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독재자 - 초특가판
찰리 채플린 감독, 찰리 채플린 출연 / 기타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토매니아의 독재자 힌켈과 유대인 이발사가 닮은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영화 속에선 채플린이 1인 2역을 연기했다) 힌켈이 이끄는 쌍십자군(!)은 인근의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착착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유대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힌켈에 의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 이발사. 하지만 우연한 사건으로 이발사와 힌켈의 위치가 바뀌게 되면서 일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히틀러를 풍자한 찰리 채플린의 전설적인 영화. 독재자와 똑같이 생긴 유대인 이발사라는 설정은, 인종이나 혈통, 머리색과 피부색 같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를 매우 강력하게 보여주는 요소다.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수용소에 가두라는 명령만큼 자기 파괴적인 지시가 또 어디 있을까.

 

     영화는 기본적으로 코미디를 표방한다. 하지만 채플린은 웃음 속에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담는 것을 잊지 않는다. 히틀러를 비틀어 놓은 영화 속 독재자 힌켈의 모습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멍청이일 뿐이고, 그가 만든 쌍십자당은 나치의 갈고리십자가(하켄크로이츠)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한 것이다. 마치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어이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듯, 그의 모자와 팔에는 늘 두 개의 X표가 따라다닌다.

 

     영화 말미의 이발사가 힌켈의 자리에서 하는 연설은 휴머니즘을 가장 잘 표현한 명연설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내용이다. 또, 1940년도에 처음으로 개봉했던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을 당시 문명국을 자칭하던 독일의 야만성과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다. 예술가가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채플린이다.

 

     하지만 바로 그 연설 때문에 채플린은 매카시즘의 희생양 중 한 명이 된다.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는 개념 없는 정치인들과 그에 빌붙어 살던 어용기자, 학자들은 채플린을 빨갱이로 몰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채플린은 스스로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게 된 것. 하여튼 어딜 가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다.

 

     영화의 구성적인 면을 보면 요새 나오는 영화만큼의 세련됨은 부족하다. 하지만 70년 전에 제작되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흠을 잡기보다는 이런 시도를 이렇게 재미있게 해 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이 정도면 참 괜찮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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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스승께서는 극심한 고난과

수치스러운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고 계시는데,

그 고난과 죽음의 길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더 놓은 지위에만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매우 역설적이면서도 충격적이다.

 

 

- 양용의, 『하나님 나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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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한 수학 - 민주주의를 애태운 수학의 정치적 패러독스!
조지 슈피로 지음, 차백만 옮김 / 살림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1. 요약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정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건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거고, 실제적으로 한 국가나 조직의 운영을 위해서는 대표자를 선출해 그로 하여금 일정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일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러면 어떤 자격을 가진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선출해 낼 것인가.

 

     물론 선거를 통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사람을 뽑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쉽게 대답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후보자가 3인 이상이 된다면 사람들의 지지도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뿐더러(예를 들면 A가 40%, B가 36% C가 24%의 표를 얻었다고 하자. 당연히 A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C를 뽑은 24%의 사람들은 A보다 B가 더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A가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일까?), 완전히 공평하게 국회의원들의 의석수를 분배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자는 선거에 관한 이론들의 역사를 살펴본 뒤, 미국의 예를 들어 공평한 의석배분에 관한 수학자들의 치열한 고민들과 다툼을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2. 감상평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비슷한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라는. 통치자로서 알아야 할 물리학과 관련된 주제들을 흥미롭게 제시해 놓은 책이어서, 이번 책도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리고 뭐 내용도 나쁘진 않았지만, 제목과의 연관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대통령이 알아야 할 수학적 원리나 내용들이라기보다는 그저 선거방식과 관련된 여러 논의들을 정리해 놓았을 뿐, 이 내용을 대통령이 알아야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앞의 책이 ‘대통령’에 강조점이 찍혀 있으면서 물리학을 잘 안고 갔다면, 이 책은 ‘수학’에 방점이 찍히면서 ‘대통령’은 희미해져버린 느낌이랄까.

