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우치무라 간조와 그 제자였던 김교신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 온 저자가, 한국교회 초기 활동했던 김교신의 글을 모아 주제별로 엮은 3부작을 냈다. “신앙의 변증법”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첫 번째 책은 신앙과 회심, 복종, 이성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책은 구성은 각 주제에 대한 김교신의 글을 일부 옮긴 후, 저자의 간략한 설명, 그리고 그 주제와 관련된 비슷한 시기 다른 이들의 글들을 몇 개 함께 싣거나(1~3장의 경우). 추가적인 정보를 담았다(4장의 경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1장을 읽다 보면, 저자가 왜 김교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 장에는 김교신 이외에 윤치호와 박인덕이라는 두 명의 인물의 글이 추가로 실려 있는데, 이 두 사람은 모두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나 친일파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기독교를 일종의 제국주의적 구도 아래서, 미개한 조선을 구원해 낼 수 있는 힘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에 반해 김교신 기독교를 어떤 것을 얻어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영원성의 세계를 바라보며 사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는 것.
2장에서는 유교적 수신(修身)의 이념을 그대로 기독교로 옮겨왔던 당시 많은 사람들(특히 책에서는 최병헌이라는 인물을 인용한다)과 달리, 김교신은 자기수양의 방식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일종의 ‘단절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 집중한다. 즉 저자는 김교신을 한국기독교 수용사에서 바른 수용의 모델로 묘사한다. 다만 김교신의 글 전체를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매우 짧게 (선별적으로) 인용된 글만을 두고 독자가 평가를 내리기에는 무리인 부분이다. 추가적인 공부를 통해서 좀 더 알아가야 할 부분.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이성을 다루는 4장이었다. 김교신은 한국 기독교 수용사에서 성령의 강한 사역을 인정하면서도 “금후 40년은 이성의 시대”라고 단언한다. 신앙에 있어서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인데, 당시 지나친 열광주의적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김교신은 그들을 “성신 열병환자”라고 부른다)을 보며 비판적인 관점을 갖게 된 듯하다.
이 부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부분다. 분명 이성 또한 하나님이 주신 능력 가운데 하나일 텐데, 물론 때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에 있어서 이성적인 탐구를 백안시하는 시선이 여전히 남아있다. 또, 꼭 이성을 비판하지 않더라도 과도한 신비주의적 사고를 강조하는 것 역시 같은 결과를 낳을 뿐이고.
다만 책 자체가 김교신의 사상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게 구성되어 있다. 물론 1권만 읽었을 뿐이지만 나머지 책들도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책 전체의 1/10도 김교신의 글을 직접 담고 있지 않은 상황은, 김교신의 단편적인 생각들만 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대신 저자의 해석과 설명이 주가 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좀 길다는 느낌도 들고.
또, 김교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언급되는 인물들에 대한 평이 조금은 박하지 않아 싶기도 하다. 당시가 조선의 기독교 수용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신학적 이해의 부족함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교신이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그가 가진 신앙의 핵심을 정리한다는 취지는 좋다. 시간이 흘러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예배당을 몇 개씩 보유하게 된 오늘날 한국 교회지만, 외적인 성장은 이미 정체된 지 오래고, 사회적인 평판까지도 바닥에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런 초기의 좀 더 순수하고 단순한 신앙이 필요한 때는 아닐까.
금융의 저주라는 개념은 단순하다.
금융 부문이 확장하여 합당한 규모에서 벗어나 유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이 금융 부분을 지탱하는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금융은 사회에 이바지하고 부를 일군다는 전통적인 역할을 외면하고,
수익을 더 보장하는 활동에 치중할 때가 많아서
다른 경제 부문에서 부를 약탈한다.
정치적으로도 힘을 휘둘러 자기 입맛에 맞게 법이나 규정이나
심지어 사회까지 바꾸어 놓는다.
이 결과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불평등이 심화하고
시장이 무력해지고 공공 서비스가 와해하고 부패가 자행되고
대체경제 부문이 설 자리를 잃고
민주주의와 사회에 막대한 폐해를 안긴다.
