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신민에게는 자애로운 국부국모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화국의 주권자에게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필요할 따름이다.

우리 마음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

 

-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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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대 국가 -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허버트 스펜서 지음, 이상률 옮김 / 이책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1. 요약。。。。。。。     

 

     사진만 봐도 왠지 영국 사람일 것 같은 정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쓴 네 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국가의 통제(각종 행정조치)가 강화되는 것에 불안과 불만을 느낀 저자가 이에 반대하기 위해 쓴 것들이다.

 

     제1새로운 토리주의는 과거 왕정복고 시도 당시 왕정을 옹호하던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민의 자유에 무관심했던) 토리당에 반대해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던 휘그당의 후예인 자유당이 정권을 잡자, 이제는 시민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들을 만듦으로서 사실상 과거의 토리당과 마찬가지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2다가오는 노예제에서는 각종 정부의 규제법률로 인해 시민들의 자유가 크게 제한됨으로써 사실상 노예제와 다름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제3입법자들의 죄에서는 당시 의회에서 법률을 제정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법안들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입법활동을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마지막 제4거대한 정치적 미신에서는 의회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2. 감상평 。。。。。。。   

     동네 도서관에 들어온 신간 코너를 돌아보다가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책을 집어 든 책이었다. 책의 본문도 본문이지만, 책머리에 수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는 번역자의 해설 부분이 흥미로웠다. 역자는 그를 저주받은 사상가라고 부르며, 그가 오랫동안 오해를 받아왔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스펜서에 대한 오해는, 그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원조를 비판하고, 적자생존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부에서 시행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강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철학을 주장했다는 데 기인한다. 역자는 이 부분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사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런 오해가 상당부분 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비친다.

 

 

     물론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을 잘 읽어보면 역자의 이런 의견에 일정 부분 공감을 하게 된다. 사실 그가 시민의 자유를 이토록 주장했던 것은, 의회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해 불필요한 규제와 간섭이 난발되고 이로 인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의욕이 꺾이고 나아가 오히려 손해까지 보게 되는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모든 종류의 규제를 철폐하고 완전한 자유경쟁에 맡기자고 주장한 것도 아니고, 정부 권력이 시민을 직간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종류의 구속의 필요성까지는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조치가 사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불필요한 자유의 제약일 뿐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자가 그토록 공격하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부의 복지지원 문제를 두고 보자. 당장에 먹을 것조차 충분하지 않은 시민이 실제적인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역자는 스펜서의 주장이 약육강식을 옹호한 것처럼 오해된 것은 그의 이론을 원래 의도에서 멀어지도록 오용한 사람들 탓이라는 논리를 펴는데, 이는 다시말하면 스펜서가 자신의 이론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할 수 없었으니 그의 잘못은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스펜서가 3장에서 지적했던 문제, 즉 입법자들이 그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에 비춰 생각해 본다면, 스펜서 자신도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갈수록 정부의 권한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스펜서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자유를 옹호하던 정당, 정치세력이 이제는 과도한 규제를 통해 과거 반대하던 정치세력의 태도를 닮아가고 있다는 주장과(1), 의회의 권력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묻는 제4장의 내용은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가족에서의 원리(약자를 적극적으로 이끌어주고 돕는)와 사회에서의 원리(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는다는)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오랫동안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권력의 제한을 통해 시민의 자유를 가져와야 한다는 상황과, 반대로 시민의 자유를 위해 권력의 행사가 필요한 상황 사이의 조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면서도 지속가능한 체제를 만들어가는 데 그 어느 때보다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인데, 진영논리로 점철된 우리나라의 정치계, 학계에서 이 작업이 과연 언제쯤 제대로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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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시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인격을 보십니다.

나는 내 인격만 빼고 모든 사람의 인격을 다 봅니다.

- C. S. 루이스, 피고석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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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사람에게 총체적으로 힘을 몰아준다는 것은

스탈린의 러시아에서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에게 모든 힘을 몰아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데어 퓌러der Fuhrer(총통) 뒤에

일제히 줄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미국 진보 언론의 현주소입니다.