 

 

     참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입에 올린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들 잘 알고 있고, 이야기만 나오면 한 마디씩 거들곤 한다. 하지만 실제 기술적인 차원으로 들어가면, 생각만큼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잔뜩 있다. 플라톤의 말처럼 어리석은 대중의 선택이 국가를 망칠 수도 있는 거고, 단순히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것만이 민주적인 방식이라거나 시민들의 의사를 가장 정확히 반영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결국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방식으로는 완벽한 선거제도를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은, 치열한 정치의 현장에서 자신만이 민의를 알고 대변하고 있다는 양 착각하는 일부 직업 정치인들의 정신을 좀 차리게 해야 할 텐데 그게 쉬워보이진 않는다.

 

 

     교양으로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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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은 결코 관용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무책임을 달리 부르는 것입니다.

 

- 요아힘 가우크,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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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공무원은 국가의 앞잡이들이고, 국가는 국민에게 시도 때도 없이 뻔 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며, 사람의 불행은 이미 충분히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가르치는 최해갑. 그의 집 가훈은 ‘가지지 말고, 배우지 말자’였다. 그렇다고 어디서 사상교육을 받고 혁명을 꿈꾸는 운동권 출신도 아니다. 그저 힘 꽤나 쓰는 놈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힘없는 사람들을 건드리는 게 불쾌할 뿐이고, 그럴 때면 쫄기 보다는 한 번 대들어보기라도 해야 시원한 성격을 가진, 자생적 아나키스트라고 해야 하나.

 

     이래저래 불만족스러운 도시를 떠나 고향인 외딴 섬으로 들어간 최해갑의 가족은, 그 섬을 개발한다며 사람들을 쫓아내고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국회의원 김하수와 그의 똘마니들에게 위협을 당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무모한 도전이 될 것이 분명했지만, 해갑은 끝까지 가보기로 작정한다.

 

 

2. 감상평 。。。。。。。   

 

     코미디와 가족 드라마로 포장을 잘 했지만, 정치색이 짙게 묻어 있는 느낌이다. 딱히 부유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직업도 분명치 않으면서도 뱃심 좋게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수가 틀리면 주먹부터 나가는, 말 그대로 독불장군이다. (무슨 돈으로 아이 세 명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끊임없이 술 사 먹을 돈은 어디선가 나오는지..) 미납된 세금과 공과금으로 압류까지 들어오자 미련 없이 외딴 섬으로 들어와 버려진 집을 고쳐서 살고, 맨몸으로 용역 깡패들과 맞서 싸우는 해갑의 모습은 처음부터 리얼리티보다는 뭔가를 말하려는 감독의 이상이 투영된 비현실적 존재였다.

 

     그럼 감독이 말하려는 건 뭐였을까.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남쪽이 상징하는 자유, 현대사회의 이상향, 제도나 관습을 벗어나 이상향을 향해 떠나는 가족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인위적인 모든 질서들에서 벗어나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자연주의를 반영한 영화인건가. 영화 속에서 이런 자연주의는 자연스럽게 아나키즘과 연결된다.

 

 

 

 

     하지만 그런 최해갑의 모습을 보면서 딱히 대책이 없다고 느껴지는 건, 영화 속 말마따나 내가 세뇌 당했기 때문인 건가? 결국은 자신의 자녀들마저 버리고 배타고 자기 길을 떠나 버리는 해갑과 그의 아내 봉희의 모습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보다는 또 하나의 자기 생각에 빠져 가정마저 인위적으로 해체시켜버리려고 했던 어떤 이들이 떠오른다.

 

     물론 강력한 불의와 맞서 싸우는 주인공의 모습은 신이 나기도 하고 절로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의 배에 함께 올라타고 싶지는 않다. C. S. 루이스가 말했던 것처럼, 항해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능사는 아니다. 바른 방향과 능숙한 항해 기술이 없으면 망망대해에서 기름이 떨어진 채 떠돌기밖에 더 하겠는가.

 

 

     주연을 맡은 김윤석의 연기는 역할에 잘 녹아들어갔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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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3-27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딱히 대안이 없이 그저 화끈하게 밀어 붙이다가 끝이 나는...결국 아나키스트 최해갑을 구하는 것은 공무원이죠. 이걸 어찌 해석해야할는지...

노란가방 2013-03-27 09:17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아나키스트를 구하는 공무원이라..
이상이 현실을 삼켜버린 난감한 영화인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