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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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본의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에세이다그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데이번 에세이에서는 중년의 작가가 무려 스노우보드’ 타기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실실거리는 자기비하성 유머와 함께 풀려 나온다.


     잡지에 짧게 연재되었던 글을 모은 지라각각의 글들은 그리 길지 않게 나누어져 있고대부분의 내용은 스노우보드를 배우는 과정여름철에도 보드를 탈 수 있는 스키장을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이야기가끔은 보드와 전혀 상관없는 잡지사 지인들과의 일상 에피소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가가 쓴 소설을 서너 권 겨우 읽어본 것뿐이지만또 이렇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아주 밉상은 아니다워낙에 글을 찰지게 잘 썼기 때문일까사실 소재나 이야기 자체는 별 관심이 없는(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랬다것이긴 했음에도또 책장은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런 에세이 칼럼들 사이에작가가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짧은 소설이 세 편이나 들어간다모두 스키장과 관련된 소재를 담고 있는데아 작가는 이렇게 소재들을 수집해서 작품을 쓰는구나 싶은 노련함이 느껴진다.


     뭔가 취미를 가지고그것에 열중하는 것 자체는 크게 나쁠 것까지는 없다그게 운동이라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할 거고다만 이 에세이 속 작가와 그 지인들은 좀 과해 보이는데초여름 까지도 보드를 타겠다고 산을 찾아다닐 것까지야... 물론 글을 쓰기 위해 뭔가 소재를 찾아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가볍게 읽어 볼 만한 에세이지금 뭔가 취미에 빠져있다면은근 공감이 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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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 - 기독교는 정말 세상을 살 만하게 하는가
미로슬라브 볼프.매슈 크로스문 지음, 백지윤 옮김 / IVP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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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초반의 거침없는 지적이 눈을 확 뜨이게 만들었다학문적/직업적 신학자들에 관한 비판과 대안적 비전제시를 담고 있는 이 책은그저 지식 생산자로서의 일상에 정착하고 있는 오늘날 많은 수의 신학자들(아마도 이들 대다수는 교수거나 교수를 지망하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조금 심하게 말하면그들은 오직 종신교수직을 위해서만 일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덕분에 신학은 비신학자들과의 괴리가 엄청나게 커져버렸고이는 다시 그들이 딛고 설 수 있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작은 섬에 더 악착같이 집착하도록 만든다그리고 물론 이건 다시 그들의 신학이 실제 삶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고실제로 이런 식으로 생산된 (신학적지식들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는 지식 더미에 불과하다.

 


     저자들은 이 문제의 핵심에신학이 그 정당한 목적으로부터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소위 진보주의자들은 신학을 사회과학의 한 종류로 만들어사회를 분석하는 여러 틀 중 하나로 전락시켰다(입만 열면 뭔가를 깨부수기만 하려는 태도는 덤이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사용했던 신학적 틀을 보존하는 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했다(마치 그게 천국에서 내려온 틀인 것처럼).


     이 책에서 강조하는 신학의 목표는 번영하는 삶이다언뜻 이 용어를 흔히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번영신학의 그것과 혼동하지 말자저자들이 말하는 번영하는 삶이란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면서, ‘옳은 삶’,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성취하는 삶이다유물론은 우리에게 의미를 설명해줄 수 없고오직 떡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우리의 인간성을 좌절시킨다.


     책의 후반부는 번영하는 삶이라는 비전의 내용과 어떻게 그것을 향해 신학자들이 공헌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설명으로 채워진다인상적인 것은 무엇보다 신학자들이 먼저 그들의 비전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분이다그들의 삶의 목표를 사회적 명성이나 인정성공에 두지 말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도 덧붙여진다(사실 이런 권고 자체가 오늘날 신학자들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낮아졌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책 초반의 거침없는 비판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조금 완화된 느낌이다문제가 되는 상황은 통렬하게 지적하되새로운 일을 세우기 위해서는 불평만으로는 안 된다는 책 속의 주장은 저자들 자신의 작업에도 적용되는 모습이다철거와 건축은 다른 작업이니까다만 역대급 사이다로 시작된 책이 후반부로 가면서 익숙한 내용으로 조금 느슨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내용이 익숙하지 않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학식 있는 목사들이 사라지고 경영서에 더 관심을 갖는 현장이 확산되면그 현장의 요구에 맞는 내용을 가르칠 수밖에 없을 테고그러면 자연히 학교에서도 그런 식의 교육에 특화된 신학자들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십 수 년 전 작성된 낡은 강의안으로 여전히 강단에 서서 앵무새처럼 강의를 반복하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어떤 지적영적 자극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면 이마저 점점 어려워질 것 같긴 하지만.


     신학자들그리고 목회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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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똑같이 대해주기,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어렵다

정의의 저울을 바로 잡으려 할 때

상대방보다는 대체로 우리가 더 많은 해를 입는다.


제라드 리드

C. S. 루이스를 통해 본 일곱가지 치명적인 죄악과 도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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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년 경제전쟁의 미래 - 환율과 금리로 보는
오건영 지음 / 지식노마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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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서 종종 시청하는 채널의 콘텐츠가 있다요새 많이 유행하는 경제방송을 한다는 채널인데사실 그날그날의 주가 시황이라든지 추세라든지 하는 내용은 별 관심이 없지만그 중에서도 유독 챙겨보는 콘텐츠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오건영이 등장하는 영상들이다


     생긴 건 평범한 동네 아저씨처럼 순한 외모인데일단 설명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가 추임새를 넣기 전에는 쉬지 않을 정도로 줄줄 이야기가 흘러나온다최근에는 칠판에 필기까지 하면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 영락없는 일타강사 느낌이다.