 

- 노암 촘스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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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지구. 대부분의 땅에서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날마다 거대한 모래바람으로 인류의 미래는 결코 낙관적일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병충해마저 나타나 밀은 멸종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고, 이제 남은 것은 옥수수 하나뿐이었지만, 그마저 얼마나 오래 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전직 조종사이자 지금은 두 아이들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우연히 비밀리에 외계로의 인류 이주 계획을 세우고 있던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를 만나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우주선의 조종을 부탁받게 된다. 이대로면 모든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속에서 쿠퍼는 그 계획을 수락하지만, 남겨진 자녀들은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토성 근처에서 발견된 웜홀을 통해 들여다 본 새로운 인류정착 후보 행성들, 하지만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여기에 탐사대가 지구보다 더 강력한 중력을 가진 행성에 머물면서 지구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수십 년이 지나버리기까지..

 

 

 

2. 감상평 。。。。。。。   

 

     자, , 평일 아침에 자꾸 커플들이 이런 영화 보러 오는 건 반칙.

 

 

     영화에 등장하는 논리는 어지간한 수준의 물리학적 이해를 가지고서는 충분히 다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기후재앙이나 웜홀, 동면상태의 우주여행까지는 어찌 따라가겠지만, 중력과 시간 사이의 상관관계로 인한 시간 지연, 그리고 결정적으로 블랙홀(사실 여기부터는 굉장히 창의적인 상상력의 영역으로 가버리지만)까지 가면 이건 뭐..

 

​     하지만 또 영화는 그런 사전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쉽게 만들어졌다. (‘시간의 역사정도 겨우 더듬더듬 읽어냈던 나도 크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으니) 소재가 좀 어려웠을 뿐, 그저 우주선을 타고 아주 멀리 가서 사람이 살 만한 새로운 행성을 찾는 이야기라는 큰 틀 안에, 배신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인간들이라는 익숙한 장면들이 채워져 있으니까. 이야기 자체는 그닥 특별한 게 없지 않았나 싶기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흥행의 이유는 아마, 사람들이 생각으로만 가르치고, 배우던 내용들을 실제 영상으로 구현해 냈다는 점, 그리고 소재의 특이함 정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감독의 이름값, 그가 전작을 통해 보여줬던 것들에 대한 기대치도 한 몫을 했을 거고.

 

 

 

 

     영화가 그만큼 뭔가를 담고 있는가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우주라는 소재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인데다, 이런저런 어려운 이야기들을 잔뜩 해놓기는 했지만 사실 그닥 중요한 것도 아니고. 여기에 지독히 늘어지는 시간은 절제의 미학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다, ‘인셉션과 같은 기발한 상상력이 보이지도 않는다. 여기에 결말부는 과도한 영화적 상상과 어느 것 하나 분명치 않은 어중간한 설명으로 끝나버린다.

 

     어쩌면 대중 특유의 자기만족이 여기(흥행)에 작용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진작부터 이 영화는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한겨례신문 인터넷판에는 일반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면 뭔가 대단히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하는 기사(무려 화면 절반이 잘려 나간다는!!!)를 올리기까지.. 남들 보는 건 나도 좀 봐줘야 하는데, 다행히 심각한 내용은 아닌 오락영화인데다, 아이맥스관이라는 희소성까지 획득할 수 있는 찬스니..

 

    영화 속 장면들이 또 다른 이야깃꺼리들을 이끌어내는 소재로서 (아마 주로 과학계에서 이런 시도들을 곧 하지 않을까? 대상은 어린이, 청소년?)​ 사용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다시 보라고 하면 굳이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영화에 대한 과도한 환상이나 기대는 금물. 그리고 영화 보기 전 화장실엔 꼭 다녀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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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4-11-1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영화보기전 화장실 정말 꼭 다녀와야해요,그리구 절대 콜라 같은것도 마시지 말구요,

노란가방 2014-11-20 11:43   좋아요 0 | URL
음료도 금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