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씨를 뿌리지 않아도 자라지만
거룩함은 경작이 필요하다.

- C. H. 스펄젼

Sin will grow without sowing,
but holiness needs cultivation.
- C.H. Spurg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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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버터는 어디로 가버렸지?
딘 리플우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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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줄거리 。。。。。。。        

  

     두 마리의 고양이(미케와 다마)와 두 마리의 여우가 등장하는 짧은 우화. 어느 날 숲속에서 커다란 버터를 발견한 고양이와 여우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버터를 즐기지만 이내 다 사라져버리고 만다. 새로운 버터를 찾으러 나서는 여우들과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고양이들. 하지만 고양이 중 하나인 미케는 자신만의 새로운 버터를 찾겠다며 길을 떠난다. 과연 미케는 버터를 찾을 수 있었을까?

 

 

2. 감상평 。。。。。。。        

 

     저자의 이력이 흥미롭다. 이름으로 보면 분명 미국인으로 보이는데 서문은 ‘유심 선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찾아보니 금융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후 불문에 귀의해 오랜 수행생활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저자가 종사했다는 금융사업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독특한 경력임에 틀림없다.

 

 

     이야기는 - 저자 자신도 서문에 밝혔듯이 - 어디선가 충분히 들었을만한, 또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한없이 앞을 향해서만 달리다가 결국 가진 것마저 잃어버리는 사람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행복만을 쫓다가 그 뒤에 있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 마는 이들 등 소유와 행복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물론 불교적 세계관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지만)

 

     막연히 낙관적인(하지만 비현실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한없이 앞으로 달려갈 것만을 주입하는 오늘날 세태는 분명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결국 모두를 사냥꾼의 총 앞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볍게, 하지만 생각하며 읽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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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
마크 로그.피터 콘라디 지음, 유향란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2차 세계대전 즈음 영국의 왕위에 오르게 된 조지 6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할 때면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찾아 간 사람은 언어치료사인 라이놀 로그. 어떤 학위도 가지지 못했지만, 뛰어난 상담자이기도 했던 로그는 왕의 문제가 단순히 혀의 움직임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그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려는 조지는 로그의 도움으로 점차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입헌군주국에 있어서 군주란, 그런 전통이 없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와 닿지 않는 존재다. 국민 모두가 투표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지만, 이런 생각이 퍼진 것은 고작해야 채 200년도 되지 않았다. 수천 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대단히 새로운 이론인 셈이다. 프랑스처럼 왕을 처형한 역사가 없는 영국에서는 왕을 존중하되 그의 권리는 시민들 중에서 나온 실력자들(후기에는 대표자들로 바뀌었다)이 갖는 일종의 타협이 일어났다. 이후 왕은 여전히 국민들 전체를 하나로 모아주는 상징적인 인물로 남게 된다.

 

     그게 무슨 낭비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늘날 극심한 국론 분열로 인해 소비되는 국가 자원들을 생각한다면 어느 쪽이 더 낭비인지는 계산을 한 번 해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국민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존재나 계기가 있다는 것은, 특히 위기나 큰일을 앞두고서는 대단히 필요한 일이니까. 비록 모두가 그가 실권이 없는 연예인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월드컵 하나로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열광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영화는 그런 왕도 다른 사람들처럼 약점을 가지고 있음을 정면으로 부각시킨다. 화려한 궁전에서 모두의 박수와 경의를 받으며, 가끔 연설이나 파티에 참석하며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그 상처를 쉽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위치니 딱하다. 당연히 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으로는 불가능했고, 영화 속 라이놀은 이 점을 눈치 채고 왕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치료를 시작한다. 왕은 그런 라이놀에게 마음을 열고나서야 자신의 문제를 되돌아볼 수 있었고, 거기서 문제의 해결은 시작되었다. 결국 영화는 단순한 말더듬증을 치료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편의 상담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때문에 상담과정에 관한 이해가 있는 관객이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일 것 같다.

 

 

     좋은 가르침은 단순히 기술과 지식만을 잘 전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점에서 만큼은 오늘날 교육과정은 분명 문제가 있다. 물론 이는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소위 ‘현대적인 교육과정’에는 우선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칠뿐더러 가르침의 내용 또한 철저히 기술적인 것들만 가르치도록 강요되고 있으니까. C. S. 루이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담당 기관은 제거해 놓고선 그 기능만은 계속해서 요구’하는 오류에 빠져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바르게 사는 법 대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며 사는 법만을 가르치면서 그들이 일탈행위를 하면 놀라는 이유는 뭔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걸까.