     그가 하는 설명은 거시경제와 관련된 조금은 큰 이야기들이다자신은 주식이나 부동산은 잘 모른다고 몇 번이나 겸양의 표현을 하지만(사실 조금 알지도...) 일본의 금융위기유럽 재정위기우리나라의 IMF사태 등등 굵직한 경제위기들의 원인을 딱딱 떨어지게 분석하는 게 저절로 빨려 들어간다.

 


     그의 설명이 매력적인 건이런 식의 위기에 관한 설명에 꼭 따라오기 마련인 음모론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사람이라는 건 은근히 단순해서어떤 위기가 찾아오면 희생양을 만들어서 모든 문제를 지게 하는 간단한 방식에 쉽게 빠지곤 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정도의 대규모 경제위기라면그 안에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 개인들이 없을 리는 없지만모든 걸 그런 식으로 몰고가다보면 진짜 이유를 놓치기 쉽고그러면 다가올 또 다른 위기에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오건영은 이 위기들을 분석하는 데 환율과 금리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풀어가려고 한다(다른 이유가 없다는 게 아니다). 요새는 재태크나 해외여행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환율이니금리니 하는 것도 뭔지는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책에서 풀려나오는 이야기들은 이 두 요소가 훨씬 더 큰 효과를 일으키는 나비의 날개짓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탁월한 통찰력에 감탄을 하면서동시에 나랏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툭툭 경제에 관해 던지는 말들이 얼마나 수준이 낮은지가 떠올라 씁쓸했다물론 정치인들이 경제에 관해서 박사가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너무 한두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전체를 본 양 호들갑을 떤달까뭐 애초에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상대방 공격하는 것 말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하는 걸 보기 쉽지 않긴 하지만.


     당장 내수 규모가 작아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는 북한처럼 폐쇄적인 경제로 운영할 수 없다필연적으로 개방된 상황에서 다른 경제주제들(국가와 기업들)과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이런 상황에서는 단지 우리 내부의 경제정책을 원칙에 맞게 쓴다고 해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금리를 올리면 우리나라에서도 금리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고(안 그랬다간 자본유출이 일어나고 경기가 하강한다), 중국의 환율이 절하되면 우리나라 수출이 어려워진다사실 국력이 약한(미국에 비해선 안 약한 나라가 없겠지만나라로서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 길을 찾지 않은 채 자존심이니 정당성이니 하는 문제만 가지고 나서다간 꼼짝없이 위기에 몰리고 만다.


     어차피 모든 정치인이나 관료가 경제학의 대가가 되기 어렵다면폭넓은 의견을 듣고 균형감각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이왕이면 이 책의 저자 같은 사람에게 배우면 더 좋을 것 같고.(저자를 청와대 비서관으로~) 적어도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개인적으로는 경제도 경제지만역사에 대한 경제적 분석일종의 경제사로 읽혀서(내가 역사를 좋아한다는 건 아는 사람은 알 거다흥미진진하게 읽었다저자가 쓴 다른 책들도 곧 구해서 읽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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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있는 힘.


영화는 어느 평범한 날 아침 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는 한 은행원(성규조우진)에게 걸려온 전화로 시작된다전화 속 목소리는 지금 타고 있는 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자신의 말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터뜨리겠다는 위협을 하고 있다차에서 내리기만 해도 터진다는 위협에 두 아이의 목숨을 건 도박을 하기 어려웠던 성규는 결국 지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는 대부분 성규의 자동차라는 좁은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콱 막힌 상황을 풀어주는 장치는 아이러니하게도 성규가 받고 있는 협박 전화였다협박범은 영화 상영시간 내내 끊임없이 성규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고이건 단순히 돈을 뺏어가겠다는 일반적인 범죄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협박범은 대화를 원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물론 그 방식은 부적절했지만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말 따위는 들어주지 않을 상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사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하고 싶을 때하고 싶은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건 이다그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묻혀버리기 일쑤.


그러다 보니 영화 속 협박범처럼 누군가(종종 이 누군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한다)의 목숨을 거는 절박한 사람들도 나오곤 한다조금 더 일찍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까.

 





양복 입은 범죄자.


신약성경의 야고보서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한다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곤 하지만정작 우리를 억압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건 부자들이라는 말이다(약 2:6). 영화 속 성규의 직업은 은행원이었다바닷가가 보이는 호화로운 집에비싼 자동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그는 성공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성공과 재산은 누군가의 눈물 위에 쌓은 것이었다강도나 도둑이 몇 사람에게서 빼앗은 수 백 만원의 불법적인 수입은양복 입은 사기꾼과 지능범죄자들이 수백수천 명에게서 뽑아낸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악한 재물에 비해 새발의 피 정도에 불과할 때가 많다.(하지만 대개 이쪽은 훨씬 낮은 수준의 처벌로 넘어가곤 한다그나마 사면으로 일찍 풀려나기 일쑤고)






작은 범죄에 엄격하고큰 범죄에 관대한정신 나간 법문화는 결국 사회를 말라죽게 만든다역사를 봐도 한 공동체나 국가가 망할 때는 항상 법집행의 문란함이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는 모습이 등장하곤 한다결국 누구도 공동체를 위해 나서지 않게 되고그런 공동체는 작은 위협에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값비싼 양복이라는 겉모습에 휘둘리지 않는 정의로운 사법행정은 꿈만 같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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