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에 했던 얘기로 돌아가 보세.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을 갖기를 원해.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소속감이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네.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미움받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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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세계관에 내포된

제국주의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제국주의가 되어 버려

포스트모더니스트만이

다른 모든 사람의 숨겨진 이해관계와 동기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곧 그들을 해체하고 그 실체를 폭로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시각을 달리하는 다른 모든 이들의 입을 효과적으로 틀어막았다.

 

- 낸시 피어시, 세이빙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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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꼭 믿을 필요는 없다.

 

세상 모든 일은 자기들이 이해할 수 있는 논리로 설명되어야만 한다는
오만한 단정에서 시작된 이 기계적 결정론은
종종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데 사용되는데,
예컨대 뭐 이런 식이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상대도 이런 식으로 나오진 않았겠지."
"따지고 보면 네 잘못도 있는 거니까"

 

근데 사람이란 게 그렇게 다 이유와 계산에 따라서만 움직이던가.
누가 뭐라던 그냥 제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잔뜩 있더라.

 

그러니..
너무 자책하거나 실망하지 말자.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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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돌연변이(뮤턴트)들이 나타나기 오래 전,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의식을 하고 있는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삭). 그의 정체에 의심을 품은 한 무리의 사람들 때문에 의식은 갑자기 중단되고 수 천 년 동안 잠들게 된다. 우연한 계기로 잠에서 깨어난 그는, 엉망진창으로 변해 버린 세상을 확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이를 돕기 위한 네 명의 돌연변이들과 함께.

 

     그리고 그의 계획을 막기 위해 나선 어린 엑스맨들. 지구와 우주의 운명을 걸로 한판 승부를 벌이는데..

 

  

 

 

2. 감상평 。。。。。。。

 

     엑스맨 시리즈를 다 챙겨본 게 아니라, 언젠가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설정이 있지 않았나 싶은 데도 있고 뭐 그렇다. 개인적인 오해일 수도 있지만, 이 시리즈는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계속 뒤만 바라보는 느낌?

 

     그리스어로 계시를 뜻하는 아포칼립시스에서 온 영어 단어 아포칼립스를 부제로 삼은 영화. 원래 어원 자체에는 덮인 것을 걷어낸다는 뜻인데, 이 단어가 요한계시록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되다 보니, 사람들이 그 책 안에 있는 여러 종말적 재앙들을 이 단어에 연결시켜 이해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포칼립스에는 어원에는 전혀 없는 대재앙’, ‘파괴뭐 그런 의미가 들어가 버렸다. 이 영화의 아포칼립스에도 그런 파괴의 이미지가 더 앞에 고려된 듯한 느낌이고.

 

 

 

     오래 자다 일어나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세우겠다고 떼를 쓰는 모습은 별로 거창해 보이지도 않고, 딱히 설득력도 없다. 전 세계의 타락한 모습을 좀 더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윤리적 고민이나 괴로움을 좀 더 강조했다면 분위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소개해야 할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보니 거기까지 고려하지는 못한 듯. (편집 중에 잘렸을 수도)

 

     세계의 운명을 걸고 벌어지는 전투라지만, 생각만큼 스케일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매그니토가 벌이는 엄청난 작업을 표현하는 데에는 상상력이 부족했고, 고만고만한 뮤턴트들의 초능력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수준 그 이상도 아니었고.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일단 이야기 자체의 구성이 탄탄해야 보는 맛도 나는 법인데, 구조가 너무 단순했다.

 

 

 

 

     여담이지만,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도시를 건축하겠다는 아포칼립스의 계획은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세계 여러 정부들이 하고 있는 일과 비슷하다. 일명 창조를 위한 파괴라는 건데, 도시를 재개발한다며 원주민들을 다 내쫓고는 그 자리에 부자들이나 들어가 살 수 있는 고급 주택단지를 건설하는 일이나, 이라크 전역을 파괴하고는 그 자리에 자국기업들이 들어가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밀어붙이는 미국 정부의 행태 같은 것들이 그 예다. 물대포로 거리에 나와 있는 시민들을 쓸어버리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에게는 뒷돈을 쥐어 주는 이 나라 정부의 모습도 아포칼립스의 행동과 다름없고.