 

 

     화려한 볼거리와 충격적인 반전 같은 게 있는 영화는 아니다.(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고 하던데, 원래 아카데미는 이런 데는 좀 보수적이니까) 하지만 가끔 튀어나오는 영국식 유머는 극이 지루해지지 않게 해주었고, 영화에 깔려있는 클래식 배경음악은 극의 무게를 적당히 더해주었다. 볼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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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가 병이 드는 것은 의식이 무의식의 지혜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의식과 그것을 치료하려는 무의식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의식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신 질환은

 개인의 의식적 의지가 무의식의 신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려고 할 때 일어난다.

 

1. 요약 。。。。。。。                     

    

     ‘인간의 정신적인 성장이 인간 실존의 목적’이라고 믿는(82) 저자는, 이를 위해서 적절한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1부) 그러나 훈련은 쉽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은 어째서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하려고 하는가? 저자는 그 동인(動因)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진정한 자아를 확장시킨다.(2부)

     3부부터는 그런 자기성장과 종교의 관계를 탐색해 나간다. 저자는 ‘종교’를 세계에 관한 여러 신념들의 총체로 정의하면서,(이에 따르면 자신을 무신론자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여전히 세상에 관한 여러 신념들을 가지고 있기에 - 예를 들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만이 사실이다, 증명될 수 없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와 같은 -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종교적 관점이 그의 영적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때문에 한 인간의 참된 성숙에는 그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자신을 넘어서는 신적 은총이 필요하다는 주장(4부)으로 글을 마친다.

 

2. 감상평 。。。。。。。                  

 

     책의 전반부는 일반적인 심리학을 다룬 책들과 유사하며, 종교와 인간의 정신적 성장의 관계를 다룬 후반부는 종교 심리학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쪽에서 나오는 책들과 비슷한 주장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경우 충분히 예상되는 결론이지만, 스스로를 비종교적 심리학도(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어설픈 종교적 주장을 덧붙이려는 시도라고 비판을 받을 것이고, 자신을 독실한 신앙인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의 독특성이 배제된 이런 ‘일반적인 종교(종교하면 흔히 떠오를 수 있는 공통적인 것들만을 모아 놓은, 그래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종교)’에 관한 언명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아쉬움을 토로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서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을 보면, 역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중간에 속해있기 때문일까.

 

     저자는 책의 시작부터 인간 삶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기고 있다. 이 책 자체가 처음부터 종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전반부는 좋았는데 후반부는 종교색이 짙으니 어쩌니 하는 서평들이 많이 있던데, 처음부터 길을 잘못 잡은 셈이다.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유물론적 세계관에서는 낭비 아닌가? ‘~~답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목적과 이유를 떠올리게 만들고, 무목적성이 특징인 물질들의 세계(유물론적 세계관의 세계)에선 처음부터 목적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이 책에 대해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종교’란 대단히 옅은 색깔을 띠고 있다. 이 책을 쓰면서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책은 여전히 선(禪)이나 도(道) 정도의 종교에 관한 인식만을 담고 있다.(선과 도를 무시하는 게 아니고,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대단히 은은한 향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비록 성경의 인용과 비유가 자주 발견되기는 하나, 그 역시 그저 ‘일반적 종교’의 언명일 뿐이지 특별한 가치나 중요도를 인정하기 때문은 아니다. 확실히 저자의 신은 기독교의 신과는 차이가 있는데 그 신은 비인격적이며(저자는 무의식을 신과 동일시한다), 따라서 죄란 인격적인 신에 대한 반란이 아니라 자기 마음 속 무의식의 메시지를 따르지 않는 게으름으로 정의된다. 결국 자기 마음속에 있는 무의식이라는 거룩한 신의 인도에 따라, 게으름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훈련해 나갈 때 인간은 완성될 수 있다는 식의 뉴에이지 사상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영적인 성장’이란 개념을 자주 반복하지만, 영적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니까.

 

     자기 성장을 위해 부단한 훈련이 필요하며, 이 훈련의 동인이 사랑이라는 진단 자체는 대단히 와 닿았다. 그리고 각론에 있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종교가 영적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사실 살면서 수많은 은총을 경험하고 있다는 주장도 (긍정적인 의미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길을 제대로 들어섰다고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과연 이 책에서 소개된 것과 같은 저자의 여행을 통해 제대로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물론 책이 출간된 지 꽤 됐으니 이후 저자의 여정에 좀 더 발전이 있었다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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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네츠 2012-01-0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장을 읽을 때 뭔가 하나님에 대한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느꼈는데,
이 글을 읽어보니 정리가 잘되네요.
잘 보고 갑니다. 글 써줘서 감사합니다.

노란가방 2012-01-08 16:49   좋아요 0 | URL
예. 반갑습니다. ^^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감정은 자주 바뀌지만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

- C. S. 루이스


Though our feelings come and go,
God's love for us does not.
- C.S.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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