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실 죄와 타협할 때가 있다.
뻔뻔스런 죄악 앞에서 우리는 참지 말고 분을 내야하고,
죄에 대해 무관심하기 보다 오히려 화를 내야한다.
하나님께서 죄악을 미워하신다면,
그의 백성들도 죄악을 미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 존 스토트 


We human beings compromise with sin
in a way in which God never does. 
In the face of blatant evil
we should be indignant not tolerant,
angry, not apathetic. 
If God hates sin,
His people should hate sin too.
- John Stot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3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저자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가 태생적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며 중독성 있는 호르몬을 분출(57)케 하는 ‘부정적인 영향’(57)을 초래하는 음악이기에 이를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예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록에 기반한 찬양들이 예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결국 복음/성경의 메시지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이런 경향의 원인을,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교회가 자신을 세상에 맞추어 변형시키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2부에서는 성경에 기초한 바른 예배의 정의와 형태에 관해 말하면서, 바른 예배 찬양이 가져야 할 요건들을 제시한다. 또, 예배 음악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소명을 드러내는 한 방식으로서의 음악(저자는 CCM을 이렇게 정의한다)의 필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위해 음악적 재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분발해야 한다는 요청이 덧붙여 있다. 

 

 

 

2. 감상평 。。。。。。。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책은 앞서의 책들보다 더 잘 드러나는 부분인 ‘교회 안의 음악’에 관해 다루었기에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읽힐 것 같다. 최근의 ‘이상한’ 찬양들에 대해 뭔가 불만이나 불안감을 품고 있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의 논지 중 어떤 부분은 상당히 명쾌한 조언을 제시하고 있으니 읽어볼 만하다. 나도 저자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만들고 향유하는 음악들을 예배를 위한 것과 예배 이외의 목적을 가진 것으로 나누어서 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전자의 경우는 예배라는 일종의 의식에 맞게 제작된 것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부분에도 찬성한다. 저자의 말처럼 성경 구절 한두 개를 떼어 내서 가사에 집어넣었다고 해서 모든 게 ‘찬양’이 되는 건 아니니까. 찬양이란 말 그대로 상대를 높이는 것이지, 그것을 하는 행위자 자신의 만족과 위안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저자가 말하는 주요 주장에 동의를 함에도, 책 자체를 보면 좀 아쉬운 점이 많다.

 

 

     저자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에 관한 이야기로 본론을 시작한다.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만으로도 우리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39) 어떤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그의 행동을 달라지게 하는 것, 일반적으로 이런 작업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즉 저자의 말대로라면 음악은 교육을 위한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런데 또 다른 곳(181)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동안 진짜 중요한 것을 노래로 배운 게 있’느냐고 반문한다. CCM을 통해 부드럽게 복음을 전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며, 그러니 좀 더 진지하게 말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내포하는 것 같다. 아니, 음악이 그렇게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데 말과 함께 음악과 노래를 사용해서 안 될 이유는 또 뭔가? 그리고 저자의 말과는 달리 우리는 살면서 중요한 것은 노래로 다 배웠다. 유치원을 가면 서로 도와야 하며, 사랑해야 하고, 길은 횡단보도로 건너고, 양보하고, 효도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내용들을 다 노래로 배운다. 유대인들은 쉐마라고 불리는 신명기의 성경구절을 노래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시편을 노래로 암기하며,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일종의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예컨대 빌 2:1-12 같은)

 

     물론 오늘날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들이 이런 복음의 내용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는 백번 공감한다. 그런 노래들을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정말 엉뚱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들이라면 그 외의 시간에도 부르지 않는 게 옳다. 그런데 저자의 좀 과격한 입장에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좀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이라고 하면서 그 자체에 선하고 악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47) F단조는 악하고 C장조는 선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일한 사람이 몇 장 뒤에 가서는 특정한 비트와 코드 패턴, 그리고 큰 소리(저자가 말하는 록의 특성들이다)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부정적인 영향’(57)은 그것을 듣는 이들이 반복해서 찾게 된다는 것 말고 별다른 것이 제시되지 않는다.(아, 청력에 문제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긴 하다) 심지어 저자는 ‘음악은 그냥 음악일 뿐이다’라는 주장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면서 ‘도와 솔은 중립적이지만 이런 음계가 합쳐져서 화성을 만들고 리듬을 이루고 멜로디가 더해지면 더 이상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99) 앞서의 논리와는 모순되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는 록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매우 대략적으로 특정한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일종의 중독상태를 일으킨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여전히 이 부분에 관해서는 충분한 의학적 연구 결과가 없는 것으로 안다. 참고로 프랭크 갤럭 등이 쓴『위험에 처한 교회음악』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이 책처럼 주관적인 느낌과 경고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요컨대 이 록이라는 특정한 음악 형식이 주는 메시지가 얼마나 강한지 거기에 어떤 거룩한 가사가 붙어 있더라도 그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113)는 주관적 견해를 일반화하고 있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 세상의 어떤 부분(록과 같은)은 악하다는 식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건 아닌가. 그건 성경적인가?

