과 의지를 최대한 발휘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해도 실패할 수 있고 부족함이 드러날 수 있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살균되고,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하고,

고통도 위험도 모르는 전자공학의 산물들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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