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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4-08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가 되는군요. 저도 신문은 안 보는데...
누구는 신문을 보라고도 하죠. 특히 도스토옙스키는
많은 글감을 신문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도 많았다며.
도 선생님의 시대는 신문이 좀 달랐을까요?ㅋ

참, 알지 문제는 어떻게 해결이 됐나요?
저는 대체로 잘 들어가는데...

노란가방 2022-04-08 20:36   좋아요 0 | URL
신문이 구독료가 아니라 광고에 의존해 운영되기 시작하면 결국 타락하는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물론 애초에 정파적 목적을 가지고 신문을 만들거나 운영하는 수도 있겠지만요..

엇.. 리더스 가이드 사이트 들어가지시나요?
전 여전히 노트북으로 전혀 접속이 안 되네요.. ㅠㅠ
방금 집 와이파이 말고 휴대폰으로 접속해보니 홈페이지가 뜹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인터넷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밀린 리뷰도 많은데....
 
우리, 집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진주.진경 글.그림 / 고래뱃속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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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글을 쓰고, 동생이 그림을 그려서 만든 그림책이다. 큼지막한 판형에, 재미있으면서도 잘 구성된 그림이 가득 채워져 있고, 페이지마다 한 줄 정도의 짧은 글이 덧붙여 있다. 글씨를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과도 함께 볼 수 있을 만한 책.


물론 그렇다고 어린 아이들이나 볼만한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어른들이 볼 가치가 없는 책은 어린 아이에게도 별 가치가 없는 책이니까. 사실 제목부터가 중의적으로 붙어있는, 단지 어린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책 제목이 ‘우리 집’이다. 그리고 내용은 1차적으로 보면 다양한 동물들이 인간처럼, 자신의 집에서 편안히 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린들의 키에 맞춰 아주 높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나, 하얀 헤어밴드를 두르고 러닝머신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치타처럼, 재미있는 그림들이다.


그런데 제목을 정확히 보면 ‘우리’와 ‘집’ 사이에 쉼표가 하나 찍혀있다. ‘우리, 집’.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집’을 수식하는 게 아니라 집과는 구분되는 또 하나의 공간을 의미할 수도 있다. 동물들이 사는 ‘우리’ 말이다.


이렇게 보면 첫 번째 그림이 좀 다르게 보인다. 도시 한 가운데 담장을 둘러싸고 여러 채의 집들이 배치되어 있는 마을 공간. 그건 어쩌면 동물 우리들이 한데 모여 있는, 동물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동물들은 그 안에서 편안하게 생활을 하고 있을까.


책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안 그래도 큰 판형인데,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그 두 배의 사이즈를 책날개처럼 접어서 양쪽으로 활짝 펴면 거대한 화폭이 나타난다. 맨 첫 장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구도의, 하지만 훨씬 더 넓은 (도시가 아니라) 평원을 배경으로 거대한 호수가 중앙에 앉혀있다. 동물들에게는 울타리 속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집이 아니라 이런 자연이 진짜 ‘우리 집’이라는 걸 말하려고 했던 걸까.



그림 한 컷 한 컷에 꽤 신경을 썼구나 싶다. 큰 그림에도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고, 특히 동물들이 집에 있는 장면들에서는 은근 개그 욕심도 있었던지 재미있는 배경들이 많이 보인다.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천천히 읽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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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2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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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술라가 죽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철저하게 숙청하고 독재관이 되어 권력을 손에 넣은 그는, 원로원 중심의 국정운영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각종 입법 작업을 모두 마치고는 전격적으로 정계은퇴를 한다. 누가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그럴 만한 위치도 아니었고), 애초에 6개월이었던 독재관의 임기 역시 그에게는 예외가 적용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오직 자의에 의해서 퇴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을까? 이 정도 법적 장치라면 누가 오더라도 한동안은 체제가 잘 유지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시 잠시 불안감을 드러냈듯, 법과 체제라는 건 한 순간에 뒤집힐 수도 있고, 역사란 늘 진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게 곧 드러날 터였다. (이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와 민족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또 하나의 동기는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 느낄 수밖에 없는 피곤함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번 권에서 술라는 꽤나 자주 이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은 누가 짐작이라도 할까. 많은 최고 권력자가 결국 부패하거나 폭군으로 치닫곤 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기를 원한다. 민주화 시대가 된 이후에는 왕이 아닌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대한 욕망은 강렬하다. 문제는 자신이 정말로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 여러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되는 걸 보면 더욱 와닿는 부분인데, 막상 그 자리에 대한 욕심이 눈을 가리면 그런 건 보이지 않는 듯하다. 본인도, 참모들도, 지지자들도.