 

     이 외에도 2장의 ‘CCM 옹호론에 대한 반론’은 저자가 잘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그치고 있고,(거기 나오는 상대방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위로와 격려, 축복을 주제로 하는 노래들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복음을 나쁜 소식으로, 그래서 예배 음악에는 죄에 대한 강조만이 강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부분(143-144)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마다가 경외와 감탄으로 기쁘게 노래했던 구약과 신약의 전통과도 어긋나 보인다. 성경 어디에도 기독교인들/하나님의 백성들을 집단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그리고 있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뻐하며 서로를 축복하는 이들이 아닌가.

 

 

     문제는 예배 음악을 엉뚱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감정적 충동을 성령의 은혜라고 가르치는, 감정만 뜨거워지면 그게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선 것이나 그분을 바르게 예배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찬양인도자들이 문제 아닌가. 여기에 인격적으로 그분을 만나기 위해 성경을 읽고 깊은 기도를 하기보다는 컵라면 끓이듯 손쉽게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인 양 착각하는 게으른 신자들도 문제가 있고.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를 좀 더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려는 욕심, 그래서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자세가 되어있는, 준비되지 않은 목회자들일 거고. 이런 차원에 이 책은 전작인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거의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부록에 가깝다. 주제의 발전에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물론 이 말이 이 책이 나쁘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쉽다. 세 번째 책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이, 이 시리즈에 속한 앞서 두 권의 책과 비교해 이 책을 가장 덜 논리적이고 쫓기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이 주제에 관해 저자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적 경험’(26)들을 자주 삽입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물론 짤막한 글이라도 자주 써 본 사람이라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잘 쓰기는 힘들다는 데 공감을 표할 것이다) 주관적 신앙 경험과 견해를 일반화하기 위해선 좀 더 조심스럽고 폭넓은 연구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엔 곱씹어 볼만한 내용들이 많으니, 차분히 읽어본다면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링크 - Lin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하나 남은 여동생과 살아가다가 여동생마저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재현(류덕환). 알고 지내던 성우(김영재)가 운영하던 학원에서 일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잡아가던 중 뭔가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모의 여고생 수정(곽지민)을 만난다. 수정은 다른 사람의 의식과 자신의 의식을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링크)을 가지고 있었고, 이 능력은 의식을 공유한 사람에게 마약과 같은 쾌락을 주었기에 일종의 중독 증세를 일으켰다.

 

     도박에 빠져 학원운영이 어려워지자 재현의 아파트 매각 대금을 노린 영재는, 자신을 좋아하는 수정을 시켜 재현에게 접근하도록 했고, 수정과 링크를 경험한 재현은 점차 그녀에게 빠져든다. 여기에 수정을 또 다른 이유로 이용하려는 영만(정찬)까지 엮여 들어가면서 내용은 복잡해져간다. 

 

 


 

 

 

 

 

2. 감상평 。。。。。。。                  

 

     다른 사람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와 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링크라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소녀라는 소재가 흥미롭다. 단편영화를 주로 만들었다던 감독은 이 소재를 국가 기관이나 거대 기업의 음모와 같은 거대한 주제들 대신, 개개인의 욕망과 연결시킨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좀 작아진 대신, 좀 더 사건들을 오밀조밀하게 배치해서 심리적 변화를 강렬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영화적 재미를 좀 살렸어야 했는데, 영화의 구성에 좀 아쉬운 점이 보인다.

 

     신의 퀴즈로 더 잘 알려진 류덕환의 중독된 연기는 맡은 캐릭터를 잘 살려냈고, 계산적이며 차가운 구성우 역의 김영재도, 그리고 주연을 맡은 곽지민도(A급 연기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발전가능성이 엿보인다) 맡은 역할은 충분히 해 냈다. 하지만 인물들이 너무 단순하게 관계를 맺고 있고, 메인 테마 이외의 주변이야기들을 통한 소소한 재미나 복선, 단서와 같은 게 없다. 열심히 달려가기만 할 뿐,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해 내지 못한 아쉬운 영화.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수정이 가지고 있는 능력인 ‘링크’란 말 그대로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능력이다. 다른 말로 하면 ‘소통’이라고 할까. 어떻게 보면 영화는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하기를 갈구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인터넷이라는 도구도, 사실 단순하게 말하면 바로 이 ‘연결’과 ‘소통’을 위한 장치다. 가면 갈수록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발전되는 정보 전달기술과, 통신회사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윤은 이 근원적인 욕구가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준다. 이건 정말 ‘근원적인’ 욕구다.

 

     문제는 기술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인간들이 새로이 알게 된 정보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그런 물질적인 발전이 사람들에게 진정한 만족을 줄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관계에 관한 집착과 갈구, 그리고 종종 비정상적인 변형을 동반한 무절제한 충동의 분출들은 갈수록 늘어나고만 있다. 외로움을 호소하며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답을 찾아 달려가고 있고, 또 한편에는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나머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이들이 휘두르는 미친 칼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 가면 갈수록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관계 맺음을 어려워하고 있다는 증거다.