- 니컬러스 섁슨, 『부의 흑역사』 중에서
출판평론가이자 독서운동가인 저자가 지난 25년 간 내왔던 두 개의 잡지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기념비처럼 풀어 놓은 책이다. 어떤 일을 25년이나 해왔다면, 그에 관한 영웅담 같은 것은 충분히 나올 만하지 않은가.
저자가 창간한 잡지는, 우선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기획회의”와 학생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큐레이션 해 주는 “학교도서관저널”이다. “기획회의”는 전신인 “송인소식”부터 시작하면 1999년에 창간되었고, “학교도서관저널”의 경우는 10년 후인 2009년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를 생각해 보면 좋게 말해 역동적이고, 결코 쉽지 않은 시대가 아니던가. 1998년에 IMF 사태가 있었고, 10년쯤 후인 2010년 전후해서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처음 나왔다. 경제적으로도 부침을 겪었지만, 기술적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다. 책, 독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 오랜 시기를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물론 이런 일들이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될 리가 없다.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고, 참여했고, 후원을 했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저자의 진정한 능력은 그런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잡지가 계속 발행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결국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가 최소한 유지는 되어야 책과 관련된 잡지들이 살아남을 자리가 있을 텐데, 급격한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출판과 독서의 영역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어떤 주제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잡지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할 것 같긴 하다. 다만 그 형태는 조금 더 다양해지지 않을까 싶다. 온라인이라든지, 영상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어떤 식으로든 인류의 읽기라는 문화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즈음 문해력 논란을 보고 있으면 또 암담한 예상도 들고...
저자가 만들었다는 두 잡지를 직접 본 적은 없다. 당장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서(난 출판 관계자도 아니고, 학교도서관저널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학생도 아니었으니)였을 텐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보고 싶다. 늘 좋은 통찰을 보여주는 저자인지라, 뭔가 얻을 게 분명 있을 것도 같다.
341년에 발칸 반도의 사르디카에서 개최된 공의회에서는
자신이 현재 소속해 있는 교구보다 더 큰 교구로 옮기려는 주교들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아직까지 큰 교구에서 작은 교구로 가려는 주교를 본 일이 없다.
주교들은 탐욕에 불붙어 있으며 야망의 노예가 되고 있다.”
- 폴 존슨, 『기독교의 역사』 중에서
제목이 꽤 인상적이어서 손에 들었다. “나는 일하는 여성입니다.” 단지 일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책은 그 일하는 여성의 소명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소명이라는 주제를 다룬 좋은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은 그 가운데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소명을 연결시켜보려는 조금은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일의 영역에서도 남성들이 일반적인 우위를 가지고 왔기에(특히 이런 경향은 산업화 이후 심해졌다), 여성으로서 이런 판 안에 들어가서 직업적 성취와 소명에 대한 부응을 이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편견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특별히 보수적인 기독교계 안에서도 다양한 차별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저자의 작업은 두 가지 트랙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성경 안에서 일하는 여성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따라야 할 기준을 찾는 것과, 일반적인 직업적 영역 가운데서 여성들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체적으로 책은 이 목표를 향해 잘 진행된다. 우선 저자는 일반적인 신학적 고찰을 통해서,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협력하여 일하는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성에게(물론 남성에게도) 소명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세 가지 기준점을 제시한다.(소명은 구체적이라기 보다는 보편적이고,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며,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태도와 거리가 멀다) 또 자신의 소명을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조언들도 덧붙여진다.
책의 2부에는 일하는 여성들을 향한 격려가 담겨 있다. 남성에 비해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역량에 대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인상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나 같은 남성은 이 부분에 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3부와 4부는 본격적으로 직장 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소명에 부응하는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는지에 관한 조언과 요령이 주된 내용이다. 많은 경우 비단 여성들만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조언들이다.
작지만 알차게 내용을 채웠다는 느낌을 준다. 소명에 관한 책들이 요 몇 년 새에 좀 더 자주 보이는 이유는 내가 이 쪽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시대가 이런 책들을 더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이런 괜찮은 책들이 많이 나와서 대화의 물꼬를 열어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밥그릇 뺏기나, 성별 갈등으로 해설되어서는 안 되는, 좀 더 거룩하고 중요한 문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