 

     이 엄청난 힘을 가진 아포칼립스를 물리친 것은,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 뮤턴트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은 자신들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몰라서 늘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고, 착취당하기만 하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힘을 자각하는 날, 세상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계시(아포칼립스)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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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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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1장에서 신자유주의 사조에 깊이 길들여진 대한민국의 20대를 분석한다. 이들은 너는 할 수 있어라는 주문에 근거한 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끝없는 경쟁으로 스스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식으로 스펙을 쌓고 경쟁을 해봐야 좋은 날이 올리는 만무하다. 그렇게 남과 경쟁하는 데 익숙해진 그들은, 점차 고립되었고, 고립된 개인의 힘은 약할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 연봉을 대폭 깎는 뻔뻔스러운 조치가 기득권층(여기에는 보수우파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암묵적인 동의를 한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들도 포함한다)의 협잡으로 이루어지는데도, 그 당사자인 20대는 별다른 대처를 할 수 없었다.

 

     문제는 뿔뿔이 흩어진 20대의 상황. 우석훈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을 짤 것을 제안한다. 문제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20대들이 나서서 연대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것이 꼭 대규모 집회나 폭력투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안은 시민운동, 정치운동과 같은 현 법체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2. 감상평 。。。。。。。

 

     스스로를 대변할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주체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시당하고, 빼앗기고, 결국에는 존재마저 희미해지게 된다. 개인의 탐욕추구를 절대선으로 보고, 이를 위해 경쟁하는 과정을 정당한 윤리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필연적으로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20대는 그 대표적인 집단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박봉에, 야근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기 시작하거나, 수 천 만원이 드는 대학을 졸업하느라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서기도 전에 이미 채무자 신세가 되어 버린다. 3, 6포를 넘어 N포세대가 된 이 나라의 20대의 상황은, 그들이 이 나라의 중심적인 위치에 서게 될 때가 필연적으로 오게될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 때문에라도, 단지 그들의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20대가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면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이 지금 형성하고 있는 태도와 습관, 가치관은 어느 정도 그 자신들이 선택한 부분이기도 하니까. 나는 잘못이 없는데 모든 것은 구조 탓이라는 식의 변명은 어지간해서는 하지 않는 게 옳다.

 

     하지만 굳이 책임의 비중을 계산해 본다면, 이 경우엔 그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구조쪽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다른 식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왜 다르게 보지 못하느냐고 책임추궁을 하는 건 공정치 못한 일이니까. 그러나 이 구조라는 것도 결국 변화의 의지를 보이는 사람들이 나설 때에야 바뀐다. 우석훈이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가진 진짜 힘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비록 5, 60대에 비해서 그 수도 적고 결속력도 약하긴 하나, 20대의 힘이 모이면 결코 약하지 않다. 배짱 있게 들이대보는 것만이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중요한 건 이들을 제대로 뭉치게 해 내는 일. 흩어진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모이지 않는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물리적 세계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통하는 법칙이니까. 뭉치면 산다. 아니 뭉쳐야 산다. 이를 아는 기득권층은 어떤 수를 동원해서라도 이 젊은이들이 뭉치지 못하고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만 보도록 만들겠지만, 그래도 버텨내야 한다.

 

 

 

     아쉬운 부분은 저자의 교회에 대한 태도.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 오늘날 20대는 서로에 대해 신뢰관계를 거의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집단이 있으니 ‘(강남의 대형)교회의 청년부에 소속된 20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 신뢰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결과에 별 의미를 두지 않은 채 사교집단처럼 보인다’(112)며 무시하고 넘어가버린다. 이명박을 경멸하면서도 한나라당(이 책은 2009년에 쓰였다)에 줄을 대 정치운동을 하려는 20대에게조차 나름의 격려와 덕담을 던지는 저자인데 말이다.

 

     교회도 여러 가지고, 목사도 다양하고,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의 일부는 저자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자리에 모인 이들은 저자가 말하는 연대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 공동체가 가진 진짜 자질과 가치들이야말로 현 상황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뭔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을 기대했다면 살짝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닐까. 그래도 누군가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지속적으로 고민하려는 자세만큼은 좋게 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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