 

     영화 속 인물들도 하나 같이 이 관계에 서툰 사람들이다. 동생의 죽음 후 수정에게 집착하는 재현도, 수강생의 새어머니와 혼외정사를 가지면서도 그 의붓딸인 수경과도 또 다른 관계를 맺으려는 성우는 한편으로는 도박중독에 빠져 있다.(도박이야 말로 상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관계를 전제한 놀이다) 수정 역시 자신이 가진 능력에도 불구하고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외로운 아이고, 성우에게 집착하는 관계 맺지 못한 인물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이런 모습들이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게 뻔히 보이는데,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안타깝다. 영화 속 인물들의 엇갈리는 관계들도, 감독의 연출력도, 그리고 그보다 더한 현실 속의 단절들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두환 쿠데타에 가담해 호위호식하고

대통령 경호실장을 하며 수천 억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던

안현태 씨가 죽자 지난 6일 국립묘지에 안장한 정부.

이건 뭐.. 뿌리가 그쪽이란 걸 인정하는 건지.

 

무슨 짓을 하든 성공만하면 죽어서도 대접받는다는 걸

국가가 나서서 교육하고 있다.

불법과 반칙이 난무하는 아름다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법이다. 

 

 

곧 전두환, 노태우도 같은 명목으로 국립묘지 안장한다고 할 듯. 

아마 이게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인다. 

아프리카 독재정부 수준이 이와 비슷할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1-08-0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정말 대단한 법이에요. 성공만 하면 장땡이라니.
그 법을 만들어 내는 정부는 두 말하면 입 아프지요.

페이퍼 제목 보고 따라 들어왔는데 눈살이 찌푸려지네요...
이래서 더 책을 읽게 되는 걸까요.

노란가방님 소개글, 정말 공감이에요 :)

노란가방 2011-08-09 12:58   좋아요 0 | URL
자기들이 만든 법으로 '합법적인 반칙'을 저질러 호가호위 하는 게
권력자들의 속성이지요...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줄거리 。。。。。。。                

 

     어느 날 시(市)의 외곽순환도로 건설을 위해 자신의 집이 철거될 위기에 처한 아서. 친구였던 포드는 굴삭기 앞을 막기 위해 누워있던 그를 데리고 급히 어딘가로 가더니 곧 둘은 어떤 우주선 안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 하나. 지구가 우주 통행로를 만들기 위해 방금 철거되었다.

 

     그 때부터 아서는 포드와 함께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되어 온갖 말도 안 되는 행성에서 어이없는 인물들을 만나고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겪는다.  

 

 

 

2. 감상평 。。。。。。。                

 

     시작은 좋았다. 왜 아서가 이 어이없는 은하계를 히치하이킹 하는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적당한 유머를 섞어 재미있게 제시했다. 하지만 일단 아서가 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거기에는 어떤 논리적인 전개나 인과율이 배제된, 순수하게 우연과 농담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혹시 누군가 이 책을 한참 읽다가, 의도치 않은 심부름이나 급한 용무(이를 테면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식사를 하는 것 같은)를 보고 돌아와서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면, 굳이 이전에 읽었던 곳을 찾기 위해 이야기를 앞으로 넘겨서 몇 분 동안 찾을 필요 없이 그냥 아무 데나 펴서 읽어도 괜찮다. 어차피 앞에 읽은 내용들이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라 딱히 구별되지도 않을 테니까.

 

     이야기 전체는 말 그대로 ‘산으로 간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판타지 문학이란 게 일단 상상에 기반하고, 당연히 어느 정도는 논리적 비약이나 우연과 같은 특별한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일단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낸 다음이라면 적어도 내적 논리에 따라 모순 없이 이야기가 흘러가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원칙 아닌가.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런 기본적 합의를 가볍게 휴지통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농담 따먹기와 우연의 연속뿐이었다. 초반부 몇 백 페이지 정도까지는 그런대로 참고 읽을 만했지만(종종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다), 시종일관 가벼운 말장난만 반복하는 1,236페이지 짜리 이야기를 며칠에 걸쳐 읽는 건 고문 아닐까.

 

     영국식 유머도 좋고, 하이 코미디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면 제대로 된 스토리 하나는 넣을 만도 한데, 이건 김치전을 한다면서 정작 밀가루는 넣지 않고 김치만 들입다 팬 위에 올려놓은 꼴이다. 볶은 김치의 맛을 좋아한다면 그런대로 반찬으로 쓸 수는 있지만, 출출한 속을 달래기 위한 포만감을 주는 간식꺼리를 만들려고 했다면 실패작이다.

 

 

     요샌 어지간히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면 자신도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속해야 한다는 강한 소속감에 자신도 모르게, ‘철학적’이니 ‘심오한’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나보지만(이 책에 대해 호평을 쓴 다른 리뷰어들을 향한 말은 아니다. 책에 대한 감상은 다를 수 있는 거니까.), 이 범 우주적인 농담 따먹기에는 굳이 작가도 그런 철학적 해석이 붙는 것을 원하진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