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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없는 언어 - 생각보다 헌법은 구체적입니다
정관영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1월
평점 :
법학을 공부하고 한동안 법과 관련된 정부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던 저자가, 왠지 추상적인 문구로 잔뜩 쓰여서 우리의 일상과 직접 관계가 없을 것 같은 ‘헌법’을 살펴보면서, 그 적절한 적용에 관한 고민을 담은 책. 그렇다고 학술적 성격의 글은 아니고, 세상의 이런저런 사건들을 인용하면서 쉽게 풀어낸, 에세이에 가깝다.
서문에서 저자는 ‘헌법정신’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그것이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기 생각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식의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는 데 단골로 사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종시로의 수도이전을 ‘경국대전’과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어 저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전 국민이 진작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헌법의 조항들을 우리 현실의 삶으로 가지고 내려오는 작업을 시도한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조교를 성추행한 교수, 한 항공사의 비행기 조종사의 턱수염 금지 조항 등 뉴스에 한 번씩 나와서 들어봤을 만한 사건의 판결들을 되짚어 보면서 헌법에 보장된 ‘인권’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하는 1부로 시작해, 헌법으로도 보장된 노동 3권이 실제 법정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주로 다루고 있는 2부,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 차별과 평등의 문제를 다루는 3부가 이어진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4부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시민들의 여러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제로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언젠가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우리나라 헌법이 참 잘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내 푸념에 대한 대답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헌법을 만들 때, 외국의 좋은 점들을 대폭 수용해서 꽤 준수하게 만들어졌다는 것.
그런데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의 실제 생활 속에서는 그렇게 헌법이라는 게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가끔 헌법소원 같은 얘기들이 나올 때나 언급되지, 일반적으로는 규범적이라기보다는 이상적이고, 일종의 목표 정도로만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헌법에는 좋은 내용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게 국민들의 실제 삶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 수억에서 수 십 억 원의 돈이 노동자들 개인에게 있을 리 없고(사장들은 다들 자기들 같은 줄 아는가 보지만) 이 압박감은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친 사용자에게 그런 징벌적 배상금을 물렸다거나, 소비자가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그 금액이 높았다거나 하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헌법에 노동권은 보장되어 있어도, 사용주의 횡령권은 보장되어 있지 않은데도, 법원이 엉터리 법리를 동원해 사실상 헌법을 사문화시키고 있다는 것.
결국 헌법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그에 맞는 조금 더 정교한 법률들이 필요하다고 저자도 말한다. 그러려면 국회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 300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인지라... 국민 개개이니 헌법에 정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주장할 수 있게 되는 일을 바라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지만, 당장 먹고 살기에도 바쁜 사람들에게 법 공부까지 하라는 사회에 정상은 아닐 테니까.
결국 책을 다 읽고 나면, 뭔지 모를 허탈감, 허무함이 들 뿐이다. 헌법에 규정된 충분한 정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들춰보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한없이 덮어둘 수만도 없는 일이지만...
초반에 실린 글들은 조금 현학적으로 느껴졌다. 법의 언어보다는 문학의 언어 느낌이 많이 든다. 후반부에 가면 이 부분은 조금 나아지긴 한다. 다양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보니 일부 내용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다.
예컨대 지나가듯 서문에서 언급되는 낙태문제와 관련해 저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인권보장의 당연한 결과처럼 설명하지만, 그건 태아를 생명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또 다른 도전을 마주할 수 있다. 자기결정권과 생명권 중 어떤 부분이 더 무겁게 다뤄져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해 반대하는 헌재의 소수의견에 사용된 ‘행동에 대한 책임 운운’하는 논리에는 나도 동의하기 어렵긴 하다.
소수자 우대정책과 관련된 논란 중 일부에서는, 피해를 받는 사람과 정책으로 인해 수레를 받을 사람 사이의 불일치라는 작지 않은 문제가 잇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비판이 “차별받았던 집단의 개별 구성원 모두가 우대를 받아야 정책이 정당화된다는 관점”에 기초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히 반박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이 반박은 별로 논리적이지 않은데, 비판자들은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정의의 원리를 상기시키는 것이고, 저자의 반박은 이런 원리의 훼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엄청나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준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웠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