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마을의 젊은 교사 부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내가 밤만 되면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것(빙의 뭐 비슷한 느낌). 사모님의 비밀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집에 창살을 만들고, 밤마다 문을 잠그기로 한다. 어느 날 아내만을 따로 둘 수 없었던 남편은 자신도 아내와 함께 창살 안으로 들어가기를 자청했고, 그날 밤 불이 나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이 사건을 수사하러 온 형구(조진웅)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만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어느 이상한 날 밤 독한 술에 취했다 깬 그는 자신의 신분은 물론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형사로서의 그는 사라지고, 영화 초반의 교사가 되어 있던 것. 사라진 자신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니던 형구는, 어느 순간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 질문은 비단 형구만이 아니라 영화 초반 교사 아내가 밤마다 모르는 사람이 되는 모습에도 언뜻 드러난다. 둘 다 외모는 그대로이지만 자신에 대한 기억이 전혀 달라지거나(교사 아내), 자신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완전히 달라지는(형사) 경험을 한다.

 

     ​사실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건 경험과 그에 따른 기억들에 상당부분 의존하는데, 이 기억이라는 건 블록체인과 비슷해서, 나만이 아니라 나와 연관된 이들의 공통 기억에도 크게 의존한다. 꼭 영화 속 형구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도, 우리는 아주 여렸을 적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부모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듣고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곤 하니까. 문제는 이 두 요소가 서로 딱 맞물리지 않을 경우인데, 영화 속 형구의 혼란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주변인들의 기억이 맞물리지 않으면서 커져만 간다.

 

     ​물론 영화가 이런 질문들을 충분히 잘 풀어냈느냐는 좀 아쉬운 부분. 영화 초반에서 중반으로의 전환(교사 부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서 형사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분)은 많이 갑작스럽고, 영화 종반부 형구와 초희의 대화 중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지는 부분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는 만들지만, 그 의미 자체는 불분명하다.

 

 

 

 

​     최근 개인주의와 맞물리면서 내가 누구인지는 오직 나 자신이 결정한다는 유의 가벼운 심리학이 유행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마음가짐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니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내 멋대로 하겠다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태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다 보면 결국 나에 대한 나의 인식과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인식 사이의 괴리가 생기게 될 테니까.

 

     배우로 더 알려진 장진영 감독의 첫 영화. 미숙한 부분도 보이지만, 나름 독특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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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동물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동물들은 스스로를 측은하게 여기지 않는다.

- 사이 몽고메리, 엘리자베스 M. 토마스, 길들여진, 길들여지지 않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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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무슨 커다란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아니지만, 전형적 일본의 시골 가족을 중심으로 소소하면서 감동적인 스토리가 그려질 거라고 예상했다. 비슷한 느낌의 다른 일본 영화들처럼. 하지만 이 영화는 완전히 그런 기대를 깨버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뭐임?’이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으니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떠나보내는 아들 하지메의 이마에서 기차가 조금씩 빠져나오고, 그 빈자리가 뻥 뚫려 있는 엽기적인 모습이 등장한다. (여기서 알아봤어야 했다.) 하지메의 어린 여동생인 사치코는 자신의 거대한 이미지 때문에 골치가 아픈 초등학생인데, 영화 중간중간 정말로 엄청나게 큰 사치코의 얼굴이 사치코를 바라보는 모습이 묘사된다. 설정상 그 모양은 오직 사치코 자신에게만 보는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에 약간 치매기가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무슨 마임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가 없고, 엄마 요시코나 외삼촌 아야노도 별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 영화.... 어떻게 보라는 거지.

 

     일단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야기에 논리가 있어야 뭐라고 평을 할 텐데.... 영화 속 캐릭터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서로 특별한 교류가 이어지지 않는다. 매우 적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고립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식.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기껏 사용하는 게 진지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똥이나 슬랩스틱이라면 그닥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할지도..