책의 또 다른 축은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카이사르는 소아시아의 작은 왕국을 오고가면서 자신의 기량을 뽐낸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폼페이우스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술라의 영향력이 줄어가는 원로원 안에서 자신의 당파를 만들면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초반은 확실히 폼페이우스가 앞서나가는 모습인데, 조금은 무리하게 얻어낸 지휘권을 가지고 도착한 히스파니아 내전에서 그의 활약은 미미했다. 카이사르 못지않은 군사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명성과는 다른 모습인데, 하긴 20대의 젊은이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게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폼페이우스의 훗날을 예상할 수 있는 점이 몇 개 보인다. 그는 세르토리우스라는 강력한 적 앞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도 잠시 침울해지기는 했으나 끝내 자부심은 잃지 않았다(뭐 여기에는 그가 가진 재력이 한 몫을 하긴 했겠지만).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더 큰 인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큰 장애물이다.


또, 폼페이우스는 일단 자신의 전술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평소 무시하던 메텔루스의 작전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준다. 흔히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나가는 경향이 있고, 결국 더 큰 실패를 경험하기 마련인데 이런 면에서도 그는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이 있었다.



시리즈 전체의 제목처럼, 일인자가 되기 위해 달리는 군상들의 모습에서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그렇게 바라던 일인자가 된 후 말년이 행복해 보였던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함정. 마리우스도, 술라도.


대충 6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겨우 사흘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재미있으면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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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냥한 사신
기노 도리코 지음, 박대희 옮김 / 경당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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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나의 상냥한 사신’이라니. 사신(死神)이란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다준다는, 우리나라로 치면 저승사자 비슷한 존재다. 그런데 여기에 ‘상냥한’, 그것도 ‘나의’라는 개인적인 수식어까지 붙는 건 아무래도 어색해 보이니까.


‘죽고 싶다’,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더라도, 그런 생각쯤 한 번 해보는 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매일의 삶은 너무나 무겁고, 때로 살아가는 일 자체가 마치 격렬한 전투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렇게 이제 삶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려냐?



책의 첫 장을 열면 하얀색의 왼쪽 페이지와 검은 색의 맞은편 페이지가 강렬하게 대비된다. 이런 구성은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면서, 하얀 왼쪽에는 주인공 캐릭터가, 검은 오른쪽에는 해골 모양의 사신이 활동하는 무대로 설정된다. 주인공은 오른쪽 페이지로 계속 넘어가고 싶어하지만, 그 사이의 ‘막’은 오직 검은 쪽에서면 열어줄 수 있는 상황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페이지를 넘어가기 위해, 주인공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여기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는지를 강변하지만, 그의 사랑스러운 사신은 그런 주인공이 넘어오는 걸 막기 위해 애를 쓴다.(정말 사신 맞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사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는 주인공의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해주고, 그가 쏟아내는 넋두리에 공감도 해 준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괴로워하며, 함께 춤을 춘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 존재가 정말로 사신이라기보다는 주인공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신과 자신은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결국 사신은 주인공이 가진 죽음에로의 욕구를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방법은 설득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내가 너와 늘 함께 있다’는. 맨 앞장에서 무거운 갑옷을 입고 삶이라는 싸움을 간신히 견뎌낸 뒤 집으로 들어왔던 주인공은, 그렇게 사신의 공감을 받으며 잠에 빠져든다.



글보다 그림이 차지하는 영역이 훨씬 많은, 그림책이다. 이야기의 성격을 보면 동화책 같기도 하고. 단순한 흑백의 선으로 이런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확실히 예술적 감각인 것 같다. 무엇보다 책의 구성도 신선하고, 메시지도 여운이 깊게 남는다.


오늘도 삶이라는 힘겨운 전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누운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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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0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끌리는데요?! 인상적이예요.

노란가방 2022-04-05 22:38   좋아요 1 | URL
인상적인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