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종군기자인 마크(콜린 파렐)와 데이빗(제이미 실브스)은 쿠르드 반군과 이라크 정부군 사이의 전쟁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잠시 끊긴 뒤, 마크는 쿠르드 반군의 야전 병원에 누워있었고, 의사는 누워 있는 그의 가슴에 그에게 파란색 표를 놓아둔다. 이 영화의 원제인 Triage는 바로 이것, 즉 전시에 환자의 상태를 보고 치료의 순서를 정하는 분류절차를 가리킨다. 참고로 검은색은 가망 없음..)

     얼마 후 프랑스의 집으로 돌아온 마크. 일부 외상이 있긴 했으나 큰 문제까지는 되지 않는다는 진단이었지만, 그는 좀처럼 제대로 걷지 못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는 진단. 그를 돕기 위해, 아내인 엘레나의 할아버지 호아킨(크리스토퍼 리)이 나서고, 그와의 상담치료가 시작된다.

     그 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2. 감상평 。。。。。。。

     전쟁의 참상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는 종군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이 작업이 결코 신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직접 나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것은 우선 대단히 위험한 일일뿐더러,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됨으로써 받은 정신적 타격 역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부분. 후자 쪽의 위험을 다룬 영화로 뱅뱅클럽이 있다면, 이 영화는 전자 쪽의 문제로 인해 상처받은 주인공을 보여준다.

     수년 동안 전장을 함께 다니며 형제만큼 가까운 사이가 된 마크와 데이빗. 하지만 마크는 집에 돌아오고 데이빗은 그렇지 못하면서 위기가 발생한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마크는 좀처럼 입을 열시 않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마음 속 깊이 감추어둔다. 그러나 그건 마크 자신에게도 큰 짐이었고, 마음의 병은 몸의 문제로 전이된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했다. 영화 속에서는 호아킨이 그 역할을 감당한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차근차근 되집으면서, 그 곳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음으로써, 비로소 마크는 자신 안의 무거운 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데이빗이 돌아오지 못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전쟁의 비극이었던 것. 전쟁은 그렇게 직접 참가하는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모두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다.

     영화의 분위기는 전쟁의 무게만큼 시종일관 무겁게 흘러간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깊이가 있고, 특히 주인공인 콜린 파렐은 과장된 연기 없이도 극중 마크가 안고 있는 무거운 상처를 표현해 내고 있다.

     덧. 그런데 영화의 우리말 제목이 왜 앤드 오브 워인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지었는진 모르겠지만, End of War라면 엔드 오브 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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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7일 - 창세기와 과학에 따른 세상의 기원
존 C. 레녹스 지음, 노동래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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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창세기 1장에 실려 있는 일주일 동안 이루어진 창조기사와 현대 과학의 발견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쓴 책. 유물론/무신론자들이야 처음부터 이런 고민 자체를 하지 않을 테고, 따라서 이 책은 보수주의적/근본주의적 관점으로 성경을 보는 기독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쓰였다.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장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기사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로 번역된 히브리어 이 단순히 24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이미 창세기 1장 안에서도 그 단어가 최소한 세 가지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설명한다. 몇 가지 논의를 검토하면서 저자는 창조의 6일은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 취하셨던 전체 기간에 걸쳐, 간격을 두고 배열된 일반적인 길이의 날들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59)

     하지만 저자는 생명의 탄생, 특히 인간의 탄생에 관해서는 좀 더 보수적인 관점을 취한다. “우주론적 증거는 생물학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며, 생명이 인도되지 않은물질적 진화 과정에 의해 출현했다는 신념을 신봉하지 않고서도 (현대 과학의) 우주론적 증거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89) , 우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창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끝자락에 이를 무렵,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으로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5)에서는, 창세기 1장에 실려 있는 좀 더 깊은 신학적 의미들을 살피는데, 이는 다분히 여기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에 관한 직접적 논설이라기보다는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내러티브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2. 감상평 。。。。。。。

     기본적으로 저자의 입장에 공감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창세기 1장의 내용에 대한 문자주의적 이해만이 유일하고 정확한 성경 이해라고 고집할 수는 없을 테니까.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나름 견실한 방식으로 창조의 일주일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해낸다.

     적어도 세상의 창조에 관해서 저자는 성경의 문자적 이해보다는 현대의 과학적 설명을 좀 더 신뢰한다.(물론 이런 태도가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창조에 관해서는 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서 저자는 성육신이라는 신학적 진리를 근거로 인류의 초자연적 시작을 옹호한다.(76) 아마도 인간의 정체성/기원은 저자가 믿고 있는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핵심 주장들과 직접 닿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조금 의문이 생긴다. 정말로 현대 과학의 우주론적 설명과 생물학적 설명 사이에 그렇게 칼로 잘라낸 듯 구분이 가능한 걸까? 어쩌면 이런 식의 도약은 양편 모두로부터 반대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신학은 좋은 과학적 설명과 분명 조화를 이룰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양편 모두 진리에 가깝다는 의미에서 좋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말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양 편의 건전한 대화가 많아지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다른 견해를 인정하는 것은 신학은 물론 과학에도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고.

     책 말미에 붙어 있는 다섯 개의 부록은 재미있는 읽을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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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무렵 현존 사회주의가 대붕괴를 맞고,

그로 인해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인식이 퍼져나갔지요.

하지만 그 시기에 오히려 자본주의 내부의 붕괴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꿔 말하면해결 방향은 전혀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내부의 붕괴만이 드러난 시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모든 호러소설의 공통점을

해결불가능성에 의한 내적 파괴라고 생각합니다


다카하시 도시오호러국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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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본 책과 영화.
근근히 살아요.

저질 체력 때문에..
요즘 틈만 나면 자기 바쁜...;
근데.. 잘 시간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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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가정주부의 일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분명합니다.

, 철도, 광산, , 정부 등이 존재하는 목적이

바로 자기 집에서 먹고 따뜻하고 안전하게 지내게 하려는 것 아닙니까?

……

우리는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고,

여유를 갖기 위해 일하고,

먹기 위해 음식을 생산합니다.

그러니 부인이 하고 있는 일이야말로

다른 모든 일이 존재하는 목적이지요.

 

- C. S. 루이스, 당신의 벗, 루이스

존슨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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