 

 

 

 

     영화보다 네이버의 영화 한줄평이 더 재미있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건 분명 재주인 것 같다는 반어적 표현도 재미있지만, ‘산뜻하고 평화로운 어느 시골에서 자란 대마를 핀 것 같다, 작정하고 비꼬는 평도 재미있다. 정말 소위 약 빨고만든 영화 같으니까. 메시지도, 감동도, 비주얼도 볼 것이 별로 없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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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하트 2020-06-27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감독의 다른 영화를 찾아보았지만 다른 작품들은 공감이 잘 안되더군요. ‘산뜻하고...대마를 핀 것 같다‘는 표현은 아마 최고의 상찬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란가방 2020-06-27 21:36   좋아요 0 | URL
오.. 그러셨군요. 감상은 충분히 다를 수 있지요.
사실 인물 하나하나가 당면하고 있는 일들은 나름 공감이 되는 면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큰 틀에선 너무 헐겁다는 느낌이 드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이 공장의 유리병 안에서 생산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앞으로 맡게 될 역할에 따라 특정한 화학물질이 주입된 후 지속적인 세뇌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계급에 맞는 정신구조를 갖게 된다. 그래도 쌓이는 스트레스는 소마라고 불리는 약물로 해소한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 맡은 역할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아무런 다툼도 충돌도 없는, 오직 즐거움으로 가득한 세상. 작가가 창조해 낸 멋진 신세계의 모습이다.

 

 

     분쟁의 원인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야심찬 비전은 일류 역사에 등장했던 주요 이데올로기들이 공통적으로 장담했던 내용이었다. 왕정 시대에는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때마다 반란자와 창업자 사이의 미묘한 선에 서 있던 이들은 자신이 이전 국가의 폐단을 일거에 제거할 수 있다고 자부했고, 공산주의는 자본만 없애면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언했으며, 자본주의는 돈(시장)에 대한 규제만 없애면 모두가 행복해 질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결국 거짓으로 밝혀졌다. 인간을 구성하는 복잡한 정황에서 어느 한 가지를 절대시하거나, 절대 악으로 치부하는 순간 그는 인간으로서의 온전함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게 역사가 보여주는 결론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똑같이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았고, 인류는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다

 

 

     작가가 이 책에서 묘사했던, 스트레스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시도 역시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서 이제 거의 현실화되고 있는, 인간성 상실을 초래하는 다양한 시도들에 대한 작가의 우려를 읽어낸다. 작가가 마치 예언자라도 되는 양, 그의 작품 속 어떤 아이디어들이 오늘날 현실이 되었는지를 찾아내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그런 시도는 소설 속 압제적 정부를 현실의 무엇과 비교하는 식으로 이어질 테고.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작가가 공들여 쌓아놓은 세계국의 모습은 어떤 것 하나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고, 심지어 허약해 보이기까지 하다. 세계국은 사람들이 사는 영역을 제한하고 엄격한 계급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화학용법까지도 가하는 폭력적인 사회인데도, 이미 그 안에는 시작한 체제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세계 밖에서 온 야만인한 사람으로 인해 일어나는 소동도 그 한 예고.

 

     이미 체제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었고,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모순점들은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는 체제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다른 모든 제국들처럼. 결국 시간의 문제라는 말이다.

 

 

     약물과 법률, 공권력까지 손에 넣은 세력들을 한 구석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문학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구절들을 쉴 새 없이 인용하는 야만인, 가슴 속 심상을 시로 터뜨리는 헬름홀츠 같은 인물들. 그리고 채 자신의 작품세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인 사유 안으로 깊이 들어갔었던 버나드 같은 캐릭터도 문학의 끝자락 어딘가에 살짝 걸쳐져 있다.

 

     문학적 상상력이야말로,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강한 무기일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어떤 제도나 조직, 이데올로기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영원히 누를 수는 없었으니까. 수많은 독재자들과 폭군들이 시인과 작가들을 처벌하고 수많은 금서와 금지곡들이 제정되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반면 기술책들이 금지된 사례는 거의 없다)

 

 

     생각할 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해주는 작품이다. 좋은 문학은 쓴 사람의 창의력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그것도 발달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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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예술을 창조하는 유일한 목적이 복음 전도에 있다고 믿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종교를 삶 전체의 지향이 아닌,

삶의 협소한 측면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만물의 주님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이 생산하는 대중 예술은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그러한 깊은 신앙을

확언할 뿐 아니라 입증하는 것이다.

 

- 윌리엄 로마노프스키, 맥주, 타이타닉, 그리스